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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05 12:10:26
Name 눈시BB
File #1 정유재란.JPG (139.2 KB), Download : 73
Subject [일반]  정유재란 - 3. 무너지는 호남 (혈압주의)



BGM은 아이리스 OS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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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은 수군의 모습 외에는 다루는 게 별로 없고, 저도 실록 등을 토대로 작성한 거니 틀린 게 많을 겁니다. ^_^; 뭐 그냥 봐 주세요.

11월에 적의 재침 소식이 들린 후 조정에서는 중국에 계속 원군을 요청하면서 북병을 서울로 집결시킬 것과 수군을 강화할 것을 논의합니다. 도원수 권율은 도체찰사 이원익과 함께 청야를 계속하면서 병력을 모았죠. 이 때 모인 총 병력이 이만 삼천 육백 -_-; 하아... 어느 곳에서나 문제는 군량이었습니다. 거기다 자발적인 의병도 거의 없었죠. 그나마 이 병력들도 경상도, 전라도 곳곳에 흩어져 배치해야 돼서 권율의 실병력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병을 부르려고 한 것입니다만...
이 때 명에서도 구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논의가 엄청나게 진행됐죠. 일단 강화 회담 실패로 석성이 잘리고 형개가 올랐습니다. 그래도 조선을 구해야 된다는 건 공통된 의견이었고, 명 역시 전쟁에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3월 2일 중국의 원병 소식이 마침내 들렸고, 그 이후 명군의 군량을 대는 논의가 계속되었습니다. 한편 4월 4일에는 마침내 북병들이 도착해서 선조가 직접 모화관에 가서 반깁니다. 하지만 18일 누르하치의 소식이 들리면서 다시 돌려보내죠. 윤두수야 반대합니다만 -_-;
군량에 대한 의논은 계속됩니다. 백성들과 조선군이야 굶어 죽어도 은혜로운 대국의 군사들을 굶기면 안 되죠. 육로는 힘들다느니, 조선의 사정으로는 힘드니 산동 반도의 해운을 이용해서 명에서 직접 들고 오자느니 하는 논의가 계속됩니다. 명나라 병부에서도 기나긴 말을 전하면서 각 도에 대국을 위한 군량을 준비하라고 하죠.
5월 8일, 부총병 양원이 도착합니다. 걱정 말라면서 호언 장담하죠. 그런데 그 말 하는 것 중에 이런 게 있더군요.

“내가 중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나의 나이는 국왕보다도 높습니다. 이제 명을 받고 나왔으니, 군정(軍丁) 중에 만일 법을 범하는 자가 생기면 그에 맞는 형벌을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다만 귀국은 일마다 게으르고 느리니, 모름지기 단속하여야 할 것입니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본래 겁이 많아서 적군만 보면 도망해 흩어지기에 여념이 없다. 후일에도 만일 다시 이렇다면, 내가 직접 그들의 목을 벨 것이다. 이제 만일 성곽을 수축하고 굳게 지킨다면, 전라도 하나는 금성 탕지(金城湯池)의 견고함이 있게 될 것이다.”

말 하는 꼬라지 하곤 -_-; (실록 발췌하면서 제가 저 말 뒤에 죽일 놈이라고 적어 놨더군요)

하지만 선조는 그 하해와 같은 은혜가 얼마나 깊었던지 권율 이하 모든 조선군 병력을 양원의 지시를 따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양원은 또 뭐가 그리 싫었는지 평양으로 가면서 군량도 없고 말도 안 듣는다면서 철수하겠다고 깽판을 치죠. 6월 24일에는 오유충이 압록강을 건너는데, 이 때 조선의 병력을 보고한 게 육군은 일만명, 수군은 오천명 정도였습니다.
7월 3일에는 제독 마귀가 도착하죠. 정유재란에서 명의 1차 원군이 모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신흠의 상촌집에 따르면 이 때의 병력은 경리 양호의 직할 병력이 3700, 실제 지휘관인 마귀의 직할병력이 6100, 남원으로 간 양원의 병력 3750, 충주에 주둔한 오유충의 병력이 약 4000, 전주에 주둔한 진우충의 병력이 1900, 7월 초순에 도착한 해생의 병력이 2500 정도였습니다. 과장 등을 감안해서 명군의 총 병력을 만이천 정도로 추산하죠.

