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편의상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름 군생활 3부작이라 읽고 재미있으셨다면 나머지 두개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훈련소의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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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밤은 길기도 길어 별일이 다 일어났다. 특히 강원도 산골짜기 겨울은 세시면 해가 떨어졌다. 지루하기 짝이 없고 딱히 할 것도 없었지만 심심하지 말라는 누군가의 뜻인지 종종 이벤트가 일어났다. 사실 그냥 별일이지 큰일은 아니었다. 보통 눈에 관련된 일들이 많았고 시비를 거는 멧돼지에 총을 쏜다든지 야식이 고픈 고라니들이 잔반통을 엎어놓고 도주해버리는 것 같은 소소한 일 들이었다. 그날도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어느 새벽 당직사관이 방송으로 모두 기상하라며 비명을 질렀다. 평소 공화춘 찾을 때만 소리를 높이던 나름 유한 사람이었던 그가 샤우팅을 하자 모두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뜬 채로 일어났다. 어느 정신머리 없는 놈이 당직사관 컵라면을 훔쳐먹은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며 막사 중앙에 모였다.
「다들 정신 차려. 지금 특전사가 공격하고 있어. 빨리 옷들 갈아입고 배치 장소로 이동해」
순간 쿠데타가 왜 이 오지에 일어나지 싶었는데 그건 다행히도 아니었다. 얼핏 이야기 들어보니 높으신 분들이 전투태세를 확립한다고 특수부대를 풀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방 부대 경계가 뚫렸다는 딱지를 여기저기 붙이고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저 빨간 종이는 법원 압류 통지보다 무서웠다. 그거 한 방이면 지휘관 출세길부터 말단 졸병 휴가길까지 모조리 끝장이었다. 때는 12월, 군인들은 크리스마스 로맨스를 꿈꾸고 있었다. 병사들은 잡지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남성성을 갈고닦으며 연말을 기다렸다. 이 준비된 매력남들의 순정에 특수부대가 빨간딱지를 붙이려 달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리 짜 놓은 특수상황 계획대로 MG-50 중기관총을 들고 부대 뒤편에 있던 대공 진지로 올라갔다. 함께 올라갔던 부사수는 서른 줄을 앞에 두고 있던 내 허리가 걱정된다며 고맙게도 그 무거운걸 혼자 매고 올라가 주었다. 대공 포대는 짬이 어느 정도 찬 이후로는 편했다. 망만 잘 보고 있으면 딴짓을 해도 상관이 없어서였다. 다만 둘 다 어느 정도 계급 있는 병사일 때는 문제가 생겼다. 둘 다 잠이 들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서였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서 30년 근무했다는 주임원사가 소리 없이 축지법으로 올라와 보랏빛 입술을 열어 소리를 쳤다.
「야야, 나라는 눈뜨고 지켜야지」
높은 곳에서 보니 여기저기 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난리가 나긴 났나 보다 싶었다. 날이 좀 춥긴 했지만 이등병 겨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후임은 이미 자고 있었다. 「올라가자마자 처 자려고 기관총 들었구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p96k 무전기가 울렸다. 행보관의 목소리였다. 일단 내려오라는 말이었다. 아니 이럴 거면 올려 보내지나 말지라고 구시렁거리며 내려왔다. 행정병이 올라가 버리면 어떡하냐고 한 소리를 들었다. 전역이 2년 남은 우리 행보관은 만사가 귀찮았다. 대변인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게 나였다. 그 양반은 종종 연대장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곤 했는데 내가 늘 대신 써주었다. 53세 남자가 연하의 46세 남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연애편지였다. 마무리는 늘 「연대장님의 무운을 기원합니다」로 끝났다. 아니 정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무슨 아부냐 싶겠지만 더 이상 북한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던 나름의 진지한 사정이 있었다. 우리 행보관은 원주에서 군생활을 시작하여 점점 북진 중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최고경계태세라는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지만 그래도 그날은 화기애애했다. 목표가 우리 같은 지휘부대는 아니라는 것 같았다. 위장은 하고 총을 메고 있었지만 초병 설 때 평소보다 더 주의 깊게 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경계를 서지 않는 인원들은 따뜻한 볕에 모여 ‘옆 부대에서 특전사 놈들이 들어와서 초소병들을 포박했고 그걸 본 행보관이 그대로 실어서 영창으로 보냈다’는 이상한 소문이나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별 일 없이 지나가는 훈련기간은 평소보다 편하다. 지난번 했던 전술훈련 이틀째에 평가관의 중령 진급이 결정되자 나머지 사흘 모두 그냥 누워있었음에도 만점을 받기도 했다.
