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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2/02 03:23:11
Name 항즐이
Subject [아티클]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1.승부에 대한 마음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1. 승부에 대한 마음.

황제를 독사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

우리는 임요환 선수를 황제라고 부른다. 그가 비록 잠시 영토를 앗기고 어려운 시절을 지내는 중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주 말의 타락으로 보거나 당 말의 쇠락으로 평하지 않으려 한다. 10만이라는 그의 백성들에 의한 의견이 아니더라도, 황제는 분명 와신상담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난번에도 언급했거니와, 황제는 끝없이 정복한다. 정복은 곧 육식동물의 본능이다. 그것은 배를 채우기 위한 엄청난 욕망을 위해 전진하는 힘이다. 초원에서 한가로이 누워 있는 사자에게는 이미 그러한 정복의 꿈은 사그러든 지 오래. 그렇다면, 황제는 배부름을 잊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는 패배하는 게임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 버리고 다시 탐욕스러운 눈을 갈고 닦는 진정한 포식자로 보인다. 그는 게임에서 지고 눈물을 흘릴 줄 안다. 그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안다. 설령 많은 일들이 그에게 더 많은 미소와 시간을 요구할지라도 그는 자신이 늘 칼을 쥐고 상대를 베는 처절한 삶을 살아야만 함을 잊지 않는다.

그가 보이는 많은 전략들은 이기기 위한 것이다. 비록 때로는 더 승리를 장식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엽기는 그를 거쳐 "가장 승리에 근접한"전략의 선택으로 거듭난다. 그의 새로움을 단순한 일탈로 부르지 않고 황제의 선택으로 부르는 이유. 그것은 그가 승리를 갈구하는 승부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최근에 치른 온게임넷 두 번의 결승전을 보러 직접 갔었다. 한번은 그의 응원석에서, 또 한번은 상대의 응원석에서 나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 늘 웃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자신의 살기를 감추려는 포식자의 행동으로 보인다. 그가 패배를 통해서 자신의 배부름을 토해 내고 굶주림을 비로소 드러내는 순간의 그의 눈빛은 분명 본능을 감추지 못하고 만다.

우리는 그를 황제라고 부르지만 또한 독사라고도 부른다.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독사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설령 승부에서 지고 초라해 질지라도 승부를 피한 안락함을 거부하는 사람. 승부사, 그 승부의 마력을 움켜쥐는 사람을 우리는 독사라 부른다.

우리는 독사를 황제로 얻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황제는 독사인 것일까.


분노는 삼켜질지언정 감춰지지는 않는다.

오늘은 온게임넷 왕중왕전이 있었던 날이다. 나는 우연히 김동수 선수와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처음 지하철을 탔을때 그는 자신의 팬들에게 여유있는 농담을 날렸다. "열심히 하려는게 아니었는데 1승 1패했으니 성공이네. 나 어제 완전히 놀았거든. 티 안났지?"

하지만, 팬들이 하나 둘 내리고 자정을 다가서는 지하철 안의 인파 속에서 어쩔수 없이 다가가게 된 그에게 내가 어색함을 감추며 소개를 해야 했을때 그는 이미 삼킨 분노를 다스리는데 힘겨워 하고 있었다. 굳이 그가 입술을 앙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표정과 말투는 이미 완연한 분노와 각오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지다니. 완전한 패배야."

그는 어쩌면 자신의 분노를 잊지 않으려는 것 처럼 보였다. 황제가 늘 자신을 낮추어 상대에게 입은 패배를 설욕하려는 도전자로서의 자신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의 자긍심을 스스로 완벽히 신뢰하고 그 자긍심의 상처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서 분노를 키운다. 물론 그 분노는 승리를 향한 힘이 된다.

언제나 그가 인터뷰를 할 때면 여유있는 분위기와 함께 긴장이 함께 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웃음으로서 상대를 부드럽게 풀어줄 지언정 그것이 상대를 자신보다 높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심중에 최고의 자긍심을 품고 거세게 심장을 두드리는 용사다. 설령 상대가 자신을 밑에서 찔러올린다 할 지라도, 그는 내려다 보지 않을 사람이다. 다만, 그는 분노할 뿐이다.

그리고 분노는 감춰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의 승리까지는.


하지만 꼭 이겨야 하죠.

얼마 전에 KPGA위너즈 챔피언쉽에서 어린 나이의 성학승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약간의 흔들림에도 민감한 저그대 저그 그것도 5경기만에 홍진호라는 거센 폭풍을 견뎌내며 새로운 바람임을 자처했다. 그런 그와 동갑의 나이인 이윤열 선수가 KPGA명인전에서 승부를 가졌다.

게임전에 나는 친한 게이머에게 그냥 편하게 물어보곤 한다. "이길 자신 있어?" 상대가 만일 부담스러워 한다면, "괜한 겸손이네"하고는 넘겨버리면 그만이므로. 하지만 성학승 선수는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이길수도 질수도 있죠. 그건 알수 없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몇 차례 더 같은 질문을 두 선수에게 했고, 약간은 긴장된 이윤열 선수와는 달리 성학승 선수는 계속해서 "승부는 알수 없어요. 이길수도 있고 질수도 있죠."라는 말로 대답했다.

승부는 성학승 선수쪽으로 가다가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2:1 이윤열 선수의 승리. 끝난 후, 클로징 화면을 위해 다가간 나는 성학승 선수에게 다시 물었다. "역시 위치 운이 너무 나빴지?" "아뇨, 그래도 잘했으면 이길수 있었죠. 이길수도 있고 질수도 있죠. 인생만사 새옹지마에요. 하하하..  위치때문에 지는 건 아니죠."

이길수도 있고 질수도 있다는 그 말, 그러나 패배 직후 내 눈앞에서 분명히 있었던 그의 굳은 표정과, 게임전에 했던 그의 말은 나에게 그가 승부를 가볍게 여기지 않음을 깨닫게 했다.

"윤열아,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을 니가 해봐야 해. 그러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전략과 전술에 대한 대화 도중 나왔던 그의 그 말. 그는 결국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절대 망각하지 않는 훌륭한 선수이다. 위치때문에 지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생각. 그는 결국 한 마디를 더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죠.

....하지만 꼭 이겨야 하죠.




사실은 더 많은 게이머들이 더 많은 승부에서 집착하고 승리를 갈구하는 모습을 봐 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게이머였고, 이름있는 선수들이었다. 승부를 소중히 하는 마음. 일기일회라는 말처럼,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안타까워지기까지하는 그 집착이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겼다는 것에 대한 설명보다 중요한 것은 이겼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부르고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던, 그들 자신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것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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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theia
02/02/02 03:38
수정 아이콘
동의지지 백만표. 좋은글, 군. ^^
드뎌 항즐님도 인기 작가 대열에? ^^
왕마귀
흠.....독사라는 표현보다는......

사자가 어떨까여?? -_____-;;
나는날고싶다
02/02/02 14:38
수정 아이콘
+_+ 형..인기작가 되겠당..ㅎ0ㅎ ^^ 굳이야..
wOw 동물에 왕국 ^^
[귀여운소년]
글 잘 쓰는 사람드리 브 러 버 ~
INV THEM
02/02/04 11:27
수정 아이콘
멋있는글.. 특히 동수님의 본모습을 알수있어서.... ^^ 동수님 화이팅.. 더 멋진 전략을 들고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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