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웠던 그 집에 거한이 들이닥친 것은, 한 남자가 추위와 외로움에 떨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때처럼 늦은 밤이었다. (...)
"여기서 하루 묵을 수 있을까?"
툭 쳐도 부러질 것처럼 강하고 험악하게 생겼지만, 의외로 말을 조곤조곤하게 하며 잠자리를 부탁하는 그에게 굳이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괜찮은 자리를 마련해 주면서 그들은 거한이 던져 준 금화를 받았다. 이걸로 남는 장사였다.
거기다 거한은 먹을 것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것도 자기 마차를 끌던 염소를 주며 요리하게 했다. 이게 왠 횡재인가 (...) 그 날은 가족들 다 푸짐하게 먹었다. 다만, 그 거한의 말이 조금 이상했다.
"다른 건 다 먹어도 되는데, 뼈는 버리지 말고 한 곳에 모아 둬. 그리고 살은 몰라도 뼈에는 절대 칼을 대면 안 돼. 물론 먹어도 안 되고 말이야."
이상했지만, 어차피 그 거한이 주는 건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그 날은 잘 먹고 잘 놀았고, 다음 날이 찾아 왔다. 다음 날, 거한이 자기 짐에서 거대한 망치를 들 때까진...
부부는 물론 그 자식들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거한의 일행이었던 뭔가 주는 게 없이 밉게 생긴 동료도 입을 삐죽대며 이렇게 말 했다.
"지금 자랑하시는 겁니까요?"
"뭐, 어차피 밝혀야 할 거잖아. 자, 너도 이제 일어나야지."
거한은 염소 뼈를 모아둔 곳에 가서 이렇게 말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뼈가 서로 붙고 살이 생기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의 염소로 돌아간 것이다.
염소 마차를 끄는 토르, 옆에 로키랑 티얄피, 뒤에 로스크바
확실했다. 이들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망치라면...?
그 집 식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릎을 끓었다. 토르, 그들 앞에 신이 나타난 것이다.
"아이구, 아이구, 용서해 주십쇼. 토르님이신 걸 진작에 알았다면 저희 자리라도 드렸을 것인데..."
손이 발이 되게 비는 그들에게 토르는 살짝 웃으며 안심시켰다. 애초에 노숙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건 별 상관없었으니까. 계속 비는 그들을 여러 차례 다독이며, 토르는 기운차게 거인을 향해 가려 했다. 마차를 끌어야 될 염소가 절뚝거리는 걸 보게 될 때까진 -_-;
토르의 얼굴이 다시 험악해진 건 누구든 예상할 수 있었으리라.
-------------------------------
범인은 참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부부의 아들 티얄피Þjálfi였다. 그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죽을 죄를 지었으니 목숨만 살려달라는, 죽이라는 건지 살리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말만 계속했다.
토르의 망치가 한 두어번 허공을 맴돌았다. 화는 났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아끼는 인간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까... 어쩔까 -_- 거기다 로키도 죽일 필요는 없지 않냐면서 그 망치는 거인을 위해 써야 된다느니 저번에 인간 몇 명 죽였을 때 오딘이 얼마나 화를 냈냐느니 하면서 괜히 분위기만 잡고 있었다.
토르의 결정은 그리 늦지 않았다.
"어이 너. 장기가 뭐야?"
화들짝 놀란 티얄피는 배를 갈라 장기를 확인하는 것만은 참아 달라면서 그렇게 되면 효도를 할 수 없다느니 하면서 먼 동방의 나라에서만 통하는 드립을 쳤다.
"아니 그거 말고, 너 잘 하는 게 뭐가 있냐고."
살아날 구멍이 생겼다는 안도감, 티얄피는 자랑스레 자기를 어필했다. 달리는 것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시범을 보였다. 과연 인간의 발로 달림에도 말보다 더 빨랐다.
토르는 망치를 매만지며 말 했다.
"그래. 이번 한 번 뿐이니까 봐 주지. 하지만 대가는 치러야 될 게야. 네 놈, 티얄피라고 했지? 너는 날 따라 와. 그리고 뒤에 이름 뭐랬지? 쟤도 나에게 맡겨. 앞으로 키워 줄테니까."
부부는 뒤에 있는 어린 딸을 보았다. 이렇게 아들과 딸은 죽을 길에 가는 건가. 제발 살려달라고, 차라리 날 데려가라고 울며 소리치는 통에 또 시간을 끌어야 했다. 하지만 토르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어차피 시종은 필요했고, 살려주는 셈 치고 둘을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부부도 그걸 알게 된 후에는 오히려 감사했다. 끌려간다 하나 신에게 선택된 것이 아닌가? 그저 영광 또 영광이었다.
이렇게 티알피와 로스크바Röskva는 토르의 시종으로 계속 따르게 된다. 일단 다리를 저는 염소 대신에 마차를 끄는 것부터. 후에 그는 비록 패하긴 했지만, 그의 달리기가 얼마나 빠른지 유감 없이 보여주게 된다.
-------------------------------
티얄피가 빠르긴 빨랐다. 로스크바는 마차 한 가운데에서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얌전히 있었다. 그런 가운데 토르가 로키에게 말을 건냈다.
"니 짓이지?"
"네? 에헤헤."
"아무리 젊은 놈이 똘끼가 있다 해도 뭔가 좀 이상하거든?"
"아, 에헤헤헤 그게 말입죠."
---------------------------------
"어이 너, 염소 골수 맛있는 거 알지?"
고기를 다듬고 있던 티얄피에게 로키가 다가왔다. 일단 거한의 일행인데다 비슷하게 덩치도 커서 티얄피는 긴장했다.
"에 네... 좋아하긴 합니다만."
"먹어. 특히 그 골수는 정말 맛있을 거야."
"네? 하, 하지만 절대 먹지 말고 칼도 대지 말라고 했는데요?"
"이봐 이봐. 나도 그 일행이라구. 젊은 놈이 용기도 없냐? 이럴 땐 저지르는 거야. 나도 한 입 주고."
"아... 예. 그러시다면..."
"물론, 내가 말 했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알겠지?"
-----------------------------
"어차피 거인에겐 차갑지만 인간에겐 따뜻한 토르님이라면 당연히 용서해 주실 거라 생각했습죠. 염소야 곧 치유될 거고, 이렇게 인재를 하나 또 구했지 않습니까? 저 녀석이 발이 빠른 거야 딱 보면 나오거든요."
"-_-; 어이구 그래. 잘 했다."
이렇게 아스가르드에는 식구가 더 늘었다. (...)
=====================================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에 따르면, 원래는 고틀란드 지방에서 빛과 불을 가져다 준 신으로 숭배된다네요. 채록 과정에서 인간으로 격하된 듯.
... 대체 신들은 언제까지 낚시질을 할 건지 (...) 다음 편부터 토르의 신나는 망치질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