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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5/13 15:03:22
Name par333k
Subject 상상하지 않은 만큼, 비겁해 질 수 있었다.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다. 얼핏 생각하면 사람이 마치 논리와 단계적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이 상상력의 통제를 강하게 받는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때에 논리적인 단계적 답안(칼로리와 운동, 신체등의 관계에 의한 변화와 건강 등)이전에 우리는 다이어트를 통해 완성되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가 각종 문화매체에서 감동을 얻는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인간은 영원히 홀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상대에 대한 상상을 통해 겨우 서로 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상상력이 가지는 포괄적 의미를, 이 글에서는 이렇게 한정하고 싶다. '상상력이란, 온전히 그 대상이 되려 애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처한 것들을 느껴보려 하는 것이다.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 그 이해 너머의 것들을 위해서.'



우리가 풍부히 상상하지 못할 때, 우리는 비극을 맞이한다. '지도 위에는 사람이 없다'는 표현처럼, 우리는 상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타인이 갖는 삶과 주어진 환경에 대해 상상하지 않았을 때 더욱 상대에게 냉정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다. 우리의 이성이란 때때로 이성의 탈을 쓰고 자신의 상상력을 억압하고는 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있어서, 비겁자로 남지 않으며 그러나 악역으로도 남지 않기 위한 변명의 준비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사회문제에 있어서 '제도적 개선'이라는 단어를 많이 본다. 나 역시도 그 단어를 쓰기를 좋아했다. 그건 정말 마법과도 같은 환상적인 단어였다. 전지전능한 단어. 제도적 개선이라니. 이 단어를 통해 나는 내게 주어졌어야 할 책임을 피할 수 있었고, 두리뭉실하고 현실 어느지점에 존재할 지 모르는 그 제도적 개선이라는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닌 남이 해 주는 일이라고 믿었고, 지금의 문제에 있어서 내 잘못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해 주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비극들에 대해 저 단어를 남발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제도의 문제다, 사회가, 집단이, 국가가 라고 말하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것을 뿅 하고 해결해주길 바랬다.




나는 제도에 대해서 정말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제도는 과연뭘까. 안타깝게도 제도의 정체를 알기 위해 제도를 상상하면 할 수록 그것은 내가 바라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이 빠진 칼날임을 깨달아야했다. 제도는 아주 일부만의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한다. 제도로 성립되기위해 필요한 수많은 전제 조건과 절차들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엄청난 넓이의 '문제가 벌어지는 지점들'에 대해서 대부분 케어할 수 없었다. 특히, 어떤 문제가 터짐에 있어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감정등에 새겨진 문제는 제도가 그 어떤것도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그저 제도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도로서 허락하고 제한할 수 있는 부분'들에 힘을 쏟으며 반대로 개인에게 기대려했다. 개인은 제도가 모두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랬고, 제도는 개인이 제도가 손댈 수 없는 부분에서 행동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벌어진 간극에서 비극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물론 실제로 명확한 제도로서 막을 수 있는 것들의 실효는 대단했다. 제도는 제도 그 자체로 커다란 효용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변두리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오로지 우리 손에 맡겨져 있었다. 오히려 그럴때 제도는 좋은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변두리에서 일어나는, 제도를 통해 막을 수 없는 감정적인 비극의 과정들은 대체로 제도의 손에 걸릴 때 까지의 피해를 우리의 손으로 막아야했지만, 우리는 제도가 나설 때 까지 가만히 있는 편을 택하고는 했다. 예를 들어, 극심한 왕따문제가 벌어짐에 있어서 당사자가 자살을 하거나 고소를 하기 전 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권력관계의 제물이 된 그 아이임을 다행스러워하며, 이 문제가 자신보다 더 큰 파워의 소유자- 교사,제도 등-가 한번에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방관한다. 그들은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권력관계라는 것이 실제로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이해관계가 부합되며 부풀려지는 힘임을 생각한다면, 아마 그 방관자들이 비겁해지지 않는 순간이야말로 이러한 권력관계의 종말을 만들어내는 순간일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기에 오늘도 어디선가 비극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도는 처음과 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처음과 끝 사이의 간극동안, 비극은 차곡차곡 쌓인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제도 제도를 외치며 제도의 확장을 원하지만, 그 확장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그저 그것을 회피할 뿐이다. 제도는 만능이어야 하니까.





과연 제도밖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가운데에 내가 있었다면, 그리고 내가 그 누군가에 대해 깊게 상상했다면 나는 그러한 비극을 외면할만큼 충분히 비겁해 질 수 있을까? 잔인해 질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자연스럽게 상상하다가도, 이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 상상을 그만두고는 했다. 우리는 상대에게서 내것이 될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해 좀 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큼 독해지고, 그만큼 비겁해질 수 있었다. 그러한 행동은 논리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너무나 잘 스스로를 다독여주었다. '해야할 일이야. 어쩔 수 없었어. 나를 위해서야.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정당화된 비겁한 방관자는 태어난다.



