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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8 16:09
글 잘 봤습니다..
이전에 있어서 임진왜란과는 달리 병자호란은 너무 조선의 일방적인 입장에서만 그려져 있어서 왜 그럴까 생각은 해보았는데 이러한 의견을 보니 아! 하는 생각이 듭니다.
13/06/08 16:20
임진왜란 얘기를 보니~ 조선중기때는 사림 중심이니 너무 내적인것만 강조했던게 결국 군사력을 늘리는데는 신경을 못쓴게 아쉽네요.
주변나라들은 계속 군사력을 키웠던 상황이였고.. 결국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조선의 고통이 시작된거 같네요.
13/06/08 16:11
흐엌 여기서 신불해님을 보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모 갤러리에도 글 좀 자주 남겨주세요 크크. 글쓴이부터 눈에 띄어서 선리플 후감상합니다.
13/06/08 16:25
저도 신불해님 닉네임을 보니 정말 반갑네요.
피지알 자게가 점점 풍성해지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신불해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릴게요. ^^
13/06/08 16:16
중립외교에서 친명배금으로 정책이 변화되었고 금이 청으로 됐기때문에 청을 무시하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다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
알고있었는데, 청나라입장에서 보니 경제적인 어려운상황을 극복하려고 전쟁을 했다는 말도 맞는거같네요.
13/06/08 16:28
사실 생각해보면 조선이 개겨서 전쟁이 난거다 조선이 잘못했다는 시각이 좀 웃긴거죠
학교 짱이 시비를 걸고 빵사오라고 해서 싫다고 했다가 얻어맞았는데 때린놈보다 맞은놈이 개긴게 잘못이라고 하니.....
13/06/08 16:29
이런 각도에서 봐도 재미있군요.
작년이었나 발표회에서 병제사 공부하시는 선생님께서 전력만 놓고 보면 명이 산해관을 뚫릴 것이 아니었다. 라고 이야기하셔서 우리는 생각보다 명을 약하게, 청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 오타 몇개만 지적하면 제조지은->재조지은, 김선민 선생님 논문 后金->後金 이 있네요.(이런거 지적안하는데 아무래도 학술용어다 보니 눈에 잡히네요 ㅠㅠ)
13/06/08 16:43
좋은 글이다.. 글쓴 분의 의견에 덧붙이자면
애초에 인조의 친명배금정책 -> 청을 자극함. 이 논리부터가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은 1. 반정 정당화를 위한 내부적 프로파간다 2. 반정 승인을 위한 대명 외교용 정책 의 관점에서 쓰인 정책이고 실제 대후금관계의 실무적 측면에 있어서는 광해군대의 정책에서 그다지 바꾼 점이 없습니다. 당시 비변사의 대신들부터가 조선이 후금과 맞붙으면 승산이 별로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13/06/08 16:53
이런 걸 알아가면서 병자호란은 필연이었다는 쪽으로 기울게 되더군요. 광해군이 계속 있었다 하더라도 전쟁 안 벌이려면 뜯길대로 뜯기고 황제국으로 알아서 섬겨줘야 가능했을 수준... 아마 그렇게 됐다면 중립실리외교는 무슨 아예 나라를 갖다바쳤다는 쪽으로 욕 먹고 있겠죠.
아무튼 신불해님 정말 반갑습니다 ( __)!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인사는 처음 드리네요.
13/06/08 17:02
쌍령에서 모랄빵. . . .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조선군이 후방견제만 제대로 했으면 제2의 살수대첩이었을수도 있지만 쌍령과 강화도함락의 크리티컬이 터지면서
13/06/08 17:19
홍건족도 배고파서 압록강을 넘었지만 최영 이방실 이성계등에 격파되죠 홍건족의 난급으로 끝날게 병자호란 급이 된거에 집권세력의 책임이 없을 수는 없죠
13/06/08 17:25
없을 순 없죠. 다만 조선의 외교 실패라기엔 청의 사정이 너무 크죠. 뭐 그 과정에서 실책은 있지만 광해군 중립외교 오오와 함께 인조가 전쟁을 불렀다 이런 수준의 주장이 문제인 거고 본문도 그걸 짚는 것이구요. 전쟁 발발 원인보단 대비나 전쟁 중의 실책을 더 따져봐야 될 부분입니다.
