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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14 11:46:41
Name fd테란
Subject [일반] 심야 데이트 후기 마지막 - 해피엔딩 -
50cm 정도 거리를 둔채 찜질방 안마의자 너머로 녀석을 쳐다봅니다.
의자에 앉은지 1분도안되서 골아 떨어집니다. 젠장스럽게도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고 잡니다.
얼굴을 좀 훔쳐볼려고 해도 뒤통수 밖에 안보입니다. 하여튼 자면서도 미운짓만 골라 합니다.

머리야 돌아가라. 머리야 돌아가라. 머리야 돌아가라.

그렇게 삼십분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었을까요?
벽쪽으로 돌려져있던 녀석의 머리가 서서히 제 얼굴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옵니다.
옳치. 땡큐땡큐.

사실 눈 똑바로 마주보고 이야기할때 어색하지 않기위해서 필사적으로 입을 놀리는라
조금은 부담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렇게 편하게 녀석의 '이것저것'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니 정말 고마울 따름 입니다.
제일 친한 친구들이랑도 이렇게 오랜시간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 해본적이 없는데 암튼 기진맥진합니다.


녀석의 잠자는 모습은 천사...는 아니네요. 역시 잠자는 모습이 이쁜건 아기들에게나 어울립니다.

일 마치자마자 바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타고 온 뒤에 제대로 먹지도못하고 몇시간 동안 이곳저곳 걸으면서 지쳐 쓰러질때까지 이야기하다가 피곤에 찌들어서 쓰러진 화장기 하나 없는 20대 중반의 평범한 여성의 얼굴에 어찌 천사라는 말을 붙힐 수 있겠습니까.

보기만해도 정신이 아찔해질정도로 녀석이 엄청난 미녀였으면 이렇게 감히 쳐다보지도..아니 친해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미녀 울렁증 그거 정말 무시 못합니다. 저같은 평범한 범인들에게는 무시 못할 병입니다.

김태희랑 박지선 중 실제로 만나서 한시간동안 눈싸움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 주저없이 박지선을 선택할 겁니다.
물론 저 지선이 누나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진심입니다. 나쁜뜻으로 말하는거 아닙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김태희 얼굴 한시간동안 똑바로 쳐다 보면서 얼마남지 않은 생명을 갂아 먹고 싶진 않습니다.
생명은 소중히 여겨야 하니깐요.

그래도 콩깍지 버프는 진리인거 같습니다.
좀 초췌해보이긴 하지만 허여멀건한게 이뻐 보이긴 합니다.


한 10년전쯤 전지현누님이 출연한 모 영화 소설 원작에서

술이 떡이 된 여자친구를 비디오방에 데려다놓고 그녀의 주사 때문에 온갖 생고생을 하다가  
마지막에 에라 모르겠다 잠든 그녀의 얼굴에 '뽀뽀' 하고 오예를 외쳤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때 작가는 분명히 안걸렸다고 좋아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밥먹여줘, 술먹여줘, 놀아줘, 재워줘, 아 생일선물도 줬구나.
이렇게 잠든사이에 입술까진 아니더라도  볼에다가 뽀뽀한번 하는건 그렇게 큰 죄는 아닐거 같습니다.
아 물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찜질방 치한으로 잡혀 갈 수도 있습니다.
찜질방 곳곳에 사복입은 경찰이 돌아다닌다는 경고문이 큼지막하게 써져있습니다.

서울에서 제일 큰 찜질방에는 사복경찰이 잠복해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정말 미친척하고 한번 확 해버릴까 싶기도 하지만  
제가 그정도로 배짱있고 뻔뻔한 녀석이였으면 이녀석이랑 10년동안 미적지근하고 끈적끈적한 관계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내 주제에 뽀뽀는 얼어죽을 그냥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니가 그럼 그렇지 뭐.

