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6/02 10:53:09
Name 이슬먹고살죠
Subject [일반] 불량배도 급이 있어요. 노답부터 예스답까지
소위 일진에 관련된 유머게시글에서 동감이 안되는 댓글을 발견하고는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을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쌍비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이 싸울 때 둘다 나쁘니 누가 누구 탓할거 없다라는 논지의 주장인데, 이 중 일부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잘못한 쪽을 옹호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또 일부는 논쟁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일찍 종결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나머지는 도덕이나 감정에 호소해 다른 요소를 논쟁에서 다루지 못하게 유도하는 데 쓰이죠.

첫째의 예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들 수 있습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29만원씨와 그에 대항해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폭력을 휘두른 광주시민을 동급으로 치려는 의도를 가진 주장이 항상 해당 글엔 올라오죠.

둘째의 예는 세월호 사건을 들 수 있겠네요. 유족들의 마음은 이해하고, 정부의 대응이 '나빴던' 것도 사실이나, 결국 나라의 분위기를 침체시키고, 어려운 요구를 해 정부를 곤란하게 하고, '희생자를 이용해 금전적 요구를 하는' 등 니들도 나빴으니 이쯤에서 끝내자는 겁니다.

셋째의 예는 성범죄 과격처벌에 대한 의논에서 나타납니다. 성폭행당한 피해자의 마음을 생각해봐라. 사람의 인생을 조졌으니 살인과 다를게 뭐가 있지? 라며 성범죄는 마땅히 살인죄와 동일하게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조금 억지로 끼워맞춘 것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토론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스킬이 바로 이 쌍비론 관련 스킬입니다. 반론을 위해서는 상세한 비교가 필요하고, 그 자체가 논의의 방향이 틀어진다는 것이거든요. 물타기에 쓰기도 좋고, 감정동요에 쓰기도 좋습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얘기해봅시다. 학교폭력, 또는 일진 관련 논란에서 첫번째와 두번째는 항상 학창시절에 나쁜 선생들이 우리한테 사용하던 거였습니다. 일진한테 대항하면 둘이 싸웠으니 둘 다 잘못했다고 하고, 학교 이미지도 있으니 이 사과 받고 여기서 끝내자고 강요하는 그런 상황, 생소하진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세번째 논조는 우리가 일진을 공격할 때 사용됩니다. 니가 재미있었다, 추억이지, 어렸으니까 라고 말하면서 한 행동이 피해자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갖고 살게 된다. 어떻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느냐~ 하면서요.

이 논리속에서 간과되어 상대적으로 선량한 일진을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급의 차이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일진이 한 잘못이 제각각인데 너 일진? 너 고소. 평생 후회해. 편히 잠들지마. 라뇨? 이건 속도위반과 테러리스트를 동급에 놓고 처벌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집단 성폭행사건, 한 학생을 자살로 몰고 간 일진은 인외마물입니다. 그정도면 가정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태어나면 안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발생하는 일종의 버그이죠.

제가 초등학교때 겪은 한 일진은 성희롱이 전문이었습니다. 바지를 벗겨서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못생긴 여자애한테 강제로 고백하게 시키고요. 이건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었고, 가해자가 왜 이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를 학문적으로 검토해볼 만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반장이 일진의 하나였는데, 주동적으로 나서서 한 명을 따돌리고, 반장의 권한으로 각종 불이익을 주곤 했습니다. 이거는 학창시절 아니어도 어딜 가도 있어요. 인간의 본성이라고 감히 단언해 보겠습니다.

중학교 때 일진은 묘했습니다. 제가 반장을 맡은 학급이 학교 일진의 집합소였는데, 지들끼리는 물론이고 다른 학생들과도 잘 지내지만, 어쨌든 수틀리고 감정이 격해지면 주먹을 휘둘렀기에 껄끄러운 아이들이었죠.

어때요, 네 케이스가 모두 동일하게 취급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음은 각 케이스에 해당하는 일진이 시간이 지난 지금 받았으면 하는 처벌에 대한 생각입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경상도 짱구머리나, 문덕고 캡짱 박중필같은 애들은 케이스 4에 해당합니다. 혈기가 넘쳐서 주먹을 휘두르는데, 일반 학생이었으면 싸움나서 먼저 운쪽이 끝날 일을 힘에 세다보니 일진으로 평가받는 케이스입니다. 자존감이 형성되는 시기에 주먹에 굴복한 그 더러운 느낌은 세상 모든 남자가 가지고 있을 거고, 바로 그 느낌의 제공자가 이 케이스의 일진이지만, 얘들은 나쁘다기보다는 상대적인 강함이 원인같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친구랑 한번 싸웠는데 친구가 한방에 나가떨어졌어요. 그다음부터 이 친구가 저랑은 싸움까지 가지 않도록 조심을 합니다. 이제 님도 케이스 4의 일진입니다.

