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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5/15 19:36:32
Name 페가수스
Subject [일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스토리 - 22. 헐크 이만수
이만수.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중 제일 윗선에 위치하고 있는 선수이며 장종훈, 양준혁이 나타나기전, 한국 프로야구의 공격부문 기록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한 선수. 게다가 한국 프로야구 1호 안타, 홈런, 타점, 득점을 기록한 선수이자 홈런부문 타이틀 3회수상, 타점부문 타이틀 4회수상, 타격부문 타이틀 1회수상, 타격부문 트리플크라운 1회 수상, 포수부문 골든글러브 5년 연속 수상, 정규리그 MVP 1회 수상.

1980년대를 대표하는 타자 이만수를 수식하기에는 위의 말을 모두 붙여도 부족합니다.

게다가 이만수의 포지션은 포수였습니다. 4번의 타수중 1번정도만 안타를 쳐도 그럭저럭 공격이 되준다고 말하는 포수라는 포지션에서 이처럼 눈부신 기록을 쌓은 선수는 한미일을 통틀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원년 멤버들 중 가장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했던 선수.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MLB 1군 코칭스태프로 발탁되어 처음으로 코칭스태프로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껴 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만수가 쌓은 눈부신 기록뒤에는 그가 흘렸던 한없는 땀방울과 핏방울이 숨어있었습니다.

이만수, 한국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배출해낸 전국구 스타이자 대구의 첫 영웅. 이 위대한 스타가 남긴 기록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이만수, 1958년 9월 9일생. 대구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이만수가 태어난 곳은 대구가 아니라 철원입니다. (이만수가 철원에서 태어난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아버지가 그 당시 철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나중에 전역한 후, 이만수의 가족은 대구에 정착하게 됩니다.)

포수라는 포지션, 그리고 예전 MBC 무릎팍 도사에 나왔을때, 그는 '다리가 느려서 도루를 잘 못했다.' 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만수는 상당히 다리가 빨랐습니다.

이만수의 가족은 철원에서 대구로 이사를 했고 이만수는 대구중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만수는 처음으로 야구라는 스포츠를 만나게 됩니다.

야구부 입단시험을 보게 된 이만수는 빠른 발로 인해 무난히 야구부 입단시험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갓 야구를 접하게 된 이만수는 당연히 기존 야구부원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유니폼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만수는 이러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더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 배트를 밤낮 가리지않고 휘두르면서 자신만의 스윙폼을 찾으려했고 그 끝없는 스윙연습으로 인해 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지만 그 상황속에서 이만수는 자전거 튜브를 손에 단단히 감고 배트를 휘두릅니다. -

3년간의 대구중학교생활을 끝내고 이만수는 대구상고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때, 이만수는 이미 초고교급 타자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이만수는 자신의 단짝을 한 명 만나게 되는데 그 선수는 다름아닌 김시진입니다.)

이만수는 1977년과 1978년 연속해서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주전 포수로 발탁되었고 1978년부터 1981년까지는 수위타자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구상고를 졸업한 후, 한양대를 졸업했던 해,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이만수는 대구에 연고지를 둔 삼성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아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프로야구의 첫 개막전이던 1982년 3월 27일, 이만수는 2회초 MBC의 투수 이길환의 공을 받아쳐 프로야구 역사상 첫 홈런, 첫 안타, 첫 타점, 첫 득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만수는 이 무시무시한 타력과는 달리 수비력에서는 저평가를 받고 있는 포수입니다.

특히, 기사 한 줄이 와전되는 바람에 이만수의 포수로서의 실력은 "타력으로 수비력을 메운 선수" 로 평가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삼성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투수인 김시진과 김일융, 특히 김시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만수는 결코 수비력이 약한 포수가 아니었다. 타력때문에 수비를 평가할때 손해가 생겼지만 결코 수비력이 부족한 포수가 아니었다. 특히 사인이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변화구를 문제없이 받아냈다."

처음으로 100승을 기록한 투수였던만큼 김시진의 공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도 움직임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공을 별 무리없이 받아냈다는 것 만으로도 이만수의 수비능력은 결코 저평가가 될 수 없습니다. - 게다가 이만수는 투수들이 공을 던질때 생기는 미세한 투구폼의 변화를 통해 어떤 구질을 던지는지 파악했을정도로 눈썰미가 좋았습니다. -

그리고 이만수의 수비능력을 낮게 보게 했던 문제의 기사는 이렇습니다.

