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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08 15:28:46
Name ManUmania
Subject [일반] 박경리 '토지'
예전에 써놓았던 서평인데 한 번 올려봅니다~



토지, 그 '문학의 힘'을 만나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청소년판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예전 제정 러시아가 위기에 빠졌을 때 한 관리가 했다는 말이다. 러시아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어쩌면 러시아가 가진 진정한 힘의 원천은 광대한 국토도 아니고, 많은 인구도 아니고, 그렇다 해서 그들이 가진 과학의 힘도 아닌 바로 문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세계의 누구나 알 법한 거장들인 알레산드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레프 톨스토이는 지금도 러시아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그만큼 한 나라, 한 민족이 존속하는데 있어서 문화의 힘이란 정말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토지’에서도 우리가 수없이 찾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일제시대 일본이 집요하게 우리 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려 했고 심지어 국민 개개인의 이름조차 모두 빼앗았던 사실은 그만큼이나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 21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토지’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은 ‘문학의 힘‘, ’문화의 힘‘ 그 자체일 것이다.


새삼스럽게 언급하자면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는 무려 26년간의 기나긴 집필 기간을 거쳐서 완성된 대작이다. 1969년 ‘현대문학’에 제 1부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공교롭게도 1994년 8월 15일, 광복절날에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원고지 매수만으로도 4만장에 이르는 이 방대한 소설은 한 작가가 일생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서 만든 하나의 완성품이라고 볼 수 있다. ‘토지’를 완독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한 두 가지에 그칠 수 없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한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시대를 거쳐간 굵직한 사건들을 되새겨 볼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 이데올로기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그 뿐만 아니다. 지금은 듣기 힘든 당시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 언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국토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은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한 시대에 관한 다양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토지를 읽어보면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지금부터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어 보도록 하겠다.


그 수많은 인물군, 유기적, 혹은 그 이상의 것


많은 사람들이 ‘토지’를 언급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단어는 ‘유기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만 하다. ‘토지’는 표면적으로는 최서희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5부 21권(개정판 기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읽어나가다 보면 실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실제로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수백명에 달해서 따로 등장인물들만을 추려놓은 소책자가 시중에 나와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진정 놀라운 점은 그 수백에 이르는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그 나름의 인생을 ‘토지’라는 작품 안에서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를 집필하며서 그려낸 인물 하나하나를 결코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등장인물 중 대부분은 결코 소설의 한 부분에서만 잠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그 하나하나가 자신의 일대기를 소설 안에서 보여준다. 수백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혈연관계로, 때로는 친구사이로, 때로는 동지로서, 혹은 적으로서 서로 관계하며 이 인물들의 관계는 하나의 계통도로는 쉽게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토지’에 등장하는 수백의 인물들을 그려내기 위한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이어나가면서 그 많은 인물들을 태어나게 하고 하나씩 사건을 부여하고 결혼을 시키고 때로는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작가는 그 인물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땅밑으로 뻗어나간 거목의 뿌리를 연상시키는 ‘토지’의 인물군은 ‘유기적’이라는 말 자체로도 설명이 부족할지 모른다. 아마도 한 번이라도 창작을 해보고자 했던 사람은 알 것이다. 단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들에게 나름의 개성을 부여하고 인생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서. 이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일생이야 말로 작가의 혼이 깃들여진 것이 아닐 수 없다.


민족주의 그리고 또 민족주의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에서 언급되는 것이 바로 민족주의다. ‘토지’의 등장하는 민족주의는 크게 두 갈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일본이 내세우는 군국주의의 모습이며 또 하나는 그에 반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바로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다. 어찌보면 극단적으로 상반된 모습이기는 하지만 둘 다 민족주의의 이름을 달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곳곳에 침략의 깃발을 내세운 일본이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내세운 것은 바로 민족주의다. 유사이래로 본토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들은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라는 명분아래 대륙으로의 침략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상적 바탕이 되어준 것이 민족주의였다. 침략에 따르기 마련인 모든 폭정과 만행은 위대한 대일본제국이라는 이름하에 모두 정당한 것이 되었고 그러한 사상에 물들어 버린 수많은 일본인들은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불법과 폭력성의 정당화에 익숙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일본 모두가 이러한 광풍속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다. ‘토지’에서도 여러차례 다루는 부분이지만 ‘토지’의 등장인물인 오가다 지로를 비롯하여 이른바 ‘아나키스트’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끊임없는 침략과 전쟁의 광풍앞에서 그것은 약한 촛불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 시대 일본의 민족주의는 관동 대지진, 남경 대학살, 태평양전쟁, 종군위안부, 강제 징용과 같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고 수없이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이 반대편에 섰던 것 역시 민족주의였다. 36년에 이르는 기나긴 식민지 지배 기간동안 우리민족은 독립을 위해 때로는 동학,기독교와 같은 종교의 모습으로, 때로는 사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모습으로 그 힘을 모았으나 결국 근본적으로 그 바탕이 되었던 것은 우리 민족이 독립을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었고 우리민족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바로 그 민족주의였다. 하지만 우리의 민족주의는 일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으로 우리민족은 침략하에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의 민족주의는 양지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1919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에 힘을 얻은 우리 백성들은 3.1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우리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열의를 보여주었으나 국가를 잃은 백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한층 더 치밀해진 탄압 뿐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같은 민족주의이지만 어떠한 양상으로 그것이 전개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때로는 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악이 되기도 했다. '토지'의 배경이 된 그 시대는 민족주의의 양면성이 실로 극에 달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잊을 수 없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들