얘들은 크게 앙금은 남지 않습니다. 동창회에서 만나서 너 그때 나 왤케 패댔냐 하고 물어보면 멋쩍게 웃는, 순박한 모습을 본다면 그냥 술한잔에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겠죠.

케이스 3의 일진은 행동이 이해가 갑니다. 권력(그것이 폭력이든, 실제 권력이든)이 있으면 인간은 대부분 그렇게 행동합니다. 승기가 굳어진 상황에서 마패관광, 정글에서 조우한 아무무한테 나는 빡빡이다를 시키는 행동 모두 상대의 자존심을 자신의 권력으로 꺾는 행동이죠.

물론 분하긴 하다만, 그것은 제가 약자이며 패배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고, 그 일진들의 인성이 노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정말 못됐다고 생각하는 정도이죠.

이 사람들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 역전된 상황입니다. 치킨을 시켰는데 일진이 배달을 오는 그런 상황이요. 이미 약자와 강자로 계급화가 되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용서를 받아줄 이유도, 의향도 없고 친구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우리는 그 계급이 뒤바뀌고, 내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죠. 상대방이 후회하고 속죄하기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케이스 2부터는 이제 인간의 존엄성을 터치하기 시작합니다. 제발 죽었거나 불구가 되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검투사셔틀(약한 아이 두 명을 강제로 싸우게 하는 것), 각종 성희롱, 노예 부리듯이 시키고 괴롭히는 것 등이 여기 포함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 녀석들이 발뻗고 자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더. 과거에 자신이 한 짓을 평생 후회하고 괴로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제 3자가 그 일로 조롱하고 욕해도 한 마디 못하고 돌을 맞아야 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 정도면 저에겐 합당한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스 1은... 태어나면 안 되었던게 맞습니다. 다수의 법칙이라고 사람이 많으면 그런 인외의 마물이 가끔 등장하는 법이에요. 최대한 빨리 배제해야 합니다. 처벌로 해결되는 클래스는 아니죠.

글이 길어지다보니 저도 의식의 흐름에 갇혀버렸는데, 제 요지는 이런 다양한 부류의 일진을 싸잡아서 욕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작은 단점은 케이스 4의 일진이 과도한 욕을 먹는 것이고, 큰 단점은 케이스 1~2에게 포커스를 맞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며,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저들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그들과는 구분되는,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닭장군
15/06/02 10:55
수정 아이콘
확실히 오십보와 백보는 다르죠.
15/06/02 11:01
수정 아이콘
노답^3, 노답^2, 노답, 예스답 정도로 봅니다.
세번째 케이스까지는 악의가 그냥 보이는 경우라..

정도가 심한만큼 더 까버리면 되고, 모두 까지 못할 만큼 에너지가 모자란 것도 아니라서요.
관지림
15/06/02 11:10
수정 아이콘
일진이라는 용어가 싸움을 잘하면 일진인가요??
아니면 어떤 무리를 지어서 행동 하는 얘들을 지칭하는건가요??
15/06/02 11:27
수정 아이콘
싸움을 잘하는 무리를 지칭하죠 보통
절름발이이리
15/06/02 11:15
수정 아이콘
섣부른 범주화가 위험한 이유죠.
Steve Jobs
15/06/02 11:30
수정 아이콘
동의 합니다.

무서운 중학교와 공부 잘하는 고등학교를 다녀 본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뒤에 가서 따돌리고 뒷담화 하는 것보다는 4번째 케이스가 훨씬 낫다고 봅니다.
(물론 폭력적에다가 앞 다르고 뒤 다른 케이스는 노답...)
그 아이들은 그냥 마음에 안들면 화장실 가서 주먹질 하고 끝이었거든요.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따라서 그냥 충동의 조절만 더해지거나, 성인이 되어 가족이 생겨 책임감이 생기거나, 철이 들면 차라리 의리있고 괜찮은 사람 입니다.

앞에 케이스는 비열한 본성이 그럴진데 사람이 바뀌려나요.
스카이
15/06/02 11:37
수정 아이콘
'니가 재미있었다, 추억이지, 어렸으니까 라고 말하면서 한 행동'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그 행동이 위 케이스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그 쌍비론이 어느 케이스에 적용되는지 정해지니까 전체 일진을 포함한다고 할 수 없지 않나요? 적어도 그 일진이었던 친구의 특정 행동에 대해서 말 하는 것이니 딱히 범주화 했다고 보기 힘들다 보입니다.

그리고 이슬먹고살죠님은 케이스 4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역시 저기서도 얼마나 주먹을 작은 계기에도 휘두르냐에 따라 비난 받을 정도가 될 수 있기도 하고 사람마다 그 허용정도도 다르고요. 이 말을 한 이유는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정도 범주화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입니다. 그 범주의 범위는 그 대화에서 정해지기에 맥락이라는 것이 있고, 일부만 발췌해서 오용하는 경우가 많죠. 물론 대화 속에서도 사람마다 가치관등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만요.

