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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17 01:59:42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역사에 대한 잡상 (2) 짧은 이야기들
+) 앞으로 제가 쓸 글 중에 상당수가 '이랬는 줄 알았는데 이런 거였다' 일 겁니다. 하지만 저 역시 지식이 부족하거나 제 편견으로 거짓이 적힐 수 있으니 고수분들은 혹시 시간 되시면 태클 걸어주셨으면 합니다.

1. 서양 기사들의 갑옷은 너무 무거워서 말에서 떨어지면 움직이지 못 할 정도였다고 하죠. 이런 수준이니까 몽골의 경기병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우월하게 인식되는 서양의 본모습이라는 거죠.
... 개뿔. 당시 서양 갑옷들의 무게는 30kg 전후라고 합니다. 현대의 군장과도 그리 차이나지 않죠. 거기다 이건 몸 전체로 무게가 분산되구요. 일본 사무라이들의 갑옷 역시 비슷했는데, 얘네들은 땅에서 서서 싸웠죠. 서양에서도 잽싸게 말을 갈아타고 싸웠다는 식의 얘기들이 나옵니다. 정말 이렇게 무거웠다면 이런 기록이 나올 수 없었겠죠. 무겁긴 했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무거웠던 건 아닙니다.
과대평가 된 서양을 깎아내리다가, 이른바 '사실은 이랬다'는 식의 얘기를 하다가 오히려 반대편으로 왜곡을 해 버린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발견됩니다. '알고 보니' '사실은' 이라는 식으로 왜곡해 버리는 지식이 꽤 됩니다. 한국의 경우 너무나도 대표적인 '환단고기'와 '원균 옹호론' 이 있죠. 얘네들은 나중에 진지하게 건드려 보도록 하죠.

뭐 이렇게 넘어지면 일어나기도 힘든 갑옷이 있긴 했죠. 토너먼트의 어원이 된 중게 기사들의 마상창 시합 때였습니다. 이 때는 경기니까 큰 부상을 당하면 안 되었고, 한 번만 달리면 되니까 말들도 그 무게를 버틸 수 있었죠. 아마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싶네요. 일단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말에 탈 때도 기중기가 필요했다는 건 이 시합 때 입는 갑옷이었습니다.

