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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06 16:50:48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역사에 대한 잡상
아래 병자호란 글 보다 문득 생각 나서 써 봅니다.

... 그 전에 우리 박기혁 선수 어떡해요 orz 뽑힌다는 게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진짜 불운이네요. 애초에 밝힌 대로 실력순으로 한 거 같고 최대한 잡음 없이 뽑은 것 같습니다. 박경완 선수 나이가 좀 그렇지만 (올 시즌 부상에도 그렇게 뛰었는데 한국시리즈에서 또 뛰고 아시안게임까지 가면 ;;; ) 그것 빼면 '이건 좀 아니다' 라는 느낌은 없네요.

아무튼 시작하겠습니다. 주제들이 다 같은 게 아니고 그저 잡상 수준이니까 가볍게 읽어주세요. 그렇게 따지기엔 좀 길긴 하지만.

1. 부산 동삼동 패총 아시죠? 거기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그 곳은 한국에서 최초로 대규모 고고학 발굴을 했던 곳이라네요. 이 발굴은 외국인 한자 몇과 한국 정부의 공동 발굴로 진행되었는데요. 이 때 합의를 했다고 하네요. 한국에서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지 외국에서 발표하지 말라 이런 식으로요.
근데 이 양반들이 지네 나라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논문을 써 버렸다고 합니다. 난감해진 한국. 우리 가카께선 -_-; 한국에 들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 후 한국에서도 이 유적을 차츰 살펴보면서 슬슬 논문 쓸까말까 하고 있는데 아뿔싸! 분명 발굴할 땐 있었던 유물들이 없는 겁니다. 이걸 알게 된 것도 발굴 후 제법 시간이 흐른 상황 -_-;;;;;;;; 당연히 학계는 '걔네들이 가져갔구나' 분위기였죠. 학계는 분노하고 찾아가니까 정작 당사자는 아파서 만날 수 없었다고 하네요. 당시 이 말씀을 해 주셨던 교수님께서 당시 미국에 계셨는데 직접 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그리도 다행히도 그 유물을 발견할 수 있었죠.
... xx대학에서요. 90년 중순이랬나. 발굴한 다음에 유물들을 그냥 처 박아놓고 잊고 있었던 겁니다. 2000년대에 또 어느 대학에서 발견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해서 동삼동 유적이 알려진 지는 몇십년짼데 한국에서 이에 대해 세계 역사학계로 낸 논문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내 참 -_-;

2. 고고학 얘기 하나 더.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유적은 세계 고고학사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거기서 무려... 주먹도끼가 발견됐거든요 0_0
이게 충격을 준 이유. 당시 인도를 경계로 서쪽에서는 주먹도끼가 발견됐고, 동쪽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뭐 이에 대해 서양 고고학계에서는 대강 동양에도 비슷한 게 있었겠지만 뭐 그래도 우리 서양이 좀 머리 좋았는 듯? 이런 분위기였죠. 근데 이게 발견돼 버리니 서양에선 난리가 납니다. -_-; 뭐 결국 이거 하나로 나름 바닥에 깔려 있었던 서양 우월이 날아가 버린 거죠.
참고로 한국의 고고학 연구 밀도(?)가 세계 2위라고 합니다. 자기 국토의 가장 많은 부분을 파고 연구해 왔다는 얘기죠. 1위는 일본입니다. 다른 나라들 같은 경우 너무 넓으니까요. 그래도 덕분에 한반도에서 발견된 이상 동양에서도 주먹도끼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합니다.
고고학은 이런 식으로 하나만 발견돼도 역사가 뒤집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석기 중기의 경우 전라도 지역은 4000년 동안 새로운 토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 전의 생활 방식대로 살았느냐 ( 다른 지역은 교류하면서 발전하는 동안 ) 있는데 우리가 못 찾은 거냐 아니면 그 때 전라도엔 사람이 살지 않았느냐 -_-;; 아직도 갑론을박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구 - 신석기 같은 경우는 한국과 일본에 대입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들 나라의 경우 농경이 늦은 편이었거든요. 서양에서야 당연히 '아니 발전하면 당연히 농업이 시작돼야지 우리보다 하등한 거 아님?' 이러고 한국에서도 서양의 구분 방식을 억지로 채용하고 있죠. 그나마 이런 서양 컴플렉스에서 빨리 벗어난 게 일본. 자기들이 다르니까 구 - 신석기 구분이 아닌 죠몬, 야요이 등 자기네들 발견된 토기를 이름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활발하다고 하네요.