나는 타인에 대한 상상,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공감이 '제도적 개선'처럼 여기저기에 붙여서 모두 그럴듯한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그러나, 적어도 이성으로 판단하는 똑똑한 논리들보다, 상대에 대해 더 많은것을 깊게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영원한 남'인 우리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부르짖던 제도의 개선, 시스템의 변화 따위들이 사실은 나 스스로의 도주를 위해 만들어 놓은 변명이었음을 직시하면, 언제부턴가 변해야하는것은 '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제도의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그 중요함 만큼이나, 내가 비겁해지지 않는 것이 모든 비극에 있어서 중요한 일임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은 '비겁한건 나쁜게 아니야'라고 떠드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니다. 비겁한 것은 나쁜 것이다. 그저, 모두가 비겁하려 하기에 모두 나쁘지 않다고 속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딘가에 나눠 가졌어야할 책임을 던져버렸다. 그 책임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야만 한다.



도덕을 교육하기전에, 나와 네가 이해할 수 있을만큼 서로가 되어보는것. 어쩌면 지루한 윤리교육이전에 이러한 상상의 노력이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할 행동을 가르쳐주는게 아닐까? 물론 윤리는 논리로서 우리의 선의에대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그래서 중요하지만. 정작 선의를,용기를,이해를,관용을 느끼는 경험없이 그것이 작동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 집합이 이뤄졌다한들, 인간이아닌 특정한 이름과 그 성격을 정할 수 없으면 정체성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일체성을 느끼지 못하는, 영원한 남인 우리가 말이다.



사람은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상상으로 움직인다. 논리와 이성은, 그러한 상상을 구체화 시켜주는데에 도움을 줄 뿐이다. 논리와 이성만으로 무장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되고, 더욱 더 잔인해 질 수 있을것이다. 오랜 역사속에서 벌어진 작고 큰 권력관계와, 잘못된 믿음이 저지른 수많은 비극들은 상상이 없는 비극이며, 상상하지 않은 만큼 비겁해지는 것이었다. 사람을 보지 않은 곳에서, 사람을 상상하지 않은 곳에 인간다움따위는 없다. 그러니 상상하지 않는다면 비극은 줄어들지 않을것이다. 상대에 대해 다양하고 깊게 상상할 수 있는게 오로지 인간 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상대를 더 깊게 바라보고 상상함으로써 더 나은 상황으로 일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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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3/05/13 15:11
수정 아이콘
의미있는 글이네요

제도주의 구조주의가 직면하게되는 한계에 대해 참신하게 상상하신듯 합니다 :)
제 전공쪽에서는 구조에 대한 회의로 신고전 블라블라 가 나왔지요
제도의 미완비 비포괄성 못지않게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의구심 또한 커지니 불확실성을 줄이고 상쇄하는 보완 정도로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3/05/13 15:12
수정 아이콘
여친을 늘 상상하는데 별로 나아지지 않는군요... 국가가 여친을 맺어주는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13/05/13 15:13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상상과 공상 혹은 망상의 차이에서 비극이 벌어지는 듯 합니다.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3/05/13 15:15
수정 아이콘
왜 모니터에서 나오질 못하니ㅠ
흐콰한다
13/05/13 15:31
수정 아이콘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해 상상할줄 알고, 스스로 변화하고, 비겁하지 않으려하고,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주장하는 '제도의 개선'이야말로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지요.
흐콰한다
13/05/13 15:32
수정 아이콘
그리고 비겁한 저는 '그사람'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일거라는 투로 아주 자연스럽게 댓글을 달고 있군요.
13/05/13 15:55
수정 아이콘
의외로 현실에서는 저런 사람이 외면당하는 경우가 더 많은거 같아요. 불편하거든요. 내가 피하고싶은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DarkSide
13/05/13 15:59
수정 아이콘
제도적 개선에 대해서 다시금 주의 깊게 심사 숙고하고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추천 하나 드리고 갑니다.
에키따응
13/05/13 16:09
수정 아이콘
......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엷은바람
13/05/13 18:11
수정 아이콘
저도 무슨말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싶은데,
살짝 애매하게 써놨음에도 감정이입이 팍팍 가는 글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한 때 그 상상을 의도적으로 제재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꽤나 내면의 괴로움을 맛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본문과 같은 맥락은 아니었지만요. (본문은 '공감'에 치우쳐있다고 이해합니다)

