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7/02/20 21:21:40
Name probe
Subject PGR, 피지알러들에 대한 믿음


글 하나


마케팅 파트에 근무하다 보니, 고객들을 만나야 할 일이 많습니다.  천성이 그다지 외향적이지 못한지라 나름 어려움이 있더군요.  천성을 배움을 통해 극복해 보고자, 비즈니스와 관련된 강의들을 적극적으로 수강하는 편입니다.  얼마 전 수강하였던 커뮤니케이션 스킬 관련된 강의 도중, 강사님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때, 다음 중 어떤 요소가 가장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미칠까요?  [내용], [어조], [표정].  세 요소의 합계를 100으로 보았을 때, 각각이 갖는 중요도를 숫자로 표시해 보세요.”












한 번씩은 입시에 목숨을 걸어보셨을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쉽게 답을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사님이 제시한 정답은, 1)[표정] 55%  2)[어조] 30%  3)[내용] 15%였습니다.  (사실 비율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대개 저 정도 숫자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당연히 내용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러면 저렇게 질문을 할 리가 없지.  답은 표정  어조  내용일 거야”라는 관점에서 정답(?)을 냈던 저였지만, 강사님의 얘기를 들어 보니 저 순서가 나름 수긍이 가더군요.


“야 이 씹새야.”



놀라지 마세요.  저와 당신은 10년 지기이고, 서로 아무 허물 없이 통하는 사이입니다.  당신이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 바람에, 저는 크게 웃으면서 저 말을 하고 있군요.


서로 간에 신뢰감이 있는 상태에서, 상대가 웃는 표정으로, 즐겁다는 듯이, 어떤 말을 한다면, 사실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이든 웬만한 경우 나는 상대의 얘기를 호의를 갖고 받아 들이게 될 겁니다.  만약 상대가 웃는 표정이긴 하지만, 딱딱하게 굳은 어조로 얘기를 한다면, 나는 나름 긴장을 하고 얘기를 듣게 되겠지요.  상대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험악한 어조로 얘기를 한다면, 얘기의 내용이 아무리 내 쪽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상대가 내게 호의를 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넷 상에서 글과 글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때는, 말 그대로의 [표정], [어조]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면, 글쓴이의 표정과 어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글의 주제도 물론 글쓴이의 표정과 어조를 느끼게 하는 데 영향을 주겠지만, 그 보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사용된 어투와 어휘 선택입니다.  같은 소재, 같은 주제를 다룬 글이라도 사용된 어투와 어휘의 선택에 따라, 읽는 사람이 받는 느낌이 퍽이나 달라집니다.  자신이 받는 느낌에 따라 글에 대한 수용도도 달라질 거구요.


어쩌면 제 얘기에 이런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A  “잘 읽었습니다.  다만 설명조의 말을 줄이고, 생생한 실례를 들어 표현했다면 좋은 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댓글B  “뻔한 소리 재미없군요.  님부터 표현력 기르는 데 신경 쓰셔야 할 듯.  ^^”

똑같이 글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댓글이지만, 아마 제 낙담은 A쪽이 훨씬 덜할 것 같습니다.  ^


공격적인 표현, 비꼬는 표현은, 그 대상자의 반발을 불러와, 생산적 논쟁을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번지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글 둘

저는 스타를 직접 하는 시간보다도, 게임 방송을 시청하는 시간보다도, PGR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긴 나름 골수 유령 회원입니다.  근무 중, 또는 근무가 끝난 후에라도, 사내에서 게임을 한다거나 중계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취미가 컴퓨터 게임이라고 하면, 게임 중독 폐인을 연상하는 문화가 남아 있거든요.  때문에, 수수한 색상에 텍스트 만으로 이루어진 PGR은 아주 좋은 안식처이지요.  ^  (지난 번 상단 배너 바꾸는 이벤트를 했을 때, 혹시 화려한 색상으로 바뀌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었습니다.  ;;;;)
눈팅 유저인 주제에 PGR 유저분들께 바라는 것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가 주저가 되지만, 안식처가 너무 자주 싸움터로 변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얘기를 꺼냅니다.