3. 근대 내지 현대로 들어가보죠.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외계문명설의 밑에는 동양인은 열등하다는 게 깔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대 문명들 중에 유럽은 하나도 없죠. '니네가 이런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어!' 가 살짝 가미돼 있는 게 외계문명설 내지 초고대문명설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역사가 언제나 진보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 ) 한국을 예로 들어보죠.
어느 날 일본인이 아름답기 그지 없는 도자기 하나를 고종에게 들고 왔습니다. 고종은 놀라서 묻습니다. '이게 어느 나라 물건인고?'
... 고려청자였습니다. 고려청자의 비법이 복원된 건 최근의 일이라네요. 그리고 이 얘기 할 때마다 빼 놓을 수 없는 에밀레종이 있죠.
석굴암과 불국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 역시 일본인 학자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한 것 역시 일본에서 역수입한 거죠.
... 그래놓고 시멘트 발라놓은 건 뭥미?
마찬가지로 삼국시대 때 천문관측한 게 얼마나 정확한 지를 제대로 인식한 것도 일본인, 한국의 민요 등에 대한 아름다움을 한국은 물론 세계에도 알린 것 역시 일본인이었습니다.
상업 같은 경우야 조선 때 극도로 후퇴했다는 거 다들 아실 거고, 수원 화성 쌓을 때의 거중기 역시 백제 때 비슷한 물건이 있는데 다 잊었다고 하네요.
서양의 경우 로마시대에 세워진 다리가 있었는데 19세기까지도 이걸 어떻게 지었는지 몰라서 '악마의 다리'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이과의 경우 더 그렇겠지만 사학도 보다 보면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괴리가 큰 편입니다. 거기다 다른 학문들에 비해 접근하기가 쉽죠. 이런 게 한국에서는 큰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다른 나라라고 다르진 않겠지만요) 그렇지 않아도 정치와 인종차별이 바닥에 깔릴 수밖에 없는 학문인데 시중에 돌아다니는 책들 보면 한숨만 나오죠. 각 나라들마다 역사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 중국, 일본 컴플렉스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중에 베스트셀러로 돌아다니는 역사서들 역시 이런 걸 강하게 찔러서 돈 벌고 있죠. : )
역사학자들이 좀 강하게 나서줘야 되는데 힘듭니다. 일단 '아니 학자가 감히 세속의 일을 손 대냐'는 인식이 강하다고 하네요. 사극을 찍을 때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도와달라고 섭외하는데 도와주는 시늉이라도 하면 위에서 불호령이 내려진다고 합니다. 난감한 상황이죠. 그리고 사실 역사라는 게 유물 하나 발견되고 서적 하나 발견돼도 뒤집힐 수 있는 학문이라서 오랜 기간 동안 검토하지 않는 이상 나서기 애매하죠. 이런 것들이 섞이면서 대중이 아는 역사는 전문가들이 연구하는 역사와 크게 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일본, 중국 컴플렉스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한국에서 -_-; 이 괴리가 계속 커지는 게 걱정되네요. 큰 폭풍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아직도 사극들 보면 한숨만 나오죠.

재미 없는 얘기였죠? : );;; 다음에 이거 한 번 좀 제대로 써 보고 싶네요. 더 썼다간 너무 길어져서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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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06 16:59
수정 아이콘
저기... 그게 말이죠... 엄청 흥미진진하고 재밌는데요? 글도 잘쓰시고...
앞으로도 계속 써주세요 :)
여간해서
10/09/06 18:26
수정 아이콘
저도 재밌어요!!
계속 써주세욤!!!!