상상을 피하는 일들은 어쩌면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둔 방어벽일 지도 모르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이 어쩌면 그 개인으로써는 가장 행복한 사람일지도요..
아케미
13/05/13 19:03
수정 아이콘
나날이 비겁해지고 있는 저를 푹푹 찌르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13/05/13 20:32
수정 아이콘
공자나 예수님이나 돈키호테가 실제로 바꾼 건 거의 없지요. 저는 그 비겁한 사람들이 일상을 바꿔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적고 나서 다시 댓글을 보니 왠지 비겁한 변명 같네요. 흐흐
13/05/13 21:30
수정 아이콘
바꿔나간 사람들은 비겁하지 않았어요. 비겁하지 않으려 한 사람들이 바꿨지. 비겁한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에 순응했고 역사의 과정이 변했을뿐이라고 생각해요. 조타의 방향을 바꾼건 그들이 아니라고봐요. 물론 비겁함이 용감함과 양분될수없고, 시대의 요구에따라 필요한 용기가 적어지고 리스크가 줄수록 많은사람들이 용기있는 대열에 합류했지만요.
13/05/13 21:50
수정 아이콘
물론 말씀하신 내용처럼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는 않았겠지만 저는 각종 기술의 발전을 생각했습니다. 크게 보면 불, 바퀴, 화약, 종이, 인쇄기술, 상하수도, 증기 기관, 전기, 통신, 화학 비료, 백신, 비아그라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이러한 것들이 기존의 제도와 어우러져 사람들의 일상을 서서히 바꿔나간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것을 보수로 본다면 par333k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진보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모든 사람이 진보를 지향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합니다.
13/05/13 22:47
수정 아이콘
기술의 발전은 비겁함의 여부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되려 끊임없이 더 나은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이 가진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뿐, 그것이 용기와 비겁함의 영역에서 다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되려 그 기술이 시대가 원치 않았음에도 증명된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용기있게 발표하며 탄압을 견디어 낸 사람들이야 말로 용기있는 분들이었겠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보수와 진보로 갈릴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인류 공통이 지닌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3/05/13 23:27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내용처럼 <비겁함 여부와는 상관없는, 그리고 끊임없이 더 나은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이 가진 의지>가 비겁한 사람에게도 있기에 그 안에서 일상을 바꿔 나가는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잠깐 숨을 고르면서 기다리는 순간도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물론 par333k님이 생각하시는 기준에서 본다면 마음에 안들테지만, 그래서 위에서도 비겁한 변명 같다고 적었고, 소위 비겁한 사람도 인류로서의 역할은 나름대로 하고 있으니 그럭저럭 살아갈 가치는 있지 않은가 합니다.
13/05/13 23:59
수정 아이콘
비겁함의 여부와 상관이 없다는 뜻은, 그것이 '비겁한 사람에게는 없다 있다'의 지점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의 중심의미는 이해했습니다만, '비겁함'에 대해 서로 의미를 다르게 두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비겁함'이란 방관자로써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 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지, 변화할 용기에 대한 비겁함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무감각한 방관자'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변하는 것 또한 변화의 용기이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기준은 '비겁하지 않은 지점'에서의 변화에 대한 태도(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아니라, 이미 있어서는 안되는 지점 (왕따, 제노사이드 부당해고 등등)에서의 방관자로서 남아있는 '비겁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설명으로 대화의 간극이 좁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본문의 주제와는 별개로 다시한번 잘 읽었습니다.
13/05/14 19:42
수정 아이콘
일단 저는 시스템에서 약자가 형성된 경우로 <노예, 노동자, 여성, 외국인, 장애인 등>을 떠올렸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직접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되지 못하겠지만, 차선으로 시스템 자체의 힘을 키워 간접적으로 이러한 사람을 도우는데 일조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개인의 힘에는 한계가 있기에 결국에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겠지만) 시스템의 힘이 발전하는 것에 기대는 방법외에 별다른 수가 딱히 있나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중간 단계는 개인이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기본적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초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한가지 방향이겠으나 여태까지 인류의 역사나 사람의 본성을 비추어 보건대 아무래도 힘들지 않나 싶고요. 개인적으로는 불가능이라 봅니다. 하지만 지엽적인 측면에서 본문의 견지는 저도 동의하며 그렇게 세상이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은 언제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천성이 비겁한 사람이라서, 노력은 해야겠지요.

하여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人在江湖
13/05/13 23:4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히히멘붕이
13/05/14 01:31
수정 아이콘
결국 문제의 해결은 끊임없이 보완되는 제도와 상상(생각)하고 행동하는 개인, 두 요소가 공존할 때 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겠네요. 뜬금없지만 저는 학교에서 인문학 수업을 강조하는 것이 이런 개인의 상상력의 극대화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가령 영화 일포스티노에서는 마리오라는 주인공이 파를로 네루다를 통해 문학을 접하고 삶과 사랑에 대해 깨달아가게 되면서, 먹고 사는 것 외에 내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많은 지점에 대해 알아가게 되지요. 단순히 물질적이고 나 자신에 국한된 삶의 문제에서 벗어나 타인을 느끼고, 감정이입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어 문학수업이 많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요즘은 그런 수업을 받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13/06/12 11:49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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