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6/23 17:29:36
Name 신불해
Subject 강희제 이야기(10) ─ 바다의 사람들
해관을 넘은 청나라의 군대가 노도와 같이 중국의 남부로 진격하고 명나라의 유신들이 절망적인 혼란 속에 최후의 항전을 계속하던 시기. 과거 지구상 가장 거대하고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던 부를 지니던 그 제국은 이제 저무는 황혼 속에 모든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고, 그 떠나는 운명을 다시 손아귀에 쥐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덧없는 사람들 중에는 당왕(唐王) 주율건(朱聿鍵)이라는 남자 또한 있었습니다.


저 명태조 홍무제의 자손이자 존귀한 황족이었던 그는, 과거 하나의 전과 기록이 있긴 했으나 이는 다른 황족들처럼 안하무인으로 굴어 벌어진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전과' 란 스스로 군대를 모아 이자성 반란군과 격돌했던 일 때문이었는데, 스스로 군대를 모으는것은 분명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한 일이긴 하나, 사실 그전에 주율건은 조정에 3천 병력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병력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때문에 정상 참작되어 큰 벌은 면하고 감옥에 들어가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지가 뒤바뀌는 대혼란 속에서, 감옥에서 나온 주율건은 남경 정권이 홍광제의 무능으로 붕괴 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는 항주로 내려가다가 총병 정홍규(鄭鴻逵) 등을 만났는데, 이 정횽규는 당시 유력한 군사세력이자 남중국해를 지배하던 해적 정지룡의 동생 정지봉입니다. 정지봉은 정씨 일가의 본거지인 복건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는데, 마침 이 우연한 만남의 인연 때문에 주율건을 같이 복건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무너진 제국의 황족은 남하하는 도중, 여러 지방에서 "아직 명나라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고 알리는 한편 일대 반격의 시기가 왔다고 공헌했씁니다. 앞으로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인물이 될 정지룡에게도 각별히 사의를 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우선 주율건은 홍광제의 생사 여부를 확인 할 수 있을때까지는 섭정으로 남아있기로 한 참이었습니다. 복건에 도착한 섭정은 신하들에게 사치를 멀리하고 근검한것을 권고하는 한편, 지체없이 주무 대신들을 임명하고 항전 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무렵, 홍광제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주율건은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융무제(隆武帝) 였습니다.
 
 
융무제는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홍광제 보다야 유능한 인물이었고 반격에 대한 의지도 강했습니다. 하지만 반격을 하자면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바로 정지룡의 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융무제는 정씨 집안의 인물들에게 여러 벼슬을 내렸고, 곧 융무제 정권의 중추는 누가봐도 정씨 일족의 손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중요한 인물인 정지룡은 심드렁할 뿐이었습니다. 정지룡은 처음 주율건이 융무제로 즉위할때도 '우선은 감국을 취한 다음에 황제가 되든 어쩌든 하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고 비협조적으로 나왔는데, 정지봉 등이 '민심을 다잡는 계기의 의미로 보더라도' 황제가 있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여 이를 승낙하였습니다. 황제를 모시게 된 정지룡이지만, 정작 그의 가장 큰 관심은 '투항의 시기' 를 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투항 시에 높이 대접 받을 수 있기 위해서 자신의 세력을 '쓸데없는' 반청 싸움에 소모시키는 것을 자제했습니다. 이 무렵 정지룡의 권세는 평노후라는 작위에서 평국공(平國公)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솟았습니다. 
 
 
청군의 위협은 이제 중국의 남부에까지 미치고 있었고, 각지에서는 도와달라는 보고가 올렸습니다. 융무제는 몸이 달아 출정을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정지룡은 좀 더 기다리자고 하여 어물쩡 넘어갔고, 융무제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주지했다시피, 이 해적은 북벌할 의사 따윈 전혀 없었습니다. 실상을 말하자면 복건으로 쳐들어오는 청군을 막을 길목만 100군데가 넘는데, 이곳을 지키고 있는것만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북벌은 어림없는 소리였습니다.  반격 날짜는 한번, 두번 계속 연기가 되었고 결국 융무제는 정지룡에 대한 실망감으로 정씨 일족을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천해의 요새이자 정씨 일족의 본거지인 복건을 떠나 바깥 지방에서 투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절망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융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때문에 괴로워 했습니다.

