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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4/24 17:19:58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임진왜란 해전사 - 완. 원흉(元兇)
그동안 적조했죠? 조금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해 주세요. 후 이전의 사건들은 시기가 정해져 있으니 찾기 쉬운데 이건 93년 이후 기록들을 하나하나 다 뒤져야 되네요 ㅠ
휴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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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난 기간 동안 원균이 한 일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차 출동 -> 죽은 적 시체 목 베려다 아군 2명 부상
2차 출동 -> 병력이 없어서 죽은 목을 베는 임무를 정식으로 맡음
3차 출동 -> 병력이 없는데다 같이 훈련할 상황도 아니라서 학익진에서 빠짐 (이운룡이 유인작전 건의했다는 것도 부정됩니다) 후에 적의 목을 신나게 베었음. 경상우수영에서 활약한 이운룡, 우치적보다 원균이랑 같이 목 베는 데 힘쓴 기효근이 더 높은 상을 받음. 그리고 한산도로 도망친 왜군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무서워서 그냥 도망쳤고,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살아서 돌아감
웅포해전 -> 아군이 위험에 쳐했는데 무시함. 섬에서 조선인 목 베려다가 이순신에게 들킴.
2차 당항포 해전 -> 31척 격침을 모두 자기 공으로 돌림.

... 뭐 이정도입니다.-_-;

1. 난중일기
이하는 난중일기에서 찾아 본 원균에 대한 욕입니다. 94~95년 분이죠. 일부만 올리고 나머지는 글의 제일 밑에 둘 테니 마저 보고 싶으시면 봐 주시기 바랍니다.

  94년 3월 3일
경상우후 이의득이 와서 말하기를, “수군을 많이 잡아오지 못했다”하여 그의 수사(원균)에게서 매를 맞고, 또 발바닥까지 맞을 뻔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4월 12일
술이 세 순배 돌자 경상수사 원균은 짐짓 술취한 척하고 미친 듯이 날뛰며 억지소리를 해대니, 순무어사도 무척 괴이쩍어 했다.
6월 4일
“수군의 여러 장수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전날의 버릇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죄송하기 그지없다. 이는 원균이 술에 취하여 망발을 부린 것 때문이다.
8월 30일
원균 수사의 하는 일이 매우 해괴하다. 나더러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니, 천년을 두고서 한탄할 일이다.
10월 17일
어사가 와서 이야기하는데, 경상수사 원균의 속이는 말을 많이 했다. 매우 해괴하다.

원균에 대한 호칭은 처음에는 경상우수사, 경상수사, 영남수사, 원수사 등이 불립니다. 원래 이름보다 호, 호보다 직함을 부르는 게 조선의 전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는 원균에서 원흉으로 바뀝니다. 흉악한 원균이라는 뜻이죠.

6월 4일 일기에 "싸우지 말고 좀 친하게 지내라"는 선조의 말이 내려온 걸로 봐서 이미 조정에서도 둘의 다툼을 걱정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도저히 견디지 못 하고, 원균과 같이 있을 바에야 자신을 파직시켜 달라고 하죠. 이 정도로 둘의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차라리 전시라면 좋든 싫든 같이 싸워야 되니 괜찮았지만, 그 때는 강화 회담이 계속 이루어지던 중이었죠.

결국 둘의 다툼은 이순신과 원균 둘 중 하나를 갈자는 쪽으로 진행됩니다.
실록을 보겠습니다.

2. 실록에서
간단히 축약해 보자면...

김수가 가장 먼저 이 일을 꺼냅니다. 경상도에 있었으니 상황을 제일 잘 알았겠죠. 여기서 그는 10여세된 아들에게 공이 있는 것처럼 해서 이순신이 이것을 불쾌하게 했다고 했죠. 여기서 선조가 얘기를 고언백과 김응서의 공 다툼으로 돌렸는데, 김응남이 "전부 공 다툼 때문"이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수군이 승전했을 때 원균은 스스로 공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순신은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선거이가 거사하기를 주장했습니다. 이순신의 공이 매우 크지도 않은데 조정에서 이순신을 원균의 웃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원균이 불만을 품고 서로 협조하지 않는다합니다."
덤으로 정곤수는 정운이 협박해서 이순신이 출동했다고 하며 디스하죠.