원문은 이러합니다. "일부러 백인천 감독이 투수들에게 쉬운 공을 던지게 해서 홈런을 맞게 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나중에 이렇게 와전됩니다. "백인천 감독이 투수들에게 쉬운 공을 던지게 해서 이만수의 포수출장을 유도했다."

"홈런을 맞게 했다" 라는 서술부가 "포수출장을 유도했다" 로 와전되는 바람에 이만수의 수비능력은 부당하게도 저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 게다가 이 때는 1990년으로서 이만수가 노쇠화에 접어들던 시기입니다. -

이외에도 투수리드가 단순했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은 이러합니다.

투수가 이만수의 사인을 거부할 경우, 그냥 투수는 자기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 특히 김시진이 이와 같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

각설하고 이만수는 프로야구 원년이자 자신의 첫 시즌이던 1982년은 무난하게 보냅니다.

1982 이만수 : 78경기 출장, 타율 0.289, 출루율 0.399, 장타율 0.500, 322타석 270타수, 78안타, 13홈런, 51타점, 6도루

소속팀 삼성라이온즈는 후기리그 1위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전기리그 1위팀 OB베어즈와 격돌하게 됩니다.

아쉽게도 1차전의 무승부를 포함 1 : 4로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3, 6안타, 5타점, 1득점을 기록합니다.

1983년, 이만수는 무난하게(?) 보냈던 첫 해와는 달리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꽃피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홈런과 타점부문 타이틀을 차지했고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도 차지합니다. 그리고 정규리그 MVP도 수상합니다.

1983 이만수 : 98경기 출장, 타율 0.294, 출루율 0.377, 장타율 0.555, OPS : 0.932, 410타석 357타수, 105안타, 2루타 12개, 3루타 0개, 27홈런, 74타점, 53득점, 41볼넷, 몸에 맞는 공 8개, 고의사구 2개, 0도루

타율 8위, 출루율 5위, 장타율 2위, OPS 2위, 최다 타석 10위, 최다 타수 9위, 최다 안타 7위, 최다 2루타 22위, 홈런 1위, 타점 1위, 득점 4위, 볼넷 7위, 몸에 맞는 공 6위, 고의사구 10위

이 해에 소속팀 삼성라이온즈는 전기리그 5위, 후기리그 2위에 머무르며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합니다.

1984년, 이만수는 거포로서만 각인되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정확도와 파워를 동시에 겸비한 강타자로 상대 투수들에게 각인시킵니다. - 이만수는 순간적인 대처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선수로서 직구를 노리고 있다가 갑자기 상대투수가 변화구를 던졌어도 순간적으로 배트스윙을 변화구에 맞추어서 홈런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무렵, 이만수는 타율 0.340, 23홈런, 80타점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삼성의 감독이었던 김영덕은 이만수의 타율관리를 위해 이만수를 남은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았습니다. - 일단, 홈런과 타점부문에서는 2위와 차이가 엄청났기 때문에 10여경기를 쉬었어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

하지만 그 사이 롯데의 재일교포출신 타자 홍문종이 무섭게 타율을 올리며 이만수의 타율부문 타이틀 수상에 위협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2경기를 남겨놓고 두 선수의 타율차이는 단, 1리정도로 이만수가 앞서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2경기. 이 2경기는 바로 삼성과 롯데의 2연전이었습니다.

이 때, 삼성은 한국시리즈 상대로 이미 한 번 자신에게 쓴 맛을 보여준 OB대신 롯데를 자신들의 상대로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알고 있을 그 추악한 부정승부.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던 또다른 부정승부 하나. 이만수는 2연전에 참여하지 않았고 삼성의 투수들은 홍문종을 상대로 9연타석 고의사구를 던지며 홍문종의 추격을 원천봉쇄했던 것입니다. - 게다가 고의사구로 인해 홍문종이 장효조의 출루율 1위를 위협하자 롯데의 강병철 감독은 홍문종을 대타로 교체하게 됩니다. -

이만수는 타격부문에서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트리플 크라운에는 조작된 기록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달라붙게 됩니다.