다만 다음날 분위기가 바뀌었다. 강원지역방송을 비롯해 메이저 언론에서 특전사 침투 훈련 중이지만 한 명도 못 잡았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언론에 제일 민감한 것은 공무원들이라지만 그중에 제일은 군인이었다. 승진에 치명적이었다. 대대장은 날카로워졌다. 장기복무 평가를 앞두고 있던 포대장은 표정이 썩었다. 지휘계통 줄줄이 비육사 출신이었던 우리 부대는 빨간 맛 한 방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었다. 옆 사단에서 5명 붙잡았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관심을 먹고살았던 우리 사단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으라 했다. 그분은 속칭 ‘가오’가 상하면 민간인에게도 총을 들이댔던 참 군인이었다. 사단장은 옆 사단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양상이 달라졌다 솔직히 특전사를 우리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이건 양심의 문제였다. 이제는 성과를 내는 것보다도 액션이라도 과하게 해서 욕을 덜 먹어야 했다. 「날 좀 보소」를 부를 단계가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장의 필살 무기를 창고에서 꺼냈다. 깡통이었다.
깡통에 돌 같은 걸 넣고 줄로 이어 누가 지나가면 소리가 나게 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구석에 처박혀 있던 깡통들은 입대한 지 얼마나 오래되셨는지 녹이 슬어 돌을 넣기는커녕 돌로 때려도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엊그제 정신교육시간에 봤던 미군은 개나 소나 다 적외선 열상장비를 차고 있었는데 우리는 원래 색깔이 추정도 안 되는 녹슨 깡통 두릅이라니. 아무래도 이런 훈련은 신세대 장병들에게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 고참 깡통들을 대충 엮어 드렸다. 누가 지나가다 발로 찼는데도 꽤 많은 깡통들이 과묵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로맨스를 위해서는 집중해야 했다.
사단장이 할당한 지켜야 할 곳으로 지휘관은 부대원의 80%를 데리고 나갔다. 남은 인원들은 취사병들을 제외하면 열 명이 채 안되었다. 그 인원으로 막사 전역을 밤새 지켜야 했다. 얼음인간이 될 수 있겠지만 허허벌판에서 깡통 줄 보고 있는 것보다 낫긴 했다. 나는 중기관총을 매고 대공포대로 선임과 함께 또 올라갔다. 선임병은 보일러 담당이라 남았다. 인원들이 돌아오면 따뜻한 물로 씻겨야 해서 그랬다. 나는 행정병 겸 아까 말한 대로 행보관의 몸종이라 남을 수 있었다.
사수는 6개월 선임이었지만 나보다 8살 어렸다. 우리는 그냥 말을 놓고 지냈다. 종종 그 친구는 나에게 대학에 어떻게 가냐고, 가면 좋냐고 물어보았다. 그때도 그랬다.
「형, 대학 어떻게 가? 좀 알려줘」
「... 야 나 9년 전에 입학했어. 글고 가봤자 나처럼 서른에 군대 끌려올 수도 있다니까」
그렇게 대충 시간을 때우며 점점 동태가 되고 있었다. 멀리서는 조명탄이 계속 타올랐다. 강원도의 산들이 눈앞에 나왔다가 사라졌다. 몸조심하자는 봉화 같았다. 어디서인가 타는 설탕 향도 났다. 연막탄 냄새였다. 앞도 보이지 않는 한밤중에 연막탄을 터뜨리다니. 날 좀 봐달라는 누군가의 몸부림이었다.
어느 순간 깜빡 자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가 났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였다. 졸다가 잘못 들었나 했는데 계속 났다. 뒤 쪽 산이었다. 깡통 줄은 앞에 매어 놓아 소용이 없었다. 사수도 깼다. 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맞지?)」
「(끄덕)」
몇 명일까. 우리를 때리진 않을까. 눈 떠보면 헌병대일까. 별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총에는 공포탄이 들어 있었다. 아까 지휘관이 공포탄까지는 쏴도 된다고 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이 왔다.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조종간 단발도 확인했다. 총구는 하늘로 들었다. 상대에게 쐈다 다치면 그것도 영창이었다. 나 같은 행보관 하인과 바꿀 수 없는 귀한 특수부대원이었다.
