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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7/30 21:21:56
Name zeros
Subject Mr.Waiting - 12
난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눈물아 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했던 말이 어떤 일을 의미하는지는 알았지만 실감은 눈곱만큼도 나지 않았다. 단지 나의 진심과 상반된 이 말을 그녀의 얼굴을 보고 할 자신이 없었을 뿐 이었다. 우린 또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제발 그녀가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결단을 내린 나를 보고 마음을 돌리기만을 바랐다. 간절한 마음은 나뿐이었을까.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야.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우린 행복할 수가 없는 걸까. 난 간신히 참았다.

“안되. 너 또 날 얼마나 흔들리게 하려고 그래.”
“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 왜 이렇게 몰라줘.”
“들어가라.”

하루 종일 거짓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 친구로라도 그녀 곁에 남고 싶었고 안아주고 싶었고 함께 하고 싶었다. 1년만의 줄담배에 배가 아팠다. 명치가 일그러지는 듯 했다. 나무가 뽑히고 있었다. 그 날은 식목일이었다.

꿈같은 아침. 페이드인 하듯이 몇 초 동안 다가오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젯밤 일은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 잠에서 방금 일어나 까끌까끌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3시간도 못 잤지만 정신은 차가웠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마지막을 걱정하여 시작을 못하는 거라면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듯했다. 그녀의 거절을 위한 핑계라는 생각까지도 해보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해답을 위한 보기의 항 개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해답이 존재하기는 한 질문이었을까. 내가 그녀에게 했던 그 말을 지키기엔 난 너무 나약했다. 난 내 자신을 자제하지 못했다. 7시간 정도 생각하고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그녀는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물어보라 했다. 다시 3시간을 고민했다. 질문이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아니, 난 물음을 핑계 삼아 설득을 하려하고 있었다. 난 내가 말이 안된다고 느낀 점과 우린 아름다울 수 있다고 했다. 질문은 알콜의 시큼함이 내 머리를 휘감았을 때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답장이 왔을 땐 그 시큼함이 역겨움으로 바뀌어 있었을 때였다. 현실의 벽을 느꼈다. 그녀는 상황적인 이유로 우리의 아름다움이 짧을 것이라 단정 짓고 있었다. 이해 할 수는 없었다. 이제 곧 학교를 졸업할 그녀와 아직도 꽤 많은 나날들을 채워야 하는 나. 차이는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이렇게 벽이 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나의 오랜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냈다. 내가 남들처럼만 살아왔더라면. 나는 휘청였다. 잊은 줄 알았던 나의 과거는 이제 그 모습을 실체화하여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는 3일 정도가 걸렸다. 짧은 휴가기간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충분치 못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대 안이 어쩌면 생각하기에는 더 적합한 장소였다. 난 그녀의 말들을 하나하나 내 앞에 모아놓았다. 그리고 조립해보기 시작했다. 3일 만에 그럴듯한 완성품이 내 안에 들어왔다. 이것이 그녀의 마음의 조각과 딱 맞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를 나의 무의식이 최대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조각을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이상과 철저히 반대되는 그녀의 현실적인 말들은 블록 곳곳에 박혀 날 할퀴었다. 언제쯤에나 기적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난 곧 닥쳐올 고통에 각오하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옛날 그녀 대신 나와 함께하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그런 것이라는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친구는 그런 나에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 온 탓일 거라는 이야길 해 주었다. 정말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한편으론 그녀를 기다리는 그 시간의 고통이 예전보다 덜 할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얻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내가 너무 지쳐버려 마음이 변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역시 들었다. 아무리 고통이 예전보다 덜하다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식욕은 사라져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내 안은 그녀로 가득 차 버렸다. 웃음은 억지스러웠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녀가 아닌 다른 이들과의 일들은 모두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느껴졌다. 그녀와의 마지막을 말한 건 나였지만 정작 나 자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녀와의 마지막을 번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안 된다면 정말 안 되리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기다리는 나를 모를 그녀가 두려웠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 마음이 바뀌더라도 내가 한 마지막이라는 말 때문에 그리고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하다 결국 포기해 버릴 사람이니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른다’ 라는 생각이 자꾸 나를 붙잡았다. 스스로도 구질구질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나는 다시 펜을 들었고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적기 시작했다. 이 편지마저 메아리 없는 소리침이 된다면 정말 놓아줘야겠단 생각이었지만 자신은 없었다. 그녀와 만났던 그 날 빛을 보지 못했던 나의 마음들이 수첩에서 여기저기 흩뿌려지다 편지지에 새겨져 내 손을 떠났다. 모든 신경이 그녀에게 쏠려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더 이상은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일 뿐. 그녀로부터 답장이나 연락은 없었다. 그녀가 내 편지를 읽었는지 받기는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이상의 표현과 설득은 그녀에게나 나에게나 괴로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항상 이야길 나누던 시간이 오면 그 텅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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