‘토지’는 구한 말인 1897년에서부터 우리가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대하소설이다. 더욱이 일제 식민치하를 겪어야 했던 격동의 시기였던만큼 그 어느때보다도 굵직한 사건이 소설의 내부를 관통해 갔다. 우리가 학창시절 국사책에서 단 한줄로 넘어갔었던 사건들일지 모르지만 1894년 동학 농민운동을 시작으로 해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합방, 3.1운동, 관동대지진, 광주학생운동, 중.일전쟁, 남경대학살, 태평양전쟁, 종군위안부, 강제징용에 이르기까지 어느하나 우리가 쉽사리 잊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1923년, 일본 역사상 최대의 지진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생지옥속에서 때아닌 참상을 곱절로 겪어야 했던 것은 일본에 건너가 있던 조선인들이었다. 일부 부유층에서 유학온 학생들은 겨우 학살의 광풍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일본에 건너가서 노동을 하고, 식모살이를 하던 조선인들은 지진으로 인해 촉발된 일본인들의 분노와 광풍을 죽음으로 맞이해야 했다. 당시 수천의 조선인들이 무차별로 학살을 당했으며 그 참혹함은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중.일전쟁 당시에 일어난 남경대학살 역시 일본의 만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미처 남경을 빠져나가지 못한 30만에 이르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잔인한 방식으로 죽음을 선사했다. 아이들의 목을 자르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개미새끼 하나 남지 않을만큼의 살육을 자행한 당시 일본군의 잔혹함은 전쟁의 광기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은 태평양 전쟁 당시 종군위안부로, 강제징용으로, 학도병으로 끌려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 중에서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은 우리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볼 수 있다. 최전방으로 끌려나가 하루에도 수십명에 달하는 광기어린 군인들을 받아내어야 했던 당시 겨우 10대후반,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종군위안부들은 전쟁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큰 잔혹함을 겪어야만 했던 장본인들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아직도 당시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겪어야만 했던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신데 지금의 젊은세대들이 그러한 아픔의 역사를 알지조차 못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전쟁이 왜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인지. 태평양전쟁이 주는 교훈만으로도 그 설명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유인실,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어낸 인물


다시 소설 내부로 들어가보자. 어쩌면 소설 ‘토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최서희와 그의 남편인 김길상이 아닌 유인실일지도 모른다. 일본 유학시절 관동대지진과 그로인해 벌어진 조선인 학살의 참상을 직접 체험했고 그 때문에 조국 조선의 독립을 위해 평생 싸우기로 결심했던 인물이 바로 유인실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평온히 자신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힘들었던 그 시기, 독립운동을 위해서 ‘계명회 사건’에 가담한 유인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에 유일하게 일본인으로서 참여한 사회주의자 오가다 지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토록 일본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던 유인실이었기에 그 사랑은 유인실을 영원히 빠져나오기 힘든 번민에 빠지게 했다. 만약 그 시절, 그 암울한 시대가 아니었다면 서로 다른 두 나라의 남.여가 사랑에 빠진다고 해서 그 어떤 문제가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일제 식민치하에 있던 그 시기였기에, 더욱이 조선인 학살의 참상을 바로 옆에서 두 눈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유인실이었기에 비록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 오가다 지로와의 사랑이었다 하더라도 유인실은 자기 자신을 자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잠시 만났다 헤어지기를 수년여 반복하던 중, 유인실은 결국 오가다 지로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그 사건이 일어난 직후 유인실과 오가다는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일본에서 출산을 하게 된 유인실은 오가다의 아들 쇼지를 평소 크게 안면이 있던 사이도 아니었던 조찬하에게 맡긴다. 그리고 소설이 마무리를 지을때까지 유인실은 자신의 아이를 끝내 만나지 못한다. 비록 유인실은 결국 조찬하에게 그 아이의 생부가 오가다 지로임을 그에게 알려주게 해달라고 하게 되었지만 어머니인 그 자신은 결국 끝내 그 아이의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오가다 역시 자신이 생부라는 사실을 아들인 쇼지에게 끝까지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에 가서 유인실이 활동하던 만주로 쇼지와 함께 여행을 떠난 오가다. 그 여행객들을 접대하게 된 유인실의 지인들은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쇼지라는 아이는 결국 시대가 낳은 비극임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양현, 혹은 최양현.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비극