그리고 이 꼬리표는 결국 이만수의 정규리그 MVP 수상을 실패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1984 이만수 : 89경기 출장, 타율 0.340, 출루율 0.409, 장타율 0.633, OPS : 1.043, 342타석 300타수, 102안타, 2루타 17개, 3루타 1개, 23홈런, 80타점, 45득점, 26볼넷, 몸에 맞는 공 12개, 고의사구 3개, 3도루

타율 1위, 출루율 3위, 장타율 1위, OPS 1위, 최다 타석 20위, 최다 타수 23위, 최다 안타 6위, 최다 2루타 8위, 최다 3루타 28위, 홈런 1위, 타점 1위, 득점 9위, 볼넷 27위, 몸에 맞는 공 1위, 고의사구 6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와 격돌하지만 롯데의 전설적인 에이스 최동원의 역투에 타선이 막혀버렸고 결정적으로 7차전에서 믿었던 기둥 김일융이 "공포의 1할타자" 유두열에게 역전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또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합니다.

이만수는 한국시리즈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318, 7안타, 4타점, 2득점을 기록합니다.

1985년, 플로리다 전지훈련장에서 이만수는 정규 훈련을 끝마치고도 밤 늦게까지 남아서 개인 연습을 했고 또한 새벽에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또다시 개인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한 현지인은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러한 피나는 노력속에서 이만수는 작년의 트리플 크라운이 조작이 아닌 자신의 실력임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1985 이만수 : 103경기 출장, 타율 0.322, 출루율 0.405, 장타율 0.571, OPS : 0.977, 423타석 357타수, 115안타, 2루타 19개, 3루타 2개, 22홈런, 87타점, 63득점, 42볼넷, 몸에 맞는 공 14개, 고의사구 6개, 7도루

타율 5위, 출루율 2위, 장타율 2위, OPS 2위, 최다 타석 10위, 최다 타수 15위, 최다 안타 5위, 최다 2루타 9위, 최다 3루타 18위, 홈런 1위, 타점 1위, 득점 5위, 볼넷 10위, 몸에 맞는 공 1위, 고의사구 1위, 도루 23위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이만수는 3년 연속 홈런과 타점부문 타이틀을 수상했고 3년 연속해서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이 해에 삼성라이온즈는 사상 초유의 전, 후기리그 통합우승을 달성하게 됩니다.

이만수는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정규리그 MVP에 또다시 도전하지만 이번에는 소속구단 삼성이 김시진, 장효조등 쟁쟁한 동료들을 후보로 한꺼번에 내는 바람에 표가 갈리면서 또다시 MVP수상에 실패합니다.

1986년에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해에 이만수는 108경기중 59경기에만 출장합니다.

1986 이만수 : 59경기 출장, 타율 0.321, 출루율 0.397, 장타율 0.585, 239타석 212타수, 68안타, 16홈런, 39타점, 1도루

여담이지만 59경기에만 출장해서 16개의 홈런을 때려냈으니 만약 전경기에 출장했다면 30홈런도 노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이 해에 이만수는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100개의 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 해에도 이만수는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합니다.

삼성라이온즈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OB베어즈를 상대로 혈투끝에 3 : 2로 승리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1986년의 플레이오프 타격기록 자료는...... 죄송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처음으로 해태를 만나게 되었고 치열한 승부를 벌였지만 1 : 4로 패배하며 또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해 5차전에서 1회초, 김정수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쳤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이만수의 타격기록은 타율 0.238, 5안타, 1홈런, 3타점, 4득점입니다.

1987년, 이만수는 장효조, 김성래와 함께 공포의 중심타선을 이루었으며 전무후무한 팀 타율 3할을 기록하는데 일조합니다. 그리고 작년에 자신이 잠시 맡겨두었던 타점부문 타이틀을 다시 수상하면서 타점부문 타이틀을 4회 차지했고 한국 프로야구 타점부문 타이틀 최다 수상기록을 세웁니다. - 이승엽이 4회로 이만수와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

그리고 5년 연속 포수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웁니다.

