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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05 03:10:33
Name 동네슈퍼주인
Subject [일반] 뻔한 무한도전 감상문.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이라 반말체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절친한 친구가 골수 응원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응원단을 싫어한다. 단순히 취향차원에서가 아니라 응원단의 운영방식에 대해 비판적이다. 내 손발의 인권을 위해하는 응원의 오그라듦이 문제가 아니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응원단의 젊은 패기와는 달리 운영방식은 꼭 모교의 낡은 운영방식과 닮아있다. 학교를 대표한다면서도 축제의 내용, 응원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선 다른 학우들과 소통불능 상태에 빠져있고 공개함이 당연한 회계는 석연찮은 이유로 불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 사실, 응원단에 쓰이는 예산들도 더 좋은 곳에 쓰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정준하는 왜 경기장으로 돌아왔을까. 왜 정형돈은 몸이 그 지경이 되면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무한도전’을 하는 이유는 일견 명확하다. 돈이다. 계약이다. 그런 것들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지라도 한동안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거나 계약이 만료된다면 무한도전 멤버들은 다른 일을 찾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작은 순간, 정준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고 정형돈은 아픈 몸임에도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던 그때, 그때 그들을 다시 경기장에 오게 하고 붙잡아둔 동인은 출연료나 계약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낭만’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보기 위해 모인 4000여명의 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직업적 사명감, 최고의 무대를 자신 때문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존심, 그동안 노력이 값어치를 하리라는 자신감. 그리고 판이 벌어졌으니 어떻게든 그 끝을 봐야겠다는 알 수 없는 추동. 그런 정서적이고 낭만적인 것들이 링 위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스스로 보낸 지지였을 것이다.

  

계절학기기간에 응원단이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걷기만 해도 덥던 습한 여름날 춤추고 있던 그네들 사이에서 홍일점 여성분이 눈에 띠었다. 온몸은 상온에 얼음물잔 내놓은 것처럼 땀은 송골송골 맺혔고 그녀의 팔다리는 분명 그녀의 지배에서 벗어나있었다. 늘 그렇듯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왜 저렇고 있는 거야.’ 대답은 낭만이다. 마리오네트의 실이 되어 그녀를 움직이고 있던 건 이 힘든 훈련을 끝끝내 받아내고 말겠다는 자존심, 9월이 되면 2만 명의 사람이 내 손 끝에 환호하리라는 기대감, 자부심, 응원단에 발을 들였으니 끝끝내 끝을 보겠다는 열정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낭만은 질척거리는 것이 되었다. 사회학과에 입학하고 나서인지 몽쉘 2개에 종교를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이었던 군 생활 이후 부터였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도덕 교과서적인 노력, 정열, 자부심, 자존심, 사명감과 같은 ‘낭만’들은 바른생활 교과서 깊숙이 묻어 놓고 사회의 법칙들로 세뇌했다. 소위 ‘될 놈은 돼’류의 법칙을 믿었다. 냉소적인 것들. ‘가령 용은 개천이 아니라 학원가에서 나고 시작부터 용인 사람도 있다.’같은 것들.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을 받아들였다.

  

무한도전이 도전하는 과제들은 얼핏 쓸 데 없다. 황소랑 줄다리기 하던 시절부터 그랬다. 힘이 남아도나? 그런 생각이 드는 일들만 골라서한다. 게스트 몇 명 세워놓고 말장난 하며 쉽게 가면 될 것을 늘 고단한 길을 택한다. 그리고 참 열심히 한다. 응원단도 그렇다. 원래 응원이란 것은 ‘운동경기 따위에서 선수들의 힘을 복돋우는 일’이다. 그런데 응원단은 응원 그 자체를 한다. 오월 어느 날 운동장에 모여, 운동장 잔디들의 생육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면 응원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는 그 상황에서도 그렇게 고단히도 응원을 한다. 쓸 데 없다. 레슬링 한번 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응원은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런데 쓸 데 없지가 않다. 최소한의 증거가 되었다. 무한도전은 재미와 감동을 주었고 응원은 불만스럽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쁘지 않은 추억을 선사했다. 세상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노력하고 ‘끝을 보자’하는 열정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가 되지 않았는가. 아니 무언가를 바꿀 수도 있겠다. 아흔 아홉 가지의 세상일에서 사회의 법칙이 유효하더라도 백 번째 쯤엔 노력하고 열정을 가진 끝을 보자고 덤비는 사람의 법칙에 따라가지 않을까. 더욱이 무한도전을 보고 응원단을 보며 그 열정이나 자부심을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백 번쨰가 아니라 여든 번째, 쉰 번째에 일어날 것이다.

