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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1/06 14:06:05
Name 하루의일기
Subject [일반] 타자의 욕망과 열등감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하여


1.


자크 라깡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말을 했다.
뭐 워낙 유명한 말이고 자주 언급되니 너무 들어서 이쯤되니 매우 뻔한 소리로 들린다.
그럼 타자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태어나서 아이는 부모가 아이에게 욕망하는 무언가를 스스로 욕망하는 것을 처음으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대학에 진학할 것 >
<돈을 많이 벌 것>
라는 식으로 자녀에게 부모들 자신의 욕망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가 욕망하는 그 욕망을 자신이 얻어내고 이뤄가면
부모로 부터 어떤 <사랑>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더욱 부모의 욕망(즉 타자의 욕망)을 추구한다.
부모가 자식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안아주지 았고,  어떤 조건적인 사랑과 양육을 하게 되는 경우,
이 아이는 성인이 되어 타자의 욕망을 더욱 크게 갈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커서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역시 개인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 때 개인은 자신이 타자가 욕망한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타자들로 부터 어떤 <사랑- 인정, 관심을 포함하여 통칭해서 사랑이라 하자.>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한다.
타자의 욕망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이루지 못한다면
타자로 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으며 ,  오히려 <무시와 냉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사랑-통칭하여>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 시킨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친절과 미소의 인격이 상품화 되고
과거에는 밖에 나가서 그냥 주워 먹을 수 있었던 일종의 자연공공재화라고 봐도 무방했을 것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사유재산화되고 이것들은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 역시 자본시장에서의 상품이 되는데(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시장이 결혼시장이다.),
이 결과로 이 자본주의 세상에는 <존재>는 없고 <상품>만이 있게 된다.  
개인은 살아가면서 점점 타자의 기대와 욕망을 알게 되어가고
많은 것이 상품화되고 있는 사회를 보면서
또한 성장해 갈 수록 타자들의 욕망을 소유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타인을 접하게 되면서
인간은 소외를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 욕망>은 좌절된다.  
<사랑-통칭하여>이란 그래서 사실상 <존재욕망>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개인은 자신의 존재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자가 욕망한 무언가를 가짐으로써 존재욕망을 이루려 한다.

그렇지만,
타자가 욕망한 것을 이루고 소유한 개인에게 다가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 개인의 <존재>가 아닌  그 개인이 가진 <타자들의 욕망이자 이 개인을 상대하는 상대방의 욕망>을 보고 접근하며
사실상 그 개인의 <존재>에 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인은 자신이 갖고있는 <타자가 욕망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며  이 과정에서 더더욱 철저한 자기소외를 느끼게 된다.




2.


타자의 욕망에 있어서
내 개인적인 생각은 사실 그 욕망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력>이 있는가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서 취업난이 심해지자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무원>이라는 타자의 욕망을 강요하고
자신도 그 타자의 욕망을 받아들이면서 공무원 공부에 집중한다.
이렇게 <타자의 욕망- 공무원 시험>이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고 문제를 일으킬 때
그 타자의 욕망은 힘을 가지며 <타자의 욕망>으로 구분이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특정 계급에게서만 허용이 되었던 과거 시험의 경우,
혹시나 진짜 비범한 피지배계층의 사람이나
진짜 공상이 풍부한 어느 피지배계급 사람이
<나도 과거 급제해서 나랏일을 하고 싶다> 라는 욕망을 가진다 해도
이 욕망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애초에 원천봉쇄되어 차단되어진 무언가에 대한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 보기가 어렵다.




3.


존재욕망이란,
타자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에 대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
영향력이란,  상호간의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타자에 대한 전능감의 욕망일 수도 있다.
상호간의 대화는 타인에게 자신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래서 존재욕망은 늘 대화를 매개로 해소가 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유는,  고립을 기피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으려 애쓰는 이유는,
태초에 아이는 태어나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다 커서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만 존재하던 자신을 타인과 교류함으로써 그 세계를 넓히며 자신의 존재욕망을 채워간다.