시선을 조금 내립니다. 목선을 따라서 어깨선을 따라서...가슴에 꽂입니다.
헐렁한 찜질방 티셔츠를 입고 있기 때문에 사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느낌이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볼륨감이라고 해야하나...
글래머는 절대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녀석이 그동안 연애에 실패할때 부족했던 2%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좀 약간 오바해서 단아한 느낌을 주는 청순페이스에 찰랑찰랑한 긴생머리... 여기에다가
글래머라는 조건만 갖춰지면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의 레빌이 훨씬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맨날 그렇게 끝에가서 흐지부지 헤어지지 않았을거 같기도 합니다.
녀석이랑 남자들이 헤어질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남자들이 미련이 없어 보이더군요.

그냥 녀석이 매력이 없거나 밀땅을 더럽게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부족한 2%가 채워져 있었다면 저도 그녀를 처음봤을때 그냥 한방에 꽃혓을지도 모르구요.
좀 많이 부족하긴하지만 긴생머리에 청순한 느낌을 주면서 글래머 캐릭터는 그리 흔한게  아닙니다.

정말 사심과 흑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이 아이의 행복지수를 위해서 살짝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점점 시선을 내리다가 그녀의 다리에 멈춰섭니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에는 작은 빨간 동그라미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타투나 문신은 아닙니다.
전에 국가대표 축구선수 하나가 다리에 이런 병을 앓고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

마치 빨간 단풍잎이 물든거 같은 녀석의 오른쪽 다리를 보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예전에 같이 학교 다닐때 고시원 근처 공원에서 만나 늦은시간에 맥주를 마신적이 있었습니다.
초여름이였기 때문에 녀석은 반바지를 입고 나왔습니다.

벤치에 앉아 같이 맥주를 홀짝홀짝 거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가로등이 비친 녀석의 한쪽 다리가 빨갛다는것을 눈치챘습니다.

'야. 너 다리 왜그래? 이리좀 보여줘봐. 왜 이렇게 빨갛게 부어있냐?
한군데도 아니고 여러군데네. 큰일이다. 언제부터 이랬어?'

'이거 괜찮아. 어릴때부터 그런건데 문제 없어.'

'별 문제가 없긴, 야 이거 병원가봐야 하는거 아냐? 난 오늘 처음 봤네. '

'아니야 진짜 문제없다니깐 아픈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아 진짜 어릴때부터 그런거야.'


좀 심하게 호들갑을 떠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하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며
녀석은 손사래를 치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웃어 넘깁니다.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은 모습이 더 기억나긴 하지만 사실 한두번정도 스타킹을 신지않은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본거 같기도 한데
왜 그동안 한번도 눈치를 못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별로 좋은것도 아니고 어찌 생각하면 컴플렉스일지도 모르는 신체비밀을 저에게 굳이 떠벌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꽤 오랜시간 알고지낸 사인데...이런걸 왜 몰랐을까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쿨하게 웃어넘기는 녀석의 미소를 보니 제 얼굴이 화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이 녀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뭔가 다 이해하는것처럼 뭘 그렇게 아는척을 했는지 생각하니 민망해 죽을 지경입니다.

녀석은 제가 아는것보다 훨씬 더 씩씩하고 건강하고 당당하고 밝은 아가씨였습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반하게 된 계기는 그날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반바지를 입은 그녀의 다리를 보고 난 뒤 입니다.
그때 다리만 안봤더라면 정말 죽을때까지 고백하지 않았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찜질방 안마의자에 쪼그려앉은 녀석의 다리를 살펴봅니다.
전에 하도 할게 없다고 칭얼거리길래 뭐라도 취미생활을 가지라며 윽박질렀더니 지난 여름부터 요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회화학원도 다니고 최근에는 저와 2주에 한번정도 같은 책을 읽고 감상회를 열자고 했습니다.
물론 만나서 하는게 아니라 전화나 메일같은거겠지만요. 근데 첫 독서 감상회를 이렇게 만나서 할 줄이야...


뭐 아무튼 요가를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는 몰라도
아니 뭐 3개월정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다리는 꽤 미끈매끈 해 보입니다.

남자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제 다리도 굉장히 거시기 거시기 한데
역시 여자와 남자의 각선미는 근본적으로 질이 다릅니다. 보기 좋습니다.