  

여전히 응원단을 싫어한다. 운영방식은 변화해야하고 지급되는 예산은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게끔 재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응원단의 일이 아주 무가치하다고 여기지는 않겠다. 여전히 응원단에 대한 불평, 불만은 늘어놓을 테지만 그것은 박수를 보내고 난 이후에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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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슨무리수
10/09/05 03:1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그냥 남기고 싶었어요.
지바고
10/09/05 03:29
수정 아이콘
무한도전을 뒤늦게 보았는데요..
위험한 도전을 하면서 비상사태를 대비한 의료진이 없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항돈이가 구토증세를 보일 때, 전문의료진의 진찰따윈 전혀 보이질 않고,
주변에서 의사가 아닌 일반인들이 "괜찮아?", "물마셔" 등의 말만 나오는걸 보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무한도전 제작팀은 도대체 이런 경기를 하면서 의료진하나 대기 못시킨건 뭔가요.

십몇년전의 임수혁선수가 생각나더군요.
운동경기할 때 반드시 의료진이 대기해야하는 의식이좀 생겼으면 합니다.
DrakeDog
10/09/05 03:39
수정 아이콘
전문적인 의학지식은 없지만...

도니의 구토증상은 뇌진탕같은 머리에 충격이 있어서 나타난게 아닐까하는...

편집빨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지만, 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위원장
10/09/05 03:41
수정 아이콘
오히려 편집때문에 응급치료 같은 게 안 나온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던데...
제가 알기론 의료진이 있었던걸로 아는데 말이죠
wish burn
10/09/05 03:42
수정 아이콘
무한도전의 기본 포맷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도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시절에는 매주마다,어찌보면 어이없다시피한 도전을 되풀이했죠.
(황소와의 줄다리기,전철과 100m 달리기..)

지금의 무한도전은 초창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팬덤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도전]이란 주제는 여전히 무한도전의 핵심과제였습니다.
런어웨이특집,에어로빅특집,봅슬레이특집,F-1특집등
출연진에게 생소하고,이게 가능할까 했던 과제를 언제나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는데요.

10주란 유래없이 길었던 방영기간과 1년이란 역시 유래없이 길었던 준비기간이 필요했던
이번 프로레슬링편에서 무한도전은 [도전]이라는 과제의 극의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뇌진탕이 의심되던 정형돈,응급실에 실려갔던 정준하,
현명한 판단이었지만(하하를 돋보이게 했고,혹시나 있을 수 있던 불상사를 막았으니) 나이의 한계를 보여줬던 박명수,
대회개최직전까지 경기력을 갖추지 못했던 노홍철과 길,무한도전 역사상 보기힘들게 화내는 모습을 보였던 유재석
잦은 부상과 연습시간 부족에 시달렸던 멤버들...


젊은 피에 속하는 정형돈,노홍철,하하도 이젠 30대를 넘겼습니다.
무한도전뿐만 아니라 일요일예능과 케이블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혔구요.
무한도전에만 주력하기엔 출연진 모두가 성장했고.. 모두가 노쇄하기도 했습니다.


카멜레온처럼 다채롭게, 매주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달력만들기 특집,강변가요제등 정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컨텐츠도 보유하고 있으며,
출연진들의 역량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앞으로의 무한도전또한 계속 즐거울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도전]컨셉의 무한도전은 이번 프로레슬링 편으로 그 극한점을 찍었다고 생각되네요.
쌀이없어요
10/09/05 08:14
수정 아이콘
9월에 2만명...
작년까진 잠실에서 하다 올해 다음 주 부턴 목동에서 하는 그거 말씀 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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