양원은 별 꼬장을 다 부리면서 호남에서 가장 중요한 성 중 하나인 남원성을 개축합니다. 여기서 양마장이라는 외성을 세우는 건 좋았는데, 남원성 근처의 교룡산성을 버릴 것을 지시합니다. 이후 남원성 전투의 결과를 보면 참 -_-;

한편 일본은 계속 이상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심심하면 경주 등에서 시위를 하는가 하면 조선 국왕이 항복하러 온댔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서 따지고 들죠. 특히 저번 편에서 얘기한, 원균이 나무 베러 온 왜군을 죽인 것은 정말 두고두고 써 먹습니다. -_-; 주로 강경책은 가토 기요마사가, 온건책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맡았습니다. 심유경은 이순신 파직 이후에도 심심하면 "가토 죽이자"면서 김응서와 조선 조정을 농락하죠. 조선 조정은 이런 고니시 유키나가 자체를 믿지는 못 해도 온건하다는 것에 조금이라도 기대를 걸려고 하죠. 4월이 들어서면서 슬슬 전라도를 치겠다는 협박이 시작됩니다. 주로 추수가 끝나는 가을,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거죠. 그게 싫으면 항복하고 조건을 들어라는 것이었습니다. 4월에 사명 대사 유정의 상소 등 적이 치는 척 화의하는 척 하는데 정병과 수군을 추려서 치자는 의견이 많습니다만... 조선에 병력이 있어야죠 -_-;
+) 사명 대사의 상소에 대해 사관평이 재밌는데 중 주제에 말을 잘 해서 써먹어주니 건방지다. 근데 말이 다 맞고 의기가 있으니 육식자들보다 낫다. 그래서 특별히 사초에 남겨둔다. 이런 거였죠. 당시 불교에 대한 의식을 볼 수 있네요.
가을이 다가오면서 선조는 수군에 최대한 힘을 넣어 줍니다. 권율이 모은 이만사천 정도의 병력에서 진주 제석산성에 있던 오천이 온전히 원균에게 가죠. 칠천량해전 당시에는 천밖에 도착하지 않았지만요.

6월 14일, 요시라가 총 18만의 병력 중 15만으로 전라도 등을 칠 거라는 협박을 하고, 이제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혼란이 시작됩니다. 오유충은 대명군이 지키고 있는데 왜 중전을 피난시키냐고 따지고, 또 (이 때 단독으로 일본을 기습한 일이 있나 보네요) 명 말 안 듣고 니들 멋대로 군사 움직이냐 그렇게 따지죠. 운명의 7월, 결국 강화 회담에 실패한 심유경의 체포 소식이 들리고 양원의 남원성 축성 문제에서 조선이 따지기 힘들어서 양호에게 말 해 달라고 하자는 논의가 나옵니다. 이후 해생, 장유성, 양등산 등의 추가 병력이 앞다투어 도착하고 선조는 이들을 만나서 또 찬양해 줍니다.

그리고, 22일 칠천량 패전의 소식이 들립니다.

2. 적은 호남으로
춘원포를 화려하게 불태우며 개막을 한 정유재란. 조정은 혼란에 빠집니다. 이 때의 대화를 살짝 옮겨보죠.

선조 - 충청과 전라 두 도에 남은 배가 있는가? 어떻게 하냐고 말만 하지 말고 대책을 세워 봐라. 대신들은 왜 대답이 없는가? 대답 않는다고 왜적이 물러날 것 같은가?
+) 다급하죠 아주
류성룡 - 대답 못 드리는 게 아니라 너무 긴박해서 계책을 생각 못 했습니다.
선조 - "주사 전군이 대패한 것은 천운이니 어찌하겠는가.
+) 뭣이 어쩌고 어째?
선조 - 원균 죽었더라도 어찌 사람이 없겠는가. 각도의 배를 수습해서 방비하자. 아니 왜 척후도 설치 안 했다는 건가? 왜 후퇴해서 한산이라도 지키지 못 했는가?
류성룡 - 대강 대답
선조 - 한산을 고수해서 호표가 버티고 있는 듯한 형세를 만들었어야 했는데도 반드시 출병을 독촉하여 이와 같이 패배를 초래하게 하였으니 이는 "사람이 한 일이 아니고 실로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 뭣이 어쩌고 어째? (2) 아시다시피 출병을 독촉한 것도 선조고 한산을 고수한다는 건 이순신 때부터 수군의 방침이었죠. -_-; 왜 원균이 한산으로 안 가고 고성으로 갔는지에 대해서 선조도 참 어이 없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권율 탓만 하죠.

