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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02 21:32:15
Name 김연아
Subject [일반] 김연아, 미스 판타지 스케이터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1.
쓸 말이 디게 많은 것도 같은데, 여기저기서 다들 하고 있는 얘기들이라 쓸데없는 반복이 될 것만 같네요. 심지어 연비어천가마저 각국의 외신들이 쏟아져 내고 있는 중이라, 좀 길게 늘릴 수는 있겠지만 역시나 그저 반복이겠지요. 다른 곳에서 본 글,

미국 땅에 살면서 김연아처럼 그 곳 언론으로부터 극찬받는 외국인은 처음본다고, 이건 기사가 아니라 헌정시라고..

(우리 나라는 좀 격에 맞는 헌정시 못 써주나?-_-+)

2.
경기 볼 때는 점프 성공에만 너무 집중해서 보느라 연기에 대한 감상을 진득하게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올림픽 성과라는 표면적 감동이 연기의 내면적 감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스물스물 감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3.
쇼트프로그램은 아직도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북미에서는 인기가 빵빵터진 곡이라 성공적이라고도 하지만 인기가 많건 적건 아돈케어(성렬이형.. ㅠ.ㅠ)고 록산느-박쥐-죽음의무도로 이어지는 연아의 초명품 쇼트 계보를 잇기엔 그저 무난할 뿐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007이 가지는 상징성이라면, 무난한 프로그램을 김연아가 무난하게 했을 때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가지는가를 잘 보여줬다는데 있을 겁니다. 외신의 표현을 빌자면 그 순간 이미 'no contest'인 것이지요.

4.
하지만 롱프로그램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거슈인 피협은 상당히 복잡한 느낌을 가진 프로그램입니다. 일단 쉽지가 않습니다. 노래부터가 쉽지가 않습니다. 보통 피겨에서는 귀에 쏙쏙 들어오거나 주제를 잡기가 쉬운 곡을 고릅니다. 귀에 익은 곡들이면 선율을 안무에 실어내기가 편하고, 주제가 명확하면 연기의 감을 잡기가 쉽겠지요. 이건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거슈인의 피협은 매력적인 곡이지만,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거나 한 번에 귀에 쏙쏙 들어오거나, 오페라 넘버들처럼 주제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곡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연기를 보는 입장에서도 쉬울 수가 없는 프로그램인 거에요. 지루한 선율 속에서 그냥 몸이 나부낀다는 느낌을 주기 십상이지요.

더군다나 안무자체가 틈이 많습니다. 트랜지션도 기존 연아프로그램에 비하면 상당히 심플하고, 스텝도 현란함을 오히려 억누르려는 듯한 인상입니다. 스텝 나올 때의 음악을 보면, 빵빵 달려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달림을 억누르고 격렬한 마무리와의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선율이 나옵니다.

네, 그러니까 한 마디로 X나 어려운 프로그램이라는 거에요. 연기하는 사람한테나 보는 사람한테나 스트레스 팍팍 주기 십상인 프로그램인 거지요.

근데 이게 김연아라는 키워드를 만나니까 모든 문제가 마법같이 해결되어 버리는 겁니다.

김연아는 장점이 아주아주 많아서 도대체가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지요. 가장 많이 표현되곤 하는게 바로 토탈패키지지요. 모든 것을 갖췄다는 것. 맞는 말인데 그것만으로도 김연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에는 한계가 보입니다. (무서운 분ㅠㅠ) 하지만 전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려고 들어보는데(크크), '정제'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김연아가 가지는 탁월함의 요체는 아주아주 정성스럽게 잘 갈고 닦여 순수한 것만이 남았다는 겁니다. 김연아의 기술이 얼마나 잘 정제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결과로)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잘 정제되어 있고, 그녀의 표현 하나하나가 잘 정제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훑고 지나간 빙판 위에는 순수하게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남아버리는 것이지요.

어느 코치더라.. 갑자기 이름을 까먹었는데, 김연아는 테크닉과 예술성이 70 대 30 정도로, 페기 플레밍처럼 50 대 50의 완벽한 조화가 아니라고 했다네요. 전 한 마디로 X소리라고 해주고 싶네요. 왜냐하면 김연아의 예술은 너무나 잘 정제된 테크닉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이미 예술과 기술의 구분이 무의미해요. 심지어 이 프로그램은 아주 탐미주의적이죠.