「사사삭」
이제 앞이었다. 총을 더 높이 들었다. 이제 잘 보면 총구가 참호 밖으로 삐져나와있을 것이었다. 허공으로 정확한 사격을 위해 숨도 멈췄다. 마침내 소리의 주인공이 눈앞에 나타났다. 토끼였다. 알고 보니 토끼는 야행성이라 동틀 무렵 움직인다고 했다. 조명탄이 사방에 터지니 해 뜨는 줄 안 모양이었다. 이 허탈감을 위로해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시x」.
해가 뜨자 무전기가 울렸다. 내려오라는 얘기였다. 온몸이 얼고 다리가 굳어 구를 뻔했다. 주섬주섬 막사로 복귀했다. 작전실에 있던 애한테 소식을 들으니 새벽에 어느 약수터에서 가상 적군이 모두 잡혔다고 했다. 건강을 위해 약수를 마시러 다 같이 나왔을 리 없었다. 그렇게 단체로 일망타진했다면 누군가 승진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어야 할 텐데 나중에도 경고장 발부 소식만 들렸던 거 보면 자수 형식인 게 맞았다. 아무래도 어제 방송이 나가고 제발 그만하자는 전화가 빗발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역시 전쟁은 물리력보다 협상으로 끝내는 것이었다.
부대원들은 눈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도 사건이 끝나서였는지 추위로 돌아간 입을 가지고 어색하게들 웃었다. 입이 얼지 않은 인원들은 다시 성탄 계획을 떠들었다. 보일러 사수는 온수를 틀으러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후임 몇을 데리고 깡통 개수를 다시 새며 장부를 업데이트했다. 그때 누군가 방송으로 다시 병사들은 빨리 집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야 그냥 전투복 입고 있었지만 이미 빠르게 목욕을 하던 인원들은 몸에 김이 나는 채로 나왔다.
「합참의장님이 오신다. 빨리 준비해!!」
이 소식을 위로해줄 말도 하나였다.
「아 시x」
우리 부대를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전방부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만에 하나 갑자기 저 부대로 들어 가보자고 한다면 차라리 다 함께 자발적으로 헌병대에 들어가는 게 나았다. 깡통의 녹은 아직 벗기지도 않았다. 문제는 그거였다. 위병조장을 누가 해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들판에서 밤새고 온 사람들이 할 수는 없었다. 남아 있는 인원들 중에 해야 했다. 취사병들 빼고 경험 있는 사람들 추리고 하니 나랑 보일러병만 남았다. 보일러 병이 갑자기 경어를 썼다.
「형, 저 보일러 관리를 좀 해야 돼서요」
「...」
나다 싶으면 해야 했다. 분연히 장비를 갖추고 덜덜 떨면서 위병소로 내려갔다. 가다 보니 전우들이 전투복 사이로 연기를 뿜으며 망치로 길가의 얼음을 깨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다 더 중요한 주문인 「단결, 할 수 있습니다! 근무 중 이상무」를 계속 되뇌었다. 이 열네 글자는 모두의 생명줄을 좌우할 터였다. 혼자서 계속 연습했지만 입이 꼬였다. 어젯밤에 너무 추웠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방탄도 벗지 못하고 총도 내려놓지 않았다. 앉아 있는 것이 더 불안했다. 차라리 나가 있는 게 속편 할 것 같아 밖에 나가 서 있었다.
「근무 중 이상무. 이상무. 이상무」
‘이상무’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외고 있는데 저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하나 지나갔다. 그건 의례 있는 일이니 설마 했다. 3분 후에 지휘통제실에서 전화가 왔다.
「단결, 위병조장입니다」
「형 끝났어요. 헬기 타고 갔대요」
「... 이 시x 새x가」
「형 그러다 진짜 영창 가요」
이렇게 우리의 진돗개 하나, 아니 똥개 훈련은 끝이 났다. 뜬금없이 힘들었지만 연말 액땜한 셈 치자고 했다. 이제 따뜻한 연말 보내자고 서로 격려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김정일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