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8/28 06:24:12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195241535
Subject [일반] <큐어> - 세기말과 '성난 사람들'.(스포)

왓챠플레이를 통해 <큐어>를 봤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로는 처음 본 영화고,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봤던 영화네요.


<큐어>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심리극, 혹은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하시듯 세기말 적 묵시록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살해 방식이 이치에 맞는 이야기라기보단 어떤 측면에선 외려 오컬트에 가까운 방식이기도 하구요. 상당히 많은 부분을 판타지와 오컬트의 영역에서 이야기를 처리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에, 제대로 된 추리극이나 혹은 범죄 스릴러를 기대하고 영화를 보신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극으로서 가져야할, '애매모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부분들을 괄호치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고, 또 이런 부분들을 굉장히 모호하면서도 의뭉스럽게 표현합니다. 가장 단적으로 '마미야 쿠니히코'는 어떤 인물인지, 대충의 윤곽만 그려넣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하지 않기도 합니다.


의뭉스러움, 그리고 일종의 '분노'. 저는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분노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갑자기 세탁소에서 누군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 대한 욕을 쏟아붓는 장면이라든가, 왜 나 같은 서민은 고통받고, 너 같은 범죄자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에 대한 절망감과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처럼, 영화의 핵심 정서는 분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면'이라는 소재 뒤에 어찌보면 이러한 분노에 대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또 다른 정서는 영화의 세기말 적 정서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처음 떠올린 영화는 데이빗 핀쳐의 <세븐>이었거든요. 어찌보면 살인자의 죽음과 그 설계까지도, 묘하게 떠오르는 지점이 있기도 했구요. 또 영화에서 느껴지는 묵시록적 감성, 혹은 음울하고 절망적인 감정선까지 많은 부분이 이 영화를 닮아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굉장히 인상적인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범죄 심리극, 혹은 묵시록적 스릴러로써 스타일리쉬함보다 일종의 덤덤하고 무관심한 시선이 오히려 독특했다고 해야할까요. 물론 소재의 특성과 감독의 성향 상 약간의 잔인함이 없지는 않지만, 무심하고 건조하게 그려냈고, 또 그 세기말의 불안감과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3/08/28 09:40
수정 아이콘
저도 얼마전에 봤는데 참 좋았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분노와 스트레스가 기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영화의 흐름을 사로잡습니다.

전 이 영화를 보고 떠올랐던 영화는 바로 '파이트 클럽'입니다.

그 영화에선 나름 건전하게(?) 분노를 해결하죠.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가슴속에 분노를 키웁니다. 이런 분노를 큐어에선 살인을 통해 치유하고(그러기에 영화 제목을 큐어라고 지었고), 파이트클럽은 그 분노를 정정당당한 육체적 결투로 해결하죠. 둘다 몸을 사용하지만 방향은 약간 다릅니다. 큐어에서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상을 없앰으로써 분노를 해결하지만 파이트클럽은 불특정한 대상과 서로 동의하에 육체적 결투를 치루어서 해결합니다.

이 영화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자기들도 그러한 분노를 느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식으로 해결하지 않죠. 속으로 욕해도 그 대상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고 도덕이고 교육의 힘이죠.
사회가 복잡해지고 각박해져서 전통적인 사회의 모습이 해체되면서 이런 부분도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양심의 허들을 낮추는 것이죠.

재미있고 무서운 영화입니다.
aDayInTheLife
23/08/28 09:45
수정 아이콘
그 느슨해지는 분위기를 파고든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 빈 공간을 파고드는 불길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3/08/28 10:15
수정 아이콘
레스토랑에서 마무리되는 에필로그도 완벽
aDayInTheLife
23/08/28 16:09
수정 아이콘
에필로그도 그냥 흔한 여운 느낌은 아니더라구요.
김유라
23/08/28 10:37
수정 아이콘
오늘도 이 명작을 보고가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군요 흐흐흐

인간 내부에 있는 잠재적인 불안정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를 둘러싸고 있던 당대 일본의 분위기 등을 같이 생각하며 본다면 더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죠.
aDayInTheLife
23/08/28 16:09
수정 아이콘
어찌보면 그때 일본과 현재의 우리는 닮아있을지도요..?
김매니져
23/08/28 12:18
수정 아이콘
거의 재난영화에 가까웠습니다.

재난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 시스템의 모순속에 심어져 있던 씨앗이라는것과 기원도 의미심장했고,
거품경제 붕괴 후 그동안 감춰졌거나 애써 외면했던 부작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고 할까요.