그와 함께 당면한 적의 침입을 걱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원. 겨우 삼천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찌 할 것인가가 문제였죠. 뭐 의외로 빨리 정신 차려서 이순신을 통제사에 재임명하긴 합니다. 그 얘기는 다음 편으로...

이쯤에서 일본군의 편성을 살펴보도록 하죠. 정유재란 때는 가토와 고니시의 순서가 바뀌는 것 정도로 임진왜란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진격시 좌우군으로 나누어 갔으니 그것을 보는 게 나을 듯 합니다.

우군 : 총대장 모리 히데모토 (3만)
가토 기요마사 (1만) 나베시마 나오시게(만이천) 구로다 나가마사(5천) 초소카베 모토치카(3천) 등 약 6만 4천명
좌군 : 총대장 우키다 히데이에 (1만)
시마즈 요시히로(1만) 하치스카 이에마사(7천) 고니시 유키나가(7천) 기타 수많은 잡영주들 -_-; 약 5만명
수군 : 도도 다카도라(2800) 이케다 히데우시(2800) 가토 요시아키*2400) 와키자카 야스하루(1200) 구루지마 미치후사(600) 간 다쓰나가(200) 등 총 7200
제성수비군 :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1만 등 총 2만 명

이상이 각 일본군 병력의 편제입니다. 임진왜란과 비슷한 수준의 병력이지만 급이 달랐죠. 임란 때처럼 각기 따로 도 하나를 공격한 게 아니라 이 병력이 모두 전라도로 향했으니까요. 수군이 멀쩡했다면 이들은 전라도로 갈 때도 보급을 걱정해야 했습니다만 상황이 변했습니다. 이들은 섬진강 등으로 꾸준히 보급을 받으며, 혹은 아예 해상으로 수송되어 전라도로 향한 거죠.

적은 3~5일 동안 의령, 진주, 곤양, 하동에 도달했고 김응서는 합천, 권율은 성주로 퇴각합니다. 이원익 역시 구미의 금오산성으로 퇴각하죠. 좀 간단히 하자면...
우군은 양산-밀양을 거쳐 창녕으로 진출 -> 합천 -> 안의 -> 진안 -> 전주로 향합니다.
좌군은 남해안을따라 고성 -> 사천 -> 하동 -> 구례 -> 남원을 거쳐 전주로 향하죠. 수군은 하동에서 상륙, 좌군과 함께 구례로 향합니다.

좌군은 길을 막던 거의 대부분의 조선군이 자멸하거나 청야하고 후퇴함으로써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채 남원으로 향합니다.

8월 12일, 일본군 좌군은 남원성에 도착합니다.

3. 남원성 포위

잠깐 조정으로 돌아가 보면요. 6일에 임현과 정기원의 지원 요청이 왔고, 여기서 보낸 병력은 류성룡이 평소 아끼던 군기시 별파진의 병력, 열 명 수준밖에 안 됐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생색내기, 죽이러 보낸 거죠. 여기서 파견됐던 김효의는 살아 돌아와서 류성룡에게 남원성의 상황을 말해 줍니다.
7일에는 교룡산성을 버리는 걸, 반대한다는 걸, 마귀에게, 양원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자고, 논의가 나옵니다. -_-; 하나씩 끊어 읽으세요. 한편 내전이 피난한다는 소식을 진정시켜달라고 비변사에서 건의가 올라오죠. 이미 왕의 마음 속에서 다시 의주로 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놓고 8일에는 관리들이 가족들을 몰래 피난 보내고 있다면서 이걸 따집니다. 니들은 보내놓고 왜 나는 못 가게 하냐 이런 거죠. 덕분에 이후 계~~~속 왕은 저걸 따지고, 신하들은 피난 가지 못 하게 하는 싸움이 계속 됩니다. 사대부들이 가족을 피난시키는 걸 못 막은 대간들은 그 책임을 지고 사표 내겠다고 하질 않나 -_-; 14일에는 수령이나 무관들이 핑계 대고 사표 내고 도망치는 걸 벌 주자는 건의까지 나옵니다. 이보다 앞서 8월 1일에 이미 무관들이 관직을 피하려고 한다고 벌 주자고 하죠.
... 수군이 전멸한 결과입니다.

