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6/24 13:52:02
Name 식별
Subject [일반] 삼국지 황건적 두목 '장각'은 한낱 사이비 교주였을까 (수정됨)


인터넷 상에서 유행했던 "진시황은 아직 살아있습니까?"라는 괴담이 있다. 

괴담은 92년도 한중수교 이전, 그러니까 오늘날로부터 최소 30년 이전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일군의 한국인 교수들은 학술적 목적을 가진 채 어렵사리 중국 남부 지역에 밀입국하는데 성공하지만, 그만 길을 잃은 와중에 우연히 어떤 고립된 원시부족의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원숭이처럼 털이 수북했으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고 한문을 통한 필담도 통하지 않았다. 교수들은 그들의 언어와 문자를 해석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메모만을 간직한 채 문명사회로 복귀했고, 훗날 그 메모의 뜻과 관련해 중국인 언어학 교수들의 자문을 구한 결과, 그 메모의 뜻이란 것은...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였다고 한다. 물론 이는 재밌는 픽션에 불과하며, 4세기의 대시인, 귀거래사로 유명한 도연명「도화원기桃花源記」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도화원기에 나오는 도화원은 말 그대로 복숭아나무가 즐비해있는 현세의 이상향인데, 우리가 아는 그 무릉도원이 이 도화원을 다르게 부르는 표현 중 하나다.

이 무릉도원도, 각종 난리를 피해 고립된 지역으로 흘러들어온 옛 진(秦)나라 시대의 유민들이 속세와 단절된 채 자신들만의 평화로운 자치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었다는 설정을 공유한다. 현대괴담과 다르게 이들은 말이 안통하지도, 털이 수북하지도 않고, 옷 입은 것이며 살아가는 행태며 모든 것이 당대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 별다를 것없다고 묘사돼있다. 당연히 진나라 이후의 한나라도, 한나라 이후의 위나라 진나라의 존재도 알지못했던 그들은 수백년만에 자신들을 '발견'한 어부에게 바깥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몹시 흥미로워한다.

그런데, 사실 도연명의 무릉도원 또한, 그 모티브를 다른 데서 따왔으니, 그것은 바로 실제 역사 속 후한 말의 난세였다. 이전 편에서 서술했듯, 제국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고, 지역민들은 제각기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했다. 보통은 유력한 호족들을 중심으로 뭉쳤다. 우리가 아는 그 조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 하후씨나, 원소와 원술로 유명한 사세삼공의 명문 원씨 또한 자신들의 가문이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을만큼의 농민들을 무장시키고, 가문의 근거지를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삼국지 난세가 시작된 이후 동탁에 맞서 원소와 조조 등이 '의용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가문 누대의 후광이 작용한 덕이었다.

그런데, 이들 호족이 거주하던 지역은 그나마 제국과 통신이 원활한,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지역이었다. 이보다 낙후되고 고립됐으며, 기술적으로도 보잘 것 없던 지역엔 명문가랄것도, 호족이랄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마을을 이끄는 연장자가 있을 뿐이었다. 수렵채집사회와 더 연관있는 원시적인 수준의 화전민들로 구성돼있던 이 사람들은, 마을의 촌장노인이 이끄는 더 깊숙한 산 속으로 들어가 중앙정부로부터, 그리고 가혹한 세금과 징역으로부터, 그들의 존재를 숨겼다.

도연명의 글 속에서 그들이 사는 곳은 무릉도원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이끌던 지혜로운 노인은 훗날의 도교문헌 속 도사들이 되었다. 사람이 끊임없이 죽어가던 시대부터 사람들은 불사를 희망했고, 농경사회의 전통에서 다소 벗어난 '도사'들은 몹시 건강해보였으며, 어쩌면 불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그들은 정말로 외부인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한, 전염병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도 발견되는 일이 드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날개를 달고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했다.(우화등선)

불사를 희망한 것은 세계의 지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시황에서 한무제, 그리고 후한의 개창자 광무제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세상의 온갖 진귀한 것들을 긁어 모아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려했지만, 제국 각지에서 온갖 진귀한 것이 상경함에 따라, 온갖 끔찍한 질병들도 함께 배송됐을 것이며 그들 중 단 한사람도 영생하지 못했다. 수렵채집사회는 버리고 나눌 것을 요구하지만, 농경사회는 쌓아두고 착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황제에 의해 착취당하는 자들, 한 인간의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끊임없이 수탈당하는 백성들도, 황제처럼 불사의 꿈을 꾸었다.

