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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1/04 20:15:59
Name aura
Subject [일반] 일상단편소설 [[하루]](1)
안녕하세요 aura입니다.
단편소설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어디에 써볼까 하다가,
연재게시판에 연재신청을 할 동안 자유게시판에 올려볼까 합니다.

부족한 솜씨지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 - - -

툭. 툭.


아침부터 내내 날이 어둡더니, 이제야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시월 중순 쯤 떨어지는 가을 빗방울들이 어지럽게 마음을 적셔왔다.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묘하게 젖어온다.


“ 현욱아! ”


멍하니 서 있던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쭈뼛, 뒤를 돌아봤다.


“아, 진유야.”


나를 부른 것은 대학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진유였다.


한 진유. 말쑥하게 차려입은 인상이 퍽 괜찮은 친구다. 뭔가 엄청난 미남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정말 남자가 봐도 예쁜 미소를 짓는다. 누구의 호감이든 쉽게 끌어 모으는 매력이 있는 친구였다.


“시험은 어때? 잘 봤어?”


윽, 진유 이 녀석은 이런 식으로 항상 아픈 곳을 아무렇지 않게 찌르고 들어온다. 웃는 낯짝으로 생글생글 말하니, 나는 말하고 싶지 않은 참패를 당했음에도 당당하게 패전보를 녀석에게 알린다.


“말도 마. 완전 죽 쒔어. 최악이라고.”


나의 대답에 진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에? 너 공부 잘하잖아!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고.”


진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당장 기분이 나빠졌을 텐데. 애석하게도 이 녀석이 하는 말은 다른 뜻 없이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원체 수학과목에는 자신이 없잖냐. 게다가, 전역하고 나서 처음으로 다시 보는 시험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정말 축 처진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상을 찡그리고 핑계를 늘어놨다. 솔직히 말하면, 이 참혹한 시험결과는 순전히 내가 시험공부를 안했기 때문이다.


전역하기 전에는 그렇게 학교에 다시 가고 싶고, 공부든 과제든 엄청나게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는데. 부모님께 달라진 모습도 보여드리고, 실망시켜드리고 싶지도 않았는데...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뺀질거리는 내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 사실을 엄청 잘 알고 있음에도 내 마음은 잘 추슬러지지 않았다.


“음, 얼마나 잘 안 됐길래 그래? 아직 시험점수가 나온 것도 아닌데.”


“윽, 반이나 못 풀었다고! 시험점수야 보나마나지.”


나의 애처로운 작은 절규에 진유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괜찮아, 다른 과목들 열심히 공부해서 잘 보면 될 거야. 이제 첫 시험 본거 맞지? ”


나는 진유의 장단에 맞춰서, 그래! 다른 과목들은 반드시 다 잘보고 말겠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착잡한 마음으로 그냥 ‘그래.’라는 말로 대답을 마쳤다.


이게 다 빌어먹을 사진 한 장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 옷 정리를 하는 게 아니었어.
때 늦은 후회를 해봐도 이미 그 문제의 사진은 내 지갑 속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 현욱아, 현욱아.”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긴 것 같다. 진유가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나를 사색에서 깨웠다.


“응?”


“집에 갈 거냐고.”


아, 그래 이렇게 넋 놓고 있을게 아니라 집에 가야한다. 당장 내일만 해도 ‘재무관리’라는 커다란 산이 버티고 있다.
오늘은 어떻게든 정신 차리고, 공부하지 않으면 이 산에서 마저 조난당할지 몰랐다.


“아 가야지. 진유 너는?”


“나는 오늘 도서관에서 좀 공부하다가 가려고. 이제 다섯 시밖에 안됐으니까. 너도 같이 갈래?”


진유 이 녀석 무르게 생긴 것과는 달리 분명 공부 잘했었지.
나는 순간 진유라는 유능한 산악인(?)을 이용해 날로 등반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아냐. 그냥 집에 가서 하려고.”


“왜? 같이하면 좋잖아.”


니가 그렇게 사람 착하게 나오니까 그런거야.


아무래도 내가 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다보면, 진유가 할 공부에 지장이 생긴다. 이 녀석은 아무래도 자기 공부가 완전하게 안됐더라도, 어떻게든 나를 신경 써서 억지로라도 끌어주는 녀석이란 말이지.


그만큼 나에겐 보증된 전문 등산가였지만, 군대 가기 전만 떠올려 봐도 더 이상 진유에게 폐를 끼치기는 싫었다.


“공부할게 집에 있기도 하고, 오늘은 그냥 혼자 집에서 조용히 하고 싶어.”


“음.. 그래.”


진유는 약간 아쉬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현욱아! 혹시 우산 없어?”


“응?”


“그냥 계속 멍하니 여기서 서 있길래. 비가 와서 그런가싶어서.”


투두두둑.