남원성으로 돌아가 보죠. 마침 난중잡록의 저자 조경남도 가족들을 이끌고 남원성을 도망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남원성 전투에 대한 기록이 아주 잘 돼 있죠.

이 때 남원의 병력은 양원의 명군 삼천, 조선군은 천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양원은 교룡 산성을 불태우라고 명 하죠.
정기원이 보낸 장계에는 이 때의 대화가 잘 기록돼 있습니다.
양원 - 정탐인의 말에 4일에 적이 올 거라 해서 바로 마 도독에게 지원 요청했다.
임현, 정기원 - 진주 등 지방은 백성이 모두 흩어졌지만 우리 도는 노야(양원)을 장성같이 믿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스니다.
양원 - 왜적이 어떻게 이 성에 빨리 쳐들어 오겠는가. 내가 굳게 지킬 것이니 근심이 없을 것이다
두 명(...) - 교룡 산성은 천험의 요새니까 지키지 않으면 적의 근거지가 될 거다. 성이 없는 백성은 산성으로 들어가서 서로 의지하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양원 - 누국안의 말을 들으니 니네 수군은 물에 뛰어들어 죽거나 도망치니 왜적이 "우리가 니넬 이긴 게 아니라 니네가 스스로 패한 거다."고 했다. 니네는 "흐리멍텅하고" "겁이 많으니" 만약 적을 보고 붕괴된다면 어쩔 것인가.
두 명 - 노야의 말이 옳다. 그러나 이 도의 사람들은 노야를 믿고 반드시 지킬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부디 노야는 끝까지 불쌍한 생명들을 구제해 달라
이렇게 말하자 양원의 기색이 "저상"되었다고 합니다. 풀이 죽었다는 거죠.

윤민혁님은 소설 임진왜란에서 이 부분을 멋지게 각색하셨습니다. -_-; 대충 봐도 양원이 수군 얘기 꺼낸 건 놀린 거죠. 교룡산성 들어가봐야 니네는 도망밖에 더 가겠느냐 라는 건데... 임현과 정기원이 양원만 믿으니 우리를 살려 달라 하니까 겁 먹고 떨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묘사했죠.
그러면서 윤민혁님은 양원이 끝내 산성을 불태운 이유는 거기에 의지하려는 생각 자체를 없애기 위함이며, 산성으로 가지 않은 것은 산성에 있으면 그 자신이 도망가지 못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남원성 전투 중 보여 준 양원의 태도를 모두 도망가려는 시도로 결론지었습니다. 차차 서술해보죠. 교룡 산성이 불 타자 이광정은 산성을 맡는다면 죽음으로 지키려 했는데 산성을 파 했으니 이건 미친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라고 하며 나갑니다. 이 때 제법 많은 백성들이 도망친 듯 합니다. 한편으로 이복남은 단 50명의 병력만 이끌고 성에 당당히 입성합니다. 전라도를 청야하는 과정에서 많은 병사들이 도망갔고, 그 남은 병력만이라도 데리고 간 거죠.
여기서 빠지지 않는 일화가 이미 포위된 남원성의 남문에 당당히 입성했다는 겁니다. "전라 병마 절도사 이복남 나으리께서 행차하신다!"라고 당당히 외치고 나발도 불면서요. 윤민혁님은 이게 사실이라면 "포위된 성에 들어가는 소수의 구원군은 용감하니 대우해 준다"는 일본의 방식에 따라 입성을 허용한 거라 추측하시더군요.

그렇게 남원성 전투는 시작됩니다.

4. 남원성, 전멸
소설 임진왜란을 보다가 저 챕터 제목을 보니 순간 울컥하더군요. 단 두 마디일 뿐인데도요. 휴...

