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8/16 07:55:12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60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24. 방추 전(叀)에서 파생된 한자들

예전에 다룬 살별 혜(彗)로 돌아가보자. 彗에서 파생된 한자 중에는 슬기로울 혜(慧)가 있는데, 이 글자와 상통하는 글자로 은혜 혜(惠)가 있다. 음이 같고 뜻이 비슷하다. 慧뿐만이 아니다. 옛 한문에서는 막내 계(季)가 惠 대신 쓰이기도 하고, 별반짝거릴 혜(暳) 대신 쓰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惠가 彗를 성부로 하는 형성자들과 상통해서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는 실을 잣는 데 쓰이는 도구인 방추를 나타내는 방추 전(叀)과 마음 심(心)이 합한 형성자다. 66b882b09b521.png?imgSeq=32652

왼쪽부터 惠의 금문, 설문해자 고문, 설문해자 소전, 현대의 해서. 출처: 小學堂


惠와 叀의 음이 먼데 어떻게 형성자일까? 갑골문에서는 惠 대신 叀을 써서 오직 유(唯)보다도 더 강한 긍정을 표시하는 용법이 있다. 叀이 惠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惠의 소리가 叀에서 가져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어쨌든, 뜻은 心에서 가져오고 소리는 叀에서 가져왔으며, 또 실을 잣는 데 마음을 기울인다는 데에서 슬기롭다는 뜻이 나왔다. 지금 쓰이는 인애, 은혜의 뜻은 슬기로움에서 다시 인신된 것이다.


叀은 실을 잣는 데 쓰이는 방추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로, 지금은 쓰이지 않으나 오로지 전(專)과 惠에 그 흔적을 남겼다.

66b8810527bb1.png?imgSeq=32651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현대의 방추, 叀의 갑골문, 방추를 써서 섬유에서 실을 잣는 모습. 오른쪽 그림의 a는 섬유, b는 방추의 회전축, c는 방추의 추에 해당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小學堂

위 그림을 보면 叀의 갑골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위는 방추에 들어오는 섬유, 가운데는 방추의 회전축, 아래는 방추의 추에 해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을 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 갑골문이라서 그런지, 叀을 방추의 뜻으로 쓴 용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叀은 후세의 자전에서는 專과 동자로 해설하는데, 이는 설문해자에서 '叀은 오로지의 뜻으로, 조심하고 신중히 한다는 말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오로지'라는 뜻에 집착해 이 글자를 조심하는 모습을 뜻하는 싹날 철(屮)과 작을 요(幺)가 합한 회의자라고 잘못 분석했다.


叀은 방추는 물론이요, '오로지'라는 뜻으로도 쓰인 예가 갑골문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위에서 말했듯 현재 발견된 갑골문에서는 강한 긍정의 의미로 쓰인 예만 있으며, 이 용법은 惠가 계승했다.


'오로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은 지금은 叀과 마디 촌(寸)이 합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손을 뜻하는 또 우(又)가 寸 대신 들어가 있다. 설문해자에서 又가 寸으로 바뀐 것이 지금까지 내려왔다. 원래는 손으로 방추를 잡고 굴린다는 뜻이었고, 여기에서 지금의 '오로지'라는 뜻이 나왔다. 갑골문에서는 인명이나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66b886d69856f.png?imgSeq=32653

왼쪽부터 專의 갑골문, 금문, 소전, 해서. 출처: 小學堂


叀(방추 전,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專(오로지 전): 전용(專用), 독전(獨專) 등. 어문회 급수 4급

惠(은혜 혜): 은혜(恩惠), 혜택(惠澤) 등. 어문회 급수 준4급

專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專+人(사람 인)=傳(전할 전): 전달(傳達), 선전(宣傳) 등. 어문회 급수 준5급

專+囗(에울 위|나라 국): 團(둥글 단): 단체(團體), 경단(瓊團) 등. 어문회 급수 준5급

專+土(흙 토)=塼(벽돌 전): 전곽(塼槨), 전묘(塼墓) 등. 어문회 급수 준특급

專+心(마음 심)=慱(근심할 단): 단단(慱慱) 등. 어문회 급수 특급

專+水(물 수)=漙(이슬많을 단): 노단(露漙), 응단(凝漙) 등. 어문회 급수 특급

專+瓦(기와 와)=甎(벽돌 전): 전탑(甎塔), 모전탑(模甎塔) 등. 급수 외 한자

專+石(돌 석)=磚(벽돌 전): 전장(磚匠), 고전(古磚) 등. 급수 외 한자

專+艸(풀 초)=蓴(순채 순): 순채(蓴菜), 사순(絲蓴) 등. 어문회 급수 준특급

專+車(수레 거/차)=轉(구를 전): 전송(轉送), 회전(回轉/廻轉) 등. 어문회 급수 4급

惠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惠+心(마음 심)=憓(사랑할 혜): 민혜(閔憓), 남혜(南憓) 등. 어문회 급수 특급

