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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9 00:51
이상적인 이야기군요.
그 이상만큼 부정적인 연쇄를 깨긴 힘들죠 사실. 부정적인 연쇄를 겪는 사람들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도는 압니다. 그러나 그걸 깨는 것은 너무도 모호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시작을 못하고 계속 습관적으로 부정적 연쇄를 겪는거죠. 사랑이야기랑 아랫글의 모태솔로이야기가 나와서 엮자면 모태솔로의 부정적 연쇄도 사실 연애와 상관없이 네 스스로가 홀로 설 수 있으면 됨- 그러면 자연스럽게 매력이 생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모태솔로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건 상처에 소금뿌리기죠. 애초에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그 결과에 따라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15/04/29 00:58
사실 그 <매력>이라는 것 조차도, 각양각색이죠. 누군가에게는 매력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또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매력으로 다가오거든요.
아주 간단하게, 뚱뚱한 여자가 있어요. 대부분 남성의 기준에서는 연애상대로 무조건 제끼는 유형이죠. 그런데, 이 스타일을 또 좋아하는 소수자들이 있어요. 그만큼 매력이라는 건 상대적이죠. 매력을 연기해내고 연출해내고, 결혼해서도 자신을 외면하고서 배우자 앞에서 연기를 하는 인생을 사는 게 바람직할까요 과연. 그 연기의 극치를 행하다가 결국엔 자기 본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한 연극성성격장애를 가진 바람둥이들의 비극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거, 어렵지만 그럼에도 죽는 날 까지 해야하는 과제이죠.
15/04/29 01:05
저한테 꼭 필요한 이야기인것 같아요.
앞으로도 즐겨찾기해놓고 두고두고 읽겠습니다 요즘 계속해서 올리시는 글을 빠짐없이 읽고있는데 헤어진 후에 노트로 정리하셨다는 말씀이 있더라구요 이런 깨달음이 있기까지의 감정과 사건들을 정리하신건가요? 좀더 상세하게 알고싶어요 실례가되지 않는다면 여쭤봐도 될까요? 이번 글을 읽고 저에게 비춰보았는데 저는 자기신뢰감 향상이 필요하고 상대에 의존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 이별이 다른 사람들보다 힘든편입니다. 참 고치고 싶어요. 자존감은 낮지만 자존심은 쎄서 아니라 생각하면 당장에 잘라내면서도 오랜 시간 아파하며 다른 이성은 눈에도 안차죠. 이런 성격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싶은데 맘같지 않네요 ㅠㅠ
15/04/29 01:22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피드백 받을 때 마다, 아 정말 시간 들여서 쓰길 잘 했구나 싶어요. 네. 노트.. 썼죠. 3월 10일 전후에 헤어져서 3월 말에 중간 결론 나온 분석노트 분량이 3천원 짜리 스프링노트 한 권 분량이었고, 그리고 3월 말부터 현재 오늘 날짜 기준으로 또 써놨네요. 이제 다 풀었고 숙제 다 해서 마음이 후련합니다. 네. 서로 있었던 사건을 쭉 돌이켜보면서, 내가 그 때 뭘 생각했고 뭘 느꼈고 내 감정상태는 뭐였는지 가감없이 주관 그대로 다 쓰고서 시간 좀 지나고 안정되면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만 구성해봅니다. 이 때 중요한 건, 상대방의 심리를 들여다보려고 시도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은 이랬고, 나는 왜 이 상황에서 이렇게 느꼈는가를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과거의 어느 한 때 성장과정에서의 사건이나 지난 연인과의 문제였을수도 있습니다. 그럼, 떠오르는 과거의 사건이 있다면 또 그 사건까지 끌어들여서 역추적을 해봅니다. 그리고서 그걸 내가 어느 지점에서 잘못 느끼고 잘못 판단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열해봅니다. 혼자 무리라면 상담소 가시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사실 지난 10년 치료 아니였으면, 근 두 달 동안 전남친과의 관계 해석문제 못 풀었어요. 사실.. 10년 치료 기간 동안, 연애사 문제는 늘 뒤로 밀렸어요. 다른 과제가 더 많았으니까요. 연애문제는 근본적인 문제의 한 다른 파생으로 부수적인 문제의 하나였고, 근본이 풀리면 연애사 해석문제도 풀리는 거라서요.
15/04/29 14:04
찬찬히 읽었어요. 노트에 나열한 방식으로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점을 한번 살펴봤는데요
어떻게 해결에 도달하셨나요? 원인을 알면서도 자꾸만 떠오르는데 시간이 필요한건지 어렵네요
15/04/29 14:20
해결지점의 힌트를 명확하게 알게되는 순간은,
감정의 회오리가 지나가고 안정과 이성이 찾아올 무렵입니다. 그 때 노트를 다시 읽어보면 내 생각에서 어느 부분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내 방법을 찾게 됩니다. 상담의 궁극적 목표는 내담자가 자기 고찰을 통해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그 해결방안을 만들어나가서 그것을 실천하는 역량을 갖추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상담자는 상담 중에 함부로 내담자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솔루션을 주지 않습니다. 제가 쓴 방법은 어디까지나 저에게 유효하기 때문에, 내적 작업을 통해 그대가부네요님만의 해결방법을 찾게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15/04/29 01:30
헉 닉과의 불일치...
큰 논조에는 공감합니다. 누가 죽으면 나는 이제 어쩌나 라고 하는거랑 비슷하죠 죽은사람 걱정해야지 자기걱정하고있어. 크크.. 결국 인간은 다 욕망도 있고 이기심도 있다는걸 인정하고 인식하면 좀 낫더라구요.
15/04/29 01:41
사실 아버지한테 경제적으로 완전히 의존하셨어요. 어머니께서요.
그러다가 아버지 돌아가셨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께서 세상물정에 어두우셔서 가세가 많이 기울었어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랑 저희 오빠 몫으로 돌아왔죠. 느낀거 많아요~ <너 없이는 어떻게 살라고> 이러면 안 되겠다는 게 머리 속에 어릴 때 부터 뿌리 깊게 박혀버렸죠 아주. 네. 인간은 이기적이죠. 그럼에도 사랑은 그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심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귀중한 기회이죠.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과거에는 타인에 대해서 이해 못한다고 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이해를 시도하면서 관용적으로 변하니까요. 자기가 갖고 있던 기존의 고집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깨지고 수정되죠. 그러게요. 닉과 글이 불일치군요. 제 닉네임은 제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하니까요. 안녕히 주무세요!
15/04/29 10:24
가정 형편이 제 경험과 매우 비슷하시네요.
저도 성인이 되기 전에 아버님을 잃었는데, 그나마 다행인건 어머니가 멘탈이 강철이셔서... 다만 제 누님께서 멘탈이 이겨내지를 못해 가족들이 약 5년이상을 암흑기 속에서 보냈네요. 지금은 어느정도 그 터널을 벗어난 느낌이지만, 그 시절이 힘이 되고 자신의 이기심들을 꺾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일 같지 않아 웬지 힘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화이팅입니다. 흐흐
15/04/29 01:50
[피그말리온은 신을 모시는 여성제사장들의 타락과 부정을 보면서 여성에 대한 혐오를 키워갔다.