아직까지 선조는 이순신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순신이 왜적을 포획한 공은 가장 많을 것이다"라고 했죠. 이에 정곤수는 우치적, 이운룡이 전공이 많은데 상은 다른 사람보다 못 해서 서로 분해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선조는 "습진에 걸려도 힘써 싸우는 걸 보면 원균 좋다"고 하면서 백다한 것 같긴 하니 상을 주어 달래라고 하죠.

난중일기에서 임금이 "싸우지 말고 좀 잘 해 봐"라고 한 게 6월이었으니 그 전에도 선조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 이 때 둘 다 막 나간 것으로 보이네요.

김응남은 "순신이 체직을 자청하는 것도 역시 부당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순신은 "원균을 그대로 둘 바에 나를 잘라달라"고 한 듯 합니다.

이후 둘 다 괜찮은 장수니 그대로 두자고 하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이후 11월 28일에 비변사에서 글을 올리는데 (이 때가 장문포 해전 이후의 일로 몇 일간 이순신과 권율을 파직하라고 사헌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_-;) 역시 둘 다 충성과 공로는 좋은데 싸우니 둘을 화해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원균을 딴 데 옮겨서 분쟁을 끝내자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자 선조는 이렇게 대답하죠.
"나의 생각에는 이순신은 대장으로서 하는 짓이 잘못된 것 같으니, 그중 한 사람을 체직시키지 않을 수 없다. 혹 이순신을 체차할 경우는 원균으로 통제사를 삼을 수 있거니와, 혹 원균을 체차할 경우는 다른 사람을 차출해야 할 것이니, 참작해서 시행하라."

이순신에 대해서 은근히 디스를 하긴 하지만 원균 역시 괜찮은 장수다 하면서도 아직은 원균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지 않죠. 뭐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간단합니다. -_-; 조정은 해전의 성과를 딱히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둘의 다툼을 그저 공 다툼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12월 1일, 다시 얘기가 나옵니다. 이번에도 떡밥은 장문포 해전으로 도원수 권율과 체찰사 윤두수에 대한 처벌을 논하고 있던 중이었죠.

이 때 김응남은 이순신과 원균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원균을 다른 사람과 바꾸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말을 합니다. 이 때 언급된 사람이 선거이, 곽재우, 이광악, 배설 등이죠.

같은 날 비변사가 다시 아뢰자 선조는 "군율을 범했다고 말한다면 유독 이순신만은 군율을 범하지 않은 사람인가. 나의 생각에는 이순신의 죄가 원균보다 더 심하다고 여겨진다" 고 했습니다.

이렇게 12월 1일 하루 동안 계속 논의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선조와 대신들의 의견은, 솔직히 중구난방입니다. -_-; 이순신과 원균의 공이 같은데 이순신을 더 높여서 싸움이 난 거다는 게 일단 일반적인 평가였고, 선조는 이순신 욕했다 옹호했다 하면서 왔다 갔다 하죠. 다만 이순신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확실했던 듯 합니다. 철저한 원균파인 김응남의 입에서 원균을 바꾸자는 얘기가 나온 걸로 봐서는요.

이 때까지만 해도 조정에서는 원균을 괜찮은 장수로 본 듯 합니다. 공 다툼이야 전장에서 늘 있는 거고 원균은 많은 수급을 보내 왔으니까요. 이순신이 장계로 몇 번 말해 봐야 수급이라는 증거가 있었구요.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물리쳤으니 용감하다 수준이고 수군의 주장은 이순신이라는 건 확실했던 듯 합니다. 초반에 도망간 거야 지금 장수들 중 처음에 도망 안 간 장수들은 없다시피 했으니까요.

참고로 맨 처음 김수가 얘기했던 "자식의 군공 문제"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습니다. 원래 "상피"제도라 해서 아들은 아버지 밑에서 관직을 받고 일할 수 없었거든요. 그 때문에 이순신의 아들들은 관직 없이 일했습니다. 처음에 그게 갈등의 원인이라고 했지만 원균 편을 들긴 해야 되는데 드러내놓고 의논하기 민망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원균이 이순신을 부른 공"이라는 어이 없는 말이 나온 거죠.