2. 구일본군에 대해
대일본제국이 저지른 삽질은 다들 자세하게든 에피소드 식으로 간단하게든 알고 있으실 겁니다. 근데 여기서도 지나치게 깎아내리다가 오히려 왜곡을 만들어 버리기도 했죠.
대표적으로 일본의 자폭용 잠수함 카이텐. 무려 안에 있는 승무원들이 탈출 못 하게 입구를 용접 해 버렸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카미카제 같은 것들도 완벽하게 편도용으로 만들었다고 하죠. 뭐 그럴 듯 합니다. 그 정도로 당시 일본군은 광기에 젖어 있었으니까요. 근데...
그렇게 출격했다가 적을 못 만나면 어떻게 하죠?
용접한 상태에서 카미카제나 카이텐의 모함이 출동했는데 적을 찾을 수 없었다면 어떡할까요? -_-; 돌아와야 됩니다. 최소한 적을 만나야 자폭은 하죠. 적을 만난다는 게 우리 인식보다 쉽지도 않구요. 편도용으로 쓸려고 한 게 많지만 최소한 적을 못 만나 돌아올 경우 재출격시킨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지성은 일본군에도 있었던 겁니다. 가미카제가 적을 발견하고 돌격할 때에야 폭탄의 안전 장치를 풀 수 있게 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초짜 파일럿이 기껏 적함에 돌격해놓고 안전장치를 풀지 못 해서 큰 피해를 주지 못 한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아예 돌아오지 못 할 걸 상정했다면 애초에 달아놓지 않았겠죠?
야마토가 마지막으로 출격할 때 편도 분량의 기름만 싣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해상포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으니 논외로 치도록 하죠.
광기를 강조하다가 너무 앞서 가 버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한국 사학계는 식민사학에 젖어 있다.
일단 식민 사관에 대해서도 큰 오해가 있고, -_-; 해방 후 이른바 '강단 사학'계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일단 이 말을 꺼내는 사람이 하는 역사 얘기는 안 들어야 됩니다. 역사는 유적, 유물 하나 발견되면 뒤집힐 수 있는 학문이고 이게 발견되면 최고 수십년 이상은 파야 좀 알 수 있는 학문입니다. 변화가 점진적일 수밖에 없죠. 거기다 정치의 손길도 많이 닿았죠. 그리고 당시 많은 사료를 근대적으로 제대로 연구한 건 식민사관이라고 욕 먹는 일본 학자들의 실증 사관(요새는 문헌고증이라고 불리죠)이 유일했습니다. 신채호 선생님 같은 독립운동가 분들의 연구는 아무래도 식민사관에 맞서 자주 독립을 너무 강조해서 오히려 반대로 간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해외에 있기에 볼 수 있는 사료가 극히 제한적이었죠.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행해진 역사 연구 자체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_-; 그 방대한 양 때문이죠. 저번 글에 적었듯 일본인이 발견한 한국 역사가 꽤 많습니다. 이거 자체를 무시한다면 대체 한국 역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죠.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중국의 역사를 근대적으로 연구한 자료를 찾는다면 그 1순위는 만주 철도 등 일본인이 연구한 자료들입니다. 뭐 이건 중국이 문화대혁명 같은 걸로 과거를 부정하고 학자들을 숙청했던 것도 있습니다만...
해방 후, 당시의 정치 현실 때문에 유물사관은 당연히 금지됐습니다. 중도가 들어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결국 제대로 역사 연구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이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식민 사관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아니 해방 이후 그게 우리 역사학계의 가장 큰 테마였죠.
대동여지도의 김정호의 작업이 알고 보면 조정과 관계된 거였고 옥사 따위는 없었다는 건 이제 많이 퍼졌죠? 거기에 처음 의문을 가진 게 이병도였습니다. 그렇게 까이는 이병도부터가 식민사관에서 멀어지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분명 한국 역사 낮추려는 목적을 가진 식민사관이었고, 한계가 있고 잘못도 있었지만 어쨌든 학자로서 열심히 연구한 게 해방 후의 사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거 잘못 하나하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전문가에게도 힘든 일이죠. 근거보다 이런 식민사관을 깨뜨려야 된다는 걸 더 강조하는 사람은 현실에서든 책으로든 인터넷에서든 조심해야 됩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게 친일파들에게서 나온 것도 꽤 많죠. '환단고기'야 말할 것도 없고, 백두산과 고구려를 한민족의 아이콘으로 만든 사람은 친일파였던 최남선과 이광수였습니다. ( 뭐 이 둘만 그런 얘길 한 건 아니겠지만요 ) 글쎄요. 머리 아프네요. 이런 걸 주제로 삼으면 어떻게 서술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 ) 논문 쓰기도 참 어려운 주제니까요.

-------------------------

저번에 글 올린 이후 인터넷 가십성으로 무난하게 재밌는 글 쓸까, 좀 진지하게 나가 볼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일단 1, 2는 인터넷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얘기고, 3도 좀 진지하게 쓰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역시 인터넷에서 찾기는 쉽습니다. 저보다 더 자세하고 전문적으로요. (인물 하나하나 내놓고 말하자니 너무 길더군요)
일단 그래도 제목이 [잡상]이니 최대한 쉽게 써 볼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가 될 거 같네요.

일단 다음 편은 [일본만 넣으면 다 된다] 편입니다. 인터넷에 심심하면 돌아다니는 게 일본이 뭐 했다 뭐 했다는 거죠? 그걸 좀 자세하게 다뤄 보겠습니다. : ) 이게 지금 인터넷이나 비전문가가 쓴 책으로 돌아다니는 역사와 실제 역사 간의 가장 큰 괴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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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Villa
10/09/17 02:01
수정 아이콘
2번에서 카이텐 말고 카미가제 역시 해당되는 건가요?
연료 자체를 돌아올 수 없도록 주입시키지 않았을지 궁금하네요.
말다했죠
10/09/17 02:19
수정 아이콘
체인메일에서 판금갑옷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마상, 의전용 갑옷이 와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소위 환빠들이 답없는 집단이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그들은 연구된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것에 사료를 짜맞추는 흑백논리 집단들이라 어디에서 만나건 피하는 게 상책이더군요.
10/09/17 02:35
수정 아이콘
요즘은 식민사관보다 유사사학자(자칭 재야사학자)들의 무분별한 상업출판 행위와
미디어의 역사 왜곡 문제가 더 심해 보이는군요. 역사의 상품화라고 할까요.