파일

복건의 남평 시



각자의 사정 끝에, 마침내 만주의 군단은 중국의 전역을 휩쓸고 이 남부에까지 예봉을 드리밀었습니다. 청나라의 장군 보로(甫老 박락)은 항주 이남의 얆은 강을 그저 걸어서 건너오기 시작했고, 적을 막아야 할 한족 병사들은 기겁하면서 도망쳤습니다. 전전긍긍하던 융무제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였는데, 자신의 부하들이 만주족에게 보내던 편지 200여 통을 가로채고는 회장에서 이것들을 한줄도 읽지 않고 태웠습니다. 죄목들은 불문에 부칠테니 새로 출발하자는 이야기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는 쓸모없는 기력의 낭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정지룡은 보로와 내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주족의 장수는 이 대해적에게 제안했습니다. 싸울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정지룡이 변발을 하고 새로운 주군, 즉 청의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를 하는 간단한 절차만을 치룬다면, 즉시 그 댓가로 복주와 광주 도독이 될 것이며 이는 정씨 일가가 중국 동남 지역의 제왕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가 할일은 동남 지역에서 왕이나 다름없은 한가로운 여생을 보내며, 간간히 백성들을 수탈해 공물만 북경으로 올려 보내면 될 뿐 입니다.
 
 
이는 당연히 융무제를 배신하는 일이었지만, 배신에 관한 문제에 대해 정지룡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정지룡은 지난 1년이 넘게 만주족을 고생시켰고, 현재는 투항하기에는 자신의 가치가 가장 높은 최적의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정지룡은 이 순간을 위해 평생을 살았다고 봐도 무방하고, 짜놓은 거미줄은 이 시점에 이르러 완벽한 그림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전혀 예상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들, 정성공이었습니다.




정성공


정지룡의 아들 정성공은 그 협잡이 벌어지는 동안 복건의 길목 중 하나를 지키고 있었으며, 부하는 고작 100여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22세의 젊은이는 적을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아버지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착한것은 위풍당당한 지원군 대신 한 통의 편지였씁니다.  그리고 편지에 적힌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복주에 있는 동안, 나는 보로 장군의 부대가 복건을 치고 명 유신들의 저항을 일소하기 위해 원병을 기다리고 있다는 첩보를 확인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나는 황제 폐하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킬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나로서는 군사를 모을 자신이 없구나. 만주족에게 헛되이 저항해 보아야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나는 보로와 협상하여 우리 가문 사람들이 모두 양호한 대우를 받게 하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이에 너도 병장기를 내려놓고, 그로써 이로움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정지룡은 근본이 해적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어린 아들 앞에서는 제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충신인 체 하였고, 정성공은 아비와 같은 해적질 대신 유교 경전의 공부를 하며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이는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한 정지룡의 판단 때문이었지만, 이때문에 정성공은 편지를 읽고 더욱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결코 충신이 아니었고, 그저 협잡꾼 장사치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정성공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부러진 셈입니다. 그 분노로 젊은 장군이 부르르 떨고 있을때, 척후병들은 어마어마한 만주족 병력이 접근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적의와 증오로 적을 물리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지원이 없다는것을 확인한 정성공은 어쩔 수 없이 복건의 해안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배반'은 정씨 일족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논란거리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정성공 같은 충성심 때문에 반발한것이 아니었고 다만 바다를 주름잡는 자신들이 청나라 만주족의 손아귀에 들어갈 경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정지룡의 동생 정지봉은 자신의 형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이오!"
 