프로리그 확대, SKT T1의 개인리그 선택적 참여, 협회 랭킹 1위 선정……  작년 PGR 게시판을 달궜던 주제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논쟁 거리들이 두세 페이지에 걸쳐 비슷한 글들을 죽 올라오게 만드는 위력을 갖게 된 데는, 온게임넷 대 엠비씨게임, SKT T1 대 반SKT T1(≒임빠 대 임까?  ^), 테란 대 반테란 같은 해묵은 대결 구도들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한편으로 토론의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표현들, 상대방을 욱하게 만드는 표현들이 감정 싸움의 불을 지폈다는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저는 PGR이 가끔 씩 논쟁 중심 사이트가 되면, BBS를 떠나 추천게시판에 가서 놀곤 하는 현실순응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넓게 말해 e-sports)와 관련된 주요 사건들이 생길 때 마다 PGR이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현재 PGR이 e-sports계에서 갖게 된 일종의 사회적 책임임을 알고 있습니다.


e-sports 업계에 계시는 분들 중 다수가 PGR을 공식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모니터링 하실 겁니다.  매니아 층이 중심이 되어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줍니다.  아니, 귀를 기울여 주는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관심을 갖고 글을 읽어 줍니다. 각 글의 조회수가 못해도 1,000번, 보통 2,000번 정도 나오는 걸 보면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을 올리기에 이렇게 까지 좋은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만큼 write 버튼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읽고 싶은 글을 찾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글을 클릭했을 때, 뻘글이 아닐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고, 기분 나빠지지 않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논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고, PGR은 그 논쟁의 장을 제공할 수 밖에 없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리 + 현실입니다.

그러나 표현에 조금만 신경 쓰면, 논쟁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싸움만은 줄일 수 있습니다.










Ps> 물론 어투와 어휘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그것은 글쓴이의 진심이겠지요.  화난 상태에서 글을 쓴다면, 심사가 뒤틀린 상태에서 글을 쓴다면, 좋은 어투와 어휘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을 다 감추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면, 일단은 글 올리기를 미뤄두면 어떨까요?  어쩌면 내일 다시 생각해 봤을 때, 오늘 나를 화나게 했던 사건 또는 글이 내일은 사실 오늘만큼 나를 화나게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일 그 사건 또는 글이 또 다시 나를 화나게 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두 번 세 번 접한 사건, 읽은 글은 처음에 보았을 때만큼 내게 생생한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화난 표정으로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계시지는 않은가요?




Ps2>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그렇듯, 넷 상의 게시판이면 어디든 그렇듯, PGR에도 논쟁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어느 정도의 논쟁은 꼭 있어야 사람 살 맛이 날 겁니다.  크림 수프에 후추를 안 치면, 맛이 밍밍해져 식욕을 덜 자극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후추를 지나치게 많이 치면, 아예 한 통을 다 쏟아 부으면, 그거 먹고 싶지 않아질 것 같아요.


PGR, 논쟁의 장 그 자체가 아니라, 논쟁의 장"도" 제공해 주는 스타크래프트(e-sports) 팬 사이트로 남아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항즐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2-21 01:29)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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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7/02/20 21:24
수정 아이콘
추게. 를 외치고 싶어집니다.
맞습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어조때문에 화나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오윤구
07/02/20 21:25
수정 아이콘
게다가 키보드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졌을때 말하는 속도와 생각하는 속도가 거의 같아진다면
글자를 입력하는 속도도 마찮가지죠. 그게 참 무서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이시로
07/02/20 21:26
수정 아이콘
글쓰는 probe님의 표정엔 진지한 걱정과 여유있는 웃음이 공존하지 않았을까요?
'믿음'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글입니다.
추천 한방 쾅 때리고 가겠습니다.
07/02/20 21:30
수정 아이콘
글이 아직 GameBBS에 있군요. 이상하네요~
07/02/20 21:37
수정 아이콘
에이스 거쳐서 추게로~~ 글 잘쓰셨네요.. 상당히 공감가는 내용이고
오래간만에 로그인 하네요 덕분에..^^
느와르
07/02/20 21:40
수정 아이콘
“뻔한 소리 재미없군요. 님부터 표현력 기르는 데 신경 쓰셔야 할 듯.^^
농담이고요^^ 참 새로운거 터득했네요 저도 참 내성적인 성격인지라 도움많이됐습니다 표정은참 ,, 그냥 쉽게 변화할수있는 도구인것같습니다
07/02/20 21:41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네요.
추게로, 한 표 던집니다 .
느와르
07/02/20 21:42
수정 아이콘
웃는 표정으로도 얘기해도 내용과 어조에선 .. 웃음으로써 허락되지못할 비수가 종종 숨기도하거든요 ..
종합백과
07/02/20 21:45
수정 아이콘
'쉽게 읽는 공지사항'

이라고 평해도 좋을 정도로 내용도 알차고 공감가는 부분이 많군요.

