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4/30 18:07:27
Name 공허의지팡이
Subject [일반] 나의 마시멜로 이야기
유명한 마시멜로 이야기가 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이야기를 할려니 귀찮아서 네이버 책소개에 긁어오자.

스탠포드 대학에서 진행된 실험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달콤한 마시멜로를 하나씩 받는다.
그리고 15분 간 먹지 않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진행자는 충분히 설명한 후 아이와 마시멜로를 남겨두고 방 밖으로 나간다.
혼자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몇몇은 참지 못하고 먹어치웠고, 몇몇은 끝까지 기다려 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0여 년 후,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가했던 아이들을 추적해 그들의 삶을 비교했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네 살 때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정신력과 사회성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보였다.
15분을 참았던 아이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사회적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반면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곧잘 싸웠다.
마시멜로 하나를 먹은 것이 너무나 큰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웬 철지난 마시멜로 이야기냐 하면,
누군가 나에게 치열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치열함에 대한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치열함이라,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나.
문뜩,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던, 그리고 이제야 잊었다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나는 치열하게 세뱃돈을 저금했다.
우선 세뱃돈을 줄 만한 사람에게 꼭 세배를 하는 것이 첫째요,
잊어버린다고 엄마에게 맡기라는 마수를 피하는 것이 둘째요,
받은 세뱃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저금하는 것이 셋째였다.

우리누나는 세뱃돈을 조금씩 쓰고 저금을 했지만, 나는 유혹에 굴하지 않았다.
나라고 과자를 사먹고 싶지 않았겠냐만 과자를 사먹는 기쁨보다는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볼 때의 기쁨이 더 컸다.
그 결과 일 년 먼저 태어난 누나보다 더 많은 액수를 저금할 수 있었다. 그 또한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더 많은 이자를 주겠다며 64만원을 빌려가셨다.
몇 년 후 소식이 없기에 추궁하니 회사 주식를 샀는데 주식이 떨어져서 푼돈이 되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까까 사먹으라고 준돈 까까도 안 먹고 저금한 돈인데!!!"
하며 나는 분노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세뱃돈을 모았다.
세뱃돈만 아니라 명절이나 제삿날 등등 어른들이 주는 용돈을 열심히 저금했다.

또다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통장에는 이자를 적게 주니 적금을 들어준다고 하셨다.
옛날 64만원의 기억이 떠올라 완강히 거부했지만,
그건 주식이고 이건 적금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100만원을 수표로 뽑았던 순간이.
잊어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하고.
그 후에 그 돈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독자재현의 상상에 맡기겠다.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 샀던 컴퓨터는 더 이상 게임이 돌아가지 않았고
나는 새 컴퓨터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힐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에게.

처음에는 컴퓨터로 게임만 한다고 완강히 거절하던 어머니는
몇 개월에 걸친 조르기에 결국 항복하고 마셨다.
단 조건은 기말고사 평균 95점을 넘으면 사주겠다고.
기말고사인지 중간고사인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말이다.

은근슬쩍 자랑 같지만 나는 이상하게 평균 95점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평균 90점이 상위권 학생의 상징이라면
평균 95점은 최상위권 학생의 상징이었다.
90점대는 반에서 잘나가는 애 95점 이상은 전교에서 노는 애랄까?
90점은 넘겼지만 잘 보더라도 94.x점이 최고였다.

내가 밤을 새서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때보다 시험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약간 문제가 쉽게 나온 경향도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 95점을 넘겼다.
그 후로 고3때 점수 퍼주기 전까지 다시는 95점을 넘겨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컴퓨터를 사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는 컴퓨터가 많이 비쌌다.
그래서 모자란 돈은 어머니에게 빌려드리고 나중에 받기로 했다.
컴퓨터는 150만원 빌려드린 돈은 50만원.

그러고 나니 내 통장에는 매우 초라한 액수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이제는 세뱃돈을 받을 나이도 별로 남지 않았는데.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후로 15년은 더 받고 있다. 진행형이라는 것이 무섭다....)

그 후로 어머니에게 틈만 나면 빚 갚으라고 이야기를 했고,
세월이 흘러 년 단위로 넘어간 나의 빛 독촉은 아버지에게 몇 소리를 듣고 없던 일로 해결이 되었다.

