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컴퓨터 쓸 때부터 세벌식을 사용해서,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세벌식 390 자판을 쓰고 있지요.
두벌식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도깨비불 현상 (예를 들어 "가나"를 칠 때 "가" -> "간" -> "가나" 이렇게 쳐지는 현상)도 발생하지 않고, 자음, 모음의 구별이 아니라 초성, 중성, 종성을 구별해서 쓸 수 있기 때문에 한글의 창제원리에 잘 맞는 자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벌식의 여러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저는 숫자 칠 때 참 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가끔 다른 사람 컴퓨터를 쓸때 자판 설정을 바꾸어야 해서 귀찮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것이고,
제 컴퓨터에서 다른 사람이 한글을 못 칠 때, 제가 세벌식 사용자라는 것을 커밍아웃 할 때, 꽤나 특이한 사람 (특이한 취향)인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한때 영어도 드보락 자판을 썼었고, 취향이 일반적이진 않습니다만,

근데 세벌식 사용이 일 하는 데 있어서 큰 장애를 불러 일으키고 있네요. 벌써 일을 한 지 6년째이고, 이 쪽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특허청에서 배포하는 특이한 문서작성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굉장히 짜증나는 이 프로그램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세벌식이 제대로 적용이 안된다는 겁니다.

한글 문자를 쓸 때는 문제가 없는데, 기호나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불규칙적으로 한칸이 더 띄어지게 됩니다. 이 때 저장을 하고 다시 불러오면 폰트가 없다는 오류 메시지와 함께 문서의 형식이 파괴되고 텍스트로만 나오게 됩니다. 특허청 문서는 형식이 중요한 데 그거 다 날아가버리면 다시 작업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어제 일 한 것도 오늘 와서 보니 또 문제가 발생해서 날아가 버렸네요. 보통은 hwp로 작성해서 특허청 문서작성기로 변환해서 쓰는데, 특허청 문서작성기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조심해서 쓰기는 하는데, 가끔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허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담당자 왈 "이 프로그램은 두벌식 전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벌식은 적용이 안된다. 언제 적용될 지 모르겠다. 문서복구도 힘들다" 라고 하더군요. 짜증이 확 나서, 그럼 나보고 일하지 말라는 것이냐 라고 하고, 전화 끊고 담배 한 대 피고 왔네요. 저 뭐같은 문서작성기를 6년째 쓰고 있는데, 참 불편합니다. 가끔 일한 거 다 날려먹기도 하고, 어쩔 수 있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특허청에 전화해서 하소연 하고 하지만, 변한 건 별로 없고... 문서 작성시 사소한 노하우들만 쌓여가고 있네요.

오늘도 문서 다 날려먹어서, 일 해야 되는데, 짜증나서 일은 안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체감상 세벌식 사용자는 1%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만, 회사에서도 유일한 세벌식 사용자이고, 그래서 처음 입사했을 때 참 이것 때문에 고생도 하고, 욕도 많이 얻어 먹었지요. 피지알에도 세벌식 사용자가 몇 명 있는 것 같은데, 고충이랄까 동질감이랄까 그런 걸 느껴보고 싶어서 글을 써 봤습니다. 아마 덧글은 얼마 달리지 않을 것 같지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