惠+禾(벼 화)=穗(이삭 수): 수상(穗狀), 발수(拔穗) 등. 어문회 급수 1급

惠+艸(풀 초)=蕙(난초/혜초 혜): 혜초(蕙草), 난혜(蘭蕙) 등. 어문회 급수 준특급

惠+言(말씀 언)=譓(슬기로울 혜): 왕혜(王譓), 이혜(李譓) 등. 어문회 급수 특급

轉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轉+口(입 구)=囀(지저귈 전): 앵전(鶯囀), 춘앵전(春鶯囀) 등. 급수 외 한자

66b8af86d19ac.png?imgSeq=32665

叀에서 파생된 한자들.


방추는 둥글고, 방직을 할 때 이리저리 왕복하며 움직이기 때문에, 둥근 것, 또는 움직이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이 뜻은 주로 방추를 손으로 들고 있는 專 계통의 한자들에 남아 있다.


團(둥글 단)은 囗(에울 위|나라 국)이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나라나 경계가 방추처럼 둥글게 감싼다는 뜻을 나타낸다.

塼(벽돌 전)은 土(흙 토)가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흙을 둥글게 뭉쳐서 만든 벽돌을 뜻한다.

漙(이슬많을 단)은 水(물 수)가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물이 둥글게 뭉친 이슬을 뜻한다.

甎(벽돌 전)은 瓦(기와 와)가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둥글게 뭉쳐서 기와같이 구운 벽돌을 뜻한다.

磚(벽돌 전)은 石(돌 석)이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돌처럼 단단하고 둥글게 뭉친 벽돌을 뜻한다.

蓴(순채 순)은 艸(풀 초)가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둥근 풀인 순채를 뜻한다.

傳(전할 전)은 人(사람 인)이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사람이 움직이며 소식을 전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轉(구를 전)은 車(수레 거/차)가 뜻을, 專이 소리를 나타내며, 수레가 방추처럼 움직이며 구른다는 뜻을 나타낸다.


塼, 甎, 磚 이 세 한자는 '벽돌 전'으로는 모두 같은 한자로, 《강희자전》에서는 塼과 磚을 甎과 같다고 풀이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단어마다 한자를 다르게 쓰는 것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벽돌로 지은 무덤인 전묘에서는 塼을 쓰고, 벽돌로 쌓은 탑인 전탑에서는 甎을 쓴다.


惠는 파생된 한자들의 뜻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음이 같은 彗에서 파생된 한자들에 '작다'는 뜻이 있는 것처럼 惠도 그렇다. 譓는 슬기롭다는 뜻이니 생각하는 것이 매우 세밀한 것이고, 穗는 이삭을 뜻하니 곧 벼에서 뾰족한 부분이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6b8b42878d72.png?imgSeq=32666叀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專과 惠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대부분 원래 그 형태였으나, 穗는 조금 다르다. 穗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거쳤다.

66b8ac47db4c0.png?imgSeq=32664

왼쪽부터 穗의 갑골문, 춘추전국시대 진(晉)계 문자, 설문해자 소전, 설문해자 혹체, 설문해자 소전의 해서, 설문해자 혹체의 해서인 현재 형태. 출처: 小學堂

갑골문에서는 惠와는 전혀 관계 없는 형태로, 벼 따위 곡식을 나타내는 벼 화(禾)의 끝 부분을 손을 나타내는 又와 칼 도(刀)로 수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서 곡식에서 수확하는 끝 부분인 이삭을 뜻하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칼은 사라지고 수확하는 손만 남았고 이를 《설문해자》에서 수록했다.

그런데 《설문해자》에서는 표제자 외에 혹체, 곧 다른 형태로 지금의 穗의 형태를 수록했다. 이 한자는 禾가 뜻을 나타내고 惠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다. 穗 대신 풀 초(艸)가 뜻을, 드디어 수(遂)가 소리를 나타내는 다른 형태의 고자도 있고, 이 글자가 어찌 보면 지금의 穗보다 더 어울리는 성부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나, 결국은 穗가 세 글자 간의 경쟁에서 승리했다.