이런 각종 분야 관련의 전문적인 글들을(대표적으론 그유명하신 판님..)
볼때마다 PGR은 과연 무슨 집단인가 싶기도 합니다;;;
금시조131267M
10/09/06 19:02
수정 아이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대학 다닐때 역사 발굴 현장을 견학 간적이 있는데 고생 많이 하시더군요. 말이 발굴이지 우리가 아는 막노동과 다를바 없더군요. 대우도 그리 좋지 않았던것 같은데 역사를 발굴하고 간직한다는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모습에 그분들이 멋져 보였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 주세요~~~
황사저그
10/09/06 19:17
수정 아이콘
사극에 대해 고대사학자들이 자문을 꺼리는 이유는, 자문을 해줘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작가와 피디의 마음대로 써버리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입맛대로 자문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연개소문인데, 작가인 이환경씨는 줄기차게 고구려를 황제국으로 쓰고 싶어했다고 하죠. 그걸 자문으로 참여한 고구려사 전공학자가 간신히 주저앉혔는데, 거기에서 손을 들고 나머지 내용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대강 그렇습니다. 위의 예는 정말 자문이 적극적으로 역할한 예이고, 나머지는 거의 이름만 빌려주고 만다고 봐야죠.

그 결과 흉년이 들면 사출도의 세력가들이 그 책임을 왕에게 돌려 왕을 갈아치웠던 부여의 왕을 황제로 묘사하고, 소수림왕대에 와서야 겨우 가능했던 칭호인 대왕을 건국주인 주몽이 사용하는 판타지 주몽같은 괴작들이 나오게 된 거죠.
카서스
10/09/06 19:55
수정 아이콘
그리고 몇몇 부분에서는 현재 진행된 연구결과가 일반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많아서

엄청난 비난이 예상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이런상황에서 자문이고 뭐고...
아우구스투스
10/09/06 20:39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계속 연재해주세요. 요즘 이집트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의 '서양우월주의'는 듣기 그렇긴 하지만 세계 4대문명이 아닌 양대문명설은 좀 맞아보이긴 합니다.

'악마의 다리'의 경우는 아마 아우구스투스(제 닉넴 크크) 황제 시대의 장군이자 절친이자 사위인 아그리파가 지은 다리일겁니다.

사실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더욱더 무시무시한 다리를 지었다고 하지만 뭐 아마 제가 알기로는 악마의 다리라고 불린 것은 아그리파의 지휘하에 지은 것일겁니다.

사실 이때 다리 건설하는 방법이 엄청나더군요. 지금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단 물에서 건설이 힘들다고 하는데 나무를 이용해서 사각형 모양의 틈 없는 틀을 만들어서 그것을 물에 넣고 끝이 물 위로 나오게 한뒤, 그 안에 물을 퍼내고 중간에 기둥을 건설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10/09/06 22:10
수정 아이콘
국사학도로서 생각해보면 사극이 장점도 있었지만 요새는 단점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소설화를 시켰거든요.
특히 가장 사료자료가 많은 역사라 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사극. 특히 이산 같은 경우엔 완전 소설을 써버렸습니다.
그러니 자문하기가 싫어지는 거겠죠.
내일은
10/09/06 22:31
수정 아이콘
유럽도 제정로마 초기에 지은 판테온 같은 거대한 돔 건물을 다시 짓게 된 것 15세기 때나 되어서죠. 체계적인 교육과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서 특정한 기술이 잊혀지는 것은 우리 만의 일은 아닙니다.
10/09/07 10:49
수정 아이콘
흐흐 재미있네요. 이런 글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눈시BB
10/09/08 15:38
수정 아이콘
우와 감사합니다 ㅠㅠ 이래저래 머리 자 내서 더 써 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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