5~6만의 일본군은 북문에 시마즈 요시히로, 서문에 고니시 유키나가, 남문에 우키다 히데이에, 동문에 하치스카 이에마사군을 배치합니다. 이에 맞서 양원은 북문에 이복남을 대장으로 한 조선군을, 동문에 이신방, 남문의 장표, 서문에 모승선을 배치하죠.

13일, 적이 성을 백 겹이나 둘러싸서 공격하자 이에 맞서면서 조선의 포수 김익룡, 별파진 정금 등이 뛰어난 솜씨로 적을 저격하니 물러났다고 합니다. 다시 조총을 쏘며 공격해오자 비격진천뢰를 발사했고, 적은 물러났습니다.
이 날 밤, 원래 성을 방어하기 위해 마름쇠를 박은 못판을 많이 숨겨두었는데 양원이 야습할 것을 알고 "친히" 문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적 세 명이 못판을 제거하고 다리를 건너오려고 하자 이를 무찔렀고 돌아왔다고 하죠.
윤민혁님은 이것을 양원의 1차 도주 시도라고 하시더군요. -_-; 대장이 친히 나가서 기다린다는 것도 웃기니까요.

14일에는 참호를 메우고 공성병기를 동원해 두 차례 공격합니다. 이 때 서문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절에 있는 사천왕을 털어 와서 밖에서 약 올렸다고 하네요. 이 때 양원이 적이 약해 보이니 한 번 나가보자고 하고 주위에서 말리는데도 나갔는데, 매복이 있었죠.
... 2차 탈출 시도입니다. 치러 나간대놓고 도망가기라는 거죠.

15일에는 갑자기 양원이 적에게 사신을 보내라고 부릅니다. 이에 적의 사자가 도착하죠. 적의 요구는 간단했습니다. 빨리 성을 비우라. 근데 양원이 뜬금 없이 "내가 싸워서 진 적이 없는데, 지금 10만 명으로 이 성을 지키는데 퇴각하라는 말이 없었다"는 말을 합니다. 적은 "천여명으로 어떻게 백만의 군대를 당하겠는가"라고 하니 양원이 적당히 타일러 보냈다고 하죠.
이것도 의문이죠. -_-; 3차 탈출 시도? 조경남조차 이 때 양원이 적에게 서로 사자를 내왕하게 하자고 했다면서 의심을 표하고, 양원이 남원성에서 탈출한 것을 통해 이 때 편지를 나눠서 자기를 살려주기로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약간 어이가 없죠. 기껏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큰 소리 치는 거라니요. 탈출 혹은 성을 내주는 약속을 하려다가 조선군(이복남?)과 다른 명군(양원을 말렸다고 하는 중군 이신방)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16일. 남원이 함락됩니다. 가장 먼저 뚫린 곳은 남문으로, 조선군이 지키던 북문을 통해 피난민들이 탈출하려고 하던 상황이었죠. 여기에 천이 넘는 명군이 탈출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돌격을 개시합니다. 조선 백성들을 짓밟으면서 빠져 나간 성 바깥에는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천여명의 명군 기병들은 "그저 칼을 받을 따름이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살려달라고 빌기만 하면서 목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까지 저항 하나 하지 않았다고 하죠. 조선인에게는 강하면서 일본군에겐 약한 명군이었습니다. 이들 중 가장 용감했던 이는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떨고 있던 자였습니다.
명군 중에서는 용감히 싸웠다는 이신방부터 장표, 모승선 등 명군의 모든 장수 및 병사들이 이렇게 전사했습니다. 여기에 단 50명으로 입성했던 이복남, 전주에서 구원하러 온 오응정, 문관인 접반사 정기원 (양원이 같이 탈출하게 하려 했으나 말을 못 탔다고 하네요), 조선 수군으로 활약했었던 신호, 부사 임현, 조방장 김경로 등 모든 조선군 장수들이 전사했고, 천 명의 조선군과 남원의 육칠천에 이르는 백성들도 모두 이 싸움에서 학살당했습니다.
이후 그 유명한 코베기가 시작됩니다. 남원성 전투 전후로 일본군이 벤 후 히데요시에게 바친 코는 총 3726개였다고 합니다. 2차 진주성 전투의 재림이었습니다.

