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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10 23:58:07
Name xeno
Subject [일반] [연재] 보드빌-vaudeville 0.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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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이이이이이익…….”

황량한 벌판, 그늘져 말라버린 땅에 구식 텔레비전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플러그 따위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으나, 귀퉁이 한쪽이 깨진 브라운관은 의미 없는 신호를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해 뿜어내고 있었다.

“팅”

노이즈가 걷히고 그림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하얀 화면이었으나 그것은 금새 금빛 광채로 변했고 차차 광채가 걷힌 화면 안에는 검은 구멍이 뚫린 네모난 상자 하나가 있었다.

화면은 점점 변해갔다, 처음에는 느낄 수 없었으나 차츰 그 상자의 옆면에 난 커다란 검은 구멍을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면은 천천히 빠져나와 다른 그림을 만들어냈다, 검은 구멍 안에서 떠오른 광경은 어떤 초원의 광경이었다, 그곳은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공간을 사람을 포함한, 살아있는 것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 “살아있는 것”들은 기이하게도 사슴, 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어느 것이든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브라운관 안에서 나오는 그것이 자신의 종교에서 말하는 낙원의 모습,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행복에 가득 찬 생물들이 점차 그 모습을 감추고 저쪽 멀리 서 사람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는 저 아름다운 낙원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나온 모든 생물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지금 나온 이 사람은 새까만 턱시도 차림이었다. 연미복에 흰 장갑,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강조된 어깨와 구두 큼직한 실크햇 모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뭉툭한 주먹코 밑에는 마치 살바도르 달리와 같이 위로 말려 올라간 뾰족한 콧수염이 달렸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20세기 초 미국과 유럽에서 대단히 유행했던 유랑 극단의 서커스 단장을 연상시켰다.

그가 나오자 머리 위로 스팟라이트가 떨어진다 ‘팟’.
만면에 유들유들한 웃음을 띠며 그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당신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 생각하십니까?”

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브라스 맬로디가 뛰쳐나온다. ‘빠밤’ 그리고 푸른 초원을 채우던 살아있는 소리는 봄눈 녹듯 말라버렸다.

“아니, 애초에 천국이 있다는 걸 어떻게 믿죠? 애당초 증거도 없이 믿어버리기엔 너무 큰 리스크가 있는 것 아닌가요? 막상 죽어버리고 천국이 없다면 그럼 그건 누가 보상해주죠?”

한번 열려버린 이 남자의 입은 좀처럼 닫힐 줄 몰랐다, 이런 이야기를 떠벌리는 사이 어느새 배경은 바뀌어 아름다운 낙원의 모습은 더 없었다. 그곳에는 아까부터 뽕끼 가득한 곡을 연주하던 빅 밴드와 마치 조각칼로 새긴 듯 귓가에 미소를 걸어놓은 8등신 금발 미녀가 “HEAVEN NOW”라는 피켓을 든 채로 자리 잡았다.

계속해서 이 ‘단장’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불확실한 미래에 더는 매달리지 마세요, 저희는 눈에 보이는 낙원을 제공합니다, 디지털화된 당신의 영혼은 외부의 충격으로 절대 안전한 DB에 기록되어 반영구적으로 이 낙원의 주민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시면 파격적인 가격에…….”

이쯤 되자 홈쇼핑에서 흔히 보는 사이드바 CG도 화면에 슬며시 자리를 잡았다, 지금 결정하면 144개월 무이자 할부로 순번을 지정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때, 아무도 없던 이 벌판에 사람의 인기척이 생겼다.

“타앙!”

구식 윈체스터 소총 특유의 폭발음과 함께 브라운관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이 브라운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과 음악을 쏟아냈다. 화면에 구멍이 뚫려 그림은 알아볼 수 없었고 스피커에도 충격이 가해져 안 그래도 기묘한 단장의 목소리는 헬륨가스를 마신 듯 삐걱대기 시작했다. 마치 발악하듯이.

“지금 빨리 주문하세…….”

“타앙! 탕! 탕!”

몇 발의 총성이 더 들리고 드디어 브라운관은 검은 연기를 내 뿜으며 조용해졌다.
황량한 벌판이 다시 적막함을 되찾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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