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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29 10:49:31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18-19세기 러시아와 아편전쟁이 일본에 준 충격

얼마 전에 메이지 유신 관련해서 정말 좋은 책을 읽어서 흥미로운 부분 몇 군데를 발췌해서 공유합니다.


(소제목은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1. 매튜 페리의 흑선(쿠로후네) 이전의 대충격, 러시아의 동방진출



1780년대 북쪽에 있는 에조치(홋카이도), 즉 지금의 사할린과 홋카이도 일대에 러시아인들이 출몰하는 상황을 근거지로 삼아 오호츠크 해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것이 서양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어 러시아 경계론과 일본의 국방 강화와 내정 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들의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중략)


이 러시아 출현을 계기로 많은 논자들이 일본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하야시 시헤이는 <해국병담>(1786년 탈고)에서 "최근 유럽의 러시아의 기세가 비할 데 없어, 멀리 달단(만주)의 북쪽을 침략하고 요즘에는 실위(연해주)의 땅을 차지하더니 동쪽 끝인 캄차카까지 점령하였다. 그런데 캄차카로부터 동쪽으로는 더 이상 차지할 땅이 없기 때문에 다시 서쪽으로 눈을 돌려 에조치의 동쪽인 지시마(쿠릴 열도)를 손에 넣으려는 조짐이 있다고 한다"라고 경계해였다. <해국병담>이 출판되던 해에 후지타 유코쿠라는 청년 지식인은 다이묘에 상서를 하여 다음과 같이 강렬한 위기의식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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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가문이 무(武)로 나라를 세우고 오사카 여름의 전투로 전쟁이 끝난 이래, 거의 200년 동안 나라 안의 안정이 계속되어 지금은 좀도둑조차 드문 세상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전쟁을 모르고 태평이 넘쳐 나는데, 이것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입니다. 그러는 동안 무사와 병사들은 관직을 세습하고 주지육림으로 포식하며 노래와 음악의 즐거움에 빠져 있어, 눈과 귀는 타락했고 근육은 둔해지고 말았습니다. 천하는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고 밑물에 쓸리듯 취생몽사하여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이 역시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북방에는 러시아라는 교활한 나라가 있어 신주(神州:일본)를 빼앗으려고 노리며 항상 남하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아, 한탄스럽게도 사람들은 작은 지혜에 우쭐대고 있어 러시아인의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작은 새의 좁은 식견으로 대붕(봉황)이 하는 일을 비웃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장작의 비유 그대로이니, 쌓아 놓은 장작 위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서 자면서 아직 불길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중략)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2014. p.45-46


물론 주류 사회는 이러한 위기의식을 과대망상으로 치부하고 오히려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아 즉각 금서 처분을 내리고 관련된 인물들을 좌천시키는 등의 처분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의식은 죽지 않고 사회 전반에 계속 확산되고 계승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 상소를 쓴 사람의 제자 아이자와 야스시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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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모두 7웅으로 나누어져 주나라 말기의 이른바 7웅이라는 것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 형세는 매우 비슷하다. 러시아와 튀르크는 토지가 넓고 군대가 강하며 땅을 접하고 자웅을다투는 것이 진과 초의 형세이다. 만청(청나라)은 부강하고 동방에 있으니 제와 같다.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는 그 중간에 있으나 한과 위이다. 신성로마제국은 명위가 있어 여러 나라가 존숭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프랑스, 에스파냐, 영국 등 여러 나라와 백중지세이다. 큰 나라는 한, 위, 작은 것은 송, 위, 중산일뿐이다. (아이자와의 주석: 신성로마제국은 서양 국가 입장에서 보면 동주東周의 형세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존엄함은 없다). 또한 신주(일본)가 만청의 동쪽에 있는 것은 마치 연이 제와 조에 가려져 있는 것과 같다. 