 
 
그리고 정성공이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를 대면한 정성공은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항상 소자에게 충성의 도리를 가르쳐주시던 아버님께서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수치스런 항복을 심중에 두고 계시단 말입니까! 어찌 자식된 자로 하여금 제 아비를 역적이라 부르게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정지룡은 어린 나이에 혼돈의 소용돌이치는 마카오로 이동해, 수많은 경쟁자인 해적들을 물리치고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를 패퇴시켰습니다. 맨 손으로 마카오와 대만, 일본과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아우르는 광대한 자신의 제국을 이뤄내는 동안, 그는 평생 신의나 맹세 따위에 얾매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친인척들이 사태를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비난했습니다.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으니, 누구라도 평상시처럼 지낼 수는 없다. 게다가,"
 
 
정지룡은 아들에게 신랄하게 덧붙였습니다.
 
 
"너 같은 애송이가 정치에 대해 무엇을 안단 말이냐?"
 

그러나 결국 엄청난 반발끝에 정씨 집안의 다른 유력자들은그 대표자의 의지를 거역하였고, 함대는 바다로 나가게 향해 닻을 올렸습니다. 정성공은 남쪽으로 융무제를 만나러 떠났습니다. 이는 정지룡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으로는 바보같은 일이었지만, 세상에는 모든 일을 영리하게 하는 사람들 대신에, 손해를 보더라도 바보가 되는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법입니다.
 
 
정지룡은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복주에 온 보로가 본것은 위풍당당한 정씨 집안의 대함대를 거느린 대세력 정지룡이 아니라, 선전 효과 이외엔 아무 쓸모도 없는 사내 한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정씨 집안의 함대는 여전히 청군에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보로는 정지룡이 '다른 일족들이 몸을 뺼 시간을 벌어보려 수작을 부리는것' 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그를 북경으로 잡아 보냈습니다. 이는 정지룡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고, 난투극까지 벌어져 경호원들이 사망하기도 했지만 '과거' 의 대해적은 결국 강제로 가마에 올라타 북경으로 보내졌습니다. 
 
 
분통이 터진 만주족 장군은 융무제에 대한 추격을 계속했으며, 복건 전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개 부대를 때어 안평 지역으로 보냈는데 이곳에는 일단의 정씨 진영이 잔당이 있었고, 무엇보다 정성공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정성공은 미친듯이 안평으로 내달렸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정성공의 눈에 보인것은 완전히 포위된 요새였습니다. 성벽을 오르는 만주족 병사들의 모습은 싸움이 이미 종말에 이르렀다는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정성공은 소규모 병력으로 만주족의 후방을 공격해보기도 하나 이미 어머니는 사망한 뒤였습니다. 폐허 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정지룡도 그 소식을 들었고, 그는 격분했습니다. 정지룡이 보로와 분쟁까지 일으키며 북경으로 끌려간것이 이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더러운 배신자가 되었고, 얼마 되지도 않아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젊은 정성공은 미친듯이 울고 절규하면서 방안에 있는 모든것을 칼로 베면서 오랑캐를 죽일것을 맹세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제법 진정된 정성공은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무렵 종말의 마지막이 닥쳐왔는데, 융무제가 사로잡혔다는것입니다. 그리고 곧 처형되었습니다.
 
 
정성공은 남은 정씨 일가를 해안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머뭇거리다가는 만주족 선봉대가 해안으로 밀려와 저항 세력을 일소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였고, 바다로 나가거나 대만으로 가는것만이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성공


정지룡은 결국 사기꾼으로 판명이 나버렸지만 정성공은 저항 운동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그는 우선 아버지의 시절부터 이어지고 있던 가문의 무역 활동도 계속 이어나가 비단을 잔뜩 실고 류쿠 열도를 경유해 일본에 보내 군자금을 마련했으며, 일본의 봉건 영주들에게도 지원을 요청하고, 마침내는 극단적인 기치까지 내세우게 됩니다. 지금까지 어떤 저항가도 내세우지 못했을 캐치프레이즈였습니다.
 
 
"애비를 죽이고(殺父), 나라에 보답하리라(保國)."




