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1/26 22:47:11
Name 시드마이어
Link #1 https://brunch.co.kr/@skykamja24/819
Subject [일반] [에세이] 이 길이 당신과 나를 더 가깝게 해주기를


우린 모두 다른 세상에 산다. 그 어떤 것도 같은 것이 없다.



내가 평생 후회하는 순간 중 하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한 전학 온 친구에게 했던 일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친구들은 나를 무시하곤 했었다. 친구라고 느껴지는 친구는 거의 없었지만 반을 바꿀 수도 이사를 갈 수도 없었다. 작은 시골 초등학교.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그곳에서 삶은 참 우울했다.



회색빛 구름 같은 나날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도 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같이 놀 친구라곤 옆 집에 살던 친구 한 명뿐이었지만 그마저도 학원을 가면 나는 홀로 있었다. 오랫동안 TV를 봤다. 배가 고팠다. 돈은 없었고, 집에도 먹을 게 없었다.



껌을 한참 동안이나 씹었다. 하나를 먹다가 단물이 빠지면 또 하나를 더 씹고, 더 씹고, 하루가 끝날 때동안 TV를 보며 지냈다. 부모님은 저녁이 되어야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날씨가 더운 여름이면 덥다고 화를 내셨고, 온갖 것으로 분노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으셨다. 10살 이후부터는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지셨다.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거의 말도 못 하셨다.



어머니는 힘든 시절을 보내셨다. 종종 어머니는 한밤중에 나를 안고 슬퍼하시곤 했다. 이혼을 수백 번은 결심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늦게 낳은 자식을 아비 없이 키우실 순 없으셨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우리 학교에 전학 왔다. 그 친구는 나보다 키도 작고, 말랐다. 얼굴도 까맣고 옷도 잘 입지 못했던 것 같다. 무리에서 나보다 더 약자가 나타나니, 나는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전학생을 못살게 굴었다. 나도 똑같았다. 나 역시 나보다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는 약자를 괴롭히는 악한 인간이었다.



그 친구가 전학 오고서 나는 시비를 걸고, 싸우자고 했고, 많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며 싸웠다. 왜 싸운 것일까. 똑같은 약자였는데. 그에게 맞은 주먹은 아프다기보단 괴로웠다. 내가 때린 주먹은 여전히 내 영혼을 수치스럽게 하는 상처다. 그랬다. 참으로 나는 악한 인간이었다.



친구들은 나와 내 가족을 곧잘 모욕했다. 내가 하루종일 씹던 껌은 내 얼굴을 비틀게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부모님 없이 보내던 거의 모든 시간, 옆으로 누워 팔로 턱을 괴고 껌을 씹던 아이는 비대칭한 얼굴이 생겼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치과에 가보니 교정으로는 고칠 수 없다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다른 병원에도 갔다. 그곳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가 한참 들어 뼈가 모두 닫히고 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화가 나고 괴로웠다. 같이 간 어머니를 버리고 혼자 시내를 한참 울면서 걸어 다녔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친구들은 한 1년도 빼놓지 않고 내 외모에 대해서 욕을 했다. 내 가족과 부모님에 대해서도 욕을 했다. 부모님은 모르셨겠지. 나에게 대부분의 초등학교 친구들은 인신모독과 패드립을 서슴없이 하던 이들이었고, 그래서였을까. 나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그들의 대부분을 뇌에서 지웠다.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그들의 비웃는 표정과 내가 때린 전학생 친구.



나는 전학생 친구를 때리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친구는 학교를 옮겨 떠났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작은 무리에서 약자에 속하게 됐다. 나는 나 스스로가 바보 같았고, 한심스러웠다. 그래서 학교에서 정신 지체가 있던 한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 그 친구는 의사소통은 가능하고, 체격도 대단했지만 정신적으로 어렸다. 나는 전학생의 생일에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고 지나갔던 그날을 기억했다. 생일 축하를 받고 싶었을 텐데. 선생님이 전학생의 생일을 알려주었을 때 친구들에게 비웃음만 당했다.



나는 전학생 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생일 축하를 장애가 있던 친구를 위해 해주기로 결심했다. 장애가 있던 친구의 생일은 일요일. 나는 그의 집에 자전거를 타고 홀로 갔다. 가는 길에 소나기가 왔다. 온몸이 다 젖어서 도착하니 친구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하지만 친구가 이렇게 생일 축하하러 와주셨다는 것을 고마워해주셨다. 그래서 초등학생 두 명이서는 절대 먹지 못할 많은 음식을 시켜주셨다. 행복했다.