그 존재 욕망을 이루는 곳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심지어 병적인 자폐 조차도 혹은 사회와의 접촉을 피하는 사람들 조차도 그들 안에는 존재욕망이 있다.


자살이란, 고립의 극단적 표출이다.
자기만의 1인 세계에의 존재 욕망 마저도 잃어버릴 때,
개인은 자살을 선택한다.



4.


존재하는 곳이  타자의 얼굴을 그리고 세계 변화를 볼 수 있는 사회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한 개인이 살고 있는 곳이 시점 중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있는 가장 단적인 지표이다.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수반한다.
객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태가 점점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볼 수 있는 가장 단적인 지표가 객체가 얼마나 변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존재하는 시간이 어디인가 이것은 개인의 심리에 기원한다.
심리적으로 어느 시기에 고착되어 그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때 당시의 사고와 습관과 외모를 고수한다.  
형상의 변화는 개인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그 변화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하는 곳이 현실 세계의 그 시간 그 곳이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세계라면 ,
인간은 객체의 형상이 변화하는 것을 쉽게 보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외면하는 것인지도.







>>>>>>>>>>>>>>>>>>>> 타자의 욕망으로 해석하는 열등감과 그 해방 >>>>>>>>>>>>>>>>>>>>>>>>>>>>>>



열등감에 대해서 치열할 정도로 고찰했던 정신분석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들러.


그에게는 형이 있었다.  자신보다 여러모로 뛰어난 형을 보면서 그는 어려서 부터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아들러가 가진 신체적인 컴플렉스로 인해 더욱 예민하고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 반전이 있었다.
이 세계적인 대 석학은 자신이 어려서 부터 느낀 그 열등감을 공부에 대한 추진력으로 전환시켰고
열등감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고찰해냈다.
그는 열등감이 추진력이 된다고 보았다.
아들러 자신이 살면서 그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열등감(나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을 보고서 느낀 것이다.



>>>>>>>>>>>>>>>>> 아래 부터는 저의 해석입니다.>>>>>>>>>>>>>>>>>>>>>>>>>>>>>>>>>>>>>>>>>>>>>>>>





열등감이란 ,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열등감을 가진 개인이 자신의 열등감을 마주하고서 택하게 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아들러가 얘기한 것 처럼,  열등감을 자기 발전의 추진력으로 써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2. 노력은 힘들고 괴롭고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열등감(정확히는 , 자신의 못난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상대를 시기하고 깎아내리려고 애를 써서 일시적인 위안을 얻는다.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낀다고 얘기하는 몇 가지를 살펴보자.

크게 인간이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은
학벌, 외모, 스펙, 직장, 연봉, 차의 크기, 자식이 진학한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학벌좋은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낀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진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과 신뢰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일까?
저렇게 누군가가 열등감을 가진다고 하는 부분들의 종합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답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타자의 욕망으로서 ,
그 욕망의 희소성 때문에 극심한 경쟁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욕망을 쟁취하는 사람은 일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갖지 못한 루저가 되도록 하는,
경쟁사회에서의 줄 세우기를 통해 주입되어진,
즉 쉽게 얘기해서 <사회가 주입한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있고 그 기준들이 있다.
그러나 극심한 경쟁은 사람들이 경쟁하도록 요구되어지는 그 가치 외에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거나 평가절하하도록 사회가 몰아가고 있는 비극이 현대 사회에서 실현되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 기준이 오직 돈인 사람은
자신을 비롯하여 타인도 소유 재산의 정도로 보고 판단하는 단식판단에 빠지며
그  많은 돈을 소유한다면 그래도 다행이겠지만,
개인이 가진 협소한 가치기준의 딜레마로 인해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만족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오직 돈이 가치기준의 전부인 사람은(외모, 학벌 등등 역시 마찬가지로.)
돈을 갖고 재화를 샀을 때 누리는 초기의 행복에 취하다가
어떤 무언가의 이유로 인한 저조한 기분이나 불행감이 찾아오면
그 이유를 <내가 돈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탐하면서 욕심을 키워간다.

협소한 가치기준을 갖는 다는 것은 곧,  
자신을 욕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는 말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외모로 인한 열등감을 들여다보자.