단풍잎이 물든것같은 녀석의 오른쪽 다리를 보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아오 그때 저것만 안봤어도  진짜 이렇게 살고 있진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단풍잎이 물든 다리를 보고 뻑갔습니다.  
정말 저 다리가 이뻐 보여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마도 변태인가 봅니다.

시간 정말 더럽게 잘 갑니다.
5시쯤에 잠들어서 걍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데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11시에 광명역에서 목포에서 올라오는 어머니와 만나기로 했으니 이제 슬슬 일어나서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찜질방 매점에 들려서 포카리를 하나 사옵니다.
녀석이 앉아있는 안마의자 밑에 바로 앉아서 녀석을 올려다보며 포카리를 흔듭니다.

'이보세요, 언니 출근하셔야죠. 이런데서 주무시면 안되요. 이거 좀 마셔.'
'아 뭐야...몇시야 10분만 더 잘게...졸려'
건네준 포카리를 한모금 꿀꺽 마시더니 다시 불편한 자세로 눈을 감습니다.


다시 녀석을 깨워 카운터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잠시동안 이별의 시간을 갖습니다.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고 카운터 입구에 기다리는데 30분째 소식이 없습니다.

얼핏 보니깐 한시간정도는 지난거 같은데 혹시 제가 어제 하도 이상한 소리를 해서 저만 남겨두고 혼자 뺑소니를 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밥 먹을 시간은 이제 사라진거 같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봅니다.

받지마라. 받지마라. 받지마라.

'이제 거의다 끝나가. 조금만 기다려. 금방 나갈게'

저의 쓸데없는 망상은 망상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용산역 아침 밝은 아침 햇살에 비춘 화장까지 완벽히 마치고 나온 녀석의 모습은....


'너랑 나랑 만나면 항상 마지막은 꼭 이렇더라. 왜 이렇게 초췌해보이냐. 시체가 따로없네.
나야 뭐 늘 시체처럼 보이지만... 그러고 동생 만나러 가게?'

'어? 화장까지 완벽히 다 했는데 많이 이상해?'

'어 진짜 날밤 새고 온 티 딱 난다.'
'아닐텐데 나 멀쩡한데...화장 다 했는데...'

토요일 아침 9시가 좀 넘은시각 용산역 광장은 한산합니다.

'여기서 광명역 갈려면 어디로 가야해? 기차역으로 가는거야? 아니면 지하철로 타고 가는거야?'
'뭐 나도 서울은 자주 안오지만 용산만큼은 우리 영호보러 자주 왔기 때문에 여긴 좀 안다. 나만 믿고 따라와.'

'오빠 길찾는걸 어떻게 믿어. 우리 영호? 우리 영호가 누군데?'

'그런게 있다 우리영호라고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애다.
한 3년간 펜레터도 100장은 썼을걸? 더 많을려나...
야 그러고보니깐 이제는 너보다 영호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네?'

'그런말 들으니깐 맘이 좀 가볍네. 영호가 그렇게 좋아? 진짜 영호가 누군데?'

'영호라고 있다니깐, 모르는건 일일히 나한테 다 묻지말고 네이버가서 쳐봐라.
영호 내가 새끼때부터 업어서 키웠는데 어 그러고보니깐 너랑 비슷하네? 아 업어 키운건 아닌가..

아 맞다. 영호한테 책도 써줬거든. 뭐 내가 만든건 아니지만 한 5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거기 맨 앞장에 내가 쓴 글이 들어가 있다? 우리영호 정말 진짜 좋아했는데...'

'그럼 영호랑 살면 되겠네. 요즘도 자주 만나?'

'그러고 싶은데 영호는 내가 닿지 않는곳으로 너무너무 높이 올라가서 내가 감히 쳐다볼 수가 없다.
그리고 경쟁자도 너무 많아. 그냥 이제는 그냥 멀리서 행복을 빌어줄라고.
이제 마음껏 보고싶어도 볼 수 가 없다.'