백성들의 현세는 절망적일 정도로 끔찍해서, 그들은 '지금, 여기'의 삶에는 어떠한 희망도 가지지 못했다. 기근과 역병이 있을 때마다 자신들이 왜 고통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내세를 희망했다. 그리고 내세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자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백성들의 앞에 나타났다.

 "도를 아십니까? 당신은 전생에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깨우치게하는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죄의 크기가 워낙 크고 집단적이기에, 기존의 공동체와 단절된 새로운 독립단체, 혹은 국가를 형성해야한다는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운동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곧, 황제를 방불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삼국지의 배경으로부터 대략 2백여년 전, 먹으면 불로불사한다는 신비로운 복숭아를 나누어주는 한 신비로운 여인, 서왕모에 대한 신앙이 북중국 지역을 강타했다. 땅이 갈라지는 지독한 가뭄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들은 서왕모의 부적이라 일컫는 대마의 줄기와 횃불을 들고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중원 각지를 순례했다. 가뭄이 끝남에 따라 이 움직임도 끝이 났지만, 이것은 앞으로 수없이 많이 반복될 사례들의 첫번째 예시였다.

160년대 이후, 중원을 휩쓸기 시작한 일련의 새로운 역병들이 기존의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곧 명백해졌다. 천자의 대리인도 백성들을 구할 수 없었고, 고금성현의 그 어떤 가르침이 적힌 성경에도 역병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기존의 모든 권위가 부정되었고, 백성들은 절망에 빠졌다. 지방관은 당황했고, 낙양 궁궐의 축소판과도 같았던 지역 관청의 빗장문들이 걸어잠궈졌다. 



"하늘이 한나라를 버렸다. (天棄漢)" 


적어도 당시의 한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젊고 능력있으며 스스로를  깨끗하다(淸)고 여기는 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환관들이 전횡을 일삼는 조정에 출사하는 것은 더러울(濁) 뿐이란 여론이 생긴 것이다. 백성도, 선비도, 한나라 조정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전략(典略)에 따르면, 희평(熹平)연간 (172-177년) 천하가 혼란해지고 백성들이 역병에 고통받자(時遭兵亂,疾疫大起), 각지에서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저마다 두각을 드러냈다고 한다. 서쪽의 로마 제국에서 그랬듯이, 세상 사람들은 삶이 피폐해질 수록 의지할 곳이 필요하기 마련이데, 한나라 조정은 백성들을 품을 그릇이 되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그릇이라면, 이미 말라비틀어져 어육소시지가 신세가 된 백성들에게서 기름 한 방울이라도 더 쥐어짜 긁어내려는 바가지라 부르는 편이 맞겠다. 이렇듯 한나라 황실의 권위가 산산조각났으니, 권위의 공백을 두고 수없이 많은 야심가들이 다투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남방 민(閩)나라 지역의 서등(徐登)이란 사람은 본래 태어나기를 여자로 태어났으나 후에 남자가 되었고, 경지높은 무술 (巫術)을 쓸 줄 알았으며,(本女子,化為丈夫。 善為巫術。) 또한 서등의 제자인 조병(趙炳)은 월나라의 방술(越方)을 쓸 줄 알았다는데,(趙炳,字公阿,東陽人,能為越方。) 이들의 주술은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게 하며, 흐르는 강물을 멎게 할 수도 있는 요사스러운 것이었다. 자연히 이들은 산 사람의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에도 몰두하게 되었으리라. 서등과 조병(趙炳)은 영업하는 지역이 겹쳐 처음에는 반목했으나, 이내 의기투합하고는 함께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내 중앙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다.