거슈인 피협은 이런 김연아 미(아 쓰고보니 웃기네요 무슨 미스코리아냐??)의 정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입니다. 우리가 이번 경기를 보면서 어디 지루할 틈이나 있었나요? 안무의 여백 위에서 김연아의 아름다움이 아주 선명하게 표출되었지요. 이게 바로 김연아의 마법이고, 이 프로그램의 위대함입니다.

거슈인 피협 프로그램이 가지는 또다른 장점은 음악에 있습니다. 재즈풍의 선율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굉장히 모던한 고전음악으로 남아 있습니다. 딱! 감이 오지 않습니까? 김연아는 고전적인 우아함과 현대적인 세련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그것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음악이었던 것이지요.

이번 올림픽 프로그램은 김연아가 그 동안 체득한 모든 것들이 그려진 그야말로 꿈의 연기였습니다. 연기 직후 터져나온 수많은 찬사들은 단순히 최고 득점의 경기여서가 아닐 겁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즐거움과 감동이 한 선수에 의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바로 판타지 스케이터라는 걸 깨달은 겁니다. 이에 대한 보상이 그저 올림픽 금메달이라면 아주 싼거죠^^

5.
간만에 연아 갈라도 아주 즐겁게 봤습니다. 처음에 엄청난 환호 속에 소개된 거에 비해 끝나고서는 박수가 약해서 아쉬운 건 확실히 있었습니다. 근데 또 남이 싫어하거나 말거나 아니겠습니까? 서정성의 극치를 봤어요. 고와요~ 곱습니다~ (성렬이형ㅠ.ㅠ)

6.
여기저기서 아주 난리입니다. 오늘은 정말 눈뜨고 보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고, 내일이면 아주 짜증나는 일이 하나 또 일어나겠지요. 이런 걸 묵묵히 따르고 있는 그녀에게 미래를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단 저부터도 좀 쉬고 싶은데 말입니다. (일하기가 싫...) 그저 그녀가 가장 즐거울 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음.. 바로 내 옆?!!!!!!!!!!!! 퍼버버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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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아들
10/03/02 21:36
수정 아이콘
자화자찬이군요...

연아양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10/03/02 21:38
수정 아이콘
거쉰은 제가 제일 사랑하는 두 개의 프로그램 중 하나죠. 하나는 절 한눈에 반하게 한 록산느의 탱고구요. 기술적 완성도나 세련됨, 우아함, 품격은 거쉰이 앞서지만 아직 첫사랑인 록산느가 더 좋기는 해요.

전 돈스탑더뮤직 갈라를 기대했다가 타이스의 명상곡을 보고 좀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는 했어요. 의상도 맘에 안들고..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우승자의 갈라로는 좀 더 강렬한 것을 원했지요. 그런데 두번째로 보니 정말 아름다운 갈라더군요. 심장이 찌릿찌릿해요. 으헝헝헝
LunaticNight
10/03/02 21:43
수정 아이콘
저랑 같으시네요~
저도 쇼트는 록산느의 탱고, 프리는 이번 거쉰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갈라는 취향 탓인지 리플렉션이 제일 좋았더 것 같네요~
비소:D
10/03/02 21:39
수정 아이콘
김연아선수에 대해 김연아가 적으며 김연아를 찬양하고있어!!!!
ArcanumToss
10/03/02 21:46
수정 아이콘
'쉽상'이 아니라 '십상'입니다.
기술과 예술성이 70:30 이라고 한 사람은 요즘의 피겨는 과거와 달리 기술을 많이 요구한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김연아
10/03/02 21:48
수정 아이콘
ArcanumToss님// 수정했습니다. 감사해요^^
nokjung777
10/03/02 21:49
수정 아이콘
로그인을 하게 만드는 글이군요! 흐흐...
저는 아직도 김연아 선수의 프로그램 중에서는 종달새의 비상을 제일 좋아합니다.
완벽한 클린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원한 미완성의 대작으로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당시 김연아 선수의 상황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주니어와 시니어의 경계에 서 있는 상태에서 막 비상을 시작한 종달새처럼 세계를 향해 날개짓을 시작하는
김연아 선수 그 자체를 표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연아 선수가 아직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온, 나름 역사와 전통;; 을 가진 팬으로서
이번 올림픽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파페포포
10/03/02 21:55
수정 아이콘
저는 쇼트 록산느, 프리는 파파랑 미스사이공 두개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로 둘다 좋아하구요^^
갈라는 벤이랑 리플렉션, 이 둘다 또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요ㅜ_ㅜ
귀여운호랑이
10/03/02 22:01
수정 아이콘
연아양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달덩이
10/03/02 22:11
수정 아이콘
연아선수, 여기서 뭐하시는건지...