미의 기준은 점점 획일화 되어 가고, 눈 몇 센티 눈과 눈 사이의 비율 얼마,
코의 각도 몇 도, 입술의 끝과 코의 끝의  이상적인 비율은 몇,
이러한 기준으로 <미>라는 것이 수치화 되어 가고 기준이 매우 엄격해지면서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루저(나는 루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게 얘기함)가 만들어지고
그 기준을 채우지 못한 타인에 대해서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살 빼라, 쌍커풀 좀 하면 괜찮겠다, 옷이 이게 뭐냐, 등등..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그 편협하고 획일화된 협소한 가치기준은 개인을 무한한 열등감의 궁지로 몰아 넣는다.





돌아가서,

수많은 가치들 중 불과 몇 가지의 가치에만 집중하며
이로도 모자라 그 가치에서의 엄격한 기준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 대는 편협함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루저가 되어 버렸다.


(착한 남자는 많지만, 착하고 돈 많고 학벌 좋고 부모님 자산도 수억이고 결혼할 때 아파트 한 채 마련해 줄 수 있으며 전문직인 남성..
은 극히 극히 소수이듯..)



그런데 내가 줄세우기를 당해서 내 자존감에 상처를 낸 그 타자의 욕망인 가치는,
유전과 환경과 자본 등등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개인의 노력으로 한계가 있는 가치들이기에
결국 저런 가치들에 자신의 기준이 갇혀 버리면 열등감에서 영영 헤어나올 수가 없고
결국 그 열등감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닌,
자신과 그 열등감의 대상자가 되는 사람을 향한 <폭력>이 되어 나와 상대방을 모두 병들게 만든다.


이 폭력은 그 열등감의 대상자를 향하는 것임은 물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임은 물론,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보는 자신의 어떤 싫은 일부분에 대한 부정으로 폭력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의 발생 원인과 과정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말한 것을 토대로 하여 해결 방책을 <가치기준의 다양화>를 말하려고 한다.



가치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그것을 대표하는 <특징>이 있다.
콜라가 단 맛과 톡 쏘는 탄산의 강한 자극을 가진 것은 콜라라는 존재가 가진 <특징>이다.  
이 특성은 바로 콜라의 존재가 <가치>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존재를 들여다보면,
그 존재를 대표짓는 모든 특성이 곧 <가치>라 할 수 있다.  
<문>이라는 존재는 그 대표지어지는 특성으로서, 공간을 분리하는 특성과 외부의 무언가로 부터 방어하는 특성(특징)을 가진다.
이것이 문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모든 존재에는 시장이 부여하는 가격으로서의 화폐가치가 아닌,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이 세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에서 가치와 특성이 동일시 될 수 있음을 확인이 가능하다.
콜라가 가진 특징이 문이 가진 특징이 곧 가치로서 역할을 하여 거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존재가 특성보다 선행한다.
시장에서의 <기능적 측면- 상품으로서의 가치->이라는 것은 존재가 가진 특성이라는 전체집합의 부분집합이다.

콜라가 단 맛을 가지고 강한 탄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콜라라는 존재의 특성이다.
그러나, 이것을 시장에서의 재화로서 <기능적>측면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재화로서의 상품가격을 갖는 <가치>이지만,
이것은 본래 있던 존재의 특성에 <기능적 측면_시장 재화로서의>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에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많은 재화들은 그 존재로서의 특성을 가진 그냥 그 무언가였다.
그러나, 시장이 등장하면서 그것이 기능적 측면으로서의 어떤 시장 내에서의 값을 가진 무언가가 된 것이다.  

역시 상품화가 되어 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시장 논리에 따라 자기 자신 역시도 <재화>로서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특성은, 자본주의에서 <상품>으로서 기능적 측면을 하고 있으나,
원래 본질은 자본주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인간 그 존재가 여전히 갖고 있던 특성이였다.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망각한다.
시장이 말하는 <기능적 측면>만을 생각해버리면서
본래 그 존재 자체가 갖고 있었던 <특성>이 <기능적 측면>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망각해버리는 비극에 빠져있다.


