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PGR독서회 수장이신 Ms. Anscombe님께서, 잉여질로 유명한 밑힌자에게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3만원 이하의 책으로 사고 싶은 책 하나 고르세요'
문자를 확인한 순간, 잉여의 머릿속은 마구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선착순 이벤트인가? 가장 먼저 보내는 사람이 임자라 이건데, 불행히도 문자가 온지 몇분만에 확인하다니, 내게 승산은 없지만 야구도 9회말 2아웃 상황에 발생한 드랍 더 볼이라고, 노력하는 잉여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거야.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고 그 사람은 피뢰침을 만들었지. 3만원이라는 한계점이 정해져 있는 것이 내게는 다행이다. 분명 3만원에 가장 가까운 책을 찾아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보내는 이에게 책을 주는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잉여의 기억력으로는 3만원에 딱 맞는 책 가격을 기억해 낼 수가 없으니 인류 과학의 힘을 빌려야만 해... 그런데 '3만원'인 걸 보니 웬지 PGR 지원금의 냄새가 풍기는군.
...역시 잉여다운 잉여적 사고방식의 추론이었습니다. 평소 인터넷 상에서는 마치 돈에 해탈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욕망들을 비웃는 멋진 키보드잉여였지만, 실상 삼각주먹밥 가격이 오르면 밥을 굶을 수 밖에 없는 비굴한 인생이며 경품과 공짜 포인트 떡밥에 덥썩덥썩 넘어가는 자본주의의 노예였기 때문이었어요. 어쨌든 잉여는 마침 PGR21에 접속해 있던(...) 컴퓨터를 붙들고 두 손가락을 두드려 위시리스트를 불러냈습니다만 마땅한 책이 없어 고민하던 순간, 딱 발견된 할인가 29700원의 책이 있었으니 이것 참 다행이고 기분좋은 일이었어요.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문자를 보내는 순간까지 충실하도록(고맙게도 문자가 잘 안눌러지는 과학적 핸드폰이라 1분 정도 쓴 것 같습니다) 하기로 하고 열심히 손가락을 놀려댔습니다. 그런데 Ms. Anscombe님꼐서 주소를 보내주시면 집으로 보내주겠다, 하시는 거예요. 흠... 주소를 보내달라는 것은 내가 당첨되었다는 것? '집으로 보내주겠다'라는 것은 '(당첨되면)집으로 보내주겠다'라는 것인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전혀 상관도 없는 잉여의 주소가 필요한 곳은 몇몇 잉여들이 가장 사랑한다고 알려진 택배회사일 터였습니다. 일단 주소는 문자로 보냈지만 너무 궁금한 나머지 반나절 정도를 고민하다가(만약 당첨도 안 되었는데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제가 성공하기 전까지만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는데 무슨 김치국 밥말아드시는 말씀이세요 하면 너무 아름다우니까요), Ms. Anscombe님께 쪽지를 보내보기로 결심하고 다시 그 내용을 두고 반나절 정도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쪽지를 보내게 되는데...
말많은 잉여를 3만원의 수혜자로 추천해주신 Ms. Anscombe님, 책을 양보하신 몇몇 독서회 회원분들, 그리고 3만원을 지원해 주신 PGR21 운영진께 감사드립니다. 실제로 선착순 이벤트는 있지도 않았지만(잉여의 마음 속에만 있었...) 책 보내주신다는 문자 직전까지 진땀나는 이벤트 응모의 기분을 느꼈던 것도 보너스일지도... 원래 더 빨리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만, 어제 양성학교 시험이어서 좀 후달리기도 했고, 짤방 만들 시간도 필요하거나와... 원래는 책을 다 보고 분석해서 올리려고 했지만, 만만한 놈이 아니더군요.
짤방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찍은 짤방입니다. 이 만화책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 Jimmy Corrigan>이라는 물건인데, 국내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실험만화의 일종으로, 이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는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무슨 책 판매원 멘트 같지만). 표지는 펼치면 각종 잡다한 보너스들이 인쇄되어 있으며(지미 코리건 인형 만들기 등), 책 내부표지 앞, 뒤로도 충실하게 책의 내용을 짐작할 만한 것들이 있어 여기에 찍어 올립... 니다만 사진을 줄이다 보니 영 보이질 않네요. 보시다시피 올 컬러이고, 고급 종이에 인쇄되어 있으며, 타이포그래피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충실하게 반영된 한글화 수준도 만족스럽습니다. 무튼 정말 그럴싸한 책입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이 두꺼운 책에 책갈피용 끈이 붙어있지 않다는 거겠지만...
원래 분석글을 올리려고 했지만... 그 글은 좀 나중에 해야 할 듯하고, 이만 감사를 위장한 염장글을 여기에서 마칩니다. 다시 한번 감사한다는 말씀 드리고, 책 잘보겠습니다.
p.s : 더 확실한 염장질을 위해서, 다음 독서회 때 책 가져갈게요.
p.s : 이런 게 건강한 염장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