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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02 14:16:50
Name 수면왕 김수면
Subject [일반] 설명충의 변명
안녕하세요. 학기말이 되어서야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학부생들의 요구에 잠 못 이루고 성적수정에 매진을 다하는 수면왕 김수면입니다. 이미 어떤 분들은 제가 댓글 다는 습관을 보고 눈치채셨겠지만 전 그야말로 스피드왜건의 정통파 계승자라 불릴만한(...) 소위 말하는 설명충이자 진지충입니다. 별건 아니지만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매사에 굳이 불필요한 디테일과 진지함을 달고 사는지에 대한 변명을 해보고 싶어 글을 써봅니다.

사실 설명에 집착한다는 성향은 진지함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종사하는 직종이 직종(순수이론 계통의 연구)이다보니 개념의 정의나 설명에 무척이나 민감한 편입니다. 물론 제가 애초에 이런 민감함 때문에 지금같은 직종에 종사하게 된 내생성도 어느정도 존재하겠지만요. 여간 저 같은 경우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미묘한 단어의 차이가 다른 개념과 혹은 다른 의미와 연관될 수 있고 이런 차이가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혹은 사전적으로 (공식적으로) 정의된 방식과 다른 방식의 언어사용이 감지되는 순간 무척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이런 불편함이 많은 부분 자의적인 불편함이라는 데에는 지금은 물론 이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릴 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고 정정하려는 시도를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무례하게 비추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해왔더랬죠. 태도가 공격적이라거나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상당히 말이 장황하고 한없이 설명을 이어가는(...) 현실판 스피드왜건이었으니까요. 평소에는 조용하고 단답식으로 대답을 하던 인물이 몇몇 특이 사안에 대해, 특히 그렇게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디테일에 대해 아주 자세하고 장황하게 설명을 한다는게 어떤식으로 비추어 질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지 않은 제 불찰이 아주 컸죠.

덕분에 제 주변 인물들이 저에 대해 갖는 평가는 매사에 진지함을 보이는 성실함과 쓰잘데 없는 데에 디테일을 달고 꼬투리를 잡는 무례함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갈려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종사해온 직종에서는 이런 행동양식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해주었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타인과 대화를 할 때, 특히 이성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행동양식이 불편을 넘어 해악에 이르는 지경까지 종종 이르곤 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이성과의 관계에서도 시시때때로 직접 (이성인) 당사자과의 대화에서는 무척 자제하지만 당사자가 배석한 상태에서 제 3자와의 대화를 지루한 방식으로 이끄는 탁월한 재주를 뽐내며 그야말로 "말은 많은데 재미는 없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이런 설명충 극혐(...)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의 전환을 도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저와 제 주변사람들은 몇 가지 대안에 이르렀습니다. 첫째로, 본인의 불편함은 의사소통의 결정적인 방해가 되지 않는 한 ("대세에 영향이 없는 한") 감수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상대방이 대화 진행이 더뎌지면서 느끼는 불편함도 하나의 비효용이고 내가 느끼는 엄밀하지 않은 단어 선택에서의 비효용도 하나의 비효용이라면 사회의 총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두 비효용 사이의 적절한 트레이드오프가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죠. 두번째로는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대해서만 설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의 진지함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위해서는 그런 진지함이 생산적인 관심으로 여겨져야 하고, 상대방이 흥미를 보일만한 분야에서는 이런 인식이 쉽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셋째로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정보를 검색하거나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고 들지말고 그냥 단순히 자신의 느낌을 말하자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반응이 본인 자신에게는 실없이 여겨져서 그렇게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웃어 넘길 수 있는 재미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여간 이런 대원칙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아침에 습관이 바뀌지는 않는지라 대화 한마디도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스럽습니다. 여러분도 주변에 많은 설명충들이 꼴보기 싫으실 때도 많으시겠지만 "얘는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는" 노답이려니(...)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자제시켜주세요. 그래도 의외로 설명충들은 자신의 불편함 만큼이나 타인의 불편함에도 예민해서 멈추라고 말하면 의외로 말은 잘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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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urespace
15/05/02 14:23
수정 아이콘
이 글 아주 불편한 글이네요. 민간인 사찰인가요? 제 주변에서 카메라 철수해주시죠? 부들부들....
Outstanding
15/05/02 14:24
수정 아이콘
설명충을 설명하는 과연 설명충다운 글이네요 크크..
SugarRay
15/05/02 14:25
수정 아이콘
"저 같은 경우에는 종사하는 직종이 직종(순수이론 계통의 연구)이다보니 개념의 정의나 설명에 무척이나 민감한 편입니다. 물론 제가 애초에 이런 민감함 때문에 지금같은 직종에 종사하게 된 내생성도 어느정도 존재하겠지만요."

