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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08 01:12:32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짧은 문장에 정서와 이야기 담기 (헤밍웨이와 이화백, 그리고 김훈의 글을 중심으로) (수정됨)

짧은 문장에 정서와 이야기 담기 (헤밍웨이와 이화백, 그리고 김훈의 글을 중심으로)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높은 경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짧은 글로 깊은 정서와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글이 길고 현란할수록 화려하고 다채로운 맛은 있지만 그만큼 번잡해지기 쉽습니다. 결국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제된 문장 속에서 작가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정서와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아낼 줄 아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죠.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문장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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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은 적 없는.)


1. 절제의 미학, 여백에 의미를 담다



작가 헤밍웨이가 썼다고 알려진(하지만 실제론 헤밍웨이가 쓰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하는) 글 한편입니다. 사실 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짧은 문장이죠. 어쨌든 이 글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썼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이 가진 그 자체의 울림입니다. [팝니다 :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은 적 없는.] 이 짧은 문장들에서 독자는 다양한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돈이 없는 가난한 젊은 부부의 모습이라든가, 채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안타깝게 죽어버린 그들의 아기, 그리고 이들에게 남겨진 유아용 신발 등. 이러한 배경의 이야기를 통한 슬픔의 정서들이 이 짧은 글안에 담겨있게 되는 것이죠. 결국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글의 작가는 설명충(?)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좀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아주 중요한 지점이죠.


결국 글의 여백에 의미를 담아내려면, 생략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하며 적절한 때 멈추고 덜어낼 줄 알아야합니다. 글 욕심만으로는 오히려 정서의 깊이가 얕아지기 십상이니까요. 영화로 예를 들자면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이러한 절제의 미학과 여백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이른바 혓바닥이 짧다는 것, 다시 말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 설명이 적다는 점인데요. "말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작품이라곤 생각지 않는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복수는 나의 것]은 어떠한 부차적인 설명이나 캐릭터들의 대사가 아닌 그들의 행동과 극의 분위기 그 자체로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그렇다보니 열린 구석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집니다. 이와 같이 문학에서든 영화에서든 절제의 미학은 때때로 묵직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듯 행간의 여백에 의미를 담으려면 우선적으로 설명충-_-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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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상에의 세심한 관찰, 그리고 발상의 전환


위 글은 인터넷 상에서 널리 퍼지며 유명해진 이화백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의 댓글입니다. 아주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달밤에 양계장에서 트럭으로 옮겨지는 닭의 정서, 그 닭을 바라보는 양계장 주인의 마음 등이 담담하게, 하지만 매우 진하게 담겨있죠. 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명문입니다. 이 짧은 글 속에도 양계장 주인과 주인공 닭 사이의 나름의 스토리가 부여되며 끈끈한 정서가 생겨납니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에서 생겨날까요? 저는 이 문장의 힘을 발상의 전환, 그리고 일상에의 세심한 관찰에서 찾습니다. 새벽녘 양계장과 도축장을 잇는 이송트럭으로 옮겨지는 닭의 심정을 의인화시켜 떠올린 발상의 전환이 이 글을 떠받치는 힘입니다. 이 하나의 시각만으로 아무렇지 않은 장면이, 많은 감정을 담는 장면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죠.

즉 카메라의 렌즈를 양계장 주인의 노동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제3자의 시선으로 고정시킬 것이냐, 닭장을 통해 트럭으로 옮겨지는 닭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담기는 정서의 깊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집니다. 여기에 죽음을 예감한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그간 나 키우느라 고생했소. 잘가시오.]라고 말하는 닭의 의연한 모습과 [얼른 갈길이나 가시구려.]라며 눈물을 훔치는 주인의 미안한 감정을 덧칠하고 나면 이처럼 짠하고 슬픈 상황이 없게 돼버리는 거죠. 그래서 눈에 눈물기를 머금은 채로 달빛을 바라보는, 트럭 적재칸 속 닭의 모습을 묘사한 마지막 문장의 여운이 힘을 받게 되는 것이구요. 사실 '닭은 눈물을 머금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부분을, [새벽녘 달빛이 유난히 부시다.]라는 문장으로 함축한 이 부분은 이 글의 백미이기도 합니다. 문장의 여백과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이 결합되며 글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어쨌든 문학적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 이전에 엄청 독특하고 특이한 이야기가 아닌, 같은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상에의 세심한 관찰'만으로도 충분히 문장은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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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장에 대한 끈질긴 고뇌와 집념


