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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6/20 04:30:18
Name Apatheia
Subject [기타] [잡담] 기가 막혀서.
바조를 좋아했다.

카톨릭 신자가 많은 이탈리아에서는 특이하게 불교를 믿는다는,

작고 호리호리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키 크고 어깨 넓은 유럽의 육중한 수비수들 틈을 뚫고 지나가

물찬 제비같은 몸짓으로 슛을 날리던 그를 좋아했고

그런 만큼 그의 불운에 마음이 아팠었다.

또한 말디니를 좋아했다.

홍짱과 웬지 비슷해 보이는 이미지,

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책임지는 좌장이라는 위치를 좋아했고

그다지 거친 반칙은 하지 않으면서도

질기고도 교묘하게 상대를 틀어막을 줄 아는 그 우아함을 좋아했다.

그들의 푸른 유니폼 셔츠를 좋아했고

그들의 리그 클럽을 좋아했으며

세번에 걸친 월드컵에서의 승부차기 패배에 덩달아 마음이 아팠었다.

축구팬으로서의 나는.



좋아하는 것에 실망한다는 것은 늘 그만큼 아픈 일이지만

어제의 그 감격적이던 승리 뒤로 날아든 몇 개의 뉴스는

내게서 내가 가장 사랑하던 팀 하나를 빼앗아가 버렸다.

물론 억울하겠지.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케이스는 다르지만

심판의 헛짓거리에 다 딴 금메달을 놓쳐본 적도 있는 우리가 아닌가.

응당 내 것이라 여겼던 승리가 남의 차지가 되었을 때의 그 좌절과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건 너무 추하지 않은가.

한번의 패배가 있었다고 해서, 한번의 탈락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의 월드컵 3회 우승이 우리의 것이 되는가?

그들의 피파랭킹이, 카테나치오가, 파올로 로시가 우리의 것이 되는가?

모두들 19일 밤의 이변에 놀라고는 있지만

그 누구도 '이제 이탈리아는 끝장났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도 수차례 없이 겪은 월드컵에서의 패배 중 한번일 뿐이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강자고,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는 신예다.

강자의 어리광은 횡포일 뿐이다.

물론 안타깝고 분하겠지만

인정하기 싫고 돌아보기도 싫겠지만

그렇게까지 비굴하고 치졸하게 이건 옳지 못하다고 장광설을 퍼부어야만 하는가?

왜 그들은 이름없는 아프리카의 소국에 패해 조별예선을 탈락하고도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프랑스의 전철을 따르지 못하는가?



어제 승리의 여운이 가라앉을 무렵,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허공만 쳐다보던 푸른 셔츠의 한 선수를 보며

일말의 애잔함도 느꼈었지만

이제 그들의 푸른 빛은 내겐 더이상

세련되고 견고하며,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축구의 상징이 아니다.

자신의 교만을 반성할 줄 모르고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독한 비겁자의 색깔로 각인되고 있을 뿐이다.

축구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아했던 팀 하나를

이제 버려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내 것을 두고 남의 것을 동경하며 부러워한 탓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보란 듯이 잘할 수 있는 이들을 차가운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며

너희들은 안된다 라는 섣부른 낙인을 찍었던 탓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난 5대 0으로 지는 팀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승리를 강탈당했다며 징징거리고

힘없는 선수 하나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치졸한 나라의 국가대표팀을 응원할 수는 없다.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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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즐이
02/06/20 04:41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_-
Farewell....with past honor as Forza Italia. -_-+
Apatheia
02/06/20 04:45
수정 아이콘
토티가 퇴장당했을 때 어느 정도의 뒷말은 있을 걸 예상했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나올 줄은... 그간 이탈리아에 쏟은 정이 아깝군. 원래도 제일 좋아하던 팀은 네덜란드이긴 했지만 말이지...
수시아
02/06/20 09:01
수정 아이콘
이탈리아 진짜 실망만 커지네요...저 또한 변화중인 이탈리아 축구를 애착있게 본 사람으로서 글들을 읽다보니 이탈리아 축구를 자세히 보면 수비축구라 할 수 없다..수비만 하는 게 아니다라는둥 편들어주고 변명을 해 주었건만...부끄럽네요...Good bye~ 이탈리아~~!! 양키같은 종족들....
박세영
02/06/20 09:40
수정 아이콘
그들로써는 우리에 대한 비난과 억울함으로써
애써 당황스러운 그들로써는 있을을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것이지여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현실을 받아 들일수 없는 나라인듯... ^^;
근데 세네갈은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수 있겠져..
프랑스는 거의 파상공세를 펼쳤지만 운이 지독하게 없었고
그걸로써 프랑스 국민들은 스스로를 위로할수 있었던것 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잘 싸웠다 그러나 운이 없었다'라는 식으로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는 압도하기는 커녕 비등한 아니 후반으로 갈수록 밀리는 경긱를 했기때문에 국민들에게 변명 거리를
만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공정한 경기였다는 것은 세계 모든 언론들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넘 흥분하지마세여~~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위로하라고 하세여~~ ^^; 승자의 여유로

P.S 변명거리를 줬다는 것이 아쉽네여!! 하지만 토티의 판정은 확실한 오버액션.. 그것은 토티의 체력이 다한것이지 우리의 반칙이 아니다 말씀임다.. ^^;
02/06/20 10:27
수정 아이콘
저도 좋아하던 그 바조는 이태리식의 축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02/06/20 15:24
수정 아이콘
사실 예상은 했었고 처음 그들의 반응에 어느정도는 그려려니 했는데.. 갈수록 가관이더군요.. 이탈리아.. . 그런 나라일줄 몰랐습니다. 췟!!
벌쳐의 제왕
02/06/21 02:21
수정 아이콘
바조의 전성기 시절은 정말 환상이었죠... 저도 그의 팬이었고... 그래서 이태리 팬이었고... 그가 패널티킥시 공을 골대위로 날려버렸을때 연민?도 느꼈고... 선수하나만 보고 나라를 좋아했었는데...
하지만 이것이 깨어져버린건... 97년 배낭여행시...
여행객 노리는 도둑많기로 소문난 이태리... 나폴리 광장앞 썩은 짐승의 시체들... 폼페이 가는 기차에서 돈 구걸하는 사람들... 다수의 횡포... 으~~~ 싫다. 지금껏 여행한 나라중 싫어하는 두 나라 이태리, 호주 으~~~
비슷하다. 우리나라랑... 반도국이 갖는 지리학적 민족성...
그들은 우리가 오노사건 당시 느끼던것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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