정성공


정성공은 아버지 정지룡의 흩어진 세력을 모아 일종의 해상 군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저우라는 대도시에 대한 공세를 가하기도 했고, 해안가 내륙 전지역을 타격하고 치고 빠지는 골치아픈 면모를 보였습니다. 아무리 청나라 만주족이 그동안 빠르게 적의 방식을 흡수하며 성장했다고 해도, 함대전 따위에 대한 지식은 그들에게 있어 전무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상대는 남중국해의 바다를 누구보다도 더 잘 꽤고 있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제국에게 있어서 정성공 그 자체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사태는 연해의 한족들이 정성공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성공이 이어받은 아버지 정지룡의 유산이 얼마나 막대한지, 사실상 정성공은 남중국해의 모든 운송과 교류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정씨 일족에게 미움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바다에서 뱃사람 노릇하기가 어려운 형국 입니다. 정씨 가문을 도우면 만주족에게 명 황실을 돕는 범죄자로 여겨지고, 만주족을 지지한다면 바다에 나갈시 정씨 일족의 함대와 만나면 죽은 목숨이 되기에 연해 지역의 사람들은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아예 혼란스러운 중국을 영원히 떠나 동남아시아나 필리핀, 대만 등지에 정착하기 위해 배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때 그들이 타던 배도 물론 정씨 가문의 배로, 적법한 뱃삯을 내고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청나라가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청나라 군대는 정성공의 본거지 하문을 급습하여 그에게 대타격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모든것을 잃을 뻔 하기도 한 정성공은, 그러나 놀라운 집념을 발휘해서 다시 이를 수복해내었습니다. 청나라 정부는 이 골치아픈 상대에게 적법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의 자체적인 세력도 합법적으로 유지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약조했습니다. 


이러한 약조에 따르자면 정성공이 얻을 수 있는 대가는 해징공(海澄公)의 작위와 공훈 교지 였고, 정성공을 따르는 자들 역시 새로운 해징공의 영토에서 거주하는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이 시점의 정성공은 해징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이 제안을 따른다면 더 이상의 파병은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만약 정성공이 이 시점에서 이를 수용한다면 그는 해징공이 될테고, 만주족은 귀찮은 싸움을 끝낼 수 있습니다. 또한 억류되어 있는 정지룡은 자유의 몸이 될 것이며, 정씨 가문은 하나가 되어 이전처럼 돌아가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끝날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역으로 청나라 조정의 악행과 청군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 자신의 휘하 병력이 일본과 인도차이나 등지에서 엄청난 기세로 증원되고 있으며 숫자가 수십만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성공은, 마지막으로 조건을 내세우려면 해징공 따위가 아니라 3개 성을 관할하는 왕의 권한과 영토를 말했습니다.
 

물론 청나라 조정은 이 따위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고, 정성공 역시 들어주리라 기대하고 쓴 말은 아니었습니다. 정성공의 의도는 청나라에 모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정성공이 단박에 청측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요구조건을 제시하면서, 약하게나마 협상의 기미를 보인 이유는 순전히 병력과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청측에서는 정성공의 요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그를 해징공에 삼고자 관리를 보냈습니다. 당시 제국의 군주였던 순치제의 칙령은 정성공이 어찌 그렇게 아버지에게 무례할 수 있냐며 짐짓 꾸짖는 한편, 그전까지 생긴 트러블은 순전히 도르곤의 악행 때문이며 이제 도르곤도 죽고 없으니 정성공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대사면을 내릴 것이라는 장황한 내용 이었습니다.




순치제 


"해안 지역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여전히 더욱 충실한 방어 조직이 필요하도다. 다른 자들을 찾기보다 그대가 이상적인 후보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대의 아비는 제 일가붙이에 대해 확신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대를 강력하게 천거했도다……그대는 그대의 적들을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도 좋으며, 감찰과 해상 화물 징세의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바다의 평화를 이룩해야 하리라! 그러니 그대는 우리의 명을 거역하지 말지어다."