소설 속 최고의 첫 문장을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입니다. 왜군의 침략으로 백성들은 전부 도망가고 수군은 대패한 채로 모든 것을 상실해버린 조선의 남해바다의 쓸쓸한 분위기, 그 안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봄의 정경과 이를 바라보는 이순신의 시선을 담담하게 묘사한 이 한 문장에는 임진왜란이라는 스토리가 고스란히 녹아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저의 어설픈 분석보다는 작가 김훈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남해안으로 내려왔더니 그 두 달 전에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남해에서 조선 수군의 깨진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고 그 쓰레기로 덮인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버려진 섬이란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빈 섬이란 뜻으로, 거기 꽃이 피었다는 거예요.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김훈의 에세이 <바다의 기별> 中

'꽃이'와 '꽃은'이라는 하나의 조사로 인해 며칠을 고민했다는 작가의 말. 여기서 우리는 '문장에 대한 끈질긴 집념과 고뇌'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문장을 쉽고 가볍게 쓸수록 거기에 담긴 정서와 이야기도 쉽고 가벼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짧은 하나의 글, 혹은 하나의 문장 속에 깊은 정서와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면 그만큼의 고민의 흔적이 필요하다는 점을 소설가 김훈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끈질기게 고민한 만큼 깊고 진해지는 것이 바로 문장이겠죠.



마치며 – 소모품의 시대에 문장의 힘을 지켜낸다는 것


순간의 유희와 즐거움이 판치는 인스턴트 시대엔 예술도, 사랑도, 사람도 모든 것이 가볍습니다. 영화는 상업성이 최우선 가치가 되고 음원은 순간순간 차트를 휩쓸면 그만인 세상이죠. 사랑도 마찬가지이고 사람 또한 쉽게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이렇듯 소모품이 범람하는 가벼움의 시대에 글쓰기 또한 점점 가벼워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단 하나의 문장에도 풍부한 정서와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글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대하려는 그 나름의 태도와 노력의 소산일 것입니다. 단순히 짧은 문장을 내긴 쉬워도, '짧지만 가볍지 않은' 문장을 내긴 어려운 일이니까요. 결국 요즘같이 인스턴트가 범람하는 시대에 문장의 힘을 지켜내는 것의 의미, 그리고 짧은 문장에 정서와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노력은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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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8 01:45
수정 아이콘
조사하나가 바뀜으로 문장의 여운은 엄청나게 바뀌죠.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 있는 입장에서 김훈 작가의 코멘트가 굉장히 공감갑니다.

다 읽고서, 누가 이렇게 글을 잘 썼나 했더니 역시나... 빠른 추천하고 갑니다.
15/05/08 02:26
수정 아이콘
이 좋은글보다.... 아래 글의 추천이 더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밤입니다....
아틸라
15/05/08 04:08
수정 아이콘
평소 관심있던 주제였는데 좋은 글에 감사하며 추천 드립니다.
본문에 적어주신 칼의 노래의 도입부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명량해전을 묘사한 부분을 가장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전투의 묘사를 정신없이 읽어내려가면서 느끼는 아찔함과 흥분, 마치 내가 직접 전장의 피냄새와 화약냄새를 맡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아, 이것이 대가의 작품이구나.' 라는 생각을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된 계기가 되었었죠.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소설 하나를 끈질기게 붙잡고 읽기가 쉽지 않네요.
인내력이 부족해진건지.. 감수성이 메말라 버진건지.. 아니면 이 모든 핑계를 덮을만한 끝내주는 작품을 아직 못 만난건지..
이불 속에서 밤을 새가며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던 시절이 그립네요.
Eternity
15/05/08 09:29
수정 아이콘
[칼의 노래]를 읽은 지가 오래되어서 명랑해전의 묘사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사실 저도 요즘 아틸라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이, 소설 하나를 끝까지 읽기가 참 힘들더군요. 요즘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란 소설을 읽다가 처박아두었는데.. 말씀하신 대로 이게 저의 감수성과 인내력 부족인지, 무엇인지 그 원인을 알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찬찬히 완독해봐야겠어요.
LoNesoRA
15/05/08 08:24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첫번째는 진짜 쉽지 않다고 느끼는게