위에서 보여 준 시도가 정말 탈출시도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양원은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서문으로 탈출, 한양으로 도주합니다.

4. 목표는 한양
한편 우군은 창녕의 화왕산성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곽재우가 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적은 결국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다른 길로 피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합천을 넘어 함양의 황석산성으로 향하게 됩니다. 백사림이 이 성을 지키면서 하루를 버텼습니다만... 밤에 함락당하게 됩니다. 이 때 적이 성 안의 "개산"이라는 자를 부르면서 "너의 부친이 여기 있으니 문을 열고 나와보라"고 선동했죠. 백사림은 적과 내통했다는 죄로 개산을 죽여서 성 밖으로 내던집니다. 이후에 대한 서술이 약간씩 다른데, 난중잡록과 징비록의 경우 백사림이 성을 탈출해서 무너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에 김응서가 백사림이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한 장계를 올리는데, 여기서는 백사림이 자는 도중 성문이 열렸고 그는 항왜 사백구의 도움을 받고 겨우 살아났다고 하죠. 이 때 묘사가 웃깁니다.
"쓸모 없이 살만 찐 부사 백사림이 장차 흉악한 적의 칼날에 죽게 될 운명이었는데" -_-; 사백구가 바위굴에 숨겨놓았다가 날이 새자 백사림을 결박해서 일본어로 "성문을 어떻게 지켰느냐? 조선 도적이 성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니들이 못 찾아냈으니 니들도 죽을 운명이다. 내가 위에 보고 안 하고 죽일테니 니들은 고마워 해라"는 식으로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하죠. 이후 산 속에 숨겨뒀다가 밥도 구해주면서 둘이서 살아 돌아갔다고 합니다. 김응서는 한낱 항왜도 이러는데 조선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면서 포상을 요청합니다.

글쎄요. 이걸 믿는다면 백사림은 도망간 게 아니라 휘하 백성들을 잘 못 다스려서 성이 함락된 거라고 봐야겠죠. 보통은 그냥 도망갔다는 쪽을 따르는 듯 합니다만 (왜란종결자에서도 도망간 자 셋 중에 마지막 인물이 됐죠) 살만 쪘다든가 구차한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으로 봐서 김응서의 보고를 믿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튼 이 전투에서 함양 군수 조종도, 안음 현강 곽준 등 오백여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따지고보면 육만이 넘게 있는데 지가 곽재우도 아니고 이 병력으로 하루 버틴 것도 신기하네요. 백사림은 후에 김응서와 함께 싸우지만 조정에서는 계속 백사림을 처벌하라는 건의가 계속됩니다.

이렇게 화왕 산성을 피하고 황석 산성을 깨뜨리면서 우군이 소비한 시간은 5일 정도. 이것은 그 동안 남원을 깨뜨리고 전주로 진격한 좌군에 비해 시간을 제법 낭비한 것입니다. 경상우도의 장수들은 적의 대군을 요격하지는 못 해도 이렇게 산성을 지키면서 최대한 항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기룡이 적 이천을 잡았다고 하는데 이게 개인 기록 외에는 찾기 어렵습니다. -_-a 글쎄요... 적이 이미 창녕의 화왕 산성에 막혀서 남쪽으로 돌아갔는데 그보다 북쪽에 있는 고령에서 적을 싸워 이겼다는 건 믿기 어려운데요.

한편 남원을 함락한 좌군도 석주관 등에서 의병이나 관군의 상당한 반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조경남의 의병이 일어난 것도 남원이 함락된 후인 9월입니다. 이후 적이 충청도로 진격하는 과정에서도 맞서거나 게릴라로 약간의 전공을 올린 기록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비해 크게 다뤄지지 않죠. 적의 진격을 막지 못 했고 적이 진격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겠죠.

적 좌군과 우군은 8월 20일 즈음에 전주에서 합류합니다. 이 때 전주에 있던 병력은 진우충의 2천. 이들은 두 번의 구원 요청을 무시하고 전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적의 진격에 도주합니다. 22일에 충주에 도착한 진우충은 오유충과 함께 29일 다시 후퇴하죠.