제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북중국 지역에서도 신묘한 능력으로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했으니,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자는 역시 화타라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세력을 규합하고 큰 뜻을 품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던 자였고, 장안 근처 삼보(三輔) 지역에서는 낙요(駱曜)라는 자가 추종자들에게 면닉법(緬匿法)을 가르쳤으며, 천혜의 요새인 한중 분지 지역에 똬리를 튼 장수(張脩/張衡)는 병을 치료해주는 대가로 다섯 두의 쌀(五斗米)을 받았다. 방랑하고 구걸하며 백성들을 치료하는 탁발치료사, 혹은 주술사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장각 또한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큰 형 각(角)이 병자의 집에 찾아간다는 얘길 듣고 동생들은 아마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이 당시에 병에 걸렸다는 것은, 곧 악한 귀신에 홀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악한 귀신에 홀린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 그 자신에게도 귀신이 옮겨붙을 수 있다고, 당시의 사람들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현대 감염의학적으로도 옳은 소리였다. 역병, 즉 천연두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두신(痘神)을 피해 그저 도망가는 것,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격리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조선시대까진 이 병을 두신, 손님, 손님마마 등으로 부르며 두러워하며 우러러볼 뿐이었다. 그러나 장각은 고향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다. 

장각은 곧바로 튼튼한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었고, 병자의 무릎을 꿇리고는 잘못한 것을 외우라고 말했다. 부적을 태워 물에 섞었고, 그 물과 함께 약간의 식량을 챙겨주었다. 며칠간 꼬박 밥을 제 때 먹고 부적 태운 물을 함께 마시라는 당부를 했다. 모든 잘못을 실토했으니, 앞으로는 무서울 게 없다는 일종의 심리 테라피도 곁들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치료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멀쩡히 살아난 자들이 여럿 생겨난 것이다. (살아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죄를 성실히 실토하지 않았거나 장각을 의심했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장각의 신묘한 능력을 칭송했으며, 개중에는 장각의 손발을 자처하며 장각의 의료행위에 각종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따라나서는 이도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있는 동생들에게, 장각이 일렀다. 



" 먼 옛날, 순제 시기(125~144)에 낭야 사람 궁숭(宮崇)이 자신의 스승 간길(干吉)이 연못에서 구한 것이라며 화려하게 치장된 어느 책을 바쳤다고 한다. 그 것이 바로 태평청령서(太平清領書)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음양과 오행, 그리고 온갖 무술과 주술이 적혀있는 요사스러운 것이었기에 관리들이 압수하여 세상에서 숨겼다고 한다. "

" 그런데 어찌한 영문인지, 그 숨겨진 책들 중에서 몇몇이 세상으로 풀려난 것인지, 운 좋게 내 손에 들어왔다. 아니, 그저 이름만 사칭한 책일수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옛 성현들이 썼다는 고대의 성경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오늘날처럼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난세를 헤쳐나갈 방법은 책에는 적혀있지 않다. 푸른 하늘이 이미 죽었으니, 이단, 요술, 사악한 악신의 경전일지라도 백성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다. "

그렇게, 장각은 태평의 도를 창시했다. 기주 거록군의 백성들은 벌떼처럼 몰려다니며 장각을 칭송했고, 장각이 가는 곳마다 병자들의 기적이 벌어졌다. 다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고, 누워만 있던 사람은 걷기 시작했으며, 울화가 있던 사람이 온순해졌다. 그가 치료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호전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차도 없이 그대로 사망했는지, 현대인인 우리가 알 길은 없다.  장각이 창시한 '태평의 도를 활용한 치료'가 기존의 전통의학적 치료보다 얼마나 더 효과적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장각의 치료가 백성들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것, 백성들이 장각에게 열광했다는 것, 백성들이 장각을 믿었다는 것, 그것만이 오늘날의 우리가 이 시기의 장각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의미한 객관적 사실일 뿐이다.