결국 피그말리온은 여성 제사장 뿐만 아니라 현실의 여성에 대해서도 마음을 닫은 채, 자신이 만든 <이상>이 투사된 조각상을 조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피그말리온은 사랑에 빠진다. ] 허나... 의식하셨는지 모르겠지만 피그말리온 신화의 앞부분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도입부와 참으로 닮은 꼴이지요. 자폐의 골에 박힌 피그말리온에게 아프로디테의 축복이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작용이라야 상정할 수 있던 갈라테이아는, 그러나 육화된 셰헤라자드로 변주됩니다. 그녀의 이야기란 신상의 기원에 말미암을 우려조차 천 일 밤의 지난 일로 묻어버린걸요.
15/04/29 02:13
결국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존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저는 들었습니다.
원론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자면 '내 자신'이 제대로 존재하는게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이런 개념은 이데아적이라 현실 세계에서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어떨 때는 '내가 내 자신으로 존재한다'라고 믿는 거고 또 어떨 때는 '아 지금 내 모습은 진정한 내가 아니야'라고 자책할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존재욕망의 다른 표현이 사랑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것을 위해서 나 자신이 어떤 완벽한 인격체가 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거구요. 사랑이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은 서로의 존재욕망의 포인트가 변화되서이지 우리가 불완전하고 의지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이 후회되고 가슴 아픈 것은 서로의 존재욕망의 방식이 어긋나게 되어서이지 그릇된 '나'에서 비롯되는게 아닙니다. 애초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 자체도 고정불변이 아니라 계속 변화되는 마당에 그 욕망 역시 당연히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내가 누군지에 대해 잘 알고 신뢰감을 형성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존재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헤어지게 되고 본인에 대한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본인의 한계는 오히려 본인을 잘 알 때 처절히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하신 1, 2, 3은 사랑보다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에 대한 답변에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이 온전히 존재할 때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별 이후에 더 잘 버틸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겁니다. 자아가 굳건한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서 쉽게 흔들리지않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것이 '사랑을 잘 하는 방법' 혹은 '사랑의 공식'이 될 순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것, 아니 좀 더 현실적으로 연애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와 상대방의 관계이기 때문에 본인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상의 문제가 되는거죠.
15/04/29 02:26
홀로선 둘이 만나는 게 사랑이라죠.
스님의 주례사에서도 반쪽과 온쪽에 대한 얘기가 나오죠. 결국에는 그 홀로선 각자이자 스님이 말하는 온쪽은, 자기 스스로 선 상태에서의 주체성과 독립심을 갖춘 상태에서 그 건강한 관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1,2,3 역시 사랑을 위한 하나의 방도이자 동시에 지적하신대로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한 방도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완전한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단점을 갖고 살아가죠. 하지만 그조차도 인정하는 사람과, 그것을 극구 숨기려고 애쓰면서 그것이 열등감이 되어버린 사람의 마음상태는 판이하게 다르거든요. 인간은 변해요. 고정된 인간은 없어요. 마찬가지로 "그릇된 인간"이란 없어요. 누가 감히 타인에게 그 타인의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릇되다"는 표현을 하나요? 엄청난 오만이죠. 세상이 변화하고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고 보는 티비 프로그램 내용도 늘 다르죠. 사람은 매일같이 수많은 자극을 받고, 그 자극을 받으면서 아주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조차도 변화가 일어나요. 매일 그렇죠. <공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디까지나 한 사람이 가진 주관적인 제 솔루션에 불과해요. 받아들이는 건 개인의 몫이죠. 혼자서도 잘 지내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상태, 스스로 그 상태를 만들라는 말은, 관계를 그르치지 않기 위한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이죠. 연애의 방법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이 기본이 무너져서 관계도 무너지는 일이 많죠. 따지고보면, 연락에 목숨거는 여자들도 사실 스스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적인 이유가 크기 때문인걸요. 그래서 언급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5/04/29 03:35
이 글은 결국 사랑에 관한 '자기계발서'네요. 스스로 오랜 고민의 시간 끝에 나온 의미있는 결론이지만, 여타의 자기계발서와 마찬가지로 히키코모리님의 개인적 영역에서만 유효할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 <그녀에게>에서 사랑의 대상으로 의지와 행동이 불가능한 식물인간을 상정하여 사랑의 본질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알모도바르 감독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히키코모리님의 정의와 대상의 선택에서 충돌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정의가 옳은 것일까요?
이를 가려내려면 근거의 올바름을 따져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극 작품으로 심리학적 근거를 제시하려는 노력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 본문에서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는 있습니다만, 그 중에 라깡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 글도 올바른 근거가 제시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듯 합니다. (이유는 당연히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 때문입니다.) 결국 이 글에는 이전에 제가 자기계발서에 대하여 비판한 글에 적은 것과 같은 내용의 비판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https://ppt21.com../?b=1&n=2595) 개인의 상념을 담은 훌륭한 수필일 뿐, 제시된 방법론이 유효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들여 쓰신 글에 비판적인 댓글을 달게 되서 다소 송구스럽습니다. 비록 글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보면 히키코모리님이 굉장히 많은 고뇌를 하셨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글을 통해 히키코모리님이 개인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셨을 거라는 점을 읽는 것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정도로 구체적이고 자신감 있게 쓰여져있으니까요. 그런 발전을 위한 노력들은, 개인적인 것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5/04/29 03:48
글쎄요. 라깡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주된 골자로 보기는 어려운 글입니다.
라깡의 타자론에서 욕망 이야기와 거울이론이 현대에서 까인 후 폐기처분 수준에 이렀다는 말은 들은 적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언급은 라깡과 프로이트의 투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프로이트 후의 소위 진짜 심리학이라고 하는 그 심리학적 사실들을 근거로 쓰여졌습니다. (학습된 무기력 이론의 언급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방식에 대한 내용은 현대 심리학에서 누차 얘기되어 오는 내용이죠. 자존감, 자신감, 주체성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연극성 성격장애의 해석의 경우, 저건 딱히 정신분석학의 내용이라고 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현대 이상심리학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연극성장애의 심층분석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근거로 쓴 건 투사기제 하나입니다. 정신분석학이 거의 폐기처분 수준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상담심리학에서 현장에서 정신분석학의 방어기제에 대한 내용은 유효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을 들고 계시는 건 부적절합니다. 라깡에 대한 부적절성 언급이라면 수용합니다만. 자기계발서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그 자기계발서의 의미를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심리학에서 특히 상담과 인간 발전과 관련된 분파 분야는 인간의 사회적응과 생활적응과 내적 성숙과 발전을 학문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기 때문에, 딱히 그 원전 내용들과 그것을 이용한 2차 3차 저작들이 자기계발서라고 평가절하될 타당한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이거이야 말로 지성의 오만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15/04/29 03:53
그리고 어떤 개인적인 주관에 대한 얘기를 할 땐, 저는 되도록이면 권위를 빌려오는 것을 지양하는 편입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그 정의가 각양각색이거든요.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냥 단순하게 누군가가 보기에 생물학적 배설일 뿐인 원나잇도 사랑이라고 하거든요. 굳이 어느 누구도 완전한 합의를 보지 않은 개념에 대해서, 그 개념에 대한 <대중성> 혹은 저명한 학자의 <권위>에 따라갈 필요성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 이것이 자연과학과 수학처럼 개념에 대한 모두의 약속이 꼭 필요한 부분은 아니기 때문이죠.