전주에 무혈입성한 적은 다시 둘로 나뉘어 좌군은 남쪽으로 진격해 전라도를 샅샅이 점령하고 우군은 충청도로 진군합니다. 9월 1일에는 충청도 방어사 박명현 휘하의 조선군이 적 선봉과 교전했고, 2일에는 금산이 함락되고 박명현 휘하의 조선군이 모조리 달아납니다.

적의 진격은 너무나도 순조로웠습니다. 이 때 조선군은 경상도에 고립돼 있는 병력 외에 적을 요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최대한 한강 방어선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전라도는 빠짐 없이 유린되었고 산성에 고립된 경상도 병력은 가끔 게릴라전을 기대할 수 있다면 몰라도 적의 뒤를 끊을정도가 못 되었죠. 끊어봤자 소용 없기도 했습니다. 적은 섬진강 등 전라도의 물줄기를 통해 보급하고 있었거든요. 조선에게는 수군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양은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일본에 있어 한양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상관 없는 목표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보급만 제대로 되면 충청도에서 분탕질만 쳐도 자기들의 요구인 하삼도는 실질 점령할 수 있거든요. 이를 상대할 명군 역시 만이 되지 못 했습니다. 반면 북상하는 일본군은 오만에 달했죠. 임진년에 그 대군을 가지고도 적을 밀지 못 했던 명군이 이를 막아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죠. 이런 면에서 저는 임진왜란보다 오히려 정유재란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 지을 뻔 했던 전쟁이라 보고 싶습니다. 진짜 이런 상황에서는 캐리어 가도 힘들 상황이었죠. 9월 7일, 양호는 결국 도망친 양원과 진우충을 체포하고 요격을 명합니다.

한편 선조는 이 동안 뭐 하고 있었냐 하면... 양원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을 지켜주다가 이런 꼴 당하게 돼서 미안하다구요. -_-; 원균은 죽지 않았다고 했죠? 대체 원균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성도 딱 양씨네요. 오죽하면 양호가 양원이 왜 죄인인데 감싸냐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선조는 꿋꿋하게 양원을 감쌉니다. -_-; 한편 3일에 모화관에서 양호를 만났다가 그 부하들에 의해 사관들이 초책을 뺏기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적은 다가오고 명에게는 있는 굴욕 없는 굴욕 다 당하는 상황, 말 그대로 개판 오분 전이었습니다. 그저 믿는 것은 적을 요격하러 간 수천의 명군 뿐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적이 마음껏 분탕질 치고 있는 전라도에 머물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위험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전진하고 있었죠. 그는 이제 일본의 것이 된 바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직산 전투를 다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겠네요. 다음 편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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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unt_ValenciaCF
11/05/05 12:21
수정 아이콘
제목에 (혈압주의)라고 써주시면 안될지...이 좋은 어린이날에 토익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심난한데, 이거 읽으니까 아주 열받아서 나가서 머리 좀 식히고 와야겠네요;; 다음 편 기대하겠습니다
호떡집
11/05/05 12:3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드디어 다음화가 신화는 아니고 미쓰가 펼쳐지는 편이군요. 다음 편 기대하겠습니다.
11/05/05 13:12
수정 아이콘
명군은 X신, 임금은 상X신, 원균은....입에 담기도 싫고;;

이제 한남자의 이야기가 남았군요.
'한남자가 있어~♪♬ 조선을 사랑한~♩ 한남자가 있어~♪♬ 억울해도 말도 못하는~♬'
Siriuslee
11/05/05 13:41
수정 아이콘
정유재란의 일본군 편성을 보니

시마즈 요시히로, 조소카베 모토치가, 나베시마 나오시게, 구로다 나가마사(구로다 칸베에의 아들...)
모리 테루모토가 출진을 해야 하는데, 투병중이라서 양자(따지고 보면 사촌동생)인 모리 히데모토가 대신 총대장
규슈와 주고쿠, 시고쿠 대소영주들이면서 정말 나름 그 지역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출진을 했군요.

그리고 대부분이, 히데요시 직속 혹은 지지세력들인데, 정말 히데요시가 그때 죽을거라고는 본인도 예상을 못했나봐요.
거기에 출동병력만 13만..

임진년에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려서, 다테 마사무네도 참전할정도로 끌어모았지만, 정유재란은 거의 히데요시가 움직일 수 있는 병력으로만 공격을 온것이죠.