여백을 넣는거랑 허술한 글이 되는건 정말 한끝 차이더군요

물론 나머지도 쉽지 않은 능력 이겠지만요
Eternity
15/05/08 09:33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보면 본문에 언급한 세가지 예시글 모두 여백이 힘을 발휘하는 문장들이죠. 첫번째 글이야 말할 것도 없고, 두번째 글의 마지막 문장, 그리고 세번째 글의 첫 문장 등이 그렇습니다. 이는 결국 글쓴이의 문학적 감수성과도 결부되는 부분이라 단순한 고민만으론 해결하기 힘든, 정말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15/05/08 08:41
수정 아이콘
제가 피지알에 오는 이유같은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테비아
15/05/08 08:4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스터충달
15/05/08 09:06
수정 아이콘
결국 좋은글을 쓰려면 치열한 고민과 퇴고가 뒷받침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베트남맛연유커피
15/05/08 09:1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5/05/08 09:51
수정 아이콘
현재 문단과 평론가들이란 작자들은 이야기보단 문장의 아름다움과 주제의식에만 강조하는 태도를 누그러뜨려야 할 겁니다.
우리나라 소설이 지금 외국 문학에게 시장에서 압살당하며 쩔쩔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죠.
소설가란 사람들이 Eternity님 같은 마인드가 심화되어 자기들만의 상아탑을 쌓아 문장 꾸미는데만 열두하면서 이야기의 주제 의식에만 집중하니까
재밌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일반독자들은 지루함과 불이해로 인해 글쓰기와 소설읽기에서 멀어지고....
소설가들은 또 그걸 무식한 닝겐들 쯧쯧하면서 더 탑을 높이 쌓고...이하 반복이 작금의 한국 문학의 현실이죠.

인스턴트가 범람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아직 한국은 문장의 고귀함을 논하기보단 가볍게 글을 쓰고 보게 만드는 풍조를 더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에 많이 풀어지긴 했지만 아직 멀었어요.
전 문장은 이야기에 방해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파입니다. 물론 문장도 좋다면 다다익선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곁다리지, 주는 결국 이야기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크게 꾸며주지 않아도 이야기 자체로 아름답죠. 예쁜 아가씨는 화장을 덜해도 여전히 예쁜 것처럼요.
꽃이 든 꽃은 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그건 그냥 자기만족일 뿐이죠.
마스터충달
15/05/08 09:56
수정 아이콘
그래도 글을 쓰는 입장이라면 지향해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니, 그런 기가막힌 재미가 있는 이야기는 그리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아서 ㅠ,ㅠ
재료가 형편없으면 조리 실력이라도 어떻게든 극한까지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재미없다는 비판을 무식한 소리 취급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입니다.)
15/05/08 10:08
수정 아이콘
물론 저도 Eternity님 글의 논지에는 동의합니다 :)