청나라는 정성공을 그들의 사략함대로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계속 복주 지역에서 소규모 교전을 개시하며 복건 도독을 무시했습니다.  복건 도독은 정성공에게 '결국 절망적인 상황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환기시키면서, 만약 정성공이 군사적 도발을 계속한다면 조상들의 무덤이 무사하지 못할것이라고 넌지시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결국 정씨 집안의 묘역은 헤집어 졌습니다. 이러한 참극이 벌어지고 난 직후. 만주족 특사들이 정지룡의 정실 부인 안씨 부인과, 그녀의 아들이자 정성공의 이복 형제인 정세도, 정세음을 데리고 현장으로 도착했습니다. 이들인 정성공을 회유했습니다. 변발을 하기만 한다면, 해징공에 봉하겠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정성공은 시니컬하게 대답했습니다.
 
 
"과연, 누가 상상이나 할 법한 일인가? 내 조상의 무덤이 욕을 본 바로 직후에 대규모의 사절단이 비단을 잔뜩 짊어지고는 경건한 마음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어찌 그 같은 제안을 거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들을 기다릴 것이다. 선물은 조금이면 족하다."
 
 
특사들은 분노를 애써 참으면서, 정성공에게 변발을 하라고 다시 한번 제안했습니다. 변발만 한다면 그는 해징공에 봉해질 것이며, 청나라 조정은 정씨 집안의 함선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정성공은 변발 따위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정지룡의 아들이자 정성공의 이복 동생 정세도는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정성공을 만나러 와 무릎을 꿇고 흐느꼈습니다.
 
 
"제발 만주족의 명을 받아들여주십시오. 가문의 안위를 지켜주십시오!"
 
 
하지만 정성공은 격양된 감정으로 대응했습니다.
 
 
"너 같은 아이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것이냐, 후한 광무제야 예외일 것이다만은, 예로부터 변절하여 잘 된 사람이 있다더냐? 내가 덫에 빠져야 하느냐? 단지 내 아버지가 나보다 덫에 먼저 걸려들었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말이다! 매일 같이 나는 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있고, 네 아버지는 만주족들의 궁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계신다. 만약 내가 변발을 순순히 한다손 쳐도, 아버지이든 아들들이든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라! 그런 말은 더 이상 꺼내지도 말아라. 너는 나를 비정하다고 여기겠지만, 나는 너를 낳아주신 아버지를 잊은 지 오래되었다! 이렇게 하기가 쉽겠느냐? 쉽겠느냐는 말이다!"
 
 
결국 정세도의 방문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떠나기전, 그는 울면서 자신의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특사로 파견된 저희는 빈손으로 돌아가고, 저희들의 임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저희는 보고를 마치는 순간에 죽게 되겠지요."
 
 
하지만 정성공은 여전히 얼음장같은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내 결심은 이미 확고하니, 그만 입을 다물어라."


이러한 아들의 행보 때문에 정지룡은 드디어 끝장이 나버렸고, 정성공은 여전히 청조에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씨 가문의 모든 선박을 불러모으면서, 지난 10년간 준비한 계획을 성사 시키려 했습니다. 그의 군단은 내륙을 향해 북벌을 개시할 참이었습니다. 정성공은 이 계획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복건 총독에게 자신의 구상을 전달했으며, 마침내 명나라의 유신들이 만주족의 제국에 세상이 뒤흔들릴 대반격을 가할 시간이 왔다고 통보 했습니다.


10년동안의 교역, 그리고 줄기찬 게릴라 군사활동. 이 모든것들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한 기다림이었습니다. 정성공은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복건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서, 인근 지역을 통과하여 양자강 하구에 다다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해안가에서 벌이는 소규모 전투를 벗어나, 단번에 중화제국의 심장부를 뒤흔들만할 가공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이 무렵 예전의 노왕 주이해도 정성공을 의지하기 위해 도착했었는데, 정성공은 그를 보호하는 조건으로 감국 칭호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노왕 정권 중에서는 주순수(朱舜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도 일본에 종종 건너가 원조를 청했습니다. 주순수는 일본에서 훨씬 잘 알려져있고 그곳의 철학 사상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1982년 주순수 사후 300년이 되자 일본과 중국 모두에서 기념행사가 열린 바 있습니다.
 
 
1658년 5월, 마침내 북벌군은 출정했습니다.
 