특정 단어에 프로그램화 된 반응 같이 나온다면 문제가 있지만, 대화 속 특정 범주가 정해진 다면 마냥 쌍비론이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슬먹고살죠
15/06/02 12:49
수정 아이콘
맞아요. 다만 그 범주화가 과열되었을 때를 경계하고 싶다는 얘기였습니다. 일진=나쁜놈의 범주화라면 괜찮겠지만, 일진=죽일놈의 범주화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ephisto
15/06/02 13:15
수정 아이콘
일반적으로 일진이기에 죽일놈이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가해자이기에 피해자가 적개심을 품는거죠.
그래서 죽일놈이 되는겁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일진이라는 호칭으로 불릴뿐이구요.

그리고 일진이라는 개념은 사회에 무쓸모한아니 배제시켜야할 개념이죠.
15/06/02 12:06
수정 아이콘
일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신것 같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걸 다 고려해야 되니 법조인이 전문직인거죠.
유리한
15/06/02 16:29
수정 아이콘
양비론 말씀하시는거죠?
임시닉네임
15/06/02 21:24
수정 아이콘
일진은 싸움을 잘한다기보다 잘노는게 일진이죠
싸움을 아무리 잘해도 껄렁하지 않으면 일진은 아니죠
경우에 따라서는 짱이나 통도 일진이 아닐 수 있고 실제로 그런경우를 봤습니다

제가 중학교때 일진은 그때도 전교부회장이었고
나중에 서울대 갔다는 카더라도 있습니다

껄랑하고 못되먹은 놈들이 나이먹고는 인생안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일진중에서 배달의 기수가 되는 사람이나 사회 지도층으로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나 비율차이 나지도 않을거 같아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8701 [일반] 소리의 도시 파리 and 암스테르담 [3] 카슈로드2957 15/06/02 2957 0
58700 [일반] [펌] 사스(SARS)당시 참여정부의 대책과 결과 [95] 루비아이14464 15/06/02 14464 29
58699 [일반]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남작 이야기 [14] swordfish-72만세6950 15/06/02 6950 0
58698 [일반] [펌]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말하는 ‘메르스’ [27] 미스터H8918 15/06/02 8918 5
58697 [일반] WHO가 한국 정부에게 치료 과정에서 메르스 공기 감염을 주의하라고 했다는군요. [25] 저 신경쓰여요8810 15/06/02 8810 2
58696 [일반] 1 [32] 삭제됨6976 15/06/02 6976 0
58695 [일반] 새누리당, 세계최초 ‘SNS 감청법’ 발의 ‘감청 합법화하자’ [59] 삭제됨7010 15/06/02 7010 4
58694 [일반] 어그로에 관하여 [15] 3018 15/06/02 3018 17
58693 [일반] 빅뱅 태양·배우 민효린, 열애…YG·JYP 커플 탄생 [14] 효연광팬세우실6945 15/06/02 6945 0
58692 [일반] [해축] 두덱 자서전에서 레알마드리드 무리뉴 라커룸 사건 밝혀 [58] 첼시FC11712 15/06/02 11712 5
58691 [일반] 안다는 것에 대하여 [9] 4100 15/06/02 4100 4
58690 [일반] 한 자기계발서 작가가 생각하는 고조선 역사? [19] 인벤7904 15/06/02 7904 0
58689 [일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관련 영상 몇개 [18] 어리버리5381 15/06/02 5381 2
58688 [일반] 배우 김보성 종합격투기 데뷔 (로드FC) [28] 샤르미에티미10338 15/06/02 10338 3
58687 [일반] 중학교때 내가 경험한 일진. [25] 단신듀오10058 15/06/02 10058 3
58686 [일반] [단독 예고] 세계가 주목할 만한 특종, 더팩트가 확인했습니다 [47] 효연광팬세우실11915 15/06/02 11915 1
58685 [일반] [뉴스] 중국 458명 태운 여객선 침몰 [28] cd9517 15/06/02 9517 0
58684 [일반] 유재석, 종편 진출..JTBC 새 프로그램 진행 [60] 양념반자르반11842 15/06/02 11842 1
58683 [일반] 불량배도 급이 있어요. 노답부터 예스답까지 [12] 이슬먹고살죠7871 15/06/02 7871 1
58682 [일반] 결국 메르스 3차 감염자가 발생했네요 [262] 수지느27385 15/06/02 27385 4
58680 [일반] 벌써 13년 [5] 모여라 맛동산4650 15/06/02 4650 8
58679 [일반] 이별..그 가벼움.. [3] 김소현3289 15/06/02 3289 0
58678 [일반] [책소개] 제국의 게임 -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비디오게임 [5] redder3099 15/06/02 3099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