문장이 좋아서 나쁠 건 없죠. 다만 거기에 필요 이상으로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Eternity
15/05/08 10:16
수정 아이콘
우선 말씀하신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죠. 영화로 치자면, 겉으로 보여지는 '스타일'에 치중하기 보다는 영화의 '이야기'에 집중해야한다 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인데요. 다만 저는, 본문에서 '문장만이 중요하고,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식의 얘기를 한 적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탄탄한 이야기 구조는 소설의 기본이겠죠. 이점은 저도 동감합니다. 다만 이 글은 문장의 아름다움을 역설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소설 뿐만 아닌) 다양한 글을 쓰면서 어떻게하면 짧은 문장(혹은 글)안에 더 많은 정서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30분짜리, 혹은 5분짜리 단편영화에 어떻게 하면 2시간짜리 영화에 못지 않은 정서의 깊이와 이야기를 녹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 거죠. 결국은 이 또한 '긴 이야기를 어떻게 충실하게 담아내고 함축하여 녹여낼 것인가' 대한 고민으로 함께 귀결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컷, 한 컷 고민없이 대충찍고 편집하는 장면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카메라의 매 컷마다 감독의 고민이 녹아들어야만이 짧은 단편영화라도 훌륭하고 탄탄한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상 혹은 비주얼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기도 하구요. 결국 저는 겉보기에 아름답고 멋있게, 카메라로 찍어내는 '스타일'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필름(글)을 대하는 자세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니 주환님께서 말씀하시는 'Eternity님 같은 마인드(?)'가 과연 본문에 대한 충실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15/05/08 10:30
수정 아이콘
제가 비판한 건 절대 Eternity님의 글이 아니라 Eternity님이 말씀해주신 마인드가 나쁜 방향으로 심화된 기존 문단과 한국의 글쓰기 풍조에 대해 얘기한 겁니다; 문장에 집중하다가 문장에 먹히고만...제가 글의 논지와는 약간 핀트가 어긋난 엉뚱한 주제를 댓글로 달아버렸네요. 이 점 사과드립니다.

다만 글 쓰신 것에도 개인적으론 약간 불만이랄까 의견 차이가 있는데, 제가 지금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댓글 수정해서 다시 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죄송합니다;
Eternity
15/05/08 10:40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저도 주환님의 말씀을 본문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하고 답글을 달았네요. 설명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말씀하신 '문장에 집중하다가 문장에 먹히고만' 사례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한국문학 뿐만 아니라 일본문학에서도 이러한 분위기(혹은 문제)가 팽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일본문학을 많이 접해보진 않아서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런 느낌이 좀 들더군요.)
암튼 이와 별개로, 서로간의 의견 차에 대해선 추후에 또 시간나실 때 토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15/05/09 10:43
수정 아이콘
어제는 장문의 댓글로 쓰려고 했는데 하루 지나니까 뭔가 짜게 식었네요;; 그냥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3번 김훈 글의 예가 Eternity님이 말씀해주신 문장 함축의 묘미보단 문장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나쁜 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의 생각이 만연하는 한국 문학계에 대한 비판이 엉뚱하게 튀어나온 거고요.

1번 헤밍웨이의 예와는 달리 김훈님의 문장은 본인이 따로 그 부분을 언급하지 전에 독자들 중 아무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종류의 것입니다. 저렇게 따로 설명충처럼 자기 입으로 다른 지면을 통해서 언급해야 그제야 오오, 간지! 장인의 고뇌! 하고 알아보는 그런 류의 문학적 허세라고 보거든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어제는 생각했는데 하루 자고나서 다시 보니까 그럴 수 있어~ 라고 넘어갈 것에 괜히 꼬투리 느낌이라 fail....
15/05/0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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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견이 다릅니다. 이야기를 풀어낼 매개체는 넘쳐나고, 글로만 된 이야기는 경쟁력이 약합니다. 재밌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니더라도 어느 장르에서든 즐길 수 있고, 대부분의 장르가 문학보다는 다양한 감각으로 즐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훨씬 '자극적'입니다. 본격문학만을 문학으로 인정하는 경직성은 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살아남는 길은 더 쉽고 다양해지는 게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문예의 정수라고 할만한, 타 장르가 넘볼 수 없는 요소를 첨단까지 강화하는 거라고 봅니다. 게다가 문장에 대한 집착을 걱정할만큼 작'자'들이 문장에 정성을 쏟고 있냐면… 글쎄요,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편집 현직자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수려한 문장은커녕 바른 문장을 쓰는 사람 보기도 힘들다더군요. 심지어 젊은 신참 편집자들조차 문장감각이 없어서 뭐가 문제고 어떤 게 더 나은 교정방향인지 감을 못 잡는다고 하더라구요. 말하자면 꽃이와 꽃은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교정을 하는 게 실태인 거죠.
15/05/09 11:07
수정 아이콘
물론 경쟁매체가 많아지긴 했지만 저는 결국 모든 이야기의 근본이자 원천은 결국 글로 이루어진 소설이라고 생각해서요...이 부분이 바뀌지 않는 이상 문학은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봅니다. 또 소설은 기타 매체와는 전혀 다른,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자극이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시처럼 소설이 몰락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요는 결국 좋은 이야기를 계속 끊임없이 내서 독자들이 다른 매체에 눈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꽉 붙잡아 두는 거지요. 그게 아니라 문장 같은 곁다리에 집착한다면 독자들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15/05/09 13:56
수정 아이콘
저는 소설이 이야기의 원천이 아니며 단지 이야기가 표현될 수 있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이 정말 이야기의 근본/원천이라면 이야기의 원형은 소설이었어야 했을텐데, 소설은 예술사에서도 아주 늦게 등장한 장르니까요. 구비문학 쪽이 말씀하신 원천에 가까울 수 있겠는데, 현대소설은 이미 구비문학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침팬지만큼 다르죠.