후한서 황보숭열전에 따르면 장각은,

  "스스로 「대현량사」 를 자칭하며 황로의 도를 행했고, 부적과 물을 쓰고 주문을 외워 병을 고치니, 백성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自稱「大賢良師」 ,奉事黃老道,符水咒說以療病,病者頗愈,百姓信向之。)


장각의 동생들, 그리고 장씨문중의 여러 사람들도 곧바로 이 태평의 도에 몸을 던졌고, 태평도 세력은 곧 그 수가 무려 수천수만이 되었다. 심지어는 거록을 넘어 기주 전역에, 그리고 기주를 넘어 천하 각지에 추종자들이 퍼져나갔다. 장각은 교세를 확장시키기로 결정했다. 고통받는 것은 기주 한 주의 백성들 뿐이 아니었다. 이에 장각은,

 "여덟 제자를 사방에 보내 선량한(善) 도(道)로써 천하를 교화했다."
(角因遣弟子八人使於四方,以善道教化天下)



3부 '세재갑자' 편에서 계속



참고문헌
『典略』
『後漢書』
『三國志』
『資治通鑑』
Kaltenmark, M. (1979). The Ideology of the T'ai-p'ing ching.
de Crespigny, R. (2010). Imperial Warlord: A Biography of Cao Cao 155-220 AD. Brill Academic Publishers.
de Crespigny, R. (2017). Fire Over Luoyang: A History of the Later Han Dynasty 23-220 AD. (1 ed.) Brill.
Loewe, M. (2022). Ways to paradise: the Chinese quest for immortality. Routledge.






*이미 직접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글이니 퍼가시는 것은 좋지만 영상화하거나 수익창출은 하지말아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6/24 14:11
수정 아이콘
예전에 교양으로 중국사 배웠을땐 위진남북조 보다 황건적의 난을 훨씬 비중있게 다루던게 기억나네요. 종교에 기반한 최초의 농민 봉기였다면서
라멜로
24/06/24 14:44
수정 아이콘
저도 중국사에서 삼국시절보다 황건적의 난을 중요하게 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마오쩌둥식 사회주의 사상이였던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이라는 것이 중국정부 입맛에 맞아서 정치적 선전적으로 띄운 것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새롭게 보이더군요
24/06/24 14:57
수정 아이콘
중국쪽 역사학계에선 이미 단순한 도적이나 사이비종교에 의한 반란보다는 농민들의 민생반란, 장각의 구민을 위한 봉기 정도로 해석이 바뀌는추세라는 말을 본거같네요. 장각은 현실이랑 안맞는 이상주의자..정도로 말이죠.
及時雨
24/06/24 15:07
수정 아이콘
진시황은 죽었습니까는 제가 참 좋아하는 괴담이에요.
고기반찬
24/06/24 15:31
수정 아이콘
이 글 읽고 삼탈워 천명 트레일러 다시 한 번 보고옵니다
한없는바람
24/06/24 15:35
수정 아이콘
정말로 황건적과 한나라를 그렇게 해석한 건 처음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는데...
삼탈워2는 어디로 갔습니까...
Lord Be Goja
24/06/24 15:46
수정 아이콘
미래에 두고 왔다고 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4/06/24 15:36
수정 아이콘
장각도 대단한 사람인건 사실이겠죠. 허경영과 비슷한 류로 취급하기에는 족적이 화끈합니다.
바밥밥바
24/06/24 16:22
수정 아이콘
무릉도원이세요?
스폰지뚱
24/06/24 17:13
수정 아이콘
오. 재밌는데요? 문체가 제 스타일이군요.
장각 스토리만 떼서 창천항로 내지 킹덤 느낌의 만화로 만들면 재밌겠어요.
잉어킹
24/06/24 17:30
수정 아이콘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무딜링호흡머신
24/06/24 22:16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지탄다 에루
24/06/24 23:40
수정 아이콘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BLΛCKPINK
24/06/24 23: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우리나라엔 장각의 상위호환 궁예가 있습니다
궁예를 고평가할게 아닌 이상 장각같은 도적수괴를 재평가할 가치가 없죠
빈민구제,교화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중세 사이비종교에도 숱하게 많습니다 여호와에게 직접 계시를 받아 병자를 치료하는 기적을 일으키고 부랑자들을 구제하여 선지자로 받들어모셔지나 결국 시간이 지나고 거짓선지자임이 드러나 성난 민중들에게 돌맞아죽었거나 유리걸식하다 묻힌곳도 모르게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수없이 많습니다

