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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25 13:42:56
Name 에네스티
Subject [일반] 사랑과 다툼에 관한 짧은 단상.
짧은 소설 형식으로 써서 존칭이 없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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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무슨 말이야, 그게? 말 그대로야. 우리는 서로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구. 널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나, 물론- 그런게 있다면, 날 사랑하는 너의 마음이나 잘 느껴지지 않잖아. 이건 문득 든 생각이 아니야. 그래서 내게 뭘 말하고 싶은건데. 뭘 달리 말하려는 게 아니야. 말 그대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구. 그냥 네가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게 아니고? 어떻게 그런 식으로 내 감정을 말 할 수 있어? 아냐 아냐.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야. 우리가 처음 본 그날, 내가 네게 느낀 감정과, 지금 내가 너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을 비교해도 크게 변하지 않았어. 정말이야. 무슨말을 하는거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똑바로 해봐. 그래서, 해어지자고? 아냐. 그런게 아냐. 그저 내 감정에 대해 스스로 잘 모르겠다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네 심정도 물론 이해하지만, 그렇게 다그치지 마. 그런 이유로 꺼낸 말이 아니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지금. 글쎄.. 사랑하지 않는다면 네 말대로 헤어지는 것이 맞겠지. 그렇지만 난 네게 그냥 묻고 싶다. 너는 내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날 사랑해? 지금 그런 질문하지마. 대답하기 싫으니까. 그럼 다른 걸 물어볼게. 넌 나와 헤어지고 싶니?

  그녀는 그를 한껏 노려본 다음 의자에 걸쳐두었던 검은 목도리와 붉은 색 털모자를 빠르게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락하지마. 그는 우는듯, 웃는듯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놓여진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잔에 입을 맞추듯 한모금을 마시는 내내 그녀는 그를 노려보다 그가 잔에서 입을 떼는 순간 몸을 팩,하고 돌아서서 계산대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이 마신 찻값을 따로 계산하기 위해 점원과 말을 하는 동안 그도 주섬주섬 모자와 목도리를 몸에 두르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의 목도리는 흰색, 모자는 파란색이었다.

  내는 김에 내것도 내주지. 그녀는 화난 얼굴로 그를 한번 쏘아보고는 카페 밖으로 나섰다. 그도 급하게 계산을 마치고는 그녀를 따라섰다. 화났어? 화났구나. 그녀는 말 없이 걸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그녀의 구두는 밝은 햇빛을 그대로 반사해 번쩍였다. 그래도 모자랑 목도리는 하자. 감기 걸리겠다. 날이 많이 춥다. 그녀의 구두 굽이 딱,하는 소리를 내며 멎었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아니야 그런거. 그럼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사람 실컷 바보 만들어 놓고. 으음. 나랑 뭐하자는 건데. 너 날 사랑하지 않는다며, 그럼 끝 아냐? 내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데. 아니야 무슨 대답같은 거, 그런 특별한 걸 바라고 한 말 같은게 아니야. 으음, 일단 목도리랑 모자부터 쓰자. 날이 많이 춥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고는 손에 쥐고 있던 모자와 목도리를 바닥에 내팽겨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구두 굽소리는 조금 전 보다 더 경쾌하게 울린다. 그는 땅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서는 먼지를 털어내며 다시 그녀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한다. 많이 더러워졌다. 이거 쓰지 말고, 내 것 쓸래? 응? 어때? 미안해. 나는 널 많이 좋아해. 너도 알잖아. 정말로. 너와 헤어지고 싶지도 않고.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 널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그냥 요즘 사랑이라는게 대체 어떤 건지 모르겠어서 불안한 마음에 물어본 것 뿐이야.

  걷다가 그가 자신의 목도리를 끌러서 그녀의 목에 둘러 주려고 하는 순간 그녀가 그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며 소리쳤다. 어리광부리지마. 그게 지금 내 탓이야? 그래서 뭐 나보고 어쩌자는 건데. 니가 사랑이니 뭐니 알겠다 모르겠다 말하는거, 솔직히 속이 다 빤히 보여. 그런걸로 사람 엿먹이지마. 그렇게 네가 물어보면 설마 사랑은 이런이런것이다 하고 정의해주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널 사랑해- 이런 달콤한 말이라도 기대했어? 너 정말 어리다, 진짜. 넌 그냥 날 완전히 바보취급 한 것 뿐이야. 이 멍청아. 난 지금 기분 진짜 더러우니까 너 그냥 집에가.