 
그 규모는 무려 17만 5천여명. 선봉은 정성공이 가장 신뢰하는 장수인 감휘(甘輝)가 맞아 10,000명의 병사와 20척의 대형선, 30여척의 보급선을 거느렸으며, 우익은 마신(馬信)이 지휘하여 30척의 함선, 30척의 보급선, 20,000명의 병사를 지휘했습니다. 좌익 또한 똑같은 20,000명의 규모로, 만례(萬禮)가 지휘했습니다.




이것만으로 이미 5만 명의 규모가 되는데, 정성공 본인 또한 120여척이 넘는 전함과 40,000명이 넘는 대부대를 이끌고 후미에 위치했습니다. 정성공이 거느리고 있는 비장의 카드로 8천에서 1만명의 가량의 철인(鐵人) 부대 또한 대기중이었습니다. 이들은 철면을 쓰고 철갑옷, 철치마를 입고 철사슬로 고정하여, 얼굴은 단지 눈, 귀, 입, 코를 드러낼 뿐으로 아무래도 일본쪽 갑옷을 도입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정성공이 어린 시절부터 거느리고 있던 흑인 경호대도 자신들의 주인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유럽인들을 시중들기 위한 노예 등으로 끌려온 이들은 정지룡에게 사들여졌고, 이후 정성공을 보호하는 일을 자신들의 일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성공의 지난 10년이 만든 결실이었습니다. 군율은 엄중하여 살인, 간음, 민가를 파괴한 자, 밭 가는 소를 죽인 병사들은 모두 처형 되었으며 상관도 연좌되었습니다. 정성공 부대는 순조롭게 진군했고, 지난 10년간 복건 북쪽에서 만주족을 상대로 싸우던 저항 세력인 장황헌의 세력까지 흡수했습니다.
 
 
그러나 모든것이 갖추어진 그 순간에 재앙은 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양자강 하구로 가는 도중, 8월 무렵 양산(羊山)에 도착한 정성공 일행은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이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양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은 신의 은혜를 구하며 양을 풀어두었고, 양들은 섬에서 신성시 되면서 숫자가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키르케의 동물들에 손을 대었던 것처럼, 굶주린 선원들은 양들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순진한 동물인 양을 잡는데는 별다른 노력이나 도구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곧 섬은 사방에서 양을 굽는 냄새와 소리로 가득찼고, 몇몇 선원들은 이러한 만행을 보고 정성공을 찾아와서 따졌습니다.

 
"양산은 신성한 섬이지 보급품 기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옛 전설을 들먹이기도 했습니다.

 
"이 바다에서는 용이 살고 있습니다. 꾸벅꾸벅 졸고는 있지만, 공물을 바치지 않고 양산에 정박하는것은 무례한 행위입니다. 그 용은 평화와 고요함을 좋아합니다."
 

물론 정성공은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인지, 단순한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치명적인 대재앙이 정성공의 함대를 닥쳐왔습니다
 
 
이튿날 함대가 포구를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다의 여신의 보호를 받는다' 는 소문이 있던 정성공의 함대는 여신보다도 강대한 힘에 좌지우지되어, 전에 경험한 적 없던, 상상 할 수 있는 최악의 폭풍우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마치 해룡의 분노와도 같은 파도는 갑판을 매섭게 때려 부수었고, 퍼붓는 폭우로 배를 조종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항해사들은 제멋대로 도리질 치는 배의 키를 붙잡고 안간힘을 썻지만, 앞이 분간되지 않아 방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밀집되어 있던 선박들이 몇 차례 서로 충돌하는가 하면, 몇 척은 암초 근처로 쓸려가 좌초하기도 했습니다.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성공은 사령선 뱃머리로 나가 하늘에 소리쳤습니다.
 

"미천한 몸이지만, 이 몸은 명 왕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소이다! 만약 하늘이 이 뜻을 받아주지 않겠다면, 차라리 나와 모든 함선을 격침시켜 버리시오!"
 