요약

叀(방추 전)은 실을 잣는 데 쓰는 방추의 모양을 본뜬 한자며, 갑골문에서는 惠(은혜 혜)의 뜻인 강한 긍정으로 쓰였다.

叀에서 專(오로지 전)·惠(은혜 혜)가 파생되었고, 專에서 傳(전할 전)·團(둥글 단)·塼(벽돌 전)·慱(근심할 단)·漙(이슬많을 단)·甎(벽돌 전)·磚(벽돌 전)·蓴(순채 순)·轉(구를 전)이, 惠에서 憓(사랑할 혜)·穗(이삭 수)·蕙(난초/혜초 혜)·譓(슬기로울 혜)가, 轉에서 囀(지저귈 전)이 파생되었다.

叀은 파생된 글자들에 둥긂이나 움직임, 작음의 뜻을 부여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시식코너지박령
24/08/16 10:56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계층방정
24/08/16 11:43
수정 아이콘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24/08/16 11:12
수정 아이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4/08/16 11:43
수정 아이콘
항상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4/08/16 16:49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惠의 금문 등은 죄다 동글동글한게 귀여운 구석이 있군요 크크
계층방정
24/08/16 18:3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叀도 동글동글한데 거기에 心까지 불어서 더 동글동글하게 됐습니다. 정작 둥글다는 뜻은 專에서 파생된 한자들이 다 가져갔다는 게 아이러니하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446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40. 22-39편 정리 계층방정3378 24/10/11 3378 2
102445 [일반] <전란> 후기(노스포) [14] 라이징패스트볼6684 24/10/11 6684 2
102444 [정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 [36] EnergyFlow5569 24/10/11 5569 0
102442 [일반] 선비(士)와 스승(師), 한의사(漢醫士)와 한의사(韓醫師) [25] 토니토니쵸파5216 24/10/11 5216 3
102441 [일반] 노벨문학상 관련 국장 주가 근황 (feat. 삼성) [34] 지니팅커벨여행8682 24/10/11 8682 1
102440 [일반] 노벨문학상 수혜주로 관심 집중 중인 주식들 [31] 빼사스7483 24/10/10 7483 0
102439 [일반] 한강 작가 자전소설 침묵 인용한 트윗 읽고 생각난 장면 [12] 닉언급금지6405 24/10/11 6405 13
102437 [일반] [속보] 노벨 문학상에 소설가 한강 한국 작가 최초 수상 [490] 오컬트27288 24/10/10 27288 17
102436 [일반] 천한 잡졸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무라이 대장이 되다 [6] 식별6188 24/10/10 6188 16
102435 [일반] 행복해야 하는 건 맞는데... (아내의 출산과정을 지켜보며) [246] Yet49706 24/10/10 49706 12
102434 [정치] 진중권 "국회 전체가 김건희 김건희, 여사만 사라지면 다 정상화 되나" [78] 베라히14543 24/10/09 14543 0
102433 [일반] Nvidia, RTX 5090 & 5080 스펙 유출, 5080은 스펙 후려치기? [59] Nacht8719 24/10/09 8719 4
102432 [일반] <와일드 로봇> - 온 힘을 다해 추종하는 따스함.(노스포) [18] aDayInTheLife4373 24/10/09 4373 3
102431 [정치] 최근들어 북한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94] 보리야밥먹자15779 24/10/09 15779 0
102430 [일반] [닉네임 공유] 한글날은? 무슨날? 닉변하는날! [76] 윈터6166 24/10/09 6166 0
102429 [일반] 도요토미 히데요시 입장에서 본 전국시대 [7] 식별7696 24/10/08 7696 11
102428 [일반] 웹소설 추천 : 스마트폰을 든 세종 [11] 아우구스투스6621 24/10/08 6621 1
102427 [정치] 명태균 “한 달이면 하야·탄핵, 감당되겠나” (채널A 단독) [118] 덴드로븀16060 24/10/08 16060 0
102426 [일반] 삼성전자 공식 사과문(?) 기재 [87] Leeka12920 24/10/08 12920 3
102425 [일반] [2024여름] 여름의 끝. [2] 열혈둥이2751 24/10/08 2751 5
102424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39. 지렁이 인(蚓)에서 파생된 한자들 [4] 계층방정2140 24/10/08 2140 3
102423 [일반] [2024여름] 카시마 해군항공대 유적답사 [8] 서린언니3151 24/10/08 3151 1
102421 [일반] [2024여름] 길 위에서 [3] 글곰3182 24/10/07 3182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