최서희의 침모였던 봉순이, 침모 봉순이에서 기화라는 이름의 기생으로 다시 태어난 그녀. 그리고 최서희의 아버지 최치수와 각별한 사이였던 이동진의 장남 이상현.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불운한 아이 양현. 아이러니하게도 최서희와는 단 한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았던 양현은 서희의 양녀로서 집안의 사랑을 온몸에 받으며 자라게 된다. 하지만 기생의 자식이라는 신분의 한계는 일제치하가 계속되고, 불과 수십년 전에 비해서 세상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양현의 발목을 끝까지 잡고 만다. 대지주인 집안의 고명딸과 다름없이 자라났음에 불구하고 그녀가 사랑에 빠지게 된 남자는 백정의 외손자로 태어난 악단의 연주자 송영광이었다. 어쩌면 양현은 영광과 자신의 출생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인정받지 못할 기생의 딸이라는 자신의 신분, 그리고 언제나 멸시로 가득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던 백정의 집안. 이 둘의 결합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양현을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했던 서희와 양현의 오라버니로서 자란 환국과 윤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서희는 양현의 발목을 붙잡았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윤국과 양현의 결혼까지도 계획했었고 이 일은 양현의 생부인 이상현의 집안측에서도 찬성을 했었던 일이었기에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모른다. 결국 영광과 양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영광은 양현뿐만 아니라 백정의 딸인 자신의 어머니조차 조국에 버려둔채로 만주로 먼 길을 떠나게 된다. 과연 신분제도라는 관습이 사회에 뿌리깊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지. 이 마음이 아려오는 이야기는 신분제도가 격하게 흔들리면서도 그 뿌리깊은 잔재가 채 사라지지 않았던 일제시대, 그 시대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가 겪어야만 했던 아픔이었을 것이다.


토지,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무엇인가


'토지'의 초중반을 읽으면서 왜 '토지'라는 단어가 이 소설의 제목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토지’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원천이다. ‘토지’는 1부에서 서희가 아버지와 할머니를 모두 잃고 대지주로서 가지고 있었던 광대한 토지와 재산조차 인척인 조준구에게 빼앗기게 된 사건으로 그 서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빼앗겼던 최서희의 ‘토지’, 최참판댁의 ‘토지’는 2부가 마무리 되어갈 때쯤에 되찾게 된다. 그러나 ‘토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3부, 4부, 5부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직 되찾지 못한 ‘토지’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일본에게 빼앗겼던 바로 이 한반도의 ‘토지’였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는 땅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 입을 것, 먹을 것, 휴식처를 모두 제공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일본에 빼앗기고 그 토지에 의존해 살아가던 수많은 백성들이 시대의 회오리를 온몸으로 맞이해야 했기에 ‘토지’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던 것이고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만 했던 그 ‘토지’를 우리의 품으로 찾아오기까지 이야기는 끝이 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의 이야기를 진짜로 이끌어간 힘은 무엇인가.


분명 이 소설의 중심을 흐르는 이야기의 큰 줄기는 존재한다. 그리고 최서희와 김길상. 최치수와 김환. 임명희와 조용하, 조찬하. 유인실과 오가다 지로와 같이 그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곁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토지’라는 소설을 완성시켜준 인물들은 수백에 달하는 그 개개인 모두라고 볼 수 있다. 이용과 그의 아들 이홍, 그리고 월선이, 영팔아비, 두만네, 주갑이, 공노인, 임이네, 석이네, 한복이, 영호, 몽치, 숙이, 영산댁, 휘, 강쇠, 봉순네, 장연학, 송관수, 윤도집, 윤보목수, 김두수, 판술네, 남희, 귀남이, 귀남네, 성환이, 상의, 상근이, 석이아비, 임이, 영선네, 칠성이 등... 단순히 생각나는대로 나열한 위의 인물들 뿐 아니라 토지에 등장하는 수백명에 달하는 모든 인물들이 ‘토지’라는 소설의 원동력이 되어준 힘이며 바로 그 힘들었던 시절을 살아갔던 우리네 백성들의 힘인 것이다. 한 시대를 재구성한다는 것, 그 쉽지 않은 작업을 ‘토지’라는 결과물로 작가가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하나하나씩 혼을 불어넣어서 만들어 낸 하나하나의 인물들의 공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며


그렇다면 작가는 도대체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설을 쓰게 된 것일까. 무엇이 26년간의 방대한 작업을 완성시키게 만들었던 것이었을까. 어쩌면 소설속에 등장한 단 한마디의 말이 그 이유가 될런지 모르겠다. 바로 유인실과 오가다 지로의 아들인 쇼지가 오가다에게 남겼던 말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땜에 전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토지 5부 4권(20권), 1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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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아
10/08/08 17:19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토지 글을 보니 반갑군요.