현대 사이비종교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신도가 수십만이 되고 sky같은 명문대생도 사이비에 빠지는게 사이비교주의 사기가 신도들 사이에서는 교주의 인격을 보증하는 신의권능으로 통해서 그런겁니다
공산당의 황건적 포장 덕에 침착맨의 [황건적당의 유쾌한 혁명]드립을 들을 수 있었으니 황건적 재평가 노력이 아예 무가치하지는 않겠군요
고기반찬
24/06/25 12: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궁예는 본인의 군사력 뿐만 아니라 여러 유력 호족들을 포섭해서 집권했고 집권 이후 미륵신앙을 전면으로 내세운거라, 봉기 시작부터 종교집단으로 시작한 황건적의 상위호환이라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결국 황건적의 역사적 의의는 평민 계층을 결집시키는 이데올로기가 제시되어 실제로 작동했다는건데 궁예의 미륵신앙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선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는 흔적이 없죠.
BLΛCKPINK
24/06/25 19:14
수정 아이콘
장각이 잠깐이나마 지배했던 지역은 살림살이 좀 나아졌답니까
이념적으로도 형편없고 실효적 개혁이랄 것도 없는 살육과 약탈로 경제를 지탱하다 일부는 자멸하고 일부는 지사들에 의해 토벌된 도적떼를 뭐 재평가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데올로기-그마저도 이데올로기적 목적으로 아무리 포장해봐야 빈껍데기뿐인-가 아니라 미신적 주술행위로 세를 모은 것을 아무리 포장해봤자 사이비 도적떼라는거죠
고기반찬
24/06/25 20:31
수정 아이콘
그 사이비 도적떼가 400년 한나라를 기반부터 무너트렸고 그걸 똑같이 반복하는 집단이 계속 나타났으니까요. 그 가르침의 내용이 사이비라는 것보다는 그 사이비들이 어떻게 강고한 이데올로기를 뒤짚을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는가, 그리고 그 수 없이 반복된 이데올로기의 첫빠따가 어떻게 된 것인가가 중요한거죠.
새강이
24/06/25 08:45
수정 아이콘
와 너무 흥미진진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kartagra
24/06/25 11:32
수정 아이콘
도교 원류가 장각의 태평도와 장로(우리가 아는 그 삼국지 장로 맞습니다)의 오두미도죠. 황건적의 난이 진압당하고 태평도가 탄압당하면서 잔존 태평도 세력은 오두미도(천사도)로 흡수당하긴 합니다만. 어찌됐든 우리가 아는 '도교'는 사실상 이 둘에서 나왔다고 봐도 됩니다. 농민 반란도 중요하지만 도교를 창시했다는 점에서도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 지대하죠. 중국 역사에서 도교 위치 생각해보면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크크
드러나다
24/06/25 18:31
수정 아이콘
권선징악. 사필귀정. 이른바 정의로운 사회 가설은 인간세상의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병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닥쳤을 때, 책임소재를 물을 수 없음에도 책임소재를 따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요.
원죄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고통을 형벌로 치환하고 형벌의 원인인 죄를 찾아보려 노력하죠.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니닷
24/06/25 18:31
수정 아이콘
도교계열 민간종교가 기반된(윗분이 애기해주신대로 도교가 이후에 정립되긴 하지만 뭉뜽그려서 애기한다면) 농민봉기로서는 역사상 최초이고,
이후 중국사에서 비슷한 봉기는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이후 명나라라는 나라를 세우게 되죠.