진유의 말과 동시에 아까 전보다 빗방울이 조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우산을 챙겨왔다. 아침부터 어둑한 하늘을 보고도 우산을 챙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우산은 있어. 그냥, 시험 땜에 갑갑해서 서있었다. 진유야, 나, 간다.”


나는 가방 속에서 삼단우산을 꺼내 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공부 열심히해!”


투두두두두.


거친 빗방울들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진유의 소리가 희미해졌다. 나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가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투두두두두.


그 사이 빗방울이 조금 더 거세지며, 어지럽게 우산을 때린다. 마치 그 소리가 타악기를 치는 것 같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큰 우산으로 들고 올걸.
작은 삼단 우산으로 거친 빗속을 뚫고 가려니 등 뒤로 맨 가방이나, 아껴 입던 청바지가 젖어간다.


그래도 습한 비 냄새를 맡으며, 우산을 때리는 비의 연주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니 방금 전보다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그 사진이 떠오른다. 나는 턱과 어깨 사이로 삼단우산을 우겨넣고, 야상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지갑을 찾아 그 안에 고이 모셔둔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사진이 비에 젖지 않게 턱을 당겨 우상을 앞으로 기울인다.


“아얏.”


으, 내가 괘고 있던 우산이 삼단우산이라는 걸 깜빡했다. 우산의 마디 사이로 머리가 아찔하게 씹혔다. 삼단우산을 써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고통을 한 번쯤 겪었으리라.


“엇!”


이런, 젠장. 밀려오는 고통 때문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손으로 비비는 사이 들고 있던 사진이 빠져버렸다.


투두두두.


야속하게도 그 사이에 빗방울은 조금 더 거세져서 사진 위를 강타한다. 나는 황급히 뛰어 아스팔트 바닥으로 차갑게 달라붙은 사진을 집어 들었다.


내 엄지와 집게사이에 잡힌 사진이 미역 줄거리처럼 축 늘어진 채 맥아리 없이 덜렁 거렸다.
그럼에도 사진 속의 여자는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남자는 빗물에 가려진 채 보이지 않는다. 빗물이 빚어낸 그 미묘한 그림이 내 마음을 더 착잡하게 만들었다.


“젠장.”


나는 입이 빼쭉 튀어나와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사진을 고이 지갑으로 밀어 넣었다. 대신 이번에는 비에 젖어서 찢어질 수 있으니까, 지폐 칸으로 조심히. 그리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걷고 걷는다.


한진아.


사진 속 여자 아이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름과 동시에 얼굴도, 웃는 입모양도, 웃음소리도, 아이처럼 뚜벅뚜벅 걷는 모습도.


무려 이 년 전의 기억들이지만, 마치 뇌가 찍어둔 사진인 마냥 머리 곳곳에 그 기억들이 뚜렷하게 박혀있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아했고, 같이 있으면 기뻤던 아이였다. 내가 군대에 가지 않았고, 진아가 내 전역 1년 전쯤에 맞춰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같이 웃고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더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무래도 집에 가도 공부하기는 글렀어.


온갖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역에 도착했다. 나는 우산을 툴툴 털어버리고 역내로 들어섰다. 역내로 들어서니 밖과는 다른 습한 빗물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를 피해 황급히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렸다. 2분 정도쯤 기다렸을까? 곧바로 댕댕거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지하철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마침 비도 내리겠다, 그에 걸 맞는 곡을 찾는다.


- 최재훈 비의 랩소디.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던 내 손이 꽤 오래된 곡에서 멈췄다.


진아가 좋아하던 노래. 진아를 통해 알게 된 노래였지만, 나 역시 이 노래를 엄청나게 듣곤 했었다. 오늘 따라 비의 랩소디가 다른 노래들보다 크고 진하게 보인다.


노래를 틀고, 멈춰 선 지하철로 몸을 옮긴다. 멈춰선 지하철을 두고 내리려는 사람과 타려는 사람들 간의 무질서한 교환이 한바탕 벌어진다.


순식간에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빠지고, 밖에 있던 사람들이 차곡차곡 지하철 칸을 채워간다. 자리에 앉는 건 기대도 안한다. 단지, 안쪽 지하철 문에 붙어 불편하게 부대끼지 앉고 서서가고 싶다.


안쪽 문 옆을 선점하기 위해 몸을 비집고 들어간다. 사람 많은 지하철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나는 벽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노래에 집중하고, 조금만 버티면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역이다.




- - - -


오늘은 이렇게 반편만 올립니다.
앞으로 한편 혹은 두편으로 분할해서 하루1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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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04 22:25
수정 아이콘
외로웠던 연재 게시판에 새로운 동지가 생길 것 같네요 흑흑
기대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
눈시BBver.2
11/11/04 23:17
수정 아이콘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11/11/05 03:13
수정 아이콘
하..
나리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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