예전부터 214만원 보다 나는 더 많은 것을 받았고, 부족함보다 과할정도로 받아왔으며,
그 214만원은 다 내 교육비로 들어간 것을 알지만, 내 마음속의 서운함이 오래 남아있었다.
후에 그렇게 오래 마음속에 남았는지 몰랐다며, 어머니에게 컴퓨터사건의 사과도 받았지만 말이다.

차를 운전하다 도서관에 들려 마시멜로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그 옛날 나에게 세뱃돈은 마시멜로 그 자체였나 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겨울삼각형
15/04/30 18:10
수정 아이콘
엄마은행, 아빠은행 부도났다고 합니다.
박진호
15/04/30 18:23
수정 아이콘
아버님 삼성전자를 사셨어야죠. ㅜㅜ
공허의지팡이
15/04/30 18:30
수정 아이콘
아버지께서 삼성전자를 다니셨어야 되는데 ㅜㅜ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7903 [일반] SBS '육룡이 나르샤', 유아인-김명민 듀오? [31] 예니치카6591 15/05/01 6591 2
57902 [일반] 세월호 다큐 편집실에 괴한 침입. [143] 축생 밀수업자10926 15/05/01 10926 0
57901 [일반] 8인의 반역자 (1) - 트랜지스터와 쇼클리 반도체 [14] Andromath9285 15/05/01 9285 8
57900 [일반] [혐오] 우리나라가 아르메니아 사태에서 터키편을 들어야 하는 이유. [41] 난멸치가싫다15401 15/05/01 15401 16
57899 [일반] 월간윤종신/빅뱅/방탄소년단/삐삐밴드/크리스탈X빈지노의 MV와 성규/전효성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21] 효연광팬세우실5812 15/05/01 5812 3
57898 [일반]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작곡가는??(톱텐) [9] 표절작곡가3531 15/05/01 3531 2
57897 [일반] 박원순 변호사가 노무현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 [4] 영원한초보6216 15/05/01 6216 9
57896 [일반] [연재] 빼앗긴 자들 - 28 [4] 가브리엘대천사1993 15/05/01 1993 2
57895 [일반] 4월 한달간의 팀별 야구 이야기 [18] Leeka5907 15/05/01 5907 0
57894 [일반] 러시아 우주화물선, 지상으로 추락중 [9] Cliffhanger7246 15/05/01 7246 1
57893 [일반] 윈도우10에 적용될 새 브라우저 이름은 엣지 [30] Leeka7335 15/04/30 7335 1
57892 [일반] 네팔입니다. (별내용없음 주의) [22] 카푸치노4137 15/04/30 4137 3
57891 [일반] [데이터주의,스압] 환율도 떨어졌는데 일본 여행을 가볼까? - 3.교토역 만복라멘 [9] 페르디난트 3세5704 15/04/30 5704 1
57890 [일반] 벌써 쿨탐 다댔나요... [24] 함박웃음오승환6106 15/04/30 6106 0
57889 [일반] [데이터주의,스압] 환율도 떨어졌는데 일본 여행을 가볼까? - 2.여행개요 [5] 페르디난트 3세4033 15/04/30 4033 3
57888 [일반] 이성간 유흥에대한 생각 나눔? 입니다. [54] 삭제됨7353 15/04/30 7353 0
57887 [일반] JTBC-리얼미터 여론조사 문재인 23.6% - 김무성 23.4% [101] 발롱도르8583 15/04/30 8583 2
57886 [일반] <차이나타운>에서 아쉬웠던 점 몇 가지. [21] 파우스트6898 15/04/30 6898 0
57885 [일반] 인천에 사는 사람으로 안상수가 된 이유는... [25] 로빈5780 15/04/30 5780 0
57884 [일반] 국회 선거구 획정안 못 건든다... 선거구 획정위 독립기구화. [22] 알베르토3057 15/04/30 3057 1
57883 [일반] (펌)선거에서 새누리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70] Dj KOZE7227 15/04/30 7227 14
57882 [일반] 나의 마시멜로 이야기 [3] 공허의지팡이3074 15/04/30 3074 0
57881 [일반] [야구] 박세진vs최충연 프로야구 스카우터라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51] karalove8793 15/04/30 879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