여기서 설명충의 느낌이 팍 왔습니다. 혹시나 틀린 논리로 말할까봐 드드드
잭윌셔
15/05/02 14:31
수정 아이콘
설명충을 설명하니 설명충설명충이라는 설명이 가능하겠군요? 크크 좋은 글 잘 봤습니다.
WeakandPowerless
15/05/02 14:39
수정 아이콘
혹은 사전적으로 (공식적으로) 정의된 방식과 다른 방식의 언어사용이 감지되는 순간 무척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이런 불편함이 많은 부분 자의적인 불편함이라는 데에는 지금은 물론 의의가 없습니다. - 이 문장에서 의의가 아니라 이의가 맞지 않나요? (언나더 설명충)
케이아스123
15/05/02 14:40
수정 아이콘
저도 이게 보였...
수면왕 김수면
15/05/02 14:45
수정 아이콘
다 쓰고 나서 보니 그것 말고도 오타가 상당히 많군요. 개정 작업 해야하는데 잘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랜덤여신
15/05/02 14:40
수정 아이콘
정품 인증 철회합니다.
랜덤여신
15/05/02 14:40
수정 아이콘
스피드웨건을 스피드왜건으로 쓴다는 점에서 설명충 정품 인증 드립니다.
WeakandPowerless
15/05/02 14:45
수정 아이콘
크크크 빠른 철회!
공허진
15/05/02 15:13
수정 아이콘
사실 엄청난 묘사력과 어휘력이 뒷받침이 안되면 설명충이 될 수 밖에 없더라고요.
상대가 정말 못 알아들을때는(혹은 알아도 답정너) 사륜안이 있어서 환술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히로카나카지마
15/05/02 15:39
수정 아이콘
내 마음의 코스모여! 극한까지 타올라라!
봉황환마권!*
15/05/02 15:47
수정 아이콘
봉황환마권이 뭔가요?
15/05/02 16:04
수정 아이콘
설명충 등판이 시급합니다.
수면왕 김수면
15/05/02 23:16
수정 아이콘
만화 세인트 세이야에 등장하는 가상의 기술로, 해당 작품 등장인물인 브론즈세인트 피닉스 잇키(일휘)의 필살기. [상대에게 삿대질을 해서 환각을 보여주면서 정신을 파괴](...)한다. 당한 상대의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부수는 필살의 기술로 육체가 아닌 정신을 파괴하는 정신계 필살기의 원조격인 기술이다. 출처는 엔하위키 미러올습니다.
CoMbI CoLa
15/05/02 16:05
수정 아이콘
저도 가족중에 진지한 설명충이 있고, 학부를 순수과학쪽으로 나오다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가네요. 조언을 드리자면, 첫번째 말씀하신 의사결정에 큰 지장이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 이것만 지키셔도 타인에게 비호감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수면왕 김수면
15/05/02 23:1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정한 이후로는 이성에게 이런 원칙을 적극적으로 시험할 기회가 없다(!?)는건 또다른 함정...
F.Nietzsche
15/05/02 18:05
수정 아이콘
INTJ이신가요??
수면왕 김수면
15/05/02 23:19
수정 아이콘
예(...) 제가 MBTI를 검사할 때 마다 시간과 장소, 타입을 기록해놓는데 지난 근 10여년간 INTJ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이제는 더이상 MBTI를 하지 않습니다;;
F.Nietzsche
15/05/03 00:44
수정 아이콘
글에서 INTJ냄새가 나서요 흐흐 물론 저도...
설명왕
15/05/02 19:41
수정 아이콘
설명을 끊느니 차라리 똥을 끊죠
포기하고 받아들이세요
수면왕 김수면
15/05/02 23:20
수정 아이콘
몹시 설득력있는 닉네임이십니다.
순대없는순대국
15/05/02 19:52
수정 아이콘
설명충을 싫어하는 문화가 대세입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설명충을 좋아합니다. 제가 가진 지식이 협소해서 뭘 모르거든요.
수면왕 김수면
15/05/02 23:23
수정 아이콘
저도 사실 아는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수업이나 세미나에서 관객(?)들이 끄덕끄덕 하는 걸 보면 기운이 나긴 합니다. [순대없는순대국]님 처럼 설명을 잘 받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세상이 참 살만하지 않은가(응?) 마 그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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