선조수정실록에서는 이 때 이순신이 따로 장계를 올려서 원균이 화났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과론입니다. 둘의 다툼에서 유용하게 쓰일 이 떡밥은 원균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따로 올리는 게 상식이었고, 나중에 이순신을 파직하는 과정에서 이유로 둔갑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때나 이후 이순신 파직 과정에서 원균의 공을 내세우면서도 "이순신이 오기 전에 수전에서 이긴 공"이 아니라 "이순신을 부른 공"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원균의 전쟁 초반 10척 혹은 30척 분멸설 역시 부정됩니다. 그럴 건덕지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써 먹었을 것인데 아예 없죠.

마지막으로, 이 때 선조가 이순신에게 죄가 있다거나 사간원에서 "기망죄"를 내건 것은 장문포 해전 때 장수들이 조정을 속였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권율과 이순신이 탄핵 받았죠.

3. 충청병사로
12월 19일, 사간원은 원균을 다시 수사로 쓰라고 청하지만 왕은 이미 정해졌다고 거절합니다. 이 때 이순신과 원균 중 원균을 갈기로 결정한 듯 하네요. 1월 21일 일기에 이일이 나를 해치려고 애 쓰고 있다고 하니 우습다고 하는 내용이 있는데, 원균의 전출에 맞서서 이순신을 음해하는 건 계속된 걸로 보이네요. 하지만, 결국 원균은 충청도로 가게 됩니다.

95년 2월 27일
원균이 포구에서 수사 배설과 교대하려고 여기에 이르렀다.
교서에 숙배하라고 했더니 불평하는 빛이 많더라고 한다.
두세 번 타일러 억지로 행하게 했다고 하니, 너무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난중일기를 보면서 이렇게 통쾌하다는 느낌이 나는 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온종일 고민하고 싸우고 이런 것들만 있다 보니까요. 이순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썩소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원균이 하는 짓은 충청도에 가서도 달라지지 않았죠. 자, 살펴봅시다.

94년 8월 15일의 일입니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충청 병사(忠淸兵使) 원균(元均)은 사람됨이 범람(泛濫)하고 게다가 탐욕 포학하기까지 합니다. 5∼6월에 입방(入防)한 군사를 기한 전에 역을 방면하고 그 대가로 씨콩을 거두어 다 농사(農舍)로 실어 보냈습니다. 또 무리한 형벌을 행하여 잔혹한 일을 자행하여 죽은 자가 잇달고 앓다가 죽는 자도 많아서 원망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온 도에 가득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통렬히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

이외에 사헌부는 두 명을 더 파직하기를 청했습니다. 이에 대한 선조의 대답은?

“원균의 사람됨은 범람하지 않다. 이런 시기에 명장을 이처럼 해서는 안 된다. 윤허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

96년 1월 12일, 사헌부는 원래 병사는 종사관이 없는데 원균은 충청 병사로 있으면서 종사관을 만들었죠. 거기다 종사관이 된 최덕순은 피난민을 죽여 왜적이라고 바친 인물이었습니다. 그 상관에 그 부하죠. 이 때문에 다시 원균은 탄핵당하고 최덕순 역시 탄핵 당합니다. 그에 대한 선조의 대답은?

“병사는 추고할 수 없다. 칭호를 없애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 이쯤 되면 무한 실드 들어가는 거죠.

이 때 원균은 상당 산성을 지었다고 합니다. 원균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 때 현장에 움막을 만들어 살면서 직접 감독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류성룡의 입에서 나옵니다 - -; )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까이죠.
가난한 고을이든 부자 고을이든 2~3백명씩 내서 독촉하면서 마구 도망갔다고 하네요. 거기다 하필 농사철에 지어서 농사도 짓지 못 했습니다. 김응남은 이에 대해서 "너무 충성스러워서 그런 거다"면서 실드를 치고 "나도 농한기에 하자고는 했었다"면서 적극적으로 변명해 주지는 못 합니다. 그렇게 상당 산성은 만들어졌나 봅니다. 충청도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서려 있는 성이었겠죠.

... 비 오니까 무너져 내렸지만요.

