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만 년 전...
지구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두 원시인류가 아라비아 반도의 레반트 지역에서 마침내 조우를 합니다. 그 동안은 서로 만날 일이 없었던 두 인류였는데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입니다. 한 쪽은 아주 오래전서부터 그 지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던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불리는 인류였으며 아프리카에서 이제 막 아라비아 반도로 넘어와 패권을 넘보던 또 다른 인류는 후대에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게 될 인류였습니다.

레반트 지역
하지만 이 싸움의 승자는 네안데르탈인들이었습니다. 호기롭게 동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진출했던 일군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결국 그곳에서 터를 잡지 못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자기들보다 힘도 약하고 딱히 더 나을 것도 없어 보였던 놈들을 내몰고 난 네안데르탈인들은 이제 유럽과 아라비아 반도는 영원히 자신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리라는 장밋빛 꿈을 꾸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잘 것 없던 첫 진출의 뼈아픈 패배가 있은 후 약 3만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으로부터 약 7만 년 전에 다시 호모 사피엔스들은 아프리카 탈출을 꿈꾸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자신만만했습니다. 약 3만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들은 예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근육은 자신들에 비해서 여전히 보잘 것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힘으로 몰아내면 간단히 끝날 일일 것 같았지요.
하지만 이 두 번째의 조우는 네안데르탈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두 번째의 진출에서 호모 사피엔스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을 단지 아라비아 반도에서만 몰아낸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거침없이 진출하여 유럽에 터를 잡고 있던 네안데르탈인들 마저도 멸종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동쪽으로도 진출하여서 지금의 동남아 지역을 거쳐 호주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전 어떤 원시인류도 그때까지 호주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집단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지나 북미와 남미 지역까지 거침없이 뻗어나갔습니다.
약 3만 년의 시차를 두고 이전의 호모 사피엔스들과 나중의 호모 사피엔스들 사이에 해부학적인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동일한 수준의 뇌 용적을 가지고 있었고 동일한 수준의 근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만 년 동안에 도대체 호모 사피엔스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두 번째로 아프리카를 빠져나온 호모 사피엔스들은 본인의 선조들을 포함해서 이전의 다른 원시 인류들에게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보트, 오일 램프, 활과 화살, 바늘이 이 시기에 지구상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굴벽화나 조각들도 이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들은 원시종교나 신화 같은 것들도 이때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나중에 온 호모 사피엔스들은 분명 뭔가가 달라도 아주 달랐습니다.

독일에서 발견된 라이언맨 조각상...약 3만 2천 년 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인간의 몸에 사자의 얼굴을 한...상상력이 발휘된 작품이다. 이전의 어떤 원시인류도 실용적인 도구 이외에 이런 상징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 적은 없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데에는 이 시기에 호모 사피엔스들 사이에 인지혁명(the Cognitive Revolution)이 일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무언가가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능력에 전에 없던 강력한 펌프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의 시간에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로운 의사소통의 방식이 나타났습니다. 아마 언어도 역시 이 시기에 등장한 산물일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학자들은 무엇이 이러한 급격한 인지의 혁명을 불러와서 호모 사피엔스들이 겉은 예전과 동일하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언가 우리 DNA에서 변이가 발생하였고 이것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지요. 그리고 그 변이가 네안데르탈인들의 DNA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들의 DNA에서 나타난 것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2014년 12월에 지구상에 네안데르탈인들의 후손들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들이 바글바글 살고 있는 것은 순전히 우연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무엇이 우리를 괴물로 만든 것일까요?
(이 글은 Yuval Noah Harai의 저서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를 참고로 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