15/04/29 12:45
현재까지 내려오는 정신분석학의 유산들은 대부분 병리현상에 적용됩니다. 언급하셨다시피 상담심리학에서 유효하게 쓰이지요. 그런 면에서 정상인의 내적 성숙을 돕는 것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언급하신 지금까지 내려오는 정신분석학의 존재와 그에 대한 평가도 적을까 하다가 너무 얘기가 길어져서 말았는데, 언급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극성 성격장애'나 '투사기제'를 인용한 점에 대해서는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으로 비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지만 그것이 입증되어 사용되는 만큼 근거로 작동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서는 실상 자기계발을 할 수 없는 글이라고 봅니다.(뭐 시크릿이라던가 누가 치즈를 먹었나 같은 책) 이러한 것을 '가짜 자기계발서'라고 한다면 내적 성숙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진짜 자기계발서'는 가짜와 구분되는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그 주장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어야 하고, 주장에 대한 검증이 이뤄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머리속에서 추론의 연쇄를 통해서만 나온 결론은 정말 유효한 자기계발 방법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2번의 방법론을 예로 들면, 본문은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써 주체성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주체성의 회복이 학습된 무기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끌어내는지 입증할 근거가 이 글에는 없습니다. 저라면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운동을 하라는 근거있는 제안을 할 것입니다.(The Benefits of Exercise for the Clinically Depressed. Lynette L. Craft, Ph.D. and Frank M. Perna, Ed.D., Ph.D. J Clin Psychiatry. 2004; 6(3): 104.111.) 또한 주체성을 회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말로 주체성이 회복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 글은 제시된 방법론들이 유효한 것인지 입증할 근거가 없는 셈이죠. 두 번째 댓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글은 개인적인 주관에 머무를 뿐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이러한 부분을 명시하지 않고 있죠. 그래서 저는 이 글의 방법론이 정말로 유효한지, 독자가 내적 성숙을 위해 제시된 방법론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관해 독자로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논지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15/04/29 13:06
사랑이란, 존재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사람마다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과 그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난 사랑을 그렇게 정의한다. 이미 글의 첫 서두가 저렇게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주관 깔고 가는 글인게 대놓고 명시되어 있죠. 그리고 연극성성격의 이상심리 예시를 끌고온 것은 지나친 연기의 극치에 대한 언급을 위함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관계를 방해하는지를 얘기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이상심리가 정상적인 사람들의 내적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순전히 님의 생각입니다. 이상심리 성격 유형 중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 진단명으로 분류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장애라고 하지 않고 성향을 가진 일반 보통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성향을 갖지만 사회적응에 크게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향인 trait 을 가질 수 있으나, 치료가 필요한 장애 disorder 수준은 많지 않은 것이죠. 이상심리학이 일반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하시는데,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성향을 가진 건 마찬가지라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필요합니다.
15/04/29 13:11
그리고 자아의 주체성과 무기력 타파에 대한 저 내용은 실제 치료기법으로 쓰이는 겁니다.
애초에 이 글을 논문 목적으로 올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상심리인 연극성성격장애를 짚고 넘어간 이유도 님 생각과는 다른 전혀 다른 의도로 짚고 넘어간 것인데, 이상심리는 정상인에게 도움이 안된다는지 하는 태클을 거시는 게 의아스럽습니다. 연극성성성격장애를 끌어온 건 어디까지나 연기의 극단으로 가면 생기는 비극이 무엇인가를 얘기하기 위해 끌고왔을 뿐이거든요.
15/04/29 13:40
제 말을 너무 극단적으로만 보시네요;; 이상심리학이 일반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그것이 환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무조건] 적용 가능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더구나 그 적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음에도 이를 차용한 것이 충분히 타당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히키코모리님의 말씀을 인정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이끌어내는 근거와 그것으로 끌어내는 방법론은 객관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마저도 주관적이라면 주관적 근거를 가지고 주관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셈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 글이 히키코모리님이 아닌 타인이라는 독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설령 쓰여진 모든 판단에 대해 개인적 상념으로 취급한다 하더라도 방법론에 있어서는 이를 따를 수도 있는 독자에게 유효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고, 독자 또한 그 방법론이 유효한지 따져보는 비판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5/04/29 13:52
극단적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저야 말로 충달님의 코멘트를 보고서 제 글을 극단적으로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사랑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끌어내는 방법론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라고 하셨는데, 애초에 추상적인 개념인 사랑을 무엇으로 객관적으로 정의하죠?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사랑에 대해서 분석했죠. 나름 자기들만의 방법론을 가지고요. 그래서 수백년간 지속되어온 그 논의가 결국 사랑에 대한 하나의 약속된 정의를 만들어냈나요? 아니죠? 결국엔 충달님께서도, 사랑에 대한 말에서 저명인사의 권위를 빌려오셨고 그 권위에 의지해서 제가 내린 자의적인 사랑의 정의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표하셨죠. 결론은 무의미합니다.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그리고 사람들 마다 그 생각이 가지각색인 부분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의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요. 생물학에서 사랑은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작용이고, 그 화학작용은 최대 평균 3년이라고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생물학에서 그 님이 말하는 "과학적 객관적 방법론"을 갖고 사랑을 3년이라고 얘기했죠. 그런데 어디까지나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작용이 있는가 없는가의 유무로의 판단이죠. 그 강을 건너지 마시오라는 노년 로맨스 영화에서, 그 노부부에게 사랑의 화학작용이 일어날까요? 단언컨대 , 아닐겁니다. 그런데 그 부부의 뇌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이라고 말하는 대중이 있나요? 그냥 원나잇이야 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면 그만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주관에 대한 존중이죠.
15/04/29 14:06
저는 사랑에 대한 정의라는 결론의 주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론을 끌어낸 근거의 객관성을 요구하는 것이죠. 전부다 주관적이라면 "나는 사랑은 똥이라고 생각한다.(주관적 결론) 왜냐하면 피지알은 똥을 사랑하니깐(주관적 근거)"같은 소리도 가능합니다.(물론 히키코모리님의 글이 이런 수준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개인적인 깨달음으로서 충분히 가치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하게 되는데) 설령 그러한 추상적 정의에 대해 주관적 상념이 결론과 근거 모두에서 유효하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나오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객관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무기력을 극복하는 것이 어떻게 잘 사랑하게 되는 것을 돕는지,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어떻게 무기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죠. 이 글을 읽고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방법론을 따른다면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담으로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란 연구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이 사랑의 유효기간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아론 부부의 '자아확장론'이나 마틴 셀리그먼의 '강점발달' 같은 것들에서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죠. 과학적 방법론으로도 노년의 로맨스는 충분히 설명 가능합니다.
