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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15 13:29:23
Name 잘난천재
Subject [일반] 나는 '우리의 얼굴을 가진' 악마를 보았다. (스포있음)
부쩍이나 무덥고 습한 날씨입니다.
마치 동남아의 한 고장을 연상케 하는군요.. 더운것도 심하지만 공기 한줌을 쥐면 그 속에 습기가 가득 차있는 듯 합니다.

이렇게 더운 형국에 우리의 마음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름마저도 무시무시한 '악마를 보았다'가 되겠는데요.
연출감독이 '김지운' 주연 배우가 '이병헌','최민식'인점도 무시무시합니다.
항상 연기 연출, 미쟝센, 음향 등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김지운 감독님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표출하는 '최민식'과
감정을 안은 상태로 속에서 일렁거리며 겉으로는 감정의 파동을 보여주는 '이병헌'을 필두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지가 실상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개봉했습니다..

저는 항상 김지운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고 있는 영화감독이다'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만은..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마음이 더욱 더 진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군요.


영화는 초반부터 감정선을 극까지 끌어올립니다.
이 영화의 감정은 머리가 아닌 가슴을 먼저 관통합니다.
시작과 동시에 진행되는 몇몇 시퀀스는 깜짝 놀라는 잠깐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아주 둔하고 덤덤하게 진행되어 버리는데..
이러한 진행은 가슴이 답답하고 하고 못내 두근거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동시에 이어지는 피해자의 부모님과 이병헌의 시퀀스 연결은 가장 극적인 슬픔을 표출하는데요.
인생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드는 그러한 우연을 닮은 필연성은..
영화를 삽시간에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가라앉힙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러한 구도가 진행됩니다.
최민식은 아주 무덤덤한 표정으로 있을때조차 아주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으며
택시속의 액션 시퀀스, 산장(펜션으로 보이기도 합니다)에서의 액션 시퀀스 등에서는 악마 그 자체의 모습을 보입니다.
연기의 강렬함은 오히려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능가합니다.

이병헌은 아주 강렬한 순간에도 오히려 슬픈감정을 머금는데요.
최민식을 거칠게 폭행하는 장면에서도 이병헌의 표정은 아주 섬세합니다.
눈에는 슬픔이 맺혀있고, 감정의 파동은 가슴까지 직접 전달됩니다.


또한 김지운의 연출력은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은 과감히 드러내고, 드러낼 것 같은 부분들은 오히려 삭제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명을 극적으로 활용해 아주 깨끗하면서도 깊이가 깊은 화면을 연출하고 있으며
택시 액션 시퀀스나 산장 격투신은 카메라가 쉴새 없이 움직이면서 박동하는데도 그 움직임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순간적으로 활동사진적인 강렬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음악의 선택또한 적절한데요.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할 장면에 오히려 음악을 삭제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기도 하고
갑자기 슬프고 편한 음악들을 들려줘서 관객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 합니다.
조용한 가족이후로 공포영화였던 장화 홍련, 고어 스릴러물인 이번 영화에서도 음향의 강렬함은 감독 자신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모든 배우의 연기수준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최근 어떤 영화에서도 이렇게 모든 배우가 영화속에서 한모습으로 함께 훌륭한 수준을 함께 안고가는 모습을 본적은 없느 것 같습니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고조에 이르기 보다는 오히려 침착하고 공포스러워지는데..
그것은 최민식의 연기에 기인합니다.
공포를 느끼지 않거나 목적외엔 쳐다보지 않는 악마적인 순수함.
욕망과 본능에 이끌려 행동하는 단순함.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에의 악마적 아이디어의 진행 등에서
우리는 최민식에 대한 공포, 또 동시에 그것을 담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공포는 심지어 끝나는 장면까지 지속되는데요.
가장 공포스러운 건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모습.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것들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모습.
연민, 동정에 대한 것들은 결국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주변인에게 돌릴 수 밖에 없는 그 처절하게 안타까운 심정..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 그렇게 행동해 버린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슬픔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들이
동시에 발생하고 진행되면서 영화는 당신들에게 무언의 감정과 질문을 던지고 종결됩니다.


영화는 끝내 우리에게 '당신들의 속에는 악마가 있는가'
'당신은 잠재된 악마성으로 남에게 공감하지 않은채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지는 않은가?'
를 묻는듯 한채 막을 내립니다.



최근에 타블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수의 네티즌들은 타블로에게 '당신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면서 이런 저런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건에 수많은 공격적인 덧글이 달렸고,
그 공격에 많은 공인들이 힘들어 했고, 또 어떤 배우는 자살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남에게 공감하지 않은채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 악마'인 것은 아닌가 다시한번 곱씹게 됩니다.

