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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6/21 14:24:58
Name 에이취알
Subject [기타] [펌] 대표팀선수들에게 "괜찮아"를..
마음으로 읽는 글

전 축구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냥 한국팀이 잘 해주는 것에 대해 기쁘기만 합니다.

골 넣었다며 다들 펄쩍펄쩍 뛰며 얼싸안고 기뻐하는 사이로 잽싸게 티비 보며 "야~ 누가 넣었어~" 라고 말해주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축구에 대해 정말 문외한인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제 이탈리아전을 할 때 학원 수업이 있었던 지라 전반전을 놓치고 서둘러 친구들이 있는 술집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다들 얼굴 표정들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어째서 그러냐고 했더니, 우리나라가 1:0으로 지고 있으며 안정환이 패널티킥을 놓쳤고 거기다가 설기현은 번번히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단 제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옆 자리나 뒷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너무 못한다, 우리나라 졌다, 이게 무슨 축구냐는 식의 반응들이 계속 연거푸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설기현의 골, 그리고 안정환의 골든골.

사람들은 약 30분 전에 했던 모든 말들을 잊어버린듯 설기현과 안정환의 칭찬을 침튀기며 해댔고 저는 그 사이에서 약간은 어안이벙벙하게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전 설기현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만 축구 경기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울어버려야 했습니다.

골 세레모니가 너무 싱겁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너무 오랫동안 골을 넣지 못해서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는 그의 멋적은 말에 울컥하고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 속이 얼마나 까맣게 탔었을까요.

그가 미국전, 포르투갈전에서 매번 2∼3차례 골찬스를 무위로 날려버리자 그를 빼버려야 한다는 말이 하늘을 찔러댔죠. 그는 만삭의 아내에게 이탈리아전을 앞두고 전화도 할 수 없었답니다.

안정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칭찬을 받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이탈리아에게 그대로 져버렸다면 안정환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비난받았을 것입니다.

감독인 히딩크가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우리의 입으로 비난했을 테지요.

끊임없이 우리들은 안정환 빼라, 제발 좀 빼라, 쟤는 후반에 넣는 게 훨씬 낫다라는 말들을 해댔죠.

이제 겨우 두번째 전후반 경기를 뛰는 선수였습니다. 히딩크는 그를 믿어주었구요.

안정환 인터뷰에서 그러더군요. 히딩크 감독이 만약 교체시켰다면 그 패널티킥 실축이 두고 두고 마음에 평생토록 앙금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정말 중간에 히딩크가 그를 빼버렸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며옵니다.

그것 외에도 이탈리아에게 져서 우리나라에서 채이고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또 말도 안 되는 서러움을 벤치 한 구석에서 당하고 있을 안정환 선수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아찔해집니다.

어제 열기가 어느정도 가라앉은 후 친구들끼리 이야기하기를, 만약 안정환이 못 넣었으면 천하의 '매국노'나 '역적'이 되었을 거라고 멋적은 얼굴들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에 정말로 이탈리아 전을 졌으면 어땠을까요.
각종 언론들에서 또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물론 16강을 이뤘으니 크게 나무라진 못하겠지만, 아직도 강팀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직도 골결정력은 너무도 미약하다. 덩달아 지난 미국전 때 이을용의 패널티킥 실축 장면까지 더해져서 실축에 대한 비판이 각 방송마다, 신문마다 가득 메워졌겠지요.

결국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16강이라는 염원을 달성했고 그것도 더해 8강까지 갔습니다.
스페인을 이기면 4강이라는, 꿈에도 보지 못했던 그런 현실을 맛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페인전을 질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설기현은 또 다시 하늘로 공을 차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을용, 안정환 선수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도 페널티킥을 실축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골을 넣은 황선홍 선수나 박지성 선수, 유상철 선수도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 때에도 똑같이 죽여라, 살려라 욕을 하시겠습니까?

그들의 경기에 대해서 아쉬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반 45분, 후반 45분을 뛰는 것은 술집에 앉아 맥주를 즐기며 보거나 거리에 앉아 응원하는 우리가 아니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도 모자라 이리저리 부딪혀 오는 덩치큰 외국 선수들에게 치이면서도
둥근 공 하나를 발 끝에 매달고 미친 듯이 달리는 우리의 선수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누구 친구하나가 우리 머리를 때리거나 어딘가 부딪혔을 때 얼마나 아픈지를. 그것을 90분 내내, 혹은 120분 내내 당하면서도 또 뛰어야 하는 우리 선수들을 말입니다.

저는 응원 구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괜찮아! 괜찮아!"입니다.

이을용 선수가 그랬다지요. 지난 미국전 패널티 킥을 실축했을 때 풀이 죽어 돌아오면서 "국민들이 아마 날 죽이려 들겠지?"라고 했다는 말.

이 말을 들으시고도 마음이 정말 찢어질 듯 아프지 않으시다면 한국팀 응원을 중지하십시오.

잘 할 때만 아끼시고 못 할 때는 여지없이 내치시는 당신은 축구를 사랑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실수에 대해 용서할 수 없으시다면 붉은 옷을 벗고 태극기를 내려놓으십시오.

정말 우리 한국팀을 사랑하신다면 혹 이번 스페인전에서 지게되더라도
있는 힘껏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아"를 소리 높여 외쳐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하나, 둘씩 더해져서 우리보다 더욱 슬퍼하고 있을 우리 멋진 한국 선수들에게 들릴 수 있도록, 대한 민국이 하나 가득 한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아"로 울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Ps.모르면서 떠드는것만큼 바보스러운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축구를 얼마나 알기에 그렇게 비난하느냐 물었을때
"나는 그냥 월드컵을 즐길뿐이야" 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냥 냄비족일 뿐이야" 라고 말해주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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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딩크
02/06/21 14:58
수정 아이콘
정말 정말 100% 아니 200% 공감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와의 경기 중에 우리 관중들이
야유보내는 거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기 때문에
권장할 수는 없지만 홈구장에서 응원하는 홈팬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괜찮아"응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여겨지네요.
헤르만
육두 문자를 써가면서 경기를 보는것이 그들에게 더 큰 보는 즐거움을 준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육두문자가 아닌 가슴속에 새겨지는 육두문자라면..... 정말이지..... 이번 월드컵 경기는 물론 어떠한 스포츠 경기도 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 간절....합니다.....
02/06/21 19:43
수정 아이콘
넣으면 영웅, 못 넣으면 비난 세례
이런건 정말 사라져야 하죠.
그나마 안정환선수는 나중에라도 골을 넣어서 다행인데
이을용선수 생각하면 참 마음 아프더군요.
헤르만
이을용 선수 미국전에서 패널티킥 실축후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잖아요... 안정환 선수의 동점골 어시스트..... 최용수 선수에게 기가막힌 패스등등.. 최용수 선수가 실축했을때 원망(?)스러운듯 쳐다보는 이을용선수의 눈빛.. ㅎㅎ;
군용건빵
02/06/22 12:23
수정 아이콘
미국전에서 한골 먹은 건 이을용선수가 옵사이드작전을 실패했기때문이죠. 그래서 히딩크감독이 패널트킥을 을용선수에게 준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마저도 실패..ㅜ_ㅜ 많이 안쓰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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