15/04/29 14:14
근거의 객관성이라.. 아, 그 심리학적 출처를 요구하신거라면 그 출처를 달지 않은 건 제 불찰이나, 제가 위에 쓴 방법론은 이미 있는 이론들을 근거하거든요. 사랑에 대한 정의는 제 자의적 정의입니다만. 그리고 [무기력을 극복하는 것이 어떻게 잘 사랑하게 되는 것을 돕는지,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어떻게 무기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이 글을 읽고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방법론을 따른다면 ] 이 부분은 글에 나와있습니다. 직접적인 명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글의 전반 내용을 통해 왜 주체성과 자기 신뢰 확립이 중요한지 이미 설명이 다 되어있죠. 의존심의 맥락과 타인의 기준과 타인의 목소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괜히 떠든 게 아니거든요.
그 과학적 방법론으로 실험 설계를 어떻게 하실건가요? 그냥 막연하게 "있다"고 말씀하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셀리그먼은 심리학계에서 연구 결과를 남긴 1인일 뿐이지, 그 사람의 이론이 다른 소분파 학문의 결과를 모두 뒤 엎은 혁신적인 진리를 말한 학자는 아닙니다. 계속 권위에의 호소를 하셔서, 저도 권위에의 호소를 하자면, 주류 심리학에서는 셀리그먼에게 비판적입니다. 긍정의 심리학 그 자체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도 많고요.
15/04/29 14:17
그 이미 존재하는 이론에 대한 출처를 남겨주신다면 저는 이 글에서 제시하는 방법론을 따르는 것에 아무런 주저함도 없을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실험설계를 말씀하시는데 뭘 입증할 실험에 관한 말씀이신지;;;
15/04/29 14:27
마스터충달 님// [과학적 방법론으로도 노년의 로맨스는 충분히 설명 가능합니다. ] 이부분 말씀드린겁니다.
출처 안 남긴 건 제 불찰로 인정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이 글은 피쟐 외 타 사이트에도 게시되었습니다. 읽으신 분들 중 꽤 많은 분들이(여성들이지만) 덕분에 명쾌해져서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그것에 <객관>이란 없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문제이죠. 충달님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일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다른 여성분들은 도움이 됐다고 얘기했거든요. 위에 다른 유저분에게도 답을 달아드렸듯, 저는 이것이 공식이라거나 절대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낸 제 솔루션도 마찬가지고요. 상담심리의 궁극적 목적은 내담자가 스스로 깨닫고 자기 주체성을 가진 자기만의 솔루션을 찾아가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설령 그 내담자가 스스로 낸 방법론이 과학적 객관적 실험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 내적 통찰의 결론이다 할지라도 객관보다는 오히려 더 의미있을 수 있습니다.(말하신 부분하고 약간 비슷하긴 합니다) 수학문제를 스스로 풀어서 생긴 문제해결력이 있는 학생과, 객관적으로 이미 나와있는 누군가의 답지를 먼저 보고서 푼 학생이 가진 문제해결력은 차이가 있죠.
15/04/29 14:52
계층 댓글이 끝나서 편법을 좀 씁니다. 마지막 댓글에 대한 답입니다.
두 이론 모두 통계적 실험의 결과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타인에 대한 공감의 정도'라던가 '강점을 통해 강화된 긍정성의 측정'같은 부분에서는 과학적 심리검사를 통해 그 정량성을 측정했고요. (이것이 과연 정량화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의문제기가 가능하나, 칼 포퍼 등의 과학철학자는 이에 대해 과학이란 조작적 정의를 다루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저도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이 글에서 느껴지는 고민과 노력의 흔적은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 독자일 뿐, 다른 누군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르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단지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충분히 제기할만 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 비판에 대해 훌륭한 응답이 이뤄져 이 글이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일 겁니다. 이미 있다고 주장하시는 그 심리학적 근거가 출처로 제시된다면 방법론의 효용에 대해 의심할 바가 없는 글이 완성될테니까요. 하지만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솔루션을 찾아가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근거의 입증보다 결과까지 끌어오는 추론의 연쇄가 더 중요할 수도 있을겁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근거의 입증에만 주목하는 것은 그다지 옳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과정에 중시한 것이라기엔 제시된 방법론이 다소 확언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15/04/29 15:09
마스터충달 님// 실험은 빼시는 게 좋습니다. 셀리그먼의 긍정성 실험이나 스키너 주의파들의 실험 근거는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상심리 성격심리 상담심리의 경우 구체적 실험의 언급은 부적절합니다. 통계는 의미 있습니다.
공감의 중요성이 구체적으로 역설된 건 칼 로저스의 인본주의 심리학에서 였습니다. 하지만 로저스가 공감을 역설한 건 다만 그의 인간에 대한 철학을 기반한 주장이였죠. 결국 그는 상담에서 자신의 인간철학을 담아서 공감적 상담을 진행했고 그것의 효과를 가시적으로 안 건 후의 일이죠. 과학적 실험보다는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라 보시면 됩니다. 로저스 후에 시간이 지나서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공감을 받을 때 어떤 생리적 효과가 있는지가 밝혀졌죠. 얘기하는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참고로 저는 글에 늬앙스를 담아 쓰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남의 글에서의 늬앙스 파악에도 좀 많이 약합니다. 저한테 중요한 건 그냥 의사전달 뿐이라서요. 그래서 사실 제가 제 글에 확언을 담았다거나 극단적으로 제가 해석하고 말했다는 지적에 대해 납득이 어렵습니다. 이 말을 바꿔 말한다면, 애초에 늬앙스 파악과 그걸 글에 담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현재까지 충달님과의 대화에서 어떤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 같은 건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15/04/29 15:21
마스터충달 님// 결과적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학적 방법론 ㅡ 실험을 설계하고 그 실험을 여러번해도 일관성을 갖는가의 유무여부 및 기타 ㅡ의 적용이 어려워 순수히 연구자의 관찰과 통찰분석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학문을 비하하는 건 지나친 독단입니다. 정신분석학과 상담심리 성격심리 이상심리와 같은 소분과들 말이죠. 관찰과 누적된 경험과 사례 케이스들을 근거로 연구자가 내린 해석은 그것이 비록 과학적 방법론에서의 절대적 알관성을 띠지 못한다 해도 경향성 해석에 그 통찰이 꽤나 의미있거든요. 실제로 그 통찰에 의해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실험 주제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ㅡ 로저스의 공감처럼 ㅡ.