대체 성을 어떻게 쌓았길래 비 왔다고 무너질까요? -_-;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이런 원균을 선조는 철저히 옹호하면서 전라병사의 자리로 옮기고 직접 말을 내려 줍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정말 은혜롭기 그지 없죠.

4. 한편 이순신은
썩소가 떠오르는 일기를 썼던 이순신도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후임 배설이야 권준으로 교체될 때 아쉽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으로 보아 괜찮은 장수였던 것 같습니다. 후에 칠천량 때 다시 모습을 보이게 되니 그 때 얘기해 보죠. 그리고 그 후임으로 온 게 이순신이 아끼던 권준이었죠.

95년이 지나고 96년부터 이순신에 대한 태도는 싸늘해져 갑니다.

96년 6월 26일, 주역을 강독하던 도중 선조는 이순신에 대해 묻습니다.
김응남은 이에 대해 쓸 만한 장수라고 평가하면서 선조가 말도 꺼내지 않은 원균에 대한 말을 꺼내죠. "병폐가 있기는 하나 몸가짐이 청백하고 용력으로 선전하는 점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미 선조의 생각이 어땠는지를 잘 알고 한 말이겠죠.
“이순신은 처음에는 힘껏 싸웠으나 그 뒤에는 작은 적일지라도 잡는데 성실하지 않았고, 또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는 일이 없으므로 내가 늘 의심하였다. 동궁(東宮)이 남으로 내려갔을 때에 여러 번 사람을 보내어 불러도 오지 않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원균이 이순신을 불렀으니 원균이 공이 더 높다"는 논리입니다.

김응남은 여기에 맞춰 원균이 이순신을 불렀는데 오지 않자 원균이 통곡했고, 원균이 불러서 성공했는데 이순신이 더 위에 둬서 사이가 나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선조가 이순신을 의심하는 말을 하자 원균을 거제도로 보내야 된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김응남도 이순신을 욕 하는 수준까진 가지 않았죠.

이 때 나온 의논은 거제도를 탈환하고 거기에 병력을 주둔시키는 것, 선조는 이순신이 거제도를 끝내 뺏지 않은 게 그렇게 열 받았었나 봅니다.

10월 5일에는 이원익을 만나서 얘기하던 중 이순신을 까는 말을 신나게 하는데 눈치 없는 이원익은 이순신의 공이 제일이라고 대답하죠.

11월 7일, 선조는 본격적으로 말을 꺼냅니다. 우선 이산해가 원균을 옮겨서 수군이 나서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꺼냅니다. 이에 대해 류성룡은 한 발 물러나서 "아침에 이미 대강 아뢰었다"면서 피하죠. 선조가 직접 원균이 어떤지 물어보자 "원균이 용감히 싸우는 것은 장점이나 지친 군졸을 어루만지는 것은 감당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써야 된다"는 완곡한 비판을 합니다. 반면 정탁은 수전이 장기이니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써야 된다고 하죠.
류성룡은 이어 수군 중에 원균을 원망하는 이가 많았으니 쓸 수 없다고 했고, 이원익도 이순신은 변명이 없었지만 원균은 늘 기색이 발끈했고 공을 심하게 다투었다고 하죠. 윤두수는 오랫동안 보지는 못 했지만 원균이 자기 친족이라면서 원균이 선배인데 이순신보다 아래여서 그랬을 거라고 변명합니다.

여기에 선조가 이런 말을 하죠.
“내가 전일에 들으니, 당초 군사를 청한 것은 실로 원균이 한 것인데 조정에서는 원균이 이순신만 못하다고 생각하므로 원균이 이렇게 노하게 되었다 하고, 또 들으니 원균은 적을 사로잡을 때에 선봉(先鋒)이었다 한다.”
위에서 보듯 신하들은 이 때 이미 선조의 의중을 파악한 듯 합니다. 선조의 뜻에 따르기 위한 원균 옹호와 그에 맞선 이순신 옹호를 최대한 비슷비슷하게 하죠. 이산해와 윤두수는 이순신이 잘났긴 했는데 원균은 있어야 한다, 류성룡은 원균이 잘났긴 한데 거기 있으면 안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철저히 이순신 편을 든 건 이원익 뿐이었죠.