'에이 뭐야. 그런게 어딨어 진짜 영호가 누군지 말 안할거야? 진짜 펜레터 100장 썼어?'

'네이버에 쳐봐라. 이영호라고'

그래 니가 영호를 어찌 알겠니.

아 영호야...내가 좀 이렇다.
그래 말나온김에 이젠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너때문에 진짜 재밌었다. 뭘 하든지 넌 잘 될거야. 잘 살아라!
형이 멀리서 응원한다.


용산에서 천안으로 가는 지하철을 탑니다. 광명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금천구청에서 한번 갈아타면 됩니다.
용산역에서 노량진으로  넘어가자 한강이 눈에 펼쳐집니다.저 멀리 63빌딩도 보이네요.  

'와 63빌딩이다. 저기 (조)권이랑 가인이 숨결이 묻어있는 곳! 권아 보고싶어!'
'너는 정말 권이가 좋은거냐? 아님 우결이 좋은거냐?
아 맞다 어디서 뜬소문을 들었는데 가인이랑 승기랑 사귄다더라'

'물론 아담커플 자체가 좋은거지! 권이도 좋긴하지만 둘이 연애하는게 정말 이쁘잖아.
가인이랑 승기랑 사귀다니 절대 그럴일 없어! 가인이는 권이꺼고 권이도 가인이꺼야. 누가 그런데?'

'당연히 헛소문이지. 그걸 믿냐? 혹시 주위에 연애인 잘 아는 사람있으면 가서 물어봐라 승기랑 가인이랑 사귀냐고.'


이런식으로 유언비어가 시작되는거군요.


'너 저기 한강에 다리가 몇갠줄 알아?'
'글쎄 10개? 몇갠대?'

'21개다. 아니 22개던가. 아 22개 맞을걸. 한강다리가 몇개인지도 모르냐! 기본 상식인데'(한강다리는 23개입니다.)
'내가 서울 사람도 아닌데 한강다리가 몇개인지 어떻게 알어?'

'예전에 영화 '후아유' 기억안나? 너도 분명히 봤을텐데, 내가 보라고 했잖아.
그거 조승우랑 이나영이랑 채팅에서 만나서 막 연애하는거...

아, 기억력 되게 안좋네. 아무튼 거기서 조승우가 이나영을 밤에 한강 드라이브를 가거든.
거기서 조승우가 이나영한테 잘난척하면서 그러거든.

서울에 있는 한강다리가 몇개고 다리마다 길이는 얼마고 면적과 넓이는 얼마고 공사기간은 어쩌구 저쩌구...'

'아니, 그런걸 왜 말한대? 뭐 때문에?'

'그래서 이나영이 그러잖아 '여자 꼬실때 써먹을려고 그런거 외어놨죠?' 조승우가 이렇게 말하지.
'진짜 제가 저 다리 설계했다니깐요'

'에이 한강다리가 몇개인지 길이가 얼마인지 그런거 안다고 여자가 꼬셔지나? 그게 뭐가 멋있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써먹어본적이 없으니. 뭐 아는척 하면서 좀 있어보일려고 하는거 아닐까?
근데 나도 워낙 오래전에 본 영화라 대사 다 까먹었다. 지금 써먹을래야 써먹을 수가 없네.


어제 먹은 점심반찬이 뭐였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데 8년전 영화 대사가 기억날리가 없지요.
뭐 딱히 큰 효과는 없었겠지만 언젠가 영화보고 나중에 한번 써먹어봐야지 생각했던건데...
지하철 말고 나중에 차로 드라이브 하게 될때 써먹어야 봐야겠네요.
근데 그 날이 오기는 할련지...

영등포쯤 가서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갑니다. 빈 자리로 가서 나란히 앉습니다.
간 밤에 충분히 수다를 떨기도 했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잠시동안 조용한 침묵이 흐릅니다.

간밤부터 지금까지 실컷 떠들다가 갑자기 제가 조용해지자 녀석이 저를 쳐다봅니다.
저도 가만히 쳐다보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어제 잘때 실컷봤는데 계속 봐도 봐도 안질리네'
'아 뭐야 징그러...'