그리고 처음 언급했지만 프로이트 학파의 방어기제 해석은 실로 놀라운 통찰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실험적으로 증명가능한가를 논외로 치더라도요. 하지만 이 공감이 치료에 방해된다고 바라본 인지치료학파들도 있죠. 공감이 내담자의 잘못된 인지도식의 합리화에 기폭제가 된다는 이유로요.
15/04/29 15:28
실험이란 말은 빼는게 맞습니다. 적고 나서 수정하려고 했는데 먼저 답글을 달아주셨네요. 통계는 경험이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첨언 하자면 많은 심리학적 연구 결과들이 임상 결과나 설문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느냐에 대한 평가는 경험적 방식 자체 보다는 그 경험을 해석하고 정량화 하는 것이 과학적인가에 달려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제시한 두 심리학자는 이 부분을 잘 지켰고요. 프로이트는 그런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죠. 실제로 프로이트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그가 라캉이나 융과 달리 많은 상담을 바탕으로한 통계적 방법론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만 이들도 그것에 대한 해석이 자의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죠. 히키코모리님의 글이 사랑을 극단적으로 해석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실상 주장하는 내용들이 파격적인 것도 없고, 심리학적인 부분을 차치하면 도덕적으로 좋은 말들이니까요) 다만 근거나 목적에 비해 단언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생각의 과정에 집중하셨다는 것은 댓글 논의를 통해서야 파악이 되었고, 처음 글을 읽었을 때는 결론적으로 유효한 방법론을 주장한다고 보여졌거든요. 그리고 히키코모리님과 필답하며 기분이 상했던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오히려 댓글들에서 많이 배워가기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15/04/29 15:38
마스터충달 님// 정신분석학파 ( 독립한 칼 융의 분석심리학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등 모두를 통칭합니다.)의 분석도 경험을 따랐습니다. 많은 환자를 겪었죠. 정신분석학에서 환자를 해석해내던 그 방식은 정신분석학을 부정한 심리학에서도 ㅡ 내담자의 치료에 관여하는 분파 ㅡ 사실 실험적 방법 보다는 경험적 통계에 의존하니까요. 윤리상 문제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단언적이다 남 말을 극단으로 해석했다 이 부분은 그냥 님 감상으로만 들어두겠습니다. 그런 의도도 애초에 없었고 늬앙스 담아 쓰는 글쓰기에 약합니다. 저는 공부하러 이만 가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15/04/29 15:54
그게 저만의 감상이라고 여기시고 넘어가면 이 글은 여전히 근거가 부족하고, 목적이 과정인지 결론인지 불분명한채로 남겠죠. 하다 못해 그러한 단언성만 줄였어도 개인적 경험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글이었을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의 정당한 비판을 '님 만의 감상'으로 치부할거라면 뭐하러 공개된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독자와 소통하시나요? 자신의 글에 긍정적인 답변만 바라고 반론에 대해 일말의 인정도 없는 분과의 토론은 저도 사양하고 싶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도 공부해야되서;; 공부 열심히 하시길 빕니다.
15/04/29 16:11
마스터충달 님// 제가 얘기하지 않았나요? 이 글이 논문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고 ;;
그러시는 님은 왜 필자의 본래 글을 쓴 목적을 존중해주지 않으시는 거죠? 글의 출처 근거를 모두 달지 않았다고 그 글이 사실 근거가 부족하거나 없는 글이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는 이미 이 글에서 언급된 심리학적 사실들에 대해서 댓글에서 충분히 설명 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주체성과 신뢰에 대한 솔루션 내용은 위에 언급했다시피 제 개인적인 감상이 아닙니다. 치료 기법입니다. 이것을 읽는 사람이 이쪽에 관심이 없어서 그것이 이미 치료기법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법임을 모르고서 글에서 그것이 실제 기법이고 그 출처를 달지 않았다고 해서 무작정 근거 없는 글로 몰아가시다뇨. 근거를 얘기하시니 , 대체 저는 지금까지 충달님한테 단 저 모든 댓글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습니다. 네. 앞으로는 오늘 일을 교훈 삼아 학술 늬앙스가 담겨있는 글에서는 무조건 출처를 달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가봅니다.
15/04/29 16:22
그게 근거가 있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히키코모리 님의 주장일 뿐이죠. 이 모든 댓글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주체성의 회복으로 극복할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한 출처가 분명한 근거(아마도 논문이겠죠)를 링크로도 달지 않으시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라는 건가요?
본문에서 미리 출처로 제시하면 더욱 좋고, 설령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이 들어오면 출처를 가져오시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봅니다. 저도 심리학 관련 글을 썼지만 그것은 학술적인 글도 아니었고, 그저 그 학술적 근거들로부터 이끌어진 개인적 소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개인적 주장에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근거를 가져왔었죠. 근거 제시는 글이 학술적이냐 아니냐라는 목적과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정치적인 글, 스포츠 글에서도 제시된 근거에 대한 출처와 자료 요구는 정당한 평가를 받는데 왜 히키코모리님 글에서만 그 요구가 부당한 취급을 받아야 하나요?
15/04/29 16:45
마스터충달 님// 책 알려드릴테니까 직접 찾아보시면 됩니다.
최근 신간 서적 중에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교양서예요. 거기 보면 학습된 무기력의 극복으로 왜 제가 본문에서 그런 이유를 들고있는지 설명 나옵니다. 직접 참고 원문을 원하신다면, 동기와 정서 교과서에서 동기파트 읽어보세요. 연극성 성격장애 심도 분석은 학지사 이상심리학 시리즈 얇고 작은 책에 실려있으니 찾아 읽으세요. 하나더, 실제 치료기법으로 병원에서 쓰이고 있는데 의사들이 비전문가입니까? 님이 모르시면 세상에 실제로 사실 근거가 없는 게 되나요? 주류에서 비판하는 셀리그먼이 인간 심리에 대해 절대 진리자입니까? 연극성성격장애 언급에 대해서도 그 의도를 잘못 읽지 않으셨나요? 인터넷에 올리는 글에 출처를 거의 달지 않습니다. 출처가 궁금했다면 출처 요구를 하시면 됐을 일입니다. 출처를 묻기도 전에 근거 불충분으로 먼저 몰아가신 건 무슨 경우죠? 애초부터 첫 문장에서 사랑에 대한 주관적 정의 깔고 들어가는 글이라고 직접 명시 돼있는 글에, 전문적인 학자들도 수백년 동안 하나의 약속된 정의를 도출하지 못한 추상개념에 대해 아마추어에게 사랑에 대한 과학적으로 도출된 객관적 개념을 요구하시다뇨? 님이 권위로 끌고온 사랑에 대한 그런 내용을 말한 그 사람의 주장에는 무슨 과학적 객관적 근거가 있죠? 그래서 그 권위자의 개념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하나의 정의로서 받아들여진 상태입니까?