확실히 007은 제 맘속에 베스트는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처음 뽕빨에서 봤던 그 강렬한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옅어지더군요. 죽음의 무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하게 제 맘속에 자리 잡았던 것에 비교하면.. 다만 이 프로그램의 대중성은 인정. 누구라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거쉰은 보면 볼수록 빠지는 프로그램.. 참, 어쩜 이런 선곡을 할 생각을 했는지 대단하다 싶습니다.
여자싱글 1그룹부터 보면서 소위 말하는 '사골곡'의 향연에 질릴려고 하는데, 연아선수의 거쉰은 귀와 눈에 동시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네요.

뭐, 이러쿵저러쿵 해도 저는 연느님 프로그램 중에서는 싫어하는 건 없지요
모든 프로그램은 플레이어에 담아놓고 오며가며 복습해도 절대로 질리지가 않으니..

오늘 하루 푹쉬고, 얼른 우리나라 언론들이 없는 캐나다로 갔으면 좋겠네요.
10/03/02 22:12
수정 아이콘
연아양 글이 나와서 댓글을 달자면
지역뉴스에 연느님 목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했을때 대단한 강심장이란 결론이 나왔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경기직후 목소리가 오히려 더 안정적이라 하던데요~
당연히 서울뉴스에 나갈줄 알았는데 안 나갔더라고요;;
Lunatic Heaven
10/03/02 22:24
수정 아이콘
연아양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2) 크크크크크크크.

저도 올시즌 연아의 007은 그닥... 제 취향은 아닙니다.
이렇게 대중적인 곡으로도 이렇게 피겨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연아와 드림팀의 센스는 그저 감탄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베스트는 죽음의 무도였습니다.
이상하게 프리프로그램 중에서는 죽음의 무도만큼 아끼고픈 프로그램은 아직 없었어요.
(좋아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확! 하고 남는 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거쉰을 보고 단박에 빠졌어요. 음악도 제 취향, 의상도 제 취향, 구성도 제 취향ㅠㅠㅠ

오후 5시 반에 도착해서 시차적응 못 하고 밤새 비몽사몽하다가
내일 아침엔 청와대 만찬(을 가장한 기념사진 박기가 될 가능성에 제 주택청약통장 겁니다.) 갔다가
오후 비행기로 다시 캐나다로 출국.

제발...... 냅둬주면 안되겠니?
ThinkD4renT
10/03/02 22:39
수정 아이콘
귀국 하셨다더니... PGR에 들르시는 군요... 연아양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3) ^^;

거쉰... 연아신의 마스터피스죠... 말이 필요없는 작품입니다...

전 이번 갈라.. 타이스의 명상곡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대박 갈라가 나왔어요... ㅠㅠ
10/03/02 22:40
수정 아이콘
완성도 측면에서 거쉰이나 죽음의 무도가 최고의 프로그램 취급을 받을 만 하다고 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록산느의 탱고가 Best입니다. 완성형으로 진입하는 김연아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그런 프로그램이라고 할까요. 아직도 스파이럴에서의 그 표정을 잊지 못하고 있죠.
다미아니
10/03/02 22:50
수정 아이콘
훈훈하고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링크 겁니다.
제목은 "연아 때문에 내야했던 점심값"
http://sports.media.daum.net/general/bbs/moresports/#read?bbsId=F009&articleId=215527
10/03/02 22:52
수정 아이콘
갈라는 이번 "타이스의 명상곡"이 정말 좋습니다.
아마 익숙하지 않아서 한번에 이해하지는 못할테지만, 2~3년전의 연아라면 할 수 없는 갈라라고 할까요...
나야돌돌이
10/03/02 22:57
수정 아이콘
근데 거쉰은 북미에서는 아주 친숙한 곡이라 그쪽들 취향에는 맞을 겁니다. 거쉰 들고 나온다 했을 때 북미포럼 반응은 좋았지요
미국은 왜 그렇게 연아를 좋아하는 것일까요...보면 완전 자국여싱 대접이던데, 연덕인 저야 좋은데 암튼 궁금

오늘 기자회견 보고 짜증나신 분들 없나요? 부모님과 함께 보면서 저런 수준낮은 질문들을 해대냐고 함께 공분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연아양이 소치까지 가줬으면 하지만 전적으로 연아양 선택을 존중해야죠
10/03/02 23:15
수정 아이콘
김연아 선수는 미국에서 좋아할 거의 모든 조건을 갖고 있죠. 국적만빼고...
10/03/03 12:03
수정 아이콘
여..연느님! 연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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