1987 이만수 : 85경기 출장, 타율 0.344, 출루율 0.431, 장타율 0.579, OPS : 1.010, 334타석 285타수, 103안타, 2루타 14개, 3루타 1개, 18홈런, 76타점, 56득점, 47볼넷, 몸에 맞는 공 4개, 고의사구 4개, 6도루

타율 2위, 출루율 2위, 장타율 1위, OPS 1위, 최다 타석 28위, 최다 안타 15위, 최다 2루타 24위, 홈런 2위, 타점 1위, 득점 6위, 볼넷 6위, 몸에 맞는 공 18위, 고의사구 6위

삼성라이온즈는 또다시 전, 후기리그 1위에 올랐지만 바뀐 규정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직행에서 그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또다시 해태와 격돌했지만 이번에는 내리 4연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해 3차전에서 2점 홈런을 때려내는등 타율 0.385, OPS : 1.115, 5안타, 1홈런, 4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불방망이를 휘둘렀지만 1차전과 2차전에서 뼈아픈 2번의 송구실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1988년에도 이만수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1988 이만수 : 86경기 출장, 타율 0.323, 출루율 0.419, 장타율 0.558, 334타석 285타수, 92안타, 18홈런, 58타점, 6도루

빼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해태의 장채근에게 밀리며 6년 연속 포수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에는 실패합니다.

한 편, 규정타석을 채운 포수들 중에서 3할을 기록한 선수는 이만수외에 유승안, 김동수, 홍성흔만 존재하며 이 3명의 선수들은 단, 1번씩만 3할을 기록했습니다. - 홍성흔은 지명타자로 전환하고 나서부터는 계속 3할을 치고있지만 -

그러나 이만수는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5번이나 3할을 기록했습니다. - 결코 타 포수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

삼성은 후기리그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신흥 강호 빙그레이글스에게 0 : 3으로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455, OPS : 1.046, 5안타를 기록했지만 후속타 불발과 주자 부재로 인해 1타점, 0득점을 기록합니다.

1989년, 1983년 이후로는 처음으로 이만수는 3할 밑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데뷔 후, 처음으로 장타율이 5할 밑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1989 이만수 : 110경기 출장, 타율 0.284, 출루율 0.373, 장타율 0.482, 413타석 359타수, 102안타, 20홈런, 64타점, 4도루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돌풍의 팀 태평양돌핀스, 그리고 태평양의 영웅 박정현의 역투에 눌리며 1 : 2로 패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1989 준플레이오프 타격기록도 사라졌습니다....... 죄송합니다.)

1990년, 이만수는 다시 한 번 홈런부문 타이틀에 도전하게 됩니다. 이 때의 경쟁상대는 바로 빙그레의 장종훈. - 이 당시에는 유격수 - 유격수와 포수의 경쟁으로 흥미진진했던 이 해의 홈런부문 타이틀 경쟁.

전기리그까지 이만수는 1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장종훈과 동률을 이루었지만 후기리그에서 2개의 홈런이 모자라 4번째 홈런부문 타이틀 수상에는 아깝게 실패합니다.

(그리고 이 해에 이만수는 관중석에 맥주캔을 투척하면서 5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1990 이만수 : 110경기 출장, 타율 0.287, 출루율 0.386, 장타율 0.540, OPS : 0.926, 421타석 359타수, 103안타, 2루타 13개, 26홈런, 57타점, 50득점, 54볼넷, 몸에 맞는 공 5개, 고의사구 6개, 3도루

타율 13위, 출루율 9위, 장타율 2위, OPS 3위, 최다 타석 21위, 최다 타수 21위, 최다 안타 16위, 홈런 2위, 타점 12위, 득점 21위, 볼넷 5위, 몸에 맞는 공 19위, 고의사구 3위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빙그레이글스를 2 : 0으로 물리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해 1차전과 2차전에서 각각 솔로홈런을 때렸고 타율 0.429, OPS : 1.786, 3안타, 2홈런, 2타점, 2득점을 기록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2번이나 자신들에게 쓴맛을 안겨준 해태타이거즈와 격돌했고 3경기를 내리 따내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율 0.222. 2안타, 0타점, 2득점으로 주춤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MBC청룡을 인수하고 야구계에 뛰어든 신생팀 LG트윈스와 격돌하지만 내리 4경기를 잃으면서 또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합니다.

이만수는 3차전에서 9회말, LG의 투수 정삼흠을 상대로 2점 홈런을 때려냈지만 그 외의 기록은 타율 0.214, 3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에 그칩니다.

1991년, 이만수는 팀의 타선을 이끌어나가는 타자로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다시 3할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200개의 홈런을 때린 타자가 됩니다.