하지만 선조가 저 말을 하게 되면서 신하들의 말은 그에 맞춰집니다.
류성룡 - 원균은 가선대부만 됐는데 이순신이 정헌대부까지 올라가서 원균이 열 받았다.
선조 - 원균이 군사를 청했으니 그 공이 많고 이순신은 따라 갔다가 왜적을 많이 잡았긴 했지만 공을 이룬 건 원균에게서 비롯되었다.
이원익 - 원균한테 "니는 이순신보다 못 함"이라고 하니 원균이 "이순신은 내가천번만번 불렀다"고 했다. 원균은 공격받았으니 대적하기만을 바랬지만, 이순신이 금방 가지 못 한 건 그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이덕열 - 이순신은 열 다섯번 부른 뒤에나 갔고 적선 60척을 잡고 그걸 지 공으로 올렸다.
이원익 - 적이 호남에 오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간 거다. 공만 따져도 원균보다 이순신이 더 많다.
정탁 - 둘 다 잘못한 거고 이순신도 좋은 장수니까 둘이 화해시키자.
이원익 - 원균은 초반에 많이 패했고, 이순신은 패하지 않고 공이 있다. 여기서 모든 게 시작된 거다.

자. 여기 있듯이 류성룡, 정탁도 원균을 옹호하는 가운데 이원익만 열심히 이순신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왕의 말까지 하나하나 다 반박하면서요.

정리를 해 볼까요. 윤두수와 김응남은 원균 편을 들긴 했지만 이순신의 유능함을 부정하지 못 했습니다. 아니 부정하면 바보죠. - -; 그냥 원균이 억울하다 수준으로만 말 했죠. 류성룡, 정탁 등도 이순신 편을 들긴 했지만 이순신이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원균 옹호도 조금 해 주면서 선조를 달래려고 합니다.

신하들에게 계속 이순신을 의심하고 원균을 대신하기 위해 말을 꺼낸 사람은 언제나 선조였습니다.

임진년에 일본군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조선 수군은 이렇게 원균과 선조라는 내부의 적에 의해 와해됩니다. 안 그래도 전염병과 수군 천시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은 게 조선 수군이었으니까요.
97년 초에 부산포로 출동할 당시, 이순신의 병력은 4차 출동 때보다도 못 한 63척 뿐이었습니다.

97년, 정유년의 날이 밝으면서 이순신은 한 통의 장계를 올립니다. 정말 간만에 적의 후방을 혼란시킨 쾌거였죠. 하지만 1월 1일에 올라온 이 장계는 이순신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부산 왜영 방화 사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순신이 죄를 입게 한 상대는 이순신을 적극 옹호한 이원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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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임진왜란 해전사 편을 마치겠습니다. 이후부터는 모두 정유년으로 넘기는 게 낫겠죠.
임란 이전에는 일본이나 조선이나 수군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수군은 임진왜란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죠. 그 중심에는 이순신이 있었습니다.

설사 이순신이 없었더라도 적 수군이 호남으로 넘어오지 않게만 할 수 있었다면 전쟁은 이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는 육군도 충분한 활약을 해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정유재란은 수군 없이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다. 수군이 전멸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것은 13척밖에 되지 않은 수군이었으니까요. 따라서 정유재란 편은 이 둘을 함께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임진왜란보다 더 심한 위기에 빠진 게 정유재란이고, 이순신(조선 수군이 아니라 이순신입니다)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짐작하기 어려운 게 정유재란입니다.

강화 회담 기간 동안 수군의 상황을 살펴봤으니 우선 육지의 상황도 살펴봐야겠죠.
정유재란 편을 시작하며 강화회담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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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위에 올리지 않은 나머지 난중일기 내용을 올려 두겠습니다.