인간은 공기를 마시고 뱉지만, 공기를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인간은 거울로 나의 얼굴이 어떤지 반전된 상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자신의 얼굴을 죽을 때 까지 볼 수 없고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
존재와 그 존재가 가진 특성은, 그 존재가 그 특성에 대한 <의지>가 있을 때 인식이 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개인들은 그 존재들은 자신의 특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을 보려는 의지가 있기 전에는.

그것을 보려는 의지가 없는 개인은 , 계속하여 사회가 얘기하는 기준만으로 자신을 재단할 뿐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가(정확히는 자본주의가) 얘기하는 가치 기준에 얽매여 자괴감에 빠지고 무조건 그것들을 좇아가는 연유는,
나라는 존재와 그 존재에 가진 특성에 대한 인식의 <의지>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의지가 필요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가치기준을 많이 갖고 나를 본다고 해도 세상은 그런 나를 정신승리하고 있다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있을 때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
가치는 그 가치로서 본래 존재한다. 인식하지 못해도 그 가치는 그대로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식은 다른 문제이다.  
어떤 개인이 a의 가치(특성)을 갖고 있을 때,
그 개인은 자신이 그 특성을 갖고 있음을 굳이 볼 의지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모른 채 지내고 있다고 해서 그 가치(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은 개인을 바꿔 놓는다.


특징은 나와 타인을 구분짓는 무언가이기도 하지만, 내가 남들과 공통적으로 가진 무언가 역시 특징이다.
콜라가 수만 병이라 할지라도, 그 콜라가 가진 콜라들의 특성으로 인해 그 콜라가 가치를 잃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남이 가진 특징을 나도 역시 갖고 있다는 것에서 인간이 열등감을 느낀다면,
사람들은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해야한다는 마음에 유행을 좇고 타인과 동화되려 노력할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타인에게 자존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방법이란,
결국에는 타자의 욕망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서 결국 이뤄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의 자신을 만들고 그 가치를 가진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느끼라는 말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다.
타자의 욕망인 가치, 그 가치를 매기는 기준 말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들을 생각해보자.

이전에는 타자의 욕망에 매몰되어 그 타자의 욕망으로만 나를 보느라 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가치기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내면화하고
이걸 기준으로 하여 자신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순간,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안에 다른 다양하고 많은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의 뿌리이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그런 자신을 좋게 볼 수 있는 한 렌즈이자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이렇게 다양한 가치기준으로 보는 순간,
이 세상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치기준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세상을 극단적인 이분법이 아닌 <중용>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지고,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쓸모 없고 하찮은 것이 없으며
그렇기에 모든 것이 모두가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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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06 15:30
수정 아이콘
아이 키우면서 '남들이 시킨다고 눈 감고 쫓아가지 말아라. 공부도 네가 의미를 느껴야 잘 한다. 의미는 네가 정하는 거지 누가 주는 게 아니다' 라고 가르쳤다가 아주 크게 고생하고 나니 과연 '대충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는 과정' 이 나쁜 것이냐, '인간에게 존재 욕망이 원래 존재하는 가?' 등에 대해서 생각이 조금 변하더군요. 뭐랄까.... 인간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한 두가지의 이론으로 정형화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예민한 것 같습니다.
15/01/06 15:40
수정 아이콘
[남들이 시킨다고 눈 감고 쫓아가지 말아라. 공부도 네가 의미를 느껴야 잘 한다. 의미는 네가 정하는 거지 누가 주는 게 아니다] 틀린 말이 아닌데 어떻게 고생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아빠 난 지금 이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학교는 대충 다녀보겠지만 더 기다려봐...지금 난 게임이 무척 재밌거든 이런식으로 흘러갔을까요?) 그런 건 그저 입스타의 영역 같은 것인지 흐흐.
15/01/06 15:55
수정 아이콘
예 거의 그랬습니다. 여덟 살 즈음부터 '의미는 내가 정하는 건데, 내 생각에는 이거 의미가 없네' 라고 결론낸 후 허무주의자가 되더니 아홉 살 부터는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은 자살 얘기하더군요. 그동안 마음고생한 것 생각하면 아주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15/01/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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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애들은 정신 못차리게 학원 뺑뺑이나 돌리면서 복제품으로 키워야 겠어요. 크크.(농담입니다^^)

외람된 질문 일 수 있으나. 하나 여쭙고 싶네요.