공지사항은 글이 길뿐더러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 드는데, pgr의 사상(?)이 잘 투영된, 찾으시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에게로 gogogo~
제로벨은내ideal
07/02/20 21:49
수정 아이콘
하하 재밌었습니다~^^. 윗부분에서 "10새" 보고 깜짝 놀랐었어요 크크.
연휘군
07/02/20 22:02
수정 아이콘
글이 아직 GameBBS에 있군요. 이상하네요~ (2)
信主NISSI
07/02/20 22:03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하지만 종합백과님... 전 저 딱딱한 공지사항이 더 좋답니다... 전 PGR의 좋은 글 1위에 언제나 저 공지사항을...
07/02/20 22:06
수정 아이콘
^o^b..추게로~~
굿리치[alt]
07/02/20 22:13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하지만 이런글 써도 몇몇사람들의 말투는 고쳐지지 않는게 아쉽죠
My name is J
07/02/20 22:13
수정 아이콘
제일 중요한것은 '다 꼴보기싫어지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는것이겠지요.
절대 논란이, 혹은 논의가 누군가를 포기하고 싶어지는...정도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것은 조금은 무심한 마음가짐일지도요. 으하하하-
제3의타이밍
07/02/20 22:34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추게로
07/02/20 22:5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pgr이기 때문에 읽을 수 있고 같은 골수빠(?)이기에 이해되고
공감이 되는 글 입니다.
댓글은 달지 않지만 논쟁을 읽는 재미에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사이트입니다.
추게에서 뵈요^^
이카르트
07/02/20 23:03
수정 아이콘
굉장합니다ㅡ!
처음으로 이 댓글 달아봅니다, 추게로!^^
07/02/20 23:15
수정 아이콘
세이시로님> 인간이 게으른지라, 여유있는 웃음을 지을 정도면 넷 상에서 이런 얘기 잘 안 꺼냅니다. 나름 서식지가 파괴되어 가는 도롱뇽의 심정에서 쓴 글입니다. ;;
종합백과님> 공지 사항과 비교해 주시니 과찬인걸 알면서도 기분은 좋네요. 그걸 주욱 풀어쓰려면, 이 글보다 열 배는 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My name is J님> 말씀하신 대로, 싫어져 떠나시는 분도 있겠고, 다 그런거지 라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쓰신 글들을 보면, J님께서는 이미 후자에 이르고 계시지 않나 생각되네요. ^

웃으며 달아 주신 리플들, 감사합니다.
AstralPlace
07/02/20 23:37
수정 아이콘
제가 최근에 본 최고의 글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웃으면서 찔끔하게 하는 글이네요.^^;
자신있게 추게로!를 외쳐봅니다.
07/02/21 00:16
수정 아이콘
에? 이글이 왜 여기에 있죠?
빨리 추게로^^
07/02/21 00:24
수정 아이콘
모두가 공감하는 가운데 어서 추게료~ ///
07/02/21 00:29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봤습니다. 추게로~~~ ^^*
07/02/21 01:05
수정 아이콘
추게추게추게~~~
Fields of Hope
07/02/21 01:32
수정 아이콘
방금 게임게시판에서 코멘트를 다려는순간 '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곳에 와있군요;
구경만1년
07/02/21 01:56
수정 아이콘
이런분들의 이런글 때문에라도 피지알에 상주하면서 눈팅을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 좋은글 잘봤습니다 (__)
07/02/21 09:33
수정 아이콘
논쟁으로 가는 지름길
1>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조건 자신 중심의 생각이 옳다고 훈시하는 경우
2> 상대방의 글이 어떤 경우든 맘에 안든다고 꼬아서 공격해 얘기하는 경우
3> 상대방 직업이나 나이를 타겟으로 공격하는 경우
등등...
대충 별 생각없이 다는 리플이라도 그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면 그만큼 생각을 여러번 추스리고 써야합니다.
07/02/21 11: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저도 텍스트 중심의 피지알이 참 편하고 좋은 곳입니다. 직장 상사 눈치 안 보고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이트중의 하나지요 ^^
사일런트
07/02/21 13:58
수정 아이콘
글 정말 잘쓰시네요..

좀더 밝은 주제로 많은 글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07/02/21 15:23
수정 아이콘
이 말을 제외하면 더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추게로!
김영대
07/02/21 17:53
수정 아이콘
당연히 추게로..
많이 느끼고 갑니다. ^^
기영우
07/02/21 22:57
수정 아이콘
추게로. 온라인 상에서라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글을 쓴다면 더 좋은 글과 더 발전된 토론을 할 수 있다는것은 당연하지만 어려운 얘기. 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보고 마음 상하지 않게 글을 써주었으면.
07/02/22 09:51
수정 아이콘
probe님 대단하시네요
전 probe님의 글은 저번의 온게임넷?온게임넷..인가를 읽고 이번이 두번째인데 벌써 팬이 되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sway with me
07/02/22 12:45
수정 아이콘
얼른 가세요~
추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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