94년 3월 3일
경상우후 이의득이 와서 말하기를, “수군을 많이 잡아오지 못했다”하여 그의 수사(원균)에게서 매를 맞고, 또 발바닥까지 맞을 뻔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3월 10일
오직 경상우수사 원균은 적선 서른 한 척을 그 도의 여러 장수들만이 모두 불태운 것처럼 공문을 만들어 보냈으니, 온 진중의 장수와 군사들이 괘씸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으니 조정에서 참고하여 시행하여 주도록 장계하였다.
4월 12일
술이 세 순배 돌자 경상수사 원균은 짐짓 술취한 척하고 미친 듯이 날뛰며 억지소리를 해대니, 순무어사도 무척 괴이쩍어 했다.
5월 13일
검모포만호의 보고에, “경상우수사 소속의 보자기들이 격군을 싣고 도망가다가 현장에서 붙들렸는데, 많은 보자기들이 원 수사가 있는 곳에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복들을 보내어 잡아오게 하였더니, “원균 수사가 도리어 사복들을 묶어서 가두었다”고 했다.
6월 4일
“수군의 여러 장수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전날의 버릇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죄송하기 그지없다. 이는 원균이 술에 취하여 망발을 부린 것 때문이다.
8월 17일
원수가 오정에 사천에 이르러 군관을 보내어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원수 있는 곳으로 가서 교서에 숙배한 뒤에 공사간의 예를 마치고 그대로 함께 이야기하니 오해가 많이 풀리는 빛이다. 원균 수사를 몹시 책망하니, 원 수사는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8월 30일
원균 수사의 하는 일이 매우 해괴하다. 나더러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니, 천년을 두고서 한탄할 일이다.
10월 17일
어사가 와서 이야기하는데, 경상수사 원균의 속이는 말을 많이 했다. 매우 해괴하다.
95년 1월 21일
그 편에 들으니, 순변사 이일의 처사가 극히 형편없고 나를 해치려고 무척 애쓴다고 하니 우습고도 우습다
95년 2월 20일
우수사, 장흥부사, 조방장 신호가 와서 이야기하는데, 원균의 악하고 못된 짓을 많이 전했다.
95년 2월 27일
원균이 포구에서 수사 배설과 교대하려고 여기에 이르렀다.
교서에 숙배하라고 했더니 불평하는 빛이 많더라고 한다.
두세 번 타일러 억지로 행하게 했다고 하니, 너무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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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ed_In
11/04/24 17:40
수정 아이콘
눈시님 글 항상 재밌게 잘 읽고있습니다. 정유재란도 기대가 되네요.
우리 순신형은 그저 찬양할뿐...ㅠㅠ 그저 구국의 영웅이십니다.
11/04/24 17:50
수정 아이콘
통신이 원시적인 시대였으니 상부에 보고 할 땐 증거품인 수급 위주로 전공 부풀리고, 그게 뽀록 날때는 임금과 이순신장군과의 관계를 이용해 상대를 실각시키는 등, 전장의 무시무시한 왜군은 무서울 것이 없으나 내부의 모사꾼은 정말 무섭습니다. 차라리 심하게 강한 적에게 무너지면 억울한 마음은 좀 덜할텐데......
그..후..
11/04/24 17:59
수정 아이콘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정유재란! 기대가 가득합니다..^^
스웨트
11/04/24 18:44
수정 아이콘
눈시BB님 의 글을 읽고 요즘 불멸의 이순신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찌 저리 내부의 압박이 심하고, 주변이 적인 상태에서도 멘탈을 유지하고 승리만을 한것인지...
작전에 있어서 꼼꼼함이 甲이신 장군께서 성격도 굉장히 꼼꼼하실 터이거늘...
ps. 근데 이런생각도 합니다.. 사람은 능력만 있어서도 안되고, 자신을 지지해줄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유성룡 아니었으면... ㅠ_ㅠ 장군께선 흰옷입고 누워계셨을 판이니..
빠독이
11/04/24 21:29
수정 아이콘
잘 보았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그런데 정말 원균더러 원흉이라고 적혀있나요? 이번 편 분량에는 없는 것 같은데 나중에 나오려나;;
이순신 장군님께서 오죽했으면 그런 표현을 쓰셨을까 생각하면서 어디 나오는 지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요 흐흐
이상한가역반응
11/04/24 21:44
수정 아이콘
이렇게 열심히 정리해놓은 글을 그냥 읽기만 하니 왠지 죄송스런 기분이군요...
정말 원균이란 작자는 답이 안나오네요.
예전에 배타고 거제 놀러갈때 칠천량을 지나는데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게 생각나네요.
앞으로 나올 칠천량해전도 기대가 됩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멀면 벙커링
11/04/2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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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한방 날립니다.
여기서 보면 임진왜란 때 원균은 거의 쓰레기 수준인데 어떻게 1등공신이 되었고 대한민국에선 원균명장론이 나도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ㅠ.ㅠ
하야로비
11/04/2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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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선생이 좀 범생이 혹은 예스맨 경향이 있었다고 하죠. 일단 군주가 시키면 네 하고 따라가는 스타일...(신숙주도 비슷한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서애 선생이 국가의 충신이자 시대의 명신이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임진왜란 그 힘든 시기(명나라 장수들은 까탈스럽고 임금은 찌질하고 신하들은 싸우고 아 놔-_-;)에 거의 조정을 온몸으로 떠받들다시피 한 거목이죠. 국가에 미친 공과면에서 공이 과를 압도하고도 남는 인물입니다.