애초에 문장으로 된 장르를 두고 문장이 곁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건 동의하기 힘들군요. 이야기만이 중요하다면 줄거리 요약도 좋은 소설이어야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죠. 문장 없이는 톤이 없고, 톤 없는 세계는 만들 수 없습니다. 다른 장르도 대체로 그러하지만, 특히 소설은 작자의 주제의식에 어울리는 톤을 택해 일관적으로 그것을 그려나가야 하죠. 서술하는 시점이 인칭적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사진의 시선, 영화의 시선, 음악 등이 비인칭적인 것과 대비되죠) 서술자의 톤(태도)이 어떤지는 이야기의 주제를 바꿔놓을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꽃이'가 그리는 세상과 '꽃은'이 그리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위 댓글에서 '독자들 중 아무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걸 알아보는 고급독자가 적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안하건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에도 '꽃이'와 '꽃은'의 차이가 무의미한지에 대해 생각해봐주시면 어떨지요.

독자에 대한 인식도 저와 다르신 듯한데, 저는 대중과 독자를 같은 범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소설이 다른 매채에 눈 돌릴 틈을 주지 않고 꽉 붙잡아두는 세상은, 외람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편애에 기반한 바람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이미 그게 불가능해졌다고 봅니다. 인지적으로도 화상과 영상이 주는 자극이 훨씬 크고, 대중은 말초적이고 즉물적인 자극을 마다할만큼 고고하지 못합니다. 이미 텔레비전 쇼에서 자막과 웃음소리(효과음)로 시청자의 감정선마저 지정해주는 사태를, 불쾌해하기는커녕 편안해하는 게 세태에요. 창작하는 입장에서도 굳이 영상을 포기하고 활자를 택할 필연성('왜 소설이어야만 하는가')은… 유감스럽게도 이야기 자체에서는 그 대답을 찾기 어렵다고 봅니다. 또다른 예로는, 고전 이야기를 들 수 있겠네요. 좋은 이야기가 담긴 고전은 많지만 말씀하신 '독자'들이 다른 매체에 눈 돌리지 않을만큼 애호하진 않으니까요. 이에 관한 논의는 서로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의 차이부터 좁혀야 그나마 원활할 듯 싶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주환 님과의 견해 차이는 좁히기 어려울 듯 보입니다만, 실은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문학관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래야 문학의 지향점도 다양해지고 그 성과 또한 더 풍성해질 테니까요. 다만 그와 별개로, 시 또한 시만이 줄 수 있는 자극이 확실히 존재하는데 그럼에도 '몰락'한 이유가 무어라 생각하시는지는 조금 궁금하군요.
Neandertal
15/05/08 10:43
수정 아이콘
예전에 피지알의 어떤 분도 말씀하셨지만 본문을 읽다보니 김훈의 소설을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영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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