  그는 순에 목도리를 두 개 쥐고서 그녀를 계속 따라간다. 버스 정류장 두어개를 지칠 때 쯤 그가 다시 입을 연다. 미안해. 그런의도는 아니었는데..어쩌면 네 말이 맞아. 네 말대로 나는 어려서 그냥 네가 나를 꼭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걸 듣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도, 이런식으로 해서는 안됐었는데.. 네 감정같은 것 다 무시하고 내 할 말만 해서는 안됐었어. 미안해 정말. 그냥 난 네가 좋은 것 뿐인데, 그리고 네가 날 좋아해주는 게 참 좋을 뿐인데. 너도 알잖아. 나 사랑같은 것 뭔지도 모르겠고 그냥 멍청한거. 그냥 그래서 어쩌면 네가 확인시켜줬으면 좋겠다- 같은 어리석은 마음에서 그랬나봐. 미안해. 정말로 너 바보 만들거나,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

  얼마간의 침묵과 함께 그녀의 집 앞까지 왔다. 작은 빌라의 1층 대문 앞에 서서 그녀는 작게 한 숨을 뱉었다. 멍청이. 그는 그녀의 모자와 목도리를 정성스레 다시 털어서 그녀에게 내민다. 그녀는 뺐듯이 받으며 나 진짜 정말 화 많이 났으니까. 이만 가. 화풀리면 연락할게. 나중에보자. 그는 자신의 목도리를 눈 밑까지 둘렀다. 나중에 꼭 볼 수 있는거지? 어. 나 이제 올라갈게. 응 조심해서 들어가. 어, 너도. 그녀는 계단을 오른다. 3층 그녀와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까지 오르는 중에 창밖으로 그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무시하고 계속 올라가 도어락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응? 왜 이리 빨리 들어왔어? 어. 가족들의 물음을 건성으로 넘기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눈을 감고 길게 호흡했다. 공기가 낯설다. 가구들의 위치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의 정리 순서, 심저어 조명의 밝기.. 그녀가 직접 손을 대서 정리하지 않은 곳이 없음에도 그 모든 것들이 남의 것인양 익숙지 않았다. 그녀는 자꾸만 뒤척였다. 그러다 번쩍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내다보니 역시 그가 그녀의 창문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그녀가 들어갈 때처럼 손을 흔든다. 속상하다. 왈칵 화가나기도 하고 울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벗어둔 외투를 다시 입고 집을 나선다. 가족들이 무어라 말했지만 들리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가며 보이는 그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다. 야속하다.

  그녀는 그에게 뚜벅 뚜벅 걸어간다. 파란 스니커즈를 신은 탓에 구두굽처럼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그에게 다가가서는 주먹을 꽉 말아 쥐고 그의 가슴을 강하게 때리기 시작한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얼굴엔 온통 눈물 자국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주먹을 맞으면서도 계속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눈이 물기에 반짝인다. 왜 안갔어. 기다렸지. 뭘 기다려. 나중에 보자고 했잖아. 너 화 풀릴 때 까지 기다리려고 했지. 이 바보야. 그래서 이렇게 다시 우리 볼 수 있게 되었잖아. 화는 좀 풀렸어? 아니 풀릴리가 있냐. 하나도 안 풀렸어. 우엥. 그래도 우리 이렇게 다시 봤다. 그녀는 다시 그를 한껏 노려본다. 춥겠다. 목도리도 하고 나오지. 그는 자신의 목도리를 끌러서 그녀의 목에 감아준다. 잔뜩 젖어있어서 오히려 더 춥게 느껴지지만 그녀는 말 없이 계속 그를 쳐다본다. 그는 목도리를 감아주고는 조심스레 그녀를 두 팔로 안는다. 안고는 엉엉 울기 시작한다. 엉엉 미안해. 엉엉 좋아한단 말이야. 그의 울음을 한참 느끼다가 그녀도 천천히 두 팔을 들어 그를 안는다. 그의 목도리가 조금 더 젖었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갈까?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끈다. 그녀는 그의 탱탱 불은 눈이 우습지만 못 본 척 따라간다. 그가 컵에 물을 따르는 동안 그녀는 수저를 꺼내 그와 그녀의 앞에 차려 놓는다. 너 한 번만 또 그런 소리하면 진짜 각오해라. 응 미안해.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그녀의 컵을 들고 정수기로가서 뜨거운 물을 섞는다. 미지근한 물을 그녀에게 내민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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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이번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다툼이라는 곡을 듣고 적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는 것은 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사랑하니까요.  상대방이 소중하고 좋고, 그러니까 상대방도 날 좋아해줬으면, 소중히 여겨줬으면 하고..

그게 맘처럼 되지 않을 때 다투고..

여러분들의 다툼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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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nysun
10/10/25 13:59
수정 아이콘
요즘 제가 느끼고 있던 것들이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10/10/25 14:0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Ms. Anscombe
10/10/25 14:31
수정 아이콘
요즘에 이런 류(주제+문체)의 글들이 많네요.
10/10/25 14:39
수정 아이콘
조금만 더 다듬으면 많은 분들이 쉽게 읽을 수 있을텐데요.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 같은데 큰따옴표 하나도 없고, 말을 주고 받을 때 쓰는 줄바꿈도 없고, 단락 구분도 어색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에네스티
10/10/25 17:57
수정 아이콘
honnysun 님// 은안 님// Ms. Anscombe 님// 하늘 님// 댓글 감사합니다~

하늘 님// 아무래도 최근에 주제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어서 흉내내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읽으면서 너무 신기했었거든요. 어떻게, -말씀하신 것 처럼- 여러 사람이 대화하는데도 큰 따옴표 하나 없고, 줄바꿈도 없는데도 어색함이 그다지 없이 잘 읽히는거지? 하구요. 하지만 역시 이런 문체를 섣불리 쓰는 것은 제게 아직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좀 더 다듬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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