항상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o^)=b 이제 정유재란인데 기대되네요
Je ne sais quoi
11/04/2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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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보면 참 인간의 본성이라는건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항상 그 상태에서 제자리 걸음하는 거 같기도 하고... 과거나 지금이나 무능력자들이 상층부를 차지하는 건 어째서인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모략에 힘써야 올라갈 수 있기에 그쪽만 발달한 건지, 뛰어난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저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모자란 것들만 간 것인지... 그런 와중에도 이순신 장군같은 인물이 있다는게 읽을수록 참 놀라울 뿐이네요.
카서스
11/04/25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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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을 변호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서도, 아직 제 지식이 짧아 대답할 수 없는 두부분이 있습니다.

원균이 진짜로 무능 그 자체인 장수였다면 어째서 임란 전 유능한 장수들을 남도에 배치할때 들어가 있었으며 선무공신에 올라갈 수 있는 공적이 있었는가

-> 실제로 이당시에 배치된 장수들은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던 장수들이였다. 그전에 한것이 없고, 능력없는 장수였다면 어쨰서 그시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라 할 수 있는 경상우수영에 임용되었겠는가. 게다가, 선무공신은 나라 전체에서의 평판과 관료들의 토의에 따라 이름이 올려지는 자리인데 정말 무능하고 한것이 없다면 여기에 어떻게 이름이 올라가겠는가. 선조의 빽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선조의 입김이 강하다 하더라도, 게다가 부풀린감이 많이 있긴 하지만 1등공신에 올라가는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두 부분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항상 막혔거든요.
눈시BB
11/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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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마저 쓰다가 다 날렸네요 ㅠ 다시

선무 공신에 대해서는 의미 부여를 크게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선조의 정치적인 부분이 크게 적용됐으니까요. 실록 기사 하나를 옮겨 보겠습니다.
“윤허한다. 이번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 나라 장사(將士)는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잔적(殘賊)의 머리를 얻었을 뿐으로 일찍이 제 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는 바다에서 적군을 섬멸하였고, 권율(權栗)은 행주(幸州)에서 승첩을 거두어 약간 나은 편이다.
그리고 중국 군대가 나오게 된 연유를 논하자면 모두가 호종한 여러 신하들이 어려운 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따라 의주(義州)까지 가서 중국에 호소하였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왜적을 토벌하고 강토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별도로 훈명(勳名)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호종한 사람을 녹훈할 적에 아울러 녹훈하도록 말했었다. 그러나 이는 대신들이 의논하여 처리하는 데 달렸다.”

보기만 해도 혈압이 오르는 말이죠. 전쟁에서 이긴 건 중국 군대 때문 -> 중국군 부른 건 나를 따라 온 신하들 공 -> 그나마 이순신, 원균, 권율만 싸웠음. 이렇게 해서 호종 공신 > 선무 공신이 됩니다. 이것도 있네요.

“우리 나라의 장사(將士)들이 왜적을 막는 것은 양(羊)을 몰아다가 호랑이와 싸우는 것과 같았다. 이순신과 원균의 해상전이 수공(首功)이고 그 이외에는 권율의 행주 싸움과 권응수의 영천 수복이 조금 사람들의 뜻에 차며 그 나머지는 듣지 못하였다. 간혹 그 가운데에 잘하였다고 하는 자도 겨우 한 성을 지킨 것에 불과할 뿐이다."