15/04/29 17:04
마스터충달 님// javascript:clipboard_trackback('https://ppt21.com../?b=8&n=57611');
그쪽이 쓴 글입니다. 일종의 사회학에서 세대분석의 주제로 분류가 가능한 글이죠. 이 글에서 일베와 웹상에서의 양상과 관련해서 여기에 무슨 논증과 심리적 사회학적 근거를 들으셨나요? 이 글에 대해 똑같이 말씀드리는게 가능하겠군요. 출처가 어디있죠? 그런 양상을 갖는다는 직접적인 현상의 객관적인 증거는요? 님 보시기에 저 글은 남의 글에 객관적 근거의 엄밀성이 떨어진다며 엄밀성을 요구하는 사람의 글입니까? 나의 글에서만 부당취급한적 없습니다. 애초에 첨부터 출처요구를 하셨으면 됐을 일입니다. 님 정신분석학 내용 다 알아요? 다 알면서 분석학 끌어온 게 근거 불충분이라고 몰아가셨습니까? 분석학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서 직접 공부하고 판단하기도 전에 권위에 기대서 분석학을 비하하십니까? 먼저 무례하게 나온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서 왜 그쪽이 첫 댓글에서 한 말이 부적절한지에 대해 댓글로 전부 설명드렸습니다.
15/04/29 17:10
히키코모리 님// 제가 말씀드린 것이 그건데요. 출처가 없어서 글이 불충분하다는 것이 제가 드리고픈 말씀이었습니다. 글에 있는 주장들에 출처가 없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제 비판에, 히키코모리님은 간단히 박경숙 저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참조하라고 하셨으면 간단히 절 설득하고 넘어가실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꾸 실제 치료기법으로 쓰이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시는데, 그거 문제 없다고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해당 이상심리학의 인용에 대해서는 문제 될것이 없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렸다는 것을 또 다시 말씀드립니다. 주장에 대한 근거는 주장하는 사람이 들고와야지, 그거 안 찾아보고 왜 물어보냐는 반응이면 곤란합니다. 더불어 자꾸 제가 말한 적도 없는 것을 가지고 반박하시는데 1. 연극성 성격장애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한 적도 없고(말한적도 없는데 곡해했다는 것은 뭘로 판단하셨는지?) 2. 샐리그먼이 인간 심리의 절대 진리자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아이러니한게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주장한 학자가 마틴 셀리그먼입니다. 본인이 가져온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계시네요.) 또 말씀드리는데 결론으로 도출된 추상개념이 아니라 그 결론의 근거와 결론으로부터 유도된 방법론에 대해서 객관적 증거를 요구하는 겁니다. 사랑을 존재 욕망으로 보는 것은 자유지만, 그 시각의 근거는 객관화 되어있어야죠. 제가 객관성을 주장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파악하셨으면 합니다. 제가 논문 위주의 권위를 끌고 오는 것은 그것이 이미 논문이기 때문에 말씀하신 과학적 객관성과 보편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는 논문은 논문으로서 인정받지도 못하거니와 논문으로 출간된 이상 추후에 검증을 통해 보편성을 마련하게 됩니다. 충분히 인용되는 논문의 가치가 바로 그겁니다.
15/04/29 17:18
마스터충달 님// 데카르트의 실체와 신에 대한 철학은 객관적인가요?
이상심리가 정상인에게 도움이 ~'에 대한 언급하셨죠? 저는 이상심리의 한 케이스를 언급한 이유를 그쪽이 잘못 이해했다는 지적이였습니다. 학술에 권위자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셀리그먼 계속 인용하면서 타 분파에 대한 언급에 대해 근거 불충이라 하셔서 셀리그먼에 기대는 것에 지적하는 겁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실에 대해 근거 불충분이라고 하는 태도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님 분석학 얼마나 아시나요? 현대 상담 이상 성격 분파의 내용은요? 다 보고서 비과학적 근거 불충분 판단을 하시나요? 데카르트의 실체의 개념과 신에 대한 이야기는 추상적 개념을 다룬 추상적 내용이죠. 굳이 사랑의 개념에 객관을 가져올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추상적인 개념인 것을요. 추상적 개념에 대해서 자의적 정의를 내리고 그 글을 쓴 것이, 데카르트가 실체와 신의 추상적 개념에 대해서 글을 쓴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철학적으로 사랑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가 있죠. 아가페, 플라토닉, 에로스, 기타 등등. 에로스를 제외하고 철학에서 사랑이라고 개념내린 사랑을 유물론적으로 "과학적 객관 실증"으로 풀 수 있는게 뭐가 있죠? 에로스적 사랑에서의 신체 화학반응이 아가페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을텐데요.
15/04/29 17:21
https://ppt21.com../?b=8&n=57611 이 글과 본 글은 차이가 있죠.
제 글은 애당초 어떤 방법론을 주장하지도 않거니와 현상에 대한 저의 생각이 개인적 상념에 머물수 있다는 점을 글 내내 유지하고 있죠. 글 서두에서만 주관적인 점을 밝힌다고 이후의 단언적인 전개가 모두 괜찮아 진다고 보시나요? https://ppt21.com../?b=1&n=2595 제가 쓴 글 중에서도 심리적 현상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각 사항에 대해 참조를 다 가져왔죠. '긍정성이 창의력을 높여준다.'라는 주장을 위해 긍정성을 부과하는 방법, 창의력을 측정하는 방법, 이를 바탕으로하는 실험 소개와, 그 실험 결과가 출간된 논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 감상을 말하고자 하는 글이라면 출처가 없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죠. 그런데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 방법론적인 글이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일 근거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본문도 그저 감상문에 불과하다는 말씀에 지나지 않겠죠.
15/04/29 17:25
철학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이 연역적 추론의 결과일지언정 철학자들은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그들의 출간물이 얼마나 많은 출처를 포함하는지 모르시지 않을텐데요.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에 대한 언급이 문제라면 그것만 가지고 이야기 하십쇼. 분명 그에 대한 언급, 프로이트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도 이것이 첨언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프로이트, 융, 라캉이 사이비 취급을 받을지언정 이 글에서 끌고온 내용은 그들의 주장 중 검증되어 현재까지 이어온 것을 다뤘다는 점을 히키코모리님도 언급하셨고, 저도 그에 대해 인정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히키코모리님이 끌고오신 정신분석학적 소재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를 한참 전에 인정했는데 왜 자꾸 이걸 들먹이나요?
15/04/29 17:28
그리고 '넌 그럼 얼마나 아는데?'라는 태도는 도대체 뭡니까?
그럼 히키코모리님은 얼마나 아시나요? 관련 학위라도 있습니까? 이런 태도라면 모든 비판 댓글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알길래 비판하느냐"라고 대응이 가능합니다. 이런 유치한 태도는 지양하셨으면 좋겠네요.
15/04/29 17:32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자신이 모르는 사실에 대해 근거 불충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근거가 없으니깐 근거 불충분이라고 하는 것이죠. 관련 책에 대한 언급조차 한참 뒤에 나왔는데 그 이전 어디에 근거나 출처가 있었습니까? 그냥 님이 '이건 치료법으로 쓰이는 겁니다.' 해버리면 '아 그렇구나 끄덕끄덕' 해야 됩니까? 사실이 정말로 그러한지 물어보는 것이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네요.