OrBef님은 미쿡에서 교수로 계시잖습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성취를 해내셨는데(스스로는 별 것 아니라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사회적 인식으로는...) 그자리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자기욕망을 깨닫고 자율적으로 노력하셨는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다 그 자리에 가신 건지 자평 하자면 어느쪽이신지 궁금합니다^^;;
15/01/06 16:52
수정 아이콘
음 일단 잘 봐주시니 감사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은 인생이라는 점을 말씀드려놓고,

'이것은 나의 욕망이다' 와 '이것은 타인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 가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인간의 재능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가 별로 답 없는 질문이듯이, 저 질문도 실제로는 많은 변수가 해석 불가능한 수준으로 엮여있는데 사람들이 이데올로기 따라서 단순화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물론 모든 모델링은 단순화가 필수요소이고 75% 적중률만 나온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긴 하겠습니다만, 저 개인에게 그 모델이 적용될 확률은 고작 75% 인 거지요.

이렇게만 답하면 왠지 기대하신 답변이 아닐 듯해서 최대한 추정을 해보자면, '너 하고싶은 거 하면서 살아. 근데 내가 보기에 넌 과학 좋아하는 것 같은데?' 라는 식의, 강제는 없되 대신 고단수 세뇌를 당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집에 블루백스라고 해적판 일본 과학책이 한쪽 벽면 가득히 있었던 듯.....
15/01/06 17:01
수정 아이콘
정성스런 답변 감사합니다^^

그 고단수 세뇌라는게 아주 허무맹랑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5/01/06 17:20
수정 아이콘
완전 바람직한 말을 하신 건데 역효과가 났네요 허허
15/01/06 17:21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가치관이라 아이가 태어나면 같은 방식으로 가르칠 예정인데, 이 댓글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저도 어릴 때 약간의 염세주의와 허무주의 때문에 고생많이 했는데.. 아이도 똑같은 구렁텅이에 내몰수는 없는데요 ;;
흐음.. 윗분 말 마따나 정신 못차리게 뺑뺑이를 돌려야 하나... ;;
15/01/06 17:26
수정 아이콘
예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우울증 비슷한 게 가족력이 있는데, 별로 물려주고 싶지 않은 걸 물려줬나봅니다. 저도 정답이 뭔지 몰라서 직접적인 도움은 못드리지만, Wade 님은 저보다 잘 헤쳐나가시길 빕니다.
하루의일기
15/01/06 16:52
수정 아이콘
타자의 욕망에 대한 주입에 대해서는 사실 저는 중립적인 입장입니다.

다만 글에서 지적하는 열등감의 과정으로 가는 타자의 욕망에 대해서 다뤘으며,
글에서 주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존재 욕망의 좌절>에 있습니다.
a하지 않으면 나는 사랑(존재 욕망의 실현)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과
타자의 욕망의 좌절에 의해 생기는 열등감을 지적합니다.

자녀분께서 나이가 꽤 어리신 것 같은데 어린 나이라면 방향을 잡아 줄 필요는 있죠.
다만 그것이 조건적인 존재욕망의 좌절이 아니라면..
15/01/06 17:10
수정 아이콘
전 사실 실존이라든지 본연의 자신이라든지하는 개념들이 실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지만, 타인의 욕망을 투영하는 식으로는 끝 없는 쳇바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조건부 사랑에 목 매면 남는 것은 어장관리뿐이죠.
공대의남자
15/01/06 17:42
수정 아이콘
제 생각입니다만..
좋은 그 말씀조차 아이에게는 가치주입의 효과를 낳지 않을까요?
어른으로서의 삶속에서 깨닫게 된 것을.. 어찌 어린 아이가 그 뜻을 알겠습니까.