토지라는 소설이 대작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약간은 평범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내면을 정말 치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토지의 핵심 인물들 중에는 특별히 시대를 변화시키는 행동에 동참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에 반발짝 정도 발을 들여놓거나, 들여놓기 직전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번민, '내가 지금 이것을 해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어찌 보면 헛되지만 상당히 치열한 성찰의 과정을 정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잘 표현한 소설이라고 봅니다. 수 많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빛나는 소설들이 일제시대~광복 전 후로 쏟아져 나왔지만 이 만큼 행동묘사와 내면묘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소설은 절대로 없다고 단언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또한 토지는 진짜 우리말, 즉 각지의 방언이 정말 생생하게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이러한 방언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유머러스함을 잘 살려줄 뿐만 아니라 방언을 구사하는 캐릭터들에게도 감정이입을 시키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지의 언어 구사는 대략 2가지로 나뉘는데 메인 스토리의 주인공들, 식자층들이 사용하는 표준어와 나머지 주변 인물들이 사용하는 방언입니다. 그런데 토지는 아시다시피 메인 스토리의 인물들은 걸핏하면 번민에 빠져서 허우적 대는 것이 보통입니다.(나쁘게 말하면 뻘짓, 우울증, 몽상 등이죠...) 그런데 이를 정화시키고 이들의 번민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방언을 사용하는 주변 인물들입니다.(대표적으로는 주갑이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 될런지 모르겠으나, 그 만큼 박경리 선생이 표준어 뿐만이 아니고 방언에도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이런 방언을 사용하는 인물들이 결코 메인 스토리의 주인공들에 뒤지지 않는 무게감을 가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국지도 세 번 이상 읽는다는데 토지라고 그걸 못하겠습니까만 확실히 20권이 넘는 분량은 단숨에 읽기가 벅차긴 하더군요. 5회 완독은 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겨우 2회를 했으니 언제 나머지를 채울런지...
10/08/08 19: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에 댓글이 너무 없어서 하나 달아봅니다.

토지라는 대작을 "분석"하는 것은 제 능력 밖입니다만, 저는 토지가 재미있어서 좋습니다. 두 번을 완독하였고, 1부는 네번, 2~3부도 세번 정도는 읽은 것 같습니다. 내용은 비극이지만 1부가 소설로서의 재미는 가장 있는 것 같습니다.

앞분 댓글과 함께 삼국지 얘기도 잠깐 해보면, 삼국지는 저에게 사실 왜 수험생의 필독서 1위인지 잘 모르겠는.. 그런 책입니다. 물론 고전이니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삼국지보다는 로마인 이야기 훨씬 배울 점도 많고 읽을 만 한 것 같습니다.
10/08/09 00:56
수정 아이콘
완독하신 분들 부럽습니다.
전 이책을 3번 읽었는데 한번은 중학교때, 그때는 3부까지만 있었고
도 한번은 대학때인데 그때는 4부 중간까지,
마지막은 한 12-3년 전인데 그때는 5부 중간까지인가 책이 나왔었던것 같습니다.
언제 한번 전집을 사서 차분하게 읽어볼 생각은 하는데 기회가 없네요.
다 읽은 분들은 정말 좋은 경험하신 분들이라 생각 합니다.
10/08/09 09:01
수정 아이콘
그렇네요 좋은 글에 댓글이 너무 없네요.
4~5년 전 쯤에 완독 했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슴 먹먹해지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제 인생에 토지를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생길까요...
아름다운달
10/08/09 11:21
수정 아이콘
대학교 푸르름에 눈이 부시던 그때가 기억이 나네요. 학교앞 서점에서 1권...1권 사가지고 가서 봤던 토지.

지금도 제 책창에 저와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귀한 몸들입니다. 토지라는 책을 보면서 20대로....그리고 그 격정의 세월로

되돌아가는 여행....가끔씩 해볼만 합니다.
quickpurple
10/08/13 08:54
수정 아이콘
1897년 한가위(음력 8월 15일)에서 1945년 광복(양력 8월 15일)까지 이 땅위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아주 절절하게 담아낸 위대한 문학작품이라고 토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지가 주는 여운이 아직 남아있으시다면 mbc에서 지난 7월 2일에 방영한, 내 어머니 박경리라는 다큐도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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