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학창시절 중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전부 집합이란 것을 당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지금와서야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때는 방송부에서만 그런 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실상을 잘 모르고,
대학은 한국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로 학교는 다르지만 제 동생은 피아노과를, 여자친구는 작곡과를 나왔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고
세상에 그런 일이 정말 존재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일도 많았습니다.

물론 음악을 전공했다고 다 이런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음대 전공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동생의 경우 예고를 나와 고등학교 때에는 선후배 군기가 엄청났고, 그나마 그걸 자기 학년 대 부터 많이 없앴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대학 와서는 자기 과에선 다행히 그런 문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는 대학을 한 번 옮겨 두 개 대학의 작곡과를 나왔는데,
정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두 대학이 똑같이 집합 문화가 엄청났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집합이라는 게 뭔지 감도 잘 안 왔습니다.
들어보니 선배가 자기 기수 아래 후배를 전부다 모아놓고 가볍게는 훈계, 심하게는 욕설을 하거나 신체적 기합까지 주는 일을 말하더군요.
여자친구의 경우 학교를 옮기기 전 대학에선 신체적 기합을 굉장히 많이 줬는데,
운동장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PT체조를 시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가혹 행위를 했다더군요.

그 말을 들을 때 '아니 대학생이면 성인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난 이 집단을 벗어날 수 없는데 집단 내에서 소외받게 되거나 따돌림을 받게 된다는 공포가 그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따르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문제는 이런 집합 문화를 교수가 더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수는 요즘 신입생들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해당과의 선배들에게 집합을 요구하기도 하고
학생이 집합 때문에 수업에 늦는 걸 교수에게 당당히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 게 용납되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집합을 안 하면 교수들이 불만을 가질 정도라니 더이상 할 말이 없지요.

이게 재미있는 건 남녀 구분짓지 않고 집합 문화가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야하고 그래서 그런 군대문화가 남자들 사이에서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인터넷에서도 가끔 나오듯 여대에서도 이런 일이 분명히 이루어지며 때로는 여자가 더 잔인한 거 같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녀를 구분짓지 않고 집합 문화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학년 때 그렇게 당했던 학생들은 보상심리인지 2학년이 되면 귀신같이 집합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합니다.
그나마 한 학년이 작정하고 집합 문화를 없애면 그래도 그 문화가 많이 사라들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습니다.
여자친구가 진짜 이건 아니다 싶어 정말 작정하고 자기 학년에서 집합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반드시 이 문화를 없애자...
그랬는데, 정도는 분명 줄기는 했으나 자기 아랫 학년에서 다시 집합을 한다는 겁니다.

본인의 말론 내가 말만하면 집합이 가능하고 후배들이 모이고 내 명령을 따른다는 권력의 쾌감 때문에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더군요.
정말 별것도 아닌 권력인데, 그 사소한 권력의 쾌감이 집합을 없애지 못한다고요..

그나마 이게 정말 무식한 사람만 하는 건가.. 한다면 그것도 아닙니다.
대외적으로 한 교수의 문제를 공론화하여 개념있는 학생이란 얘기를 들었던 그 학생들이
후배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집합하고 모욕한다는 건 그들 사이에선 딱히 비밀도 아닌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집합을 하는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이유는 있겠지요.
후배가 건방지다, 버릇이 없다. 인사를 안 한다 등등.

그런데 애당초 건방지다와 버릇이 없다는 정의는
윗 사람이 행하면 괜찮지만, 아랫사람이 행하면 안된다는 굉장히 이중적인 잣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예의가 없다와는 굉장히 다른 의미입니다.

아무리봐도 집합은 내가 보기 싫은 후배들의 모습을 누구도 주지 않은 권력을 이용하여,
폭력적인 방법으로 바꾸려드는 행위일 뿐입니다.


더 답답한 건 이런 학생들이 몇 년만 지나면 사회 조직의 일부가 된다는 겁니다.
이런 폭력성을 가진 학생들이 사회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이 나라에 정말 미래가 있긴 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 같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나아진 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무런 노력없이 시간만 지난다고 나아지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아요.
분명 대학생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는 학생이 있겠지만, 그게 소수이고 바꿀만큼 행동하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