2등이었던 권응수, 이정암, 김시민은 이해가 가지만 3등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문부, 곽재우 같은 의병장들의 이름은 당연히 보이지 않고 김응서 등 꽤 공을 세운 걸로 알려진 장수도 없으니까요. 결국 "공을 세우는"게 문제가 아닌 "선조가 공을 세웠다고 판단하는" 게 문제였던 거죠. 이렇게 호종 공신 86명, 선무 공신 18명이 정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균만 따로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오히려 원균이 선무공신이 제대로 안 됐다는 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죠.

결정적인 부분은 이렇게 공을 논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백이면 백 선조가 원균 얘기를 꺼냈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부끄러웠는지 이순신이랑 세트로 얘기하긴 하지만요. 이런 상황에서 선무공신에 내리는 건 힘들었죠. 그래서 선조 눈치 봐서 2등에 올리니 그마저도 거부하고 1등으로 올리라고 했구요.

물론 사관들은 원균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신랄하게 깝니다. (원균이 공이 있다고 하는 사관 론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진년의 공, 위에서 말한 공이겠죠) 마찬가지로 선무공신 얘기 나올 떄마다 "아니 왜 공신을 이렇게 정함?"이라고 까죠. 뭔가 역사적으로 남는 뒷다마인 것 같네요.

음...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공신 책정 자체가 선조의 의중에 따라 된 거고, 입김이 강한 정도를 넘어서 공신 얘기 나올 떄마다 원균 얘기를 했으니 도저히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가만 이거 완결내면서 써야 될 밑천인데 ㅠ;;
밥펠러
11/04/2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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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선무1등에 이순신장군과 원균을 함께 봉해주었다고 해도 둘은 이미 그 당시에 결코 동급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 시대에서도 원균은 천하의 쓰레기 취급을 하죠. 전쟁후에 지어진 조선판 환타지 소설(?) 달천몽유록이란 고전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보면 저자가 꿈에서 임진왜란때 싸웠던 신립을 비롯한 장수들과 의병장들과 대화를 하며 잔치를 하고 있는데 홀연 한 장군이 나타나자 나머지 장수들이 모두 존경하는 빛으로 맞이합니다. 그 장군이 바로 이순신장군이었죠.

그리곤 또 한무리의 귀신이 나오는데 이 귀신들이 손뼉을 치며 누군가를 조롱하고 있는데 가서 보니 원균이었습니다. 저자 또한 크게 웃으며 함께 조롱을 해주고요.

당시의 원균에 대한 인식과 이순신장군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그러합니다. 이후 조선왕조 실록에 보면 원균은 뭐 거의 취급도 안됩니다. 반면 이순신장군의 조선의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임란 전에는 군에 대한 예를 들때 꼭 옛 중국의 명장들의 사례를 들곤 했는데 이 기준이 이순신장군으로 바뀌어 버리게 되는거죠.

예를 들면 과거에 이순신이 xx한 전례에 따라 시행하소서~ 왕이 누구누구에게 승첩을 시켜주자 당년에 이순신도 겨우 얼마만큼 승첩했을뿐인데 너무 과하다~ xx는 과거 이순신이 주둔했던 곳이니만큼 땅이 비옥하고 전투에서 유리한 지형이니 방치하지 말라~ 등등등 수없이 거론이 되죠.
벤카슬러
11/04/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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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이순신, 선조와 그 주변 관료들 이야기를 엮으니까
오늘날 관료들 하는 행태와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장은 X무시하고 탁상머리에서 결정을 하는... 그러니까 충무공 탄핵, 원균따위가 1등공신 -_-;;;

당시 통신체계의 한계도 있겠지만,
통신체계의 한계도 많이 없어진 오늘날에도 삽질은 계속되는거 보니(가령 구제역이라던가 -_-;;;)
통신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나 봅니다.
슈퍼컴퓨터를 돌려봐야 그 슈퍼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 건 인간이니까요.
11/04/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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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전사가 완결되었군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정유재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저 원흉이 원균의 성을 딴 뒤 凶을 붙여 원흉이라 한 것인지
아님 단어 원흉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지 궁금하네요.
물론 알길이 없을 거 같긴 하지만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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