총대장이었던 우키타 히데이에는 지금은 그저 사람좋은 바보 정도로 평가가 되지만(...)
히데요시의 양녀와 결혼하면서 히데요시 정권하의 실력자였죠.
조선을 점령했다면, 통치자로 임명할 계획이었을 정도.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히데요시의 큰처남의 5번째 아들(-_-?)로서 친자가 없던 히데요시가 예비후계자로 키우던 인물인데,
뒤늣게 득남하면서 버려진 인물이죠.(죽지 않은게 어디..)
하지만 그는 세키가하라에서.....
11/05/05 13:46
수정 아이콘
남원성의 전멸은 정말 가슴아프군요. 그리고 조선 육군과 조정의 모습은 정말 분통터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글의 말미에 실낱같은 희망을 남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메카닉 200에 맞서 이영호 선수가 "저에게는 아직 바이오닉 한부대가 남아 있습니다" 라는 느낌이랄까요.
나이트해머
11/05/05 15:44
수정 아이콘
'임진왜란기 영남의병연구' 및 '임진왜란과 호남지방의 의병향쟁' 의 이시기 부분을 보면 조선측의 기본 방어전략은 '영호남은 청야입보로 인력 보존, 방어선 구축은 명군+북도 4도 일대 병력 집결로 한강에 구축' 으로 보입니다. 청야 잘되고 수로 활용 못하면 일본군은 힘 다 빠질게 뻔하니 상당히 합리적인 전략이죠.

문제는 수군이 붕괴되면서 일본군이 수로 활용이 가능해지고 이로인해 보급이 예상보다 원활해진 일본군이 호남 일대를 뚫는데 성공했다는 것. 역시 계획대로 되는 전쟁은 없습니다. 거기다 이렇게 된 원인은 조선측 삽질에 있으니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죠. 영남에서는 계획대로 진행되서 상당부분을 온존하는데 성공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군도 임란때보단 합리적으로 움직인 모습을 보이고. 임란때는 낙동강 서안으로 넘어오지 않고 북진(...)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한성만 바라보고 달렸는데(이도의 용사일기에 기록된 거죠.) 이때는 조선 수군이 자멸한 다음에야 움직였고, 경상우도와 호남 일대를 밀어버리면서 후방 안정을 도모하면서 움직였으니까요.
양정인
11/05/05 19:32
수정 아이콘
임진왜란의 뼈저린 교훈으로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한양닥돌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본...
한양은 먹으나마나 선조를 잡지 못하는 이상은 가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일본.
자신들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던 '이순신' 이 파직당했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병x쪼x 같은 장수가
조선의 막강한 수군을 자신들을 위해 바닷속으로 수장시켜주자 옳다구나하고 수로를 통한 보급과 그나마 임진왜란때
많은 보급을 담당했던 전라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거죠.

참...
정유재란이 일어난 것도... 어찌보면 원균의 삽질 오브 삽질이 크게 한 몫을 했는데
정말 만약에 이순신 장군이 계속해서 통제사의 위치에 계셨다면 정유재란이 일어났을까요??
무리수마자용
11/05/05 21:47
수정 아이콘
그래도 이순신장군을 다시 복직시킨건 그나마 잘했네요. 자기 실수로 잘싸우는 장수 이래저래 돌려놓고 발리고 나니까 쪽팔려서 복직 안시키거나 급기야는 죽여버리는 일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잖아요. 전풍 저수라던가, 염파라던가 악의 악비같은 애들도..
Je ne sais quoi
11/05/05 23:44
수정 아이콘
이 나라는 언제까지 윗대가리들의 삽질로 밑에 사람들이 고생해야 하는 걸까요. 역사는 계속 반복되네요. 에휴.
토스희망봉사�
11/05/05 23:45
수정 아이콘
아유 선조, 원균 이 양대 삽질맨들 정말 답이 안나오는 조합이죠 차라리 이억기나 임명할 것이지
벤카슬러
11/05/06 00:14
수정 아이콘
수군이 무너지고 호남이 무너지고...
정말 '충무공 파직' 요거 하나만으로도 선조는 1000년은 더 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도 어찌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았다고 치더라도
정유재란은 충무공께서 파직 안 당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전쟁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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