봉준호 감독도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라할 정도로 시대초월 주제에, 요즘 우리나라 사건사고들도 겹쳐보이고...
암튼 상영종료후 영화관 관객들이 거의다 기빨린듯 쓰읍 하던 인상이 기억에 남네요 크크크
aDayInTheLife
23/08/28 16:09
수정 아이콘
뭐 전화기 같은 거만 빼면 굉장히 동시대적인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흐흐
꽃이나까잡숴
23/08/28 18:53
수정 아이콘
저도 최근에 봤는데 진짜 여러모로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도 대단하고
마미야 캐릭터도 정말.... 뭐랄까 그런캐릭터가 아닌데도 위압감까지 느낄수 있었죠.
여운 5000% 엔딩까지... 진짜 보고있자니 저도 최면당하는 느낌이었어요
aDayInTheLife
23/08/28 19:26
수정 아이콘
마미야는 어떤 화신 내지 현신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더라구요. 여러모로 무시무시했습니다.
누에고치
23/08/28 20:57
수정 아이콘
아주 예전에 이동진 평론가가 무려 별점 만점을 주길래 궁금해서 어찌어찌 겨우 구해서 보고 후에 왓챠에 정식으로 들어와서 한번 더 보고 두 번 본 영화인데 진짜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aDayInTheLife
23/08/28 21:11
수정 아이콘
흡인력이 되게 좋더라구요. 궁금증과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이폰12PRO
23/08/28 23:17
수정 아이콘
이 좋은 영화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왓챠에 있길래 봤는데 하... 진짜 최고였습니다.

라스트씬은 진짜 근래 본 공포영화중 가장 소름이 끼치더군요.
aDayInTheLife
23/08/28 23:56
수정 아이콘
저는 유게 글보고 관심이 생겼다가 각잡고 봤는데… 무시무시하더라구요. 아니 이거 왜 호러인데ㅠㅠ(공포 못봄..)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9614 [일반] <큐어> - 세기말과 '성난 사람들'.(스포) [14] aDayInTheLife7294 23/08/28 7294 4
99613 [일반] 로튼토마토 선정 1998년 이후 최고의 영화감독 토너먼트 [44] 만찐두빵9491 23/08/28 9491 1
99612 [정치] IAEA 사이트에서 후쿠시마 처리 수치를 볼 수 있습니다. [169] 아이스베어14082 23/08/28 14082 0
99610 [일반] 뉴욕타임스 8.19.일자 기사 번역(과도한 꿀벌 보호) [7] 오후2시8937 23/08/27 8937 7
99609 [정치] [단독] 신원식 중대장 시절 '부대원 사망' 조작 결론 [52] 기찻길15761 23/08/27 15761 0
99608 [일반] 이번 3억8천 스미싱 사건 보면서 소환된 경험담(자신을 믿지말라) [42] 승승장구13111 23/08/27 13111 6
99607 [일반] 일본 배낭여행 윤세준씨 실종사건 [26] 핑크솔져19216 23/08/27 19216 0
99606 [일반] [팝송] 포스트 말론 새 앨범 "AUSTIN" [2] 김치찌개6531 23/08/27 6531 0
99605 [일반] (일상) 소소한 밀양 영산정사 방문기 [15] 천둥8109 23/08/27 8109 9
99604 [일반] 좋아하는 미디어 '주제곡' 모음. [6] aDayInTheLife6329 23/08/27 6329 1
99603 [일반] 일본의 MRJ 제트 여객기 개발의 교훈 [26] singularian14545 23/08/26 14545 18
99601 [일반] 디즈니 좋아하세요? [24] 무무보리둥둥아빠10579 23/08/26 10579 6
99600 [정치] 野 "국방부, 채상병 사건 은폐"…與 "웅덩이 빠진건데 軍과오냐" [88] 덴드로븀15659 23/08/26 15659 0
99599 [정치] 윤석열은 오염수 방류에 왜 그렇게 헌신적일까요? [90] 사부작16373 23/08/26 16373 0
99598 [정치] 중국 "일본수산물 수입전면 금지" [33] Mamba11232 23/08/26 11232 0
99597 [일반] 재미났던 하트시그널4 종영소감 [34] 오타니10330 23/08/26 10330 1
99596 [일반] 저는 귀신을 봤었지만, 귀신이 정말 있을까요? [34] 스물다섯대째뺨9317 23/08/26 9317 1
99595 [정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정리 [58] 이게나라냐/다12573 23/08/25 12573 0
99594 [정치]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오늘 나온 기사들 [37] 아롱이다롱이10750 23/08/25 10750 0
99593 [일반] 예상밖 고전하는 우크라 반격…"전력배치 잘못 탓" 비판론 고개 [89] 베라히13910 23/08/25 13910 0
99592 [일반] 카카오블랙 타고 기분만 잡친 후기 [62] Daniel Plainview17091 23/08/25 17091 8
99591 [정치] 국방부, 육군사관학교 앞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철거 추진 [174] 검사18689 23/08/25 18689 0
99590 [정치] 통일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 [30] 베라히13330 23/08/25 13330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