흔히 사춘기 시절에 겪는 허무주의는 생활속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불러온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재미라 함은 크고작은 성취도와 관련이 있어보이는데,
그 시절이 딱 뭔가 해보려해도 어른만큼 해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어린 아이 수준에 머무를수도 없는 그런 과도기이기 때문이죠.
본 글에서의 타자의 욕망을 향한다 한들 그것이 내게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면 그 자체로는 큰 촉매가 됩니다.
하지만 보통은 성취하기 힘들 확률이 높다보니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는 것이구요.

8-9세 아이에게는 무엇보다도 재미를 찾는 연습이 중요한 듯합니다.
실제로도 그 시기 아이들은 뭘 해도 재미있어 할 수 있는 나이이구요.
그런 아이가 스스로 재미를 찾지 못하고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된다면, 결국 또 마찬가지로 타자(부모)의 욕망에 얽메이는 상황이 아닐지요..

아마 향후 자식공부걱정은 안하셔도 될겁니다.
지금은 최대한의 놀이환경을 제공해 주시는게 어떨지 감히 말씀드립니다.
15/01/06 22:11
수정 아이콘
예 그렇죠 결과적으로는 방향만 다를 뿐 제 방식 역시 아이 입장에서 또 하나의 주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는... 공부 안 시키는 걸로 상위 1% 에 들었었는데, 이것도 폭력인 듯해서 요즘은 평균 정도는 시키려고 노력 중입니다.
파인애플
15/01/06 20:51
수정 아이콘
그거 굉장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OrBef님께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객관식 문제를 잘 풉니까 주관식 문제를 잘 풉니까?
아마 다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객관식일 겁니다.
생각하는 수준은 어떻습니까? 인간과 세상에 대해 고민을 하는 친구입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대학생도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초등학생이
간혹 나오지만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초등학생은 백만의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런 연령대의 아이한테 OrBef님은 답할 수도 없는 과제를 던져준겁니다.
마치 일용직 노동자한테 열심히 일해서 강남 아파트 하나 장만하라고 하는 퀘스트 정도?
마치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요구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 큰 성인도 하기 힘든 것을 아이가 할 수 있을리 없습니다. 능력 있는 평론가라도 평소에 지식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들여 정리를
해야 나올 수 있는 말을 아이한테 던지는 겁니다. 질문을 받은 아이는 별로 느낀 것이 없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모의 꾸지람을 피하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답을 쥐어짜느라 애씁니다.
본문에서 나온 내용과 마찬가지의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실수를 하신 것이고요.
이거 굉장한 수준의 정신적 폭력입니다. 전 정신적 강간이라고 표현하는데...우연찮게도 어떤 아동전문가도 똑같은 표현을 쓰더군요.
그만큼 일방적이고 굉장한 압박을 주는 행위입니다.
욕망의 부분에 있어서는 '넌 어디 대학을 가야 해'라고 한 부모랑 별 다를 게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인간상을
능력이 안되는 아이한테 요구한 거니 말이죠. 학벌을 중시하는 부모들은 돈이라도 투자할 수 있죠. 이런 추상적인 건 뭐 해주지도 못하고
뭐 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 쫓아가지 마라 의미는 니가 찾는거다'라는 말을 했을 때 아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 보셨습니까?
아마 아이의 기층심리에 아빠는 굉장히 이상하고 무책임하며 권위적인 존재로 자리잡았을 겁니다.
그 나이 또래 애들은 자기 몸 돌보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을 나이입니다. 무슨 소리냐하면 자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속하고 어떤 일을 하면 어떤 영향이 돌아오고 피해가 생기는지 생각을 못한다는 겁니다. 근데
그런 아이가 자살을 언급한다면...꽤 심각하네요. 자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데 아이가 '인생'이라는 부분을
생각해 버렸다는 겁니다. 어떤 결과점에 도달하는 가능성..지극히 협소한 가능성을 생각해 버렸다는 겁니다. OrBef님은 원한 형태가 아니었겠지만
다른 형태로 아이는 '의미'의 '의미'를 어렴풋이 감지해 버렸습니다. 불필요한 자극에 의해서 말이죠.
정상적인 성장 과정에서라면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초쯤에나 세상과 인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따위로 행동할까?'라는 생각이 구체성을 가지게 되고 자신한테 물어보고 나름 답을 내리려 하는 시기의
시작인데 그런 시기나 되어서야 적당히 던져주시는게 좋습니다.