15/04/29 17:35
마스터충달 님//
정신분석학을 얘기한 건, 맨 첫 댓글에서의 근거불충분이라는 말 때문이죠. 제가 수 시간 설명 댓글 안 달았다면, 그쪽이 인정을 하셨을까요? 적어도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출처를 먼저 물어보거나 하지 않고 무작정 느닷없이 근거 불충분입니다 라고 하는 건 경우없는 태도라고 봅니다. 왜 애초에 객관적인 논문 에세이 용도로 쓴 글도 아닌 글에서 증거불충분과 사랑에 대한 자의적 정의에 대해서 과학과 객관에 대한 얘길 하시죠? 이 사이트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글들에 필자가 얘기하는 바에 대한 근거 출처가 달리는 치밀한 구성의 글입니까? 일반 수필정도로만 받아들이시면 됐을 글입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쓴 거고요. 그래서 현재 데카르트의 실체에 대한 개념과 신에 대한 개념이 <논증>이 아닌 "객관적" "과학적"으로 그 사실성이 증명됐나요? 제가 이 언급을 하는 것은, 추상개념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본인이 애초에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저에게 출처를 요구하거나 설명을 요구하셨습니까? 정신분석학을 끌고왔다는 이유로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 때문에 근거부실이라고 언급하셨잖습니까?
15/04/29 17:43
마스터충달 님// "너는 얼마나 아는데?" 의 태도가 유치하다고 하셨는데,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 미처 스스로 알아보기도 전에 저명한 누군가가 말한 <비과학적>이라는 말에 직접 읽고 확인도 하기 전에 <비과학적>이라고 하는게 학습자의 태도일까요? 그쪽은 그냥 일반적인 생활 수필에 "님 주장 근거 불충분합니다."라고 얘기하고, 그 수필에서 사용된 추상개념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엄밀 정의하셔야죠."라고 하나요? 애초에 글쓴이의 글의 목적을 무시하셨습니다. 저런 엄밀성 판단과 출처의 객관성 판단과 개념의 과학적 객관적 증명에 대해서는 논문에서 따지세요. 애초에 이 글이 논문 목적이 아니라 신변잡기 수필에 불과하니까요.
15/04/29 17:50
제가 몰라서 출처를 찾는 게 아니라 출처가 없어서 출처를 요구하는 거죠. 이 글 어디에 못알아먹을 주장이나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몰라서 물어봤을리가요;;;
"학습된 무기력은 주체성의 회복으로 극복 가능하다." "아 그런가요? 정말 그런 것인지 근거가 있습니까?" 이 전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객관성이 요구되는 부분이 주관적 결론이 아니라는 점도 수 번 말씀드렸는데, 추상적 개념을 객관화 할 수 없다는 말씀을 왜 또 그렇게 하시나요;; 하다못해 제시된 방법론 만이라도 객관적 근거를 요구한다고 그 범위를 정확히 짚어 드리기도 했었죠. 사랑이야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 없지만, 무력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주관적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말 그대로 개인적 상념이자 수필에 불과해지는거죠. 처음 댓글에서 보시다시피 저는 이 글이 훌륭한 수필일 뿐 제시된 방법론에 대한 근거가 없는 글임을 비판했습니다. 이제 와 일반 수필 정도로만 받아들여도 충분하다고 하시니 제 비판이 인정되었다 생각해도 무방하겠네요. 다른 사람의 정당한 비판에 대해 일말의 양보도 없는 논쟁을 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정말 사양하고 싶습니다. 충분히 배울 것이 많은 필답이라 생각했고, 그런 자세로 이런 저런 첨언도 한 것이었는데, '님만의 생각'이라느니 '얼마나 알고 그러느냐'는 식으로 공격적으로 나오시니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싹 가시네요. 거기다 본문과 상관도 없는 제 글까지 끌어오다니 '넌 뭐 얼마나 잘났냐?'라는 건가요? 하아.. 더 이상 이야기 나누지 않겠습니다.
15/04/29 18:01
마스터충달 님//
셀리그먼 이론이랑 회복탄력성 이론 공부하셨으면 알겠네요. 솔루션에 언급한 내용들이 그쪽이 알고있는 배경지식과 어떤 연계를 짓는지요.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왜 연계성이 있다고 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알게 될겁니다. 학자의 권위에 기대는 것 보다 혼자 생각해보는 게 낫습니다. 권위에 기대봤자 그것이 암기와 훈고학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는 내용 외우고서 그대로 읊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 사고로 하는 논쟁이 아니고, 누군가가 한 주장을 그대로 외워서 , 상대방의 말에 "누가 ~ 했어."라고 대응 하는 것이 과연 자기 의견이겠습니까. 무기력 회복과 관련한 내용에서 충분한 설명이 없었던 글인 건 맞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 해석내용에 중점을 두고 쓴 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댓글 안 다셔도 됩니다. 대화는 여기에서 종결짓죠.
15/04/29 13:32
그리고 ,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현대 심리학에 대해서 얘기해보죠.
정신분석학이 다루는 부분과 비슷한 부분을 다루는 현대 심리학의 소과목을 대표적으로 꼽으면 <이상심리학> , <상담심리학>, <성격심리학> 정도입니다. 그런데 혹시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을 말씀하시기 전에, 현대 주류 심리학의 저 세 과목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저 책에 나오는 내용들 보면, 딱히 소과목들이 현대 주류 심리학의 과목이라고 해서 "과학적"이라고 할 수도 없거든요. 실험과 관찰과 객관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쓰여진 내용들은 저 과목에서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성격심리학에 나오는 대표적으로 다뤄지는 학자 1인인 카텔을 예로 들어볼까요? 카텔은 성격 위계모델을 이렇게 세웠습니다. 기저수준 - 제 1 수준 - 제 2수준 - 제 3 수준 - 제 3 수준. 프로이트는 이드 - 에고 - 슈퍼에고라 했죠. 카텔이 분석한 성격 위계모델이 과학적 실험방법에 의존해서 만들어진 결론일까요?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애초에 정신분석학의 시작은 프로이트였고, 프로이트는 자기 환자들의 증상을 면밀히 관찰해서 관찰된 사실근거를 통해 그 관찰된 양상이 나타나는 원이 무엇인가를 자기 생각으로 <통찰>해냈을 뿐입니다. 본래 인간의 깊은 정신을 탐구하는 것에 과학적 방법론을 들고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죠. 특히나 상담심리학에서는 더합니다. 왜냐고요? 상담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 중 하나가 인간에 대한 존중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내담자를 상대로 어떤 실험을 하는 것이 윤리에 저촉되기 때문에, 결국에 현대 상담심리학 이상심리학 성격심리학도 프로이트의 정통정신분석학을 비롯한 그 분파인 융의 분석심리학이 그랬듯 과학적 방법론 보다는 관찰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담자들 케이스들을 모아서 어떤 통계적인 일반적인 경향의 유의미성을 도출하는 것은 가능하나 어디까지나 거기까지만이죠. 사회심리학은 어떻고요? 사회심리학도 관찰입니다. 관찰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옳다 그르다>의 진리판별이 아니라 <경향성>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인지심리학과 생물심리학은 실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타 심리과목보다는 그 객관성과 과학적 방법론을 토대로한 연구에는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리적 원인으로 인간의 심리를 전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에는 정신분석학자들이 했던 관찰 의존과 수많은 케이스들을 보면서 얻은 직관적 통찰에도 같이 의존해서 연구가 진행될 수 밖에 없습니다.