사실 저도 제가 이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놈일줄은 몰랐습니다.
근데 이런건 뭐 어느정도 괜찮은 사람이 해야 멋있지 제가하니깐 정말 아 그냥 뭐 영 그림이 안나옵니다.
그래도 어색하게 말하진 않습니다. 어제부터 좀 놀란것이 제가 꽤 뻔뻔하게 잘 하고 있습니다.
역시 3년전에 고백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사람은 남자사람이 말이 없자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지난주에 진주에 연등축제 다녀온 사진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강아지랑 찍은 수 많은 컨셉 사진들 와 귀척 쩝니다. 손발이 오글오글 거립니다.
이런건 싸이 홈피에서도 못본 사진들 같은데 역시 핸드폰에는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거 같습니다.

'아 맞다 이거 한장 줄게'
'뭐냐. 웬 명함? 말단인데 명함도 주냐? 근데 명함에 사진이 없는데?'

'아 말단인데 사진을 왜 박어. 나도 얼마전에 나온거야.
주위에 괜찮은 남자들 있으면 명함 건네줘. 몇장 더 줄까?'

'필요 없어.'



어제 사진이나 한장 달라고 했더니 이상한 종이 쪼가리나 하나 줍니다.
회사 주소도 있고 전화번호도 있고 팩스번호도 있네요.
이걸로 녀석에게 악용할 방법은 무궁무진 하네요.
일단 받아 둡니다. 너 나중에 이거 때문에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최종 도착지인 광명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만하면 택배기사로서 충분히 역할을 다한거 같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 택배기사 하기 진짜 힘드네. 배송료는 착불이다. 얼른 내놔'
'우리 엄마한테 배송하는거니깐 엄마한테 받아가야지. 엄마 보고갈거야?'

'내가 미쳤냐 이꼬라지로 어머님을 뵈게. 만나면 누구라고 할건데?'
'친구라고 하면 되지!'

'친구는 얼어죽을...'어머니 제가 숙이 아빠거든요. 한 십년 그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진짜 웃기겠다
어제 우리아빠랑 엄마랑 연애한거 들려줬지? 우리아빠가 서울에서 익산으로 내려가서 '따님을 제게 주십쇼' 했다가 차여가지고
도저히 안될거 같으니깐 둘이서 야반도주 해버린거...내가 어머니 만날때는 그때다 임마'

'웃겨 정말. 누가 오빠랑 야반도주 한데?'
'누가 야반도주한대니? 야반도주 말고 우리나라에는 보쌈이라는 아주 훌륭한 미풍양속이 있단다.
자 나 이제 간다.'


이런 싸가지 하고는...12시간동안 고생한 오래비가 간다는데 이별의 포옹은 못해줄망정 의자에서 그대로 앉은채로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처음에 만날때도 저러더니 헤어질때도 뭐 다른게 없네요.  
저는 오른손을 내밉니다. 녀석은 오른손에 있는 핸드폰을 내밉니다.

내가 이티냐? 핸드폰으로 교감하게?
누가봐도 악수하자는건데 장난하나. 다시한번 왼손을 내밉니다.

녀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왼손을 부끄럽다는듯이 내밀까 말까 합니다.
손가락 끝만 살짝 내밉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내밀던 왼손을 다시 내려놓습니다.

녀석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던 새벽부터 지금 마지막 이 순간까지 고민했던 말을 꺼냅니다.
그래 니가 악수만 제대로 해줬어도 이 말은 안꺼냈을거 같은데 내가 이 말을 하는건 결국 다 니 탓이다.

'됐다. 지금 이 모습으로 내가 너랑 뭘 하겠니.

내가 너 3년안으로 꼭 한번은 두근거리게 만들어 줄게.
다음에 볼때 기대해라. 그럼 나 진짜 간다.'

녀석은 여전히 앉아서 알듯말듯한 미소를 보이며 웃습니다.