그리고 홍건적과 병자호란은 많이 다르죠 = =;
13/06/08 18:47
병자호란은 원오브뎀이 아니죠 단군이래 이런 난리는 없었습니다 명은 이자성이 멸망시켰죠 자멸하고 무주공산이었죠 청은 만리장성도 끝내 넘지 못했죠 오삼계가 열어주죠 홍건족이 세운 나라가 명나라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생필품도 부족한 적들에게 병자호란으로 병자호란이 되게끔 한 이유가 청에 있다고 도저히 생각 안됩니다 조선이 하기에 따라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3/06/08 19:00
http://blindbard.egloos.com/459249
단군이래 이런 난리라 하면 오히려 나올 건 몽고의 침략일 겁니다. 수십년 동안 나라가 초토화되고 지배층은 그 동안 강화도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니까요. 인조도 정묘호란 때부터 이러고 한반도의 일은 세금만 거두고 무시했다면 삼전도의 굴욕은 없었겠죠 오히려 병자호란은 홍타이지가 정말 머리를 잘 쓴 전쟁입니다. 이전의 한반도 침공과 비교해서 이 정도로 정교한 작전이 나온 건 나당, 여요전쟁과 비교해도 원오브뎀입니다. 이게 그저 우연히 나온 결과일 순 없는 거죠. 당장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지 못 한 건 거의 하루도 안 된 차이였습니다. 그 하루차이도 극복하지 못 한 걸 문제삼을 순 있지만, 이전의 역사에서 이 정도 여유도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전쟁 발발부터 전쟁의 진행까지, 막고 대비하고 싸움에 있어 실책을 탓할 수 있을지언정 이전 역사와 비교해서 여유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막을 수 있더라도 그 난이도가 너무 높았어요
13/06/08 18:43
크 그러잖아도 피지알 자게가 역사를 사랑하시는 분들로 인해 풍성했는데 그 인명의 목록에 중요한 하나의 이름이 추가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3/06/08 20:25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침략전쟁이라고는 해도 애시당초 수십만에 이르는 '군대' 가 원정을 가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잖아요. 더군다나 전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였구요. 그렇다면 청의 입장에서 조선을 치는데 드는 '비용' 과 조선을 침략함으로서 얻어지는 '이득' 중 뭐가 더 큰지도 비교해야 정확한 분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의 일을 제한된 사료만 가지고 추측하는것이 절대로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전쟁도 일종의 '사업' 으로 생각한다면 비용-편익 분석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3/06/08 21:45
근대와 근대 이전의 군대의 차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근대 시기 군대와 이전시대 군대의 최대 차이점은 바로 군대가 전투를 위해 필요로 하는 물자가 급증함과 동시에 현지에서의 보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즉 비용의 크기가 커진 거지요. 이는 반대로 말해 근대 이전의 군대의 비용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현지에서의 보급 충당도 가능하고. 반면 편익은 근대와 근대 이전이 크게 차이가 없고요. 즉, 근대 이전 시대에는 먼저 강력한 군대를 구축하고, 그 군대로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전쟁을 수행하어 그 편익으로 군대를 유지하면서 차익으로 국가까지 발전시킨다는 식의 운영이 가능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케이스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이지만, 그외에도 여럿 존재하죠. 고구려 광개토대왕도 이런식이 아닐까 생각되고요. 물론 이런식의 국가 운영은 외줄타기와 같아 한번이라도 전쟁에 실패한다거나 정상적인 국가로의 전환 타이밍을 놓치면 나라가 망하죠. 대표적익 케이스가 아틸라의 훈족이 있겠군요. 체제 전환 이전에 아틸라가 죽고 전쟁이 멈추자 훈족 및 종속 부족들의 군대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바람에 자멸하고 말았죠.
13/06/08 21:27
글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옛날 알고 있던 지식과 대입해봐도 설득력이 있네요. 그러면 산대적으로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는 타격이 있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어차피 인조대에서든 광해군대에서든 전쟁이 '필연적'이었다면 상대적으로 외교정책으로 재평가받아왔던 광해군의 입지가 조금은 좁아지비 않을까 싶은데요.
13/06/08 21:48
사실 광해군에 대한 평가(광해군 외교 짱! 은 일제시기부터 90년대까지의 통설에 가깝습니다.)는 2천년대부터 이미 슬슬 부정적으로 전환되는 느낌이죠.
13/07/12 19:58
반대로 2천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많지 않나요?? 영화 광해가 개봉하기도 전부터 2천년대 이후 광해군 재평가라고 하면서 글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13/07/12 19:57
이런점을 감안해도 광해군의 외교적 판단은 정확했다고 봐야죠. 광해군이라면 어쨌든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봤으니 공물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병자호란 발생후에 강화도로 도망갈 생각만 했다가 그것마저 간파당해서 도망가지도 못한 인조를 생각하면.....
13/06/09 00:20
저도 고등학교때 떠오르는 태양 청나라와 지는 해 명나라, 그리고 광해군은 그 중에 실리를 잘 택했다고
배운 기억이 나네요. 오삼계 같은건 안 알려주고, 명나라는 청에 의해 멸망했다고 역사왜곡 -_ -;
13/06/09 01:44
그런데 중국 역사를 보면 유목민족이 너무 강력해져 한족이 이를 못막고 유목민족에게 정복당했다기 보다는
이미 내부적으로 병크가 너무 심한 상태라 유목 민족이 커지는 걸 막지 못하고 정복 당하는 수순입니다. 한족 통일 국가가 세워지면 사실 그 규모나 경제력으로 유목 민족의 노략질 수준이라면 모를까 지속적인 침입 막지 못할 수준은 아니고, 워낙 경제력 차이가 커서 유목민족한테 몇 번 지더라도 계속해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 있습니다. 정 못이길 것 같으면 장벽 쌓고 버티면서 이이제이 정책으로 서로 싸우게 만드는 방법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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