부모들의 착각이라고 해야하나...남과는 다르게 올바른 인간으로 키우는 것에 신경 쓰는 부모들의 착각이라고 해야하나 할 것이 있는데...
정작 부모들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냥 평소에 무시만 하지 않으면 그게 최고고 유일한 수단입니다. 부모가 인생의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개입을 하려 하거나 작정하고
말을 전하려고 하는 거 실제로 별 도움이 안됩니다.
15/01/06 22:21
수정 아이콘
거의 다 맞는 말씀이고, 저는 경험으로 깨달았는데 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확실히 인생은 때가 있는 건데,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너무 일찍 꺼낸 것이 큰 실수가 맞습니다.

제가 권위적인 아빠는 아닙니다. 저와 아이 사이는 매우 좋고, 중학교 들어간 지금도 서로 보면 굉장히 반가워합니다. 같이 보내는 시간도 긴 편이고 놀이부터 독서까지 이런저런 활동도 많이 하지요. 물론 본인이 원해서요. 다만, '내 아이는 내가 범했던 실수를 피했으면 좋겠다' 라는 욕심이 과했었어서 '아빠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돼?' 라든지 '아빠 삶의 의미는 뭐야?' 같은 질문에 대처하는 와중에 지나치게 솔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던 듯 합니다. 말씀대로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긴데, 무리한 걸 요구한 거지요.
마스터충달
15/01/06 16:5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라깡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공감은 안 됩니다. 그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정도랄까요.
솔직히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현상을 그럴듯하게 해석해줄 뿐이지 그 본질에 접근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기계발서처럼 무비판적으로 보면 그럴듯한 소리일뿐이고, 뭐 학문적으로는 이미 박살났죠.
인간 행동의 구동력이 '타자의 욕망'이 아니기 때문에, 글의 시작 부분부터 논의가 필요하다 봅니다.

훌쩍 뛰어넘어 결론만 말하자면 발상을 전환한다고 열등감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건강한 식단, 꾸준한 운동, 정기적인 섹스, 그리고 약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다면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 오히려 더 낫습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열등감'자체를 극복하기 보다, 이를 잊어버릴 정도의 행복이나 만족감을 다른 분야에서 찾는 것이 낫습니다.
이는 훈련으로도 가능한 부분으로 '작은 일에 감사하기' '주변에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등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없애는 것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겁니다.
하루의일기
15/01/06 17:02
수정 아이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글은 제가 지독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사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동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라깡의 저 말을 생각으로 늘 되새기면서 지냈고 그 과정에서 느껴간 것들입니다.
실제로 저런 가치기준의 다양화를 하고서
열등감보다 더 심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15/01/06 17:14
수정 아이콘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는 건 진짜 중요한 일이고, 이 글을 보고 한 명이라도 도움받을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요. 저도 라캉을 비롯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글은 잘 읽었습니다. 추천이 올라가는 거 보면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듯 하네요.
하루의일기
15/01/06 17:53
수정 아이콘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충달
15/01/06 18:51
수정 아이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것이 작동하게 되는 매커니즘은 범용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입니다.
하루의일기님이 이러한 사고작용을 통해 자기혐오에서 벗어났다면
가치기준의 다양화라는 긍정적 사고훈련을 통해 자기혐오를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현대 심리학의 시각입니다.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닭(라캉)대신에 꿩(다른 철학)을 넣어도 달걀(열등감 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에
라캉을 기반으로 한 가치기준의 다양화를 설파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상이 어떠한 심리작용을 유발하는지 과학적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결국 하루의일기님의 주장도 근래의 자기계발서가 받고 있는 비판을 받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15/01/06 17:10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에도 열등감이[부당한 이유에서 왔다는 것을 깨달아도 열등감은 잘 안가시지 않더라] 싶습니다.
어쨌든 실질적인 활동으로 뭔가 성취하고 달성해서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게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지 싶습니다.