'뭐야, 3년후에 봐도 안두근거릴거야. 그래 알았어! 3년후에 보자. 기대할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후기의 후기


처음에 이렇게 길고 너저분하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지게 됐네요.

저는 제 자신이 굉장히 별 볼일 없다고 느끼는 자기애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피해갑니다.
사람들에게 받는 관심 배려 애정 등에 대해서 다시 되돌려줄 자신이 없거든요.

그래도 사람복은 있는편인지 주위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는 힘을 짜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처럼 삶의 강한 애착을 갖고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합니다.
아무도 저를 탓하거나 질책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더욱 사람들에게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시시콜콜 모든일에 잘난척을 하는 자만심이 충만한 녀석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자기 자신이 별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결여된 녀석을 좋아할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겁니다.

좀 더 제 자신이 삶의 애착을 찾고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달라지는게 없을 겁니다.
남들 보다 수십배 수백배 수천배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 할텐데 언제나 인생을 날로 먹을려고 드니 영 삶이 아름답지가 않네요.


사람이 강해질 수 있는데는 여러가지 동기나 방법 계기 등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한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개발서 10000권을 읽는것보다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 스스로 모습을 바꿀려고 자각하는 것이 훨씬 각성효과가 강하겠지요.

이미 저는 그녀에게 선전 포고를 해버렸습니다. 물론 별로 멋은 없었습니다.
이왕이면 '내가 너 반드시 3년안에 반하게 만든다'이런식으로 말을 했으면
그녀한테나 저한테나 훨씬 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을텐데 사실 그정도로 용기는 안나더라구요.

워낙 원판이 부실해서 사실 아무리 갈고 닦는다고 해도 그렇게 할 자신도 없구요.
하지만 단 한번 만 이라도 '두근' 거리게 만들 수 있는 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 해 봅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다시 3년만에 만났을때 '하나도 안변했네' 소리를 듣진 않을거 같아요.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그런말을 해놓고 아무것도 변한게 않거나 혹은 더 내려간다면
사실 쪽팔려서라도 어디 그 앞에 나타나겠습니까.
정말 칼물고 앞으로 넘어져야죠. 그때는 정말 인간이하입니다.


이 구질구질하고 지질한 이야기를 굳이 이런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게시판을 통해 남기는것도
저의 의지를 다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봐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갓영호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라도 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수는...

그리고 혹시라도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분들에게 제가 내린 답이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난주에 만나고 딱 6일이 지났는데 오늘이 그녀의 생일입니다.

숙아, 생일 축하한다.
3년안으로 반드시 두근거리게 해줄게.
그때 가서 이 글을 같이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




3년후에 이 글이 역성지가 아니라 성지가 되도록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0/10/14 11:55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어요~ 3년뒤에 올라올 새로운 글을 기대합니다
10/10/14 11:54
수정 아이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하는 사람...이라면...노력해서 꼭 잡으셔야죠!!!

화이팅!
10/10/14 11:58
수정 아이콘
fd테란님께 가장 빛나는 3년(물론 최장^^)과 행복한 그 다음이 되시길 바래요!!
더불어 좋은 분께 사랑받고 계신 숙이님, 생일 축하드리고..부럽습니다~~~!!
에위니아
10/10/14 12:06
수정 아이콘
미리 성지순례합니다. 3년이 뭡니까 1년안에 끝냅시다!
나두미키
10/10/14 12:17
수정 아이콘
미리 성지 순례합니다. (2)
꼭 잘되시기를..... 너무 상큼하네요..
10/10/14 12:09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꼭 성공하시길 기원할께요.

3년안에 반하게 만든다보다 3년안에 두근거리게 만든다가 훨씬 멋진데요? ^^
higher templar
10/10/14 13:29
수정 아이콘
본격 사리 쌓이는 글이네요 ...
오렌지샌드
10/10/14 19:12
수정 아이콘
뭔가 '좋겠다' 라던가 '부럽다' 라고 말하면 안될것 같네요 [......]
진작 어장관리 좀 해놓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

뭐래
감성소년
10/10/14 23:32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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