15/04/29 13:36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누가 함부로 구분하죠? 정상인에게는 무리가 따른다고 했던 그 심리학자가 누구인가요?
이상심리학에서, 성격장애 클러스터 ABC 중 하위 진단명들이 있습니다. 그 진단명에는 그 내담자가 그런 병을 갖게 된 원인들이 해석되어 있고요. 정도의 차이죠. 일상에서 문제없는 TRAIT을 가진 정도의 사람인가 아니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스스로 불편을 느끼는 DISORDER이냐. TRAIT 을 가진 사람이나 DISORDER를 가진 사람이나, 그 유형으로 분류가 된다면, 현재는 아무 문제 없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이더라도 어떤 트라우마가 생기면 혹은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서건 시기의 차이일 뿐 TRAIT일 뿐이던 것이 DISORDER로 갈 수 있습니다. TRAIT일 뿐인 정상인에게도 이상심리학 해석은 도움이 됩니다. 그 해석을 토대로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한다는 방향잡이도 역시 도움이 되죠.
15/04/29 13:41
윗 댓글로 갈음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상심리학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상심리학을 환자가 아닌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주장을 한 것은 마틴 셀리그먼 등이 있습니다. 그는 지난 100년 간 심리학이 병리현상에 집중되어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서는 성공적인 성과를 올렸으나 일반인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소홀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http://www.ted.com/talks/martin_seligman_on_the_state_of_psychology?language=ko
15/04/29 14:00
셀리그먼의 권위에 의지하시는군요.
그런데 셀리그먼의 의견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보는 임상심리학자들과 상담심리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죠? 그들이 이상심리학의 유형분석의 내용이 DISORDER가 아닌 TRAIT일 뿐인 일반 보통사람들에게도 유의미하게 작용한다고 보는 그 의견의 근거는 제가 위에 댓글 중 어딘가에 설명해놓았으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전 개인적으로 셀리그먼의 그 생각보다는 임상심리학자들과 상담심리학자들의 의견의 동의합니다.
15/04/29 14:09
셀리그먼 또한 이상심리학이 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그는 환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더 효과적인 새로운 심리학의 개척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죠.
계속 말씀드리는데 이상심리학도 도움이 됩니다. 도움도 되고, 그것이 현재에도 유용하게 작동합니다. 그래서 그런 요소를 끌고 온 것이 충분히 타당한 것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왜 자꾸 제가 이상심리학은 일반인에게 적용 [불가능]하다고 한 것처럼 말씀을 하십니까?
15/04/29 14:17
위에서 충달님께서 이상심리학을 끌어온 것에 대한 회의를 표하셨기 때문에,
저는 정상범주라는 사람들에게도 이상심리학이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극단으로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럴 의도도 없고요.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제 작법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인정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5/04/29 10:19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유형의 글이네요. 생각을 씹고 씹어서 행동들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내는 느낌... 저도 최근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기준에 자신을 맞출 것이냐, 아니면 자신을 지키면서 조금 어려운 길로 돌아갈 것이냐... 사실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지만 아직 자신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주지 못했는데, 이 글을 보고 나니 조금이나마 다시 용기가 생기네요. 모솔이면 어떱니까. 어짜피 결혼할건 한명인데. 크크크
15/04/29 12:53
'현실(real)'의 반댓말이 '이상(ideal)'이죠.
사람은 이상에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이상적인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있다면 그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겠죠.. 자신의 이상적인 연애관에 딱 맞는 사람은 세상에 없지 않을까요..? 서로서로 타협해가며, 타협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으면 이별을 하게 되고요. 다들 해답은 알고 있을거에요. 하지만 불가능하죠.. 저희는 현실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15/04/29 17:35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중간에 카사노바 이야기에서 다소 읭? 했습니다.
묘사하신 카사노바는 우리가 아는 특정 인물인 카사노바..와는 좀 많이 다른거 같고 현대의 바람둥이 라 해도 좀 다른거 같은데... 제 생각에 묘사하신부분이 좀 다른거 같습니다.. 뭐 여튼 간에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읽으며 갈라테아에 의문을 가지시는것과 같이 사실 피그말리온은 행복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볼때마다 왜 피그말리온은 조각을 하나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물론 그리스 신화에는 신이 나와서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으니 본인은 조각을 할 능력만 있을뿐 사람을 만들진 못하지요. 그렇다고 해도 인간 여자대신으로 조각상을 빚었는데 왜 애시당초 조각을 만들때는 하나만 만들었을까요? 그리스 신화가 아닌 현대판 피그말리온들에게는 신은 없습니다. 그들이 갈라테아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본인이 조각해서 그 조각상을 인간까지 만든겁니다. 신은 없기때문에 본인이 인간으로 만들 능력이 있다면 왜 또하나의 갈라테아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본인이 조각해서 만들어 인간이 된 갈라테아는 또다른 갈라테아를 만들수 있는 피그말리온에게 과연 가치있는 존재였을까요. 이 결말은 버나드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갈라테아는 잘 모르지만 희곡 피그말리온으로 탄생된 마이페어레이디는 알고 있지요. 현대판 피그말리온인 히긴스와 현대판 갈라테아인 일라이자는 결국 결별합니다 주체성을 가진다는 것의 측면에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만남은 비극처럼 보여지나 제 생각에는 오히려 주체성을 가졌다면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만남은 행복했을겁니다. 본인의 행복은 본인에서 오는 것이고, 행복이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히긴스와 일라이자는 결별로 끝났으나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행복을 누렸을겁니다. 그 둘은 이전과는 발전된 다른 경험, 이전과는 발전될수 있는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거든요. 피그말리온은 이제 또다른 갈라테아를 조각하면 되고 갈라테아는 돌에서 생명이 있는 사람으로 되었으니 돌일때는 할수 없었던 자신을 있는 그대로로 받아줄수 있는 남자를 찾으러 가면 되는거거든요. 행복이 타자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니라면, 본인은 이전보다 성장했는데 둘이 불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과정도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둘은 행복했을거라 봅니다. 댓글 맨앞에 카사노바이야기를 한 이유는.. 저는 또다른 돌을 찾아 조각하러 나서는 이 피그말리온이 카사노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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