그런데...인정받아야 할게 너무 많잖아...안 될거야....
검은책
15/01/06 17:20
수정 아이콘
정신분석은 이미 과학의 영역(뇌과학)으로 넘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신분석이 가지는 은유의 힘, 즉 나의 욕망에 대한 구체적 상을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절충과 타협 역시 구가하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측면에서 임상적 가치는 아직까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시하신 라캉과 아들러의 모델은 현대인을 설명하기는 다소 거친감이 없지 않습니다. 들뢰즈의 [안티오이디푸스]에 의하면 이러한 존재론적/구조적 비극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신파에 지나지 않게 되지요. 현대의 신경증자는 사회의 잔여적 또는 인조적 영토의 탈영토화를 추구하며 더 멀리 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즉, 욕망의 탈코드화는 현실계에서 욕망기계들의 자율성을 회복시켜주고 그것은 다시 사회적 생산의 역사적 과정에 다시 합류하게 되리라는 것이지요. 라캉이나 아들러가 보기에는 우리는 모두 신경증적 분열자지만 들뢰즈에 의하자면 우리는 정상인 것이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하루의일기
15/01/06 17:55
수정 아이콘
철학 전공자도 아닐 뿐더러, 관심도 거의 없는 편이라 들뢰즈의 시각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안타깝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은책
15/01/06 18:01
수정 아이콘
저도 아닌걸요. 흐흐 다만 들뢰즈는 제가 좋아하는 학자라 읽고 또 읽으며 공부 중입니다.
하루의 일기님처럼 저도 제 자신의 단점과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매일 공부합니다. 앞으로도 쭉 공부하시고 이렇게 글올려주세요.
15/01/06 18:13
수정 아이콘
어렵다... T.T
캐터필러
15/01/06 20:08
수정 아이콘
열등감을느끼는것은 열등감느끼는유전자가잇기때문이겟죠?
과거내선조중에 열등감느낀선조가 열심노력해서 내게유전자를 남긴거겟고
나의 대에 이르러 그유전자가다시발현된거고
내가다시노력해서 내유전자를 남기면success계승혹은성공
아니면 유전자소멸입니다

인간의감정은 영혼이나정신따위가아니고
정확히 화학반응이니
부정적감정이 일어낫다면 내유전자일부가
.더노력해서 우수한유전자랑 섹스해서 섞어질수잇게 하라구. 라며 채찍질하는거라고보면 정확하겟네요
힘내세요 디엔에이가만든 단백질물주머니여러분^^
검은책
15/01/07 09:15
수정 아이콘
어제 핸드폰으로 글을 남기느라 하고픈 말을 다 못했네요.
모두 다른 사람이 만든 글이나 말을 좇는 시대에 혼자서 치열하게 사유한 결과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저는 들뢰즈를 들먹거리며 그의 말을 좇지만 하루의 일기님은 라캉이나 아들러를 참조했을 뿐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신 거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시고 자신만의 언어를 더 정교하게 만드시길 기원할께요.
글 또 올려주세요. ^^
솜이불
15/07/26 00:32
수정 아이콘
탈퇴를 하셔서 이 댓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몰라 남깁니다.

이 글이 오늘의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움'이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지금 참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는데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겠네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예전에 이 글을 막 올리셨을 때에도 이 글을 클릭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한번 읽어보고 넘어갔던 것 같은데
지금, 오늘, 요즘 제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이 글을 읽으니 더 많이 와닿고, 이해되고, 복잡했던 제 머릿속의 실타래가 풀리듯 정리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안정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으니 이제는 거의 잊어버렸지만 대학을 다닐 때 저를 넓혀주었던 몇 가지 수업이 다시 떠올랐고 (인문 사회를 전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사실 이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책에 관한 몇 가지 정보만 알고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던 책인데...
하루의일기 님의 이 글을 읽고 있자니 떠올라서 사랑의 기술도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탈퇴를 하셔서 아쉽지만 그래도 다른 좋은 글들도 남겨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뭐라고 더 표현하고 싶은데 부족한 제 표현력이 아쉽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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