1991 이만수 : 118경기 출장, 타율 0.317, 출루율 0.413, 장타율 0.500, OPS : 0.913, 446타석 378타수, 120안타, 2루타 18개, 17홈런, 74타점, 51득점, 56볼넷, 몸에 맞는 공 8개, 고의사구 12개, 6도루

타율 5위, 출루율 4위, 장타율 6위, OPS 7위, 최다 타석 19위, 최다 타수 22위, 최다 안타 12위, 최다 2루타 21위, 홈런 7위, 타점 6위, 득점 24위, 볼넷 7위, 몸에 맞는 공 12위, 고의사구 2위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롯데와 경기를 벌였고 3차전의 무승부를 포함, 2 : 1로 롯데를 물리치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했지만 한 개의 안타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은 빙그레와 격돌했고 1 : 3으로 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308, 4안타, 1득점을 기록합니다.

1992년에도 삼성의 중심타선을 이끌었지만 이제 이만수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 즉, 이 해가 이만수가 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린 마지막 시즌입니다. -

1992 이만수 : 93경기 출장, 타율 0.289, 출루율 0.402, 장타율 0.541, 368타석 305타수, 88안타, 22홈런, 70타점, 7도루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롯데에게 2경기 연속 영봉패를 당하면서 플레이오프진출에 실패합니다.

이만수는 2경기에 모두 출장해 타율 0.286, 2안타를 기록합니다.

1993년부터 이만수는 노쇠화를 겪으며 점점 밑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만수는 경기 끝날 무렵, 그를 찾는 팬들의 요구로 인해 대타로나마 등장하게 됩니다.

1993 이만수 : 78경기 출장, 타율 0.207, 출루율 0.294, 장타율 0.311, 218타석 193타수, 40안타, 5홈런, 20타점, 0도루

1993년, 삼성은 또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LG트윈스를 상대로 5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3 : 2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 이만수는 4경기에 출장해 타율 0.167, 1안타에 그칩니다. -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또다시 해태와 격돌했고 치열한 승부를 벌였지만 1무승부 포함 2 : 4로 아쉽게 패배하며 또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합니다.

이만수는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231, 3안타, 1홈런, 4타점, 1득점을 기록합니다. - 5차전에서 9회초에 2점 홈런을 때립니다. -

1994 이만수 : 109경기 출장, 타율 0.253, 출루율 0.343, 장타율 0.468, 269타석 233타수, 59안타, 12홈런, 37타점, 0도루
1995 이만수 : 97경기 출장, 타율 0.215, 출루율 0.344, 장타율 0.373, 192타석 158타수, 34안타, 5홈런, 27타점, 1도루
1996 이만수 : 97경기 출장, 타율 0.285, 출루율 0.359, 장타율 0.451, 222타석 193타수, 55안타, 6홈런, 38타점, 2도루

그리고 1997년. 이만수는 개막전 4번타자로 기용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지 상징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았고 이미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들어 결국 시즌 후, 그는 구단에서 방출되고 맙니다.

1997 이만수 : 39경기 출장, 타율 0.231, 출루율 0.298, 장타율 0.385, 57타석 52타수, 12안타, 2홈런, 9타점, 0도루

이만수는 이 후, 미국으로 건너갔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트리플 A를 거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소속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코칭스태프가 됩니다. - 정확한 직책은 불펜 캐처로서 불펜에서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면서 구원 투수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역할입니다. 코치와 도우미의 중간정도? -

그리고 2005년, 화이트삭스는 90여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고 이만수는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A급 우승공신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만수가 16년간 남긴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통산 1449경기 출장(26위), 타율 0.296(18위), 출루율 0.388(12위), 장타율 0.519(9위), OPS : 0.907(10위), 5033타석, 4310타수, 1276안타, 2루타 193개, 3루타 7개, 252홈런(9위), 2239루타(19위), 861타점(14위), 625득점, 554볼넷(27위), 몸에 맞는 공 118개(10위), 고의사구 52개(13위), 52도루, 희생타 4개, 희생플라이 42개(28위), 실책 61개

포스트시즌과 올스타전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포스트시즌

68경기 출장, 타율 0.257, 출루율 0.339, 장타율 0.393, OPS : 0.732, 234타석 206타수, 53안타, 7홈런, 33타점, 18득점, 22볼넷, 5도루

올스타전

16경기 출장, 타율 0.205, 출루율 0.289, 장타율 0.333, OPS : 0.622, 45타석 39타수, 8안타, 0홈런, 4타점, 6득점, 3볼넷, 1도루