현실의 공격은 영화처럼 직접적이고 강렬하며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육체가 아닌 마음을 해칠뿐이지요.



아무에게도 공감하지 않고 본능로만 행동했던 최민식의 마지막 대사로 끝을 해볼까 합니다.

"넌 날 못이겨, 결국 내가 널 이긴거야!"
상처만 남은 피해자를 상대로 '이기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요?
결국 남는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안고가는 슬픔뿐입니다.


PS. 어떤 사람들은 영화의 마초적인 시선이 무섭다고 합니다만은... 사실 최민식의 본능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했습니다. 특히 산장속에서의 강간씬이 여자가 동조적이지 않냐라면서 그렇게 보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사실 그 두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더군요. 다만 감독님 말처럼 삭제된 씬이 영화의 흐름일 막아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었지 않았나
싶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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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15 13:36
수정 아이콘
선리플 후감상! ^^
rainforest
10/08/15 13:37
수정 아이콘
최민식씨 연기를 하도 극찬을 하길래 보러갔는데
혹시 이런 느낌일까? 예상을하고 갔는데 역시나 그런 느낌이네요.
결말도 평소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예상했던 결말과는 완전히 달랐구요.
디렉터스컷이 기대되는 영화네요. 엔딩을 두가지를 더 준비했다고 하던데...
10분 편집당한게 컸다고 느껴졌구요.
쓸데없이 음향효과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부분이 조금 짜증났습니다.(주위 여자분들이 소리질러서 ㅠㅠ)
10/08/15 14:20
수정 아이콘
이런 영화평을 보면 정말 보고 싶긴 한데...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하는지라 고개만 계속 내젓고 있습니다.ㅠ_ㅠ
Yesterdays wishes
10/08/15 14:54
수정 아이콘
정말 대단한 영화이긴 합니다.
좋든 싫든 영화보는 내내, 심지어 영화관을 나와서도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거든요..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어두운 임팩트를 남긴다는게 단점이라는.. 쿨럭
BraveGuy
10/08/15 15:25
수정 아이콘
정말 연기도 좋고 영화도 좋았던것같습니다. 하지만 왠지모를 찝찝함은 아직까지 남아있네요
아저씨를 보고 이것도 봤는데 우리나라 영화가 상당히 고어틱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접봉마냥눈
10/08/15 16:47
수정 아이콘
국내영화가 점점 발전하는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예전엔 한국영화는 죽어도 극장에서 안보는 주의였는데, 벌써 주말에만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 연속으로 보게되었네요;;
야광충
10/08/15 17:35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두 주연배우와 더불어 모든 출연진들의(택시안의 엑스트라 강도들까지!!) 혼을 실은 연기와 영화 제목에 충실한 김지운 감독의 악마적(?) 연출력은 정말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음향, 조명, 색감, 앵글의 세련됨은 역시 김지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단순한 응징의 카타르시스와 한국 영화사 전무후무한 액션씬등으로 대중적으로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는 아저씨이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한 화인처럼 박힐 영화는 악마를 보았다 일 것 같습니다.
10/08/15 18:11
수정 아이콘
심의로 인한 삭제 때문에 잘 모를 수도 있는게
최민식, 산장의 두 명(김옥빈과 남자) 이 셋 모두 인육을 먹는 행동을 하는 인간들이란거 아시죠?

김옥빈과 남자는 그냥 죽이고, 최민식은 강간을 한 뒤 죽이고..

에휴 심의가 너무 많은 것을 날려버렸어요
10/08/15 20:2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은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 평가하는 정점을 찍기엔 2프로 부족한...이 느낌이
맞는 것 같아서 과대평가 받는것도 과소평가 받는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보는 내내 금자씨와 박찬욱의 복수극시리즈들...혹은 타란티노의 <데스프루프>가 겹쳤고...
전혀 김지운감독만의 스타일을 놀랍도록 드러낸 장면들이 없었습니다.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김지운이니까...하는 역시 감독은 자기가 각본을 쓴 영화를 만들어야하나봐요..
10/08/16 02:16
수정 아이콘
전 이 영화 매우 좋게봤습니다.
공포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토리를 이어간다는 느낌이랄까?
마지막에 그렇게 엔딩이 끝날거라고는 예상도 못했구요.
평점은 왜이렇게 낮은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감탄하면서 봤는데 말이죠.
나중에라도 좋은 평가 받았으면 좋겠네요.
무삭제판 역시 좀 나왔으면 좋겠구요. 영화판은 좀 끊기는감이 있더라구요.
갑자기 최민식씨가 마지막에 피를 철철흘리고 묶여있는것도 그렇고
김옥빈씨 닮은 분 나오는것도 그렇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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