일제에 대한 과도한 반감때문에 민자영(소위 명성황후)와 같은 인물이
과대 포장되는 문제도 상업화가 가져온 왜곡이죠.
Siriuslee
10/09/17 03:14
수정 아이콘
1번의 경우는 십자군 전쟁기록만 조금 살펴보면 약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당시 십자군이 싸웠던 투르크군대가 몽고군이랑 비슷한 편제죠.(물론 몽고군이 훨씬 강력할겁니다만..)

십자군과 투르크군(후에 살라딘군대까지..)이 일반적으로 전장에서 맞부딪쳐서(백병전 위주의 전투) 전투가 벌어졌을때는 대부분 십자군이 승리 했습니다.
트리폴리 공성전이나, 볼드윈4세(보두앵4세)의 몽지사르 전투등을 보면,
숫적인 차이를 뒤업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끔 보여줍니다.

하지만 십자군이 패배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초전에서 승리 후 퇴각하는 투르크군대(살라딘군대.)을 추격하다가 중기병들과 보병들이 서로 멀리 떨어지면서, 각개 격파 당하는 모습입니다.

예루살렘왕국의 몰락을 부른 하틴전투 역시 무리한 추격(이라고 하기보단, 살라딘의 함정에 빠지면서)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포위당한 예루살렘 군대가 전멸한것이고요.

ps. 토탈워 시리즈, 그중 미디블 토탈워를 해보시면, 왜 중세시대에 가장 강력한 군대가 궁기병인지 실감하실 겁니다.
Judas Pain
10/09/17 05:00
수정 아이콘
환단고기류 역사인식을 가진 이들의 본류가 친일파에 닿거나 그 논리가 일제 당대의 아시아 역사인식과 연결되어 있는 건 사실 묘한 일은 아니지요.

환빠류의 배경 정서는 '제국주의 컴플렉스' 니까요.
크고 아름다운 '민족주의자' 최남선은 비극적이게도 내선일체를 지지할 수 밖에 없던 거죠.


퇴마록이 조촐한 연구와 소설적 소망을 뒤섞으며 대중들에게 환빠적 역사관을 심어주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제국과 그 식민사관에 분노하지만 실은 제국주의 한번 해보고 싶어 몸이 달아오르는 특유의 촌스런 열등감은 참 그로테스크하죠.

환빠를 치료하는 건 바른 역사학이 아니라 바른 자아인식일 겁니다.
카싱가지
10/09/17 07:28
수정 아이콘
저도 슈타인호프님 블로그 자주 가곤합니다. 이글루스 역사밸리보면 좋은글
쓰시는 블로거분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Ladenijoa님이나 월광토끼님이나 야스페르츠님등등등
에다드스타크
10/09/17 09:51
수정 아이콘
저는 궁병이 말 타고 다닌다고 다 같은 궁기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시절의 투르크 군대는 사실상 정주민족, 농경민족의 군대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스탭초원에서 말 타고 텐트치며 여기저기 옮겨다니던 유목민족이 아니란 이야기죠.
(뭐 문명사회를 정복한 유목민족들이 대부분 저렇게 변하기는 합니다만...)

전술에 있어서도 유목민족 특유의 빠른 기동성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식 전술 보다는,
인해전술과 정면공격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려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유럽 기사들의 닥돌에 매번 털렸죠.
승리한 전투는 항상 어마어마한 수적우위를 확보한 상태였고요.

어느 면으로 보나 항상 수적 불리함을 안고 싸워왔던,
전성기의 몽골군과 비슷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봅니다.
편제도 많은 차이가 난다고 보고요.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군대에서도 궁기병은 있지만,
질적으로나 숫적으로나 유목민족의 기마궁사와는
구분을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OldPopBoy
10/09/17 10:16
수정 아이콘
아...이러다가 PGR도 식민빠, 친일사이트 소리 듣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네 농담입니다;;
나이트해머
10/09/17 13:10
수정 아이콘
몽골군이 숫적 불리함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고는 하나 유럽 원정에서는 오히려 숫적 우세를 가지고 싸웠지요.
가장 대규모 유럽군대와 붙었던 모히 전투(몽골군 3~5만, 헝가리군1만5천~2만) 만 해도 몽골군이 2배 이상 숫자가 많은 걸로 보고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군의 분전에 몽골군이 꽤나 피를 봐서 바투의 친위대 및 측근들까지도 여럿 전사했고, 나중 쿠릴타이 회의에서 바투는 이때의 일로 수보타이에게 크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강을 도하해 후미를 치는게 늦어서 무척 고생했다고 말이죠.
거기다 이후 헝가리군의 변화 과정도 몽골군의 형태보다는 오히려 서유럽식에 가깝게 변하니 뭐.
에다드스타크
10/09/17 13:58
수정 아이콘
오히려 몽골군의 규모가 더 적었다고 봅니다.
몽골군의 규모를 높게 잡는 것은 주로 헝가리나 폴란드 사가들의 견해인데,
침략을 당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서술할 만도 하지만,
객관적인 견해는 오히려 몽골군의 숫자가 적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고 있습니다.

