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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0 23:41:10
Name 캇카
Subject [일반] 정당성이 갖는 기능
저는 도덕, 정의, 선 등의 가치를 긍정하는 사람으로서 실제 역사는 힘의 논리로 결정되는데 도덕과 같은 저런 가치들은 그들을 정당화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말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이런 가치들은 오히려 정당하지 못한 통치자들을 정당화해준다는 점에서 피해야할 가치가 될 테니까요. 반대로 정당성 역시 역학 관계의 일부로 작동하긴 하지만 결국은 총체적인 역학의 우위가 역사를 결정한다는 말도 신경이 많이 쓰인 말이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자신의 승리를 위해 굳이 정당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니까요. 다만 역사를 비롯해 현재 사회에서도 힘의 우위가 많은 것을 결정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 두 말을 무시하는 건 일종의 정신승리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힘과 정당성의 역할을 구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쟁과 선택은 힘의 우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되 정당성이 독자적으로 갖는 의미가 있다면 도덕, 정의, 선과 같은 가치는 추구할만한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기득권의 변경이나 새로운 체제의 확립 등은 확실히 힘의 논리에 의해 시작되지만 그 기득권과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저런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런 가치들이 기득권이 아닌 사회 전반에서 먼저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기득권자들을 정당화하는 수단이라는 첫 번째 말과는 차이를 갖습니다. 즉 이러한 가치들이 없다면 기득권을 뒤엎을만한 논의가 생길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데 이런 가치들이 그 논의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심각한 혼란 속에 빠지기 때문에 기득권이 붕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유도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기득권이 붕괴된 상황이 오히려 시민들을 절망으로 몰고 갔던 경우가 사례로서 적합할 것 같네요. 약간은 다른 얘기지만 자본주의 시장의 노동자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공산주의 사상이 아니라 기득권을 위한 방패라고 비판받는 법의 일종인 노동법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인간의 판단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이성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위의 얘기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Love&Hate님이 작성해주시는 연애 관련 글에 나왔던 사례로 먼저 예를 들겠습니다.
내용은 어떤 남자가 예쁜데 성격이 안 좋은 여자와 외모 성격 모두 보통인 여자, 그리고 외모는 별로지만 착한 여자와 각각 10분 간 데이트를 하고 여성을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서 남성은 첫 번째 여성을 착하다는 이유로 골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사례는 일종의 감정적인 선택을 이성을 통해 정당화하려는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이성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사람이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다만 선택의 직접적인 동기가 그 이성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직접적인 힘을 통한 위협이나 아름다움, 우월감 등의 감정적 동기가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에 실제 관념 속에서의 이상적 관계가 현실 속에서 재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비이성적인 동기 없이 내린 정당한 판단과 비이성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에 논리적 정당화가 더해진 판단 사이에는 갭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이성의 계발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이러한 감정과 이성의 갭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이는 자신의 판단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쉽게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실제로 사람의 판단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개인은 그에 대해 스스로 감정적인 선택을 피하도록 노력할 것인지, 타인의 비이성적인 선택을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나아가 그러한 감정을 이용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겠죠. 확실한 건 나는 같은 소신을 가지고 주장하며 살고 있는데 집단마다 그 주장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은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주장에 대한 반응은 주장의 내용에 더불어 집단 내에서의 역학 관계와 발언자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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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10/10 23:43
수정 아이콘
글의 첫문단에 쓰시기 시작해서 쭉 쓰신 힘을 오해하고계신거 같은데
적어도 사상적으로 정치학적으로 힘은 권력, 영어로는 power로 쓰이고
권력은 언급해주신 정당성 혹은 권위legitimacy 혹은 authority과 폭력force의 결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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