명나라는 군벌&호적들이나 이민족이 아닌 민중 중심 세력이 만든 최초의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중국사에서 장각의 중요성은 단순히 공산당의 선전선동을 떠나 너무나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손꾸랔
24/06/25 18:53
수정 아이콘
뜬금없지만 이 글 보고 태평천국의 난까지 찾아보다가 석달개 같은 영웅이 왜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드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767 [일반] 문화와 경제의 동반론 [13] 번개맞은씨앗8513 24/06/25 8513 2
101766 [일반] 턱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 턱? 빗? 유방? [10] 계층방정7529 24/06/25 7529 7
101765 [일반] KT는 네트워크 관리를 목적으로 사용자의 통신을 감청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28] Regentag13329 24/06/25 13329 6
101764 [일반] 추천게시판 운영위원 선발 결과를 공지합니다 [5] jjohny=쿠마7634 24/06/24 7634 11
101763 [일반] [속보] 화성 아리셀 화재 현장서 시신 20여구 발견 [115] 매번같은20744 24/06/24 20744 0
101762 [일반] 삼국지 황건적 두목 '장각'은 한낱 사이비 교주였을까 [22] 식별11325 24/06/24 11325 12
101761 [정치] 해외에서 본 한국의 전세제도 [161] 보리야밥먹자12796 24/06/23 12796 0
101760 [정치] [서평]《포퓰리즘의 세계화》 - 포퓰리즘은 정치가 잘못되었다는 경고다 [7] 계층방정6712 24/06/24 6712 0
101759 [일반] 도로공사/교통안전공단은 혼유사고 방지를 위해 고속도로 주유소에 들어오는 차량 정보를 수집할 계획입니다 [57] Regentag11508 24/06/23 11508 0
101757 [정치] “과학계 난리났다” 6년→2년 연구평가 단축…출연연 줄세우기 현실화 [101] 사브리자나17891 24/06/23 17891 0
101756 [일반] [팝송] 시아 새 앨범 "Reasonable Woman" [6] 김치찌개7229 24/06/23 7229 6
101755 [일반] [서평]《행복의 기원》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15] 계층방정9472 24/06/22 9472 12
101754 [정치] 채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 쩔쩔매는 임성근 사단장 [72] 빼사스21753 24/06/22 21753 0
101753 [정치] 대통령들의 과거모습을 법조인대관을 통해서 보자! [15] 기다리다12338 24/06/21 12338 0
101752 [정치] 유럽의 극우화 - 반이슬람, 반이민&반난민, 자국우선주의때문인가? [34] 라이언 덕후12351 24/06/21 12351 0
101751 [정치] 민주당,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추가, 전자투표 의무화, 의무공개매수 100% 개정안 발의 [35] 사람되고싶다12779 24/06/21 12779 0
101750 [일반] 오늘은 감자의 날 입니다 [23] Regentag9073 24/06/21 9073 3
101748 [정치] ‘얼차려 훈련병 사망’ 사건 중대장•부중대장 구속 [75] 무화14742 24/06/21 14742 0
101744 [일반] 삼국지 황건적의 난이 로마 제국 탓인 이유 [11] 식별9414 24/06/21 9414 17
101743 [일반] 어느새 연고점을 돌파한 [69] 안군시대12451 24/06/21 12451 0
101742 [정치] 2055년 건강보험료로 얼마를 내야할까? [88] 여왕의심복43531 24/06/21 43531 0
101741 [정치] 초유의 국회 청문회 증인선서 거부 [97] 네야14225 24/06/21 14225 0
101740 [일반] [전통주가 처음이시라고요?] ①막걸리 취향 찾기 [20] Fig.16241 24/06/21 6241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