박훈 교수 말대로 부분적으로 부정확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세계형세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아이자와는 다음과 같이 부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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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러시아는 강한 기세를 가진 오랑캐이니 반드시 청을 칠 것이다. 그러나 청은 아직 강성하여 쉽게 침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주(일본)를 돌아보고 침을 흘리는 것이다. 그 기세를 보면 신주를 점령한 후에 우리 백성을 앞세워 민절(중국 동남해 해안)을 침략할 텐데 그것은 마치 옛날의 해적, 즉 명나라 사람들이 왜구라고 부른 자들의 짓가 같을 것이다. 청의 동남쪽을 피폐하게 하고 그 틈을 타 하미(중국 서북), 만주 등의 땅을 취하고 곧바로 베이징을 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만청(청나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만청의 땅을 얻으면 곧 무굴을 뒤엎고 페르시아를 복속시키며 튀르크를 멸망시키는 것은 마른 가지를 부수는 것과 같다. 만약 동쪽이 아직 침략하기 어렵고 만청도 당장엔 무찌를 수 없다면 러시아는 우선 서쪽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서방에 틈이 보이면 페르시아와 함께 튀르크와 싸우고, 만약 이들을 이기면 곧바로 남하하여 무굴을 습격하고, 만청과 준가르의 고지를 다투어 단번에 청에 침략하여 이긴 다음에는, 실로 함선을 이끌고 신주에 몰려올 것이다. 이 두 가지 책략은 동쪽에서부터 서쪽을 도모하거나 아니면 서쪽에서부터 동쪽을 도모하는 것이다. 라시아는 실로 때를 보고 형세를 살피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2014. p.48


2. 서양제국의 동방진출이 가져다 준 충격


서구열강이 본격적으로 전지구적인 범위에서 확장을 시도한 것은 산업혁명이 극에 달했던 19세기 중후반이었지만, 일본은 19세기 초부터 서양열강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막부의 관료였던 고가 도안(1788~1846)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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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진출로 지금 일본은 큰 위기에 빠져있다. 서양이 동남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에 서양과 일본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게 되었으며, 이미 육대주 중 오대주가 서양의 지배에 들어갔고 아시아 중에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지나(중국)과 본방(일본) 뿐이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첫째. 네덜란드 통해서만은 정보가 부족하므로 서양 교역국의 수를 늘릴 것

 둘째. 일본 내에서만 교역할 것이 아니라 일본도 인도, 태국, 베트남으로 교역선을 파견하고 해군을 창설할 것. 

 셋째. 전쟁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이국선을 무조쩍 쫓아내지 말것. 


막부 관료였던 그는 일본을 청, 러시아, 영국 같은 나라에는 미치지 못하나 튀르크나 페르시와는 동렬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력을 중요시하게 여겼던 그는 약소국에게는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았는데 유규왕국은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고, 조선에 대해서도 언급 빈도가 페루나 멕시코보다 적었습니다. 그는 국가간에 병존이나 지배-피지배 관계가 있을 뿐 문화적 상하관계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2014. p.58-59


다른 한편 아편전쟁이 터진 후 일본은 해당 정보를 실시간을 접할 수 있었는데 나가사키의 상인들이 전해주는 정보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국왕으로부터 아편전쟁과 세계대세를 설명하는 특별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가사키에는 아편전쟁에서 직접 싸웠던 중국인들이 다수 들어왔고 반대로 일부 일본인들 또한 아편전쟁으로 인해 개항된 중국의 항구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명이 쵸슈 유신 지사이자 기병대의 창시자 '다카스기 신사쿠'인데 그는 상해에서 중국인들이 서양인들의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을 목격하고 더더욱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리 이전의 일본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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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love
15/05/29 10:59
수정 아이콘
일본은 미리부터 세계정세를 알았군요..
15/05/29 11:04
수정 아이콘
캬 갓본 헬조선. 안동김씨. 풍양조씨는 그때 뭐햇나요?
윤가람
15/05/29 12:10
수정 아이콘
조선조 말에 들어서야 비판당해 마땅한 형세였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 헬조선이라고 지칭할 정도는 아닌데 말이죠.
이게역으로가네요
15/05/29 12:19
수정 아이콘
그당시 백성들한텐충분히 헬 맞는데요? 경신대기근때 국민이 굶어죽어도 오랑캐 청나라에게서 쌀은 못받으신다던 나랏님들 수준만 봐도
소독용 에탄올
15/05/29 17:24
수정 아이콘
청나라 양반들하고 관계가 나빴던 시기였으며, 을병대기근때 수입해 봤지만 딱히 사망자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해당하는 비판이 얼마나 의미를 가질지 알기 어렵습니다.

경신대기근 당시 나름 조선정부는 이것저것 대응을 하긴 했습니다.
낮은 조세율로 정부규모가 적어서 대응수단에 가용한 자원도 적었고, 고관양반중에서도 사망자가 날 정도로 난리가 난 상태라 대응했어도 부족했던 것일 뿐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어떤형태의 정부'도 충분한 대응을 할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죠.
(현대처럼 물류수송역량이 높고, 보관기술이 좋아진 시기에도 정부의 조세가용자원에 따라 기근으로 막 죽는걸 생각해보면...)
KamoneGIx
15/05/29 14:15
수정 아이콘
헬조선은 틀린 용어 입니다 역전앞이란 용어랑 같은 이치
15/05/29 15:21
수정 아이콘
어헣크크
겨울삼각형
15/05/29 14:50
수정 아이콘
Crystal님이 안동김씨, 풍양조씨 세도가문의 중역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지금처럼 개항해서 서구화하자~ 좋지요. 조선은 부국강병을 기치로 필리핀,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는 청사진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설마... 뭐 자세한건 다음에..)