이만수라는 선수는 단순한 강타자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야구가 가족단위로 즐기거나 연인들끼리 볼 수 있는 그러한 가족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았지만 이만수가 뛰었던 1980년대의 야구는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 때의 야구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고 응원하는 팀이 맥없이 질 경우에는 관중들이 경기장을 막고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속에서 이만수라는 선수는 홈런을 치면 기뻐하면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 다음 타석에서 투수에게 공으로 얻어맞더라도 - 환호해주었으며 야구라는 스포츠를 즐길 거리로 만드는데 공헌했던 선수였습니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공약했던 문학구장이 만원 될 경우, 팬티만 입고 야구장을 한 바퀴 돌겠다고 공약했고 정말로 그 공약을 지켰고 2010년에 SK가 우승할 경우, 여장을 하고 야구장을 한 바퀴 돌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만수는 16년간의 선수생활 중 삼진을 당했던 적이 단, 490번에 지나지 않습니다. - 한 시즌에서 50개 이상의 삼진을 당한 적은 1983년밖에 없습니다. -

파워 히터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리고 무지막지한 스윙과는 달리 이만수는 웬만해서는 삼진을 당하지 않고 투수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타자인 것입니다.

(반면에 병살타를 140개 - 통산 9위 - 때려내며 결정적인 순간에 김을 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만수라는 선수는 분명 비범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 비범함 속에는 그가 잠까지 줄여가면서 휘둘렀던 스윙의 흔적이 숨어있었고 또한 후보로 밀려나면서 주전으로 올라서기 위해 연습, 그리고 연습을 하면서 흘렸던 핏방울들이 숨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을 알고 있던 팬들은 그가 멀리 미국에서 있었던 동안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고 결국에는 이만수의 등번호 22번을 삼성라이온즈의 영구결번으로 만든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 : "독수리의 멈추지 않는 심장 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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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엔
10/05/15 19:38
수정 아이콘
비난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였나요... 이만수씨의 선수시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는 '이만수'하면 트리플 크라운 사건만 떠오릅니다. 안타깝게도..
10/05/15 20:07
수정 아이콘
제 마음 최고의 레전드!!! 언젠가 삼성에 와주세요. ㅜㅜ
Old Trafford
10/05/15 20:14
수정 아이콘
한국인으로 월드시리즈 반지를 낀 사람은 김병현선수 아닌가요 ?
벡스는 01년도고 삭스는 05년도인데요 게다가 04년도 보스턴도 있고요
10/05/15 20:17
수정 아이콘
이만수 라고 외치면 가슴이 두근두근한 예전 삼성 팬입니다.

이만수 선수 방출 하고 양준혁 선수 트레이드하면서 삼성에 등을 돌린 올드 삼성팬입니다.

이만수 선수는 어린 국민학생 때 언제나 영웅이였죠.

그의 등번호 22 아직도 기업합니다.
10/05/15 22:51
수정 아이콘
분명히 저는 삼성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이었는데.. (94-95-96 이었던 것으로)

왜 지금은 롯데 팬인걸까요..
10/05/16 00:16
수정 아이콘
제가 야구에 관심이 있긴 한데, 정확히 이만수 코치의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화이트삭스 시절의 능력이나 활약을 알고 싶은데, 혹시 아시는 분 계신가요?

P.S : 이만수 코치님이 우리 팀 코치라서 참 좋습니다.
10/05/16 08:08
수정 아이콘
'공격형 포수'라는 명예를, '공격형 포수'라는 멍에를 같이 쓰신 이만수 SK코치님.
그 분의 포구능력, 도루저지능력 등이 그닥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격력때문에 너무 많은 부분이 가려졌다 생각합니다.

비록 선수생활 말년은 비참하셨지만, SK에서 코치로, 그리고 감독으로 최고의 순간을 계속 누리셨으면 합니다.
스타카토
10/05/16 09:49
수정 아이콘
이만수 선수때문에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삼성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대타로 나와 병살을 쳤는대도 불구하고 기립박수를 쳐주는 대구팬들의 모습이 너무 감동스러웠고
그가 땅볼을 쳐도 마냥 좋아하던 대구팬들...

하지만 왜 지금은 삼성을 최악의 구단이라고 생각할까요?
마치강물처럼
10/05/17 10:48
수정 아이콘
돌아와줘요 만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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