 
정성공의 외침 때문은 아니겠지만 곧 폭풍우는 그쳤습니다. 그러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함대는 10여척을 잃었고, 싸움 한번 못해보고 무려 8,000명의 사망자를 내었습니다. 정성공의 친척과 인척만 231명이 죽었고, 난파선에선 간신히 살아남아 해안가로 쓸려왔지만, 만주족에게 사로잡혀 그들의 노리개가 된 숫자만 900명이 넘었습니다. 보급선은 침몰했고, 정성공의 직계 가족들도 쓸려갔으며, 정성공의 후실도 폭풍우에 사라졌고, 무엇보다 정성공의 아들들 마저도 세 명이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곧 발견 되었습니다. 바다에서 시신이 발견된 것입니다. 정성공은 아이들을 해변에 묻었습니다.
 

상상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 속에서, 정성공은 한 번 크게 웃어버리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던 부관은 정성공의 웃음이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던 사람과 같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8-01 11:05)
* 관리사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Jealousy
13/06/23 18:16
수정 아이콘
잘읽고있습니다.
13/06/23 18:4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찬공기
13/06/23 18:49
수정 아이콘
네이버 삼국지 도원결의 카페에서 대히트를 쳤던 '화신 땅끝에 서다'라는 창작 시나리오가 있지요. (http://cafe.naver.com/sam10/101881)
정성공의 마음 속은 저 주유의 심정 같지 않았을까요. 저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忠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저리 피끓게 하는지.
미라이
13/06/23 19:1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3/06/24 08:47
수정 아이콘
정성공이군요. 잘 봤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392 해군, 고대부터 현대까지 - 후편 [14] 눈시BBbr9843 13/07/09 9843
2391 해군, 고대부터 현대까지 - 전편 [10] 눈시BBbr11180 13/07/09 11180
2390 [PGR21] 추게의 주인은 누구인가? [75] 감모여재10797 13/07/08 10797
2389 '남아일언 중천금'과 '기성용' [37] 피터피터10966 13/07/05 10966
2388 강희제 이야기(13) ─ 북에서 이는 바람 [4] 신불해8736 13/07/04 8736
2387 제4회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 후기 (+ 사진 추가) [65] 이재균10615 13/07/04 10615
2386 연왕 주체, 불가능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다 ─ 정난의 변 [17] 신불해11973 13/07/02 11973
2385 서양의 전열 보병 [53] 눈시BBbr23893 13/07/02 23893
2384 [LOL] 이것이 클라스다. 정소림 캐스터의 클라스에 취하네요. [69] 유라15523 13/07/01 15523
2383 케이팝의 아이돌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팝시스템에서 왔습니다 [25] 카랑카14068 13/06/29 14068
2382 강화도 조약, 문을 열다 [9] 눈시BBbr7164 13/06/29 7164
2381 공자가 인육을 먹었다는 '공자 식인설' 의 진실 [14] 신불해25766 13/06/28 25766
2380 강희제 이야기(12) ─ 해신 [5] 신불해7893 13/06/27 7893
2379 강희제 이야기(11) ─ 바다와 대륙 [5] 신불해7726 13/06/25 7726
2378 강희제 이야기(10) ─ 바다의 사람들 [5] 신불해8610 13/06/23 8610
2377 [스타2] [실전영상] 군단의 심장 캠페인 Brutal 난이도 공략 (13, 약육강식) [19] 캐리어가모함한다7860 13/06/25 7860
2376 (어제에 이어서) 영어로 글을 잘쓰기 위한 저만의 팁 [14] 복제자14013 13/06/24 14013
2375 강희제 이야기(9) ─ 뒤집히는 대세 [10] 신불해7869 13/06/23 7869
2374 강희제 이야기(8) ─ 동트는 새벽 [11] 신불해8273 13/06/20 8273
2373 강희제 이야기(7) ─ 절망적인 형세 [11] 신불해9149 13/06/19 9149
2372 난중일기, 명량으로 가는 길 [29] 눈시BBbr7618 13/06/19 7618
2369 [LOL] Olympus LOL Champions Spring 결승전 경기 보고서 #3 [20] 노틸러스10162 13/06/18 10162
2368 [LOL] Olympus LOL Champions Spring 결승전 경기 보고서 #2 [13] 노틸러스9620 13/06/17 962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