그런데 말입니다.
그 개항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청나라를 살펴보죠. 광주에 상관열어서 교역하게 해줬더니, 아편이나 팔아먹고, 양이놈들 깽판쳐서 법 안지킬꺼면 꺼지라고 조치할랬더니
그놈들이 글쎄 최신식 군함(사실 상선..)을 이끌고 북경으로 올라와서, 왕궁을 포위했었죠?(아편전쟁)

일본은 어떻게 되었지요? 기존 일본 정세를 주름잡던 막부 관료들과 사무라이들은... 하급 관리들을 중심으로한 메이지유신 세력에게 탈탈 털리고 모든 특권을 빼앗겼습니다.

안동김씨, 풍양조씨, 그리고 조선은 아마 왕실도 무사하지 못할겁니다.
물론 우리 안동김씨, 풍양조씨, 그리고 왕실을 매개물로 삼아서 부국강병을 소환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신다면..

대인배라고 칭해드리겠습니다.
15/05/29 15:35
수정 아이콘
보통 그런 선견지명을 가진 사회지도층 인사는 외부의 압력에 눌려서 죽거나 , 내부에서 암살당하거나....
시대의 움직임을 거스르는건 참 어렵습니다.
swordfish-72만세
15/05/29 11:11
수정 아이콘
뭐 당시 조선은 1차 아편전쟁 자체는 알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라고는
판단하지 못했죠.
문제는 2차 아편 전쟁때 북경 주변이 초토화 되었는데 그 흐름은 여전히 무지...
사실 러시아가 두만강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더 그랬겠죠.
물론 러시아가 두만강 주변에 나타난 이유는 연해주를 2차 아편전쟁 때 먹어서
였지만요
첸 스톰스타우트
15/05/29 11:24
수정 아이콘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하는 나라가 맞는것 같아요. 후기조선의 삽질이 이후 한반도에 어떤영향을 끼쳤는지를 생각해보면..

그와는 별개로 저 상소문의 내용은 정말 놀랍습니다. 저당시에 일본에서 어떻게 저정도까지 세계정세를 파악할수 있었는지..
Around30
15/05/29 11:35
수정 아이콘
국수주의 역사교육의 영향인지 몰라도 일본이 원래 조선하고 도찐개찐이었는데 운좋게 문호 개방 빨리하고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등으로 늦게하는 바람에 뒤쳐졌다라는 인식을 가진분들이 많은데
사실 임진왜란 이후부터 두나라의 국력은 수백년간 이미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졌다고 봐야죠.
이게역으로가네요
15/05/29 11:42
수정 아이콘
그때 조선조상님들 이기따진다고 기술관심없었다네요 글내려주세요
겨울삼각형
15/05/29 11:45
수정 아이콘
일본이 메이지 유신이 가능하고 또 성공했던건..
미국이 시빌워, 그러니까 남북전쟁이 터져서.. 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나가사키에 외국상관이 세워져있어서.. (네덜란드 - 영국) 해외 정세에 대해서 알고 있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당시 해외 정세에 대해서는 조선도 알고 있었어요.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하멜, 그리고 그 전에 하멜과 비슷하게 조선에 표류한 후 귀화한 박연.. 모두 네덜란드 인입니다.

일본보다 더 먼저 외국상인들이 들어오고 외국문물이 전파된 청나라는.. 어떻게 되었지요?
swordfish-72만세
15/05/29 12:07
수정 아이콘
하멜과 박연은 효종때 사람이죠.
사실 18세기까지는 중국을 통해 파악해도 치명적까진 아니었습니다.
서양세력은 중국 주변부에서나 찌질대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19세기 산업혁명 때문에 불과 5년전 무기가 구색 취급 받고
2년전 지식이 구식화 되는 미친 발전 속도의 시대에는 이방식으로는
글러 먹은 거죠
거기에 영국이 전력도 아니고 약간의 힘으로 청을 박살낼 정도로
힘의 차이가 커져 서구가 아시아를 집어 삼킬 기세의 시대 였기 때문에
정보가 느린 건 더욱 치명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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