몽골의 침략을 받은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몽골군의 규모를 엄청나게 과장해 놓았습니다.
폴란드 사가들의 경우 발슈타트 전투 당시에 2개 규모의 분견대에 불과했던 몽골군의 숫자를
15만명으로 부풀리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하였나'의 저자인 베빈 알렉산더의 경우도,
몽골군이 수적 불리함을 안고 싸웠다고 지적하고 있고.

무엇보다 몽골군이 본국에서 경도 100도가 넘게 떨어진 지역까지 와서 숫자로 밀어붙일 만큼,
머리수가 풍부한 군대도 아니었습니다.
전 몽골군의 병력을 다 합쳐봤자 15만명 수준이었고,
오고타이 칸 당시에는 그나마도 5개로 나눠서 러시아, 유럽, 중동, 중국, 한국 등에 대한 원정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뭐 한나라도 백등산에서 깨진 후 흉노족의 군대처럼 변해가지는 않았고,
고려도 몽골군처럼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몽골의 유럽침공은 지속적인 위협이 아니라 일시적이었을 뿐이니까요.

몽골군에 맞서서 그렇게 허무하게 망하거나 무너진 나라도 없습니다.
전 세계 어디든 침공당한 지역은 저마다 다들 유럽만큼의 분전은 보여주었습니다.
호라즘 전쟁 때는 전 몽골군이 다 참전했는데,
칭기즈칸의 사위와 손자 카이두가 전사했을 정도이고요.
중앙아시아, 러시아남부, 카프가스 일대를 점령하기 위한 전쟁에서는,
수보타이와 함께 몽골군 최고 맹장이었던 제배가 전사하기도 합니다.
하다못해 고려에서도 몽골군 지휘관이었던 살리타이를 잡았습니다.

몽골초원이 막 통일되었을 무렵,
그 주위에 어느 한 나라 만만한 나라 없었고,
다들 열심히 싸웠지만,
마지막에 학살당한 건 변함이 없죠.
나이트해머
10/09/17 14:16
수정 아이콘
오스프리를 비롯, 현재 신뢰할 수 있는 대부분의 연구서 및 서적에서 몽골군의 규모가 더 대규모라는 걸 지적하고 있습니다만.
예전의 10만이니 20만이니 하는 건 전형적인 과장으로, 현재는 5~6만 정도로 추정되고 있지만, 동유럽 각국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그것보다 훨씬 더 적어요. 봉건사회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동유럽 자체가 인구도 극히 부족합니다.
폴란드는 기껏해야 7~8천대, 그것도 다수의 광부들을 징집해야 가능했고 그나마 왕권이 강했던 헝가리가 2만을 넘어가는지도 애매한 수준입니다. 과거 '헝가리 10만' 운운하는 건 이미 십수년전에 하늘로 날라간 지 오래죠.
그리고 몽골군의 장기이자 특기인 정복지에서 현지 병력 징집을 까먹으신듯 하군요. 유럽 원정만 해도 몽골군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현지 보조병들(킵착계 유목민들을 굴복시키고 전사 징집)을 운용했습니다. 당장 칭기스칸 시절에도 무칼리의 북중국 담당군은 절반 이상이 현지의 보조병력이고 호라즘 정벌때도 후반기에 접어들면 4만 이상의 투르크 보조병들이 몽골군에 존재했습니다.

현재 모히 전투에서 양측 전력차가 가장 적었다고 보는것은 위키피디아의 서술이나, 몽골군을 최소치로 잡고 헝가리군을 최대치로 잡은 위키피디아의 서술 역시 헝가리군 25,000명, 몽골군 30,000으로 몽골군의 숫적 우세로 다루고 있지요.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Mohi#cite_not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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