놀랍게도 나와 장애를 가졌던 친구는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다른 친구들은 단 한 명도 같은 중학교로 오지 못했다. 나는 친구와 중학생에 도착해 입학식 운동장에 둘이 서있었다. 각 학교별로 서있는데 모든 초등학교가 수십 명씩 줄을 서있을 때, 우리 학교는 나와 장애를 가진 친구 두 명뿐이었다.



친구는 체격이 좋고 힘이 세었기에 운동부에 바로 들어가 훈련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만났을 때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을 오랫동안 보냈지만 사실 정신 장애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가 열심히 운동하고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였다.



지옥 같던 시간이 지나고, 집에도 학교에도 갈 곳이 없던 그 시간이 끝나고 난 중학생 시절은 그나마 나에겐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곳에서 나는 조금 더 변화된 사람이 됐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원치 않는 친구와는 말을 섞지 않아도 되고, 친한 친구들과 다녀도 될 만큼 큰 학교로 왔다.



비대칭은 나이를 먹으면서 더 심해졌지만 내가 사귄 중학교 친구들은 참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많은 상처가 있었던 것 같다. 단 한 명도 평화롭고 넉넉하게 살아온 친구는 없었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유유상종을 믿는다. 나의 친구들 모두, 정상적인 가정도 아니었고, 부모님은 집에 없었고, 대부분 나와 같이 홀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버려진 친구들이었다.



우린 서로에게 의지가 됐다. 서로를 크게 놀리지도 않았다. 상대를 깎아내리면서 즐거움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걸 많이 느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하루에 1~2시간씩 걸어 다녔다. 친구나 나나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었으니.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 교육받는 그 시간에 우리는 길거리를 누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꿈도 이야기하고, 유명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나는 그때 기타리스트처럼 무대 위에 서서 연주를 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음악을 들으며 나도 언젠가 이런 멋진 사람이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망상이었지만 자유로웠다. 내 삶은 참 보잘것없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지옥 같은 곳에 머물던 초등학생 시절. 조금이나마 학생으로 지낼 수 있었던 중학생 시절. 그리고 꿈꾸던 모든 것들이 이뤄지던 고등학생 시절.



우린 모두 다른 삶을 산다. 나는 후회하며 산다. 그래서 종종 속죄의 글을 적어본다. 그 친구가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참으로 미안했다고 눈물로 사과하고 싶다. 나 역시 살아남고 싶었다고. 그는 날 이해해 줄까. 그도 나와 같았던 적이 있었을까.



모든 상처는 흔적이 되어 영혼에 저릿한 감각만 남겨두곤 한다. 가끔 영혼의 언저리가 스치곤 할 때 나는 지난날의 과오를 생각해 본다. 내가 참으로 비겁한 인간이었던 것처럼 누군가도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악행일 수 있겠지 하며. 그들을 이해해 본다. 미웠던 모든 사람들. 미웠던 모든 기억들. 우린 모두 슬픈 드라마 속에 있었을 수도 있고,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며 시트콤 같은 일상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다르다. 그대와 나. 악인과 선인. 아무도 같은 삶을 살지 않았고, 같은 사고로 세상을 볼 수도 없으며, 같은 선에서 이해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온전히 내 길을 밝혀두는 것일 뿐. 아픈 상처건 비열했고 추잡스러웠던 과거든. 나는 그것을 담담히 꺼내보이고 싶다. 내가 살아온 길이 곧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길이 었단 걸, 그대는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싶어서.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1/27 10:1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038 [정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결책은... 무려 표창장 수여!? [34] 사람되고싶다10625 24/02/27 10625 0
101037 [일반] 뉴욕타임스 1.16. 일자 기사 번역(미국의 교통사고 문제) [4] 오후2시8419 24/02/26 8419 5
101036 [일반] 아이돌 덕질 시작부터 월드투어 관람까지 - 1편 [4] 하카세6056 24/02/26 6056 5
101035 [정치] 대통령실 "4월 총선 이후 여가부 폐지를 예정대로 추진" [133] 주말16309 24/02/26 16309 0
101034 [일반] 갤럭시 S22 울트라에서 S23 FE로 넘어왔습니다. [10] 뜨거운눈물9167 24/02/26 9167 5
101032 [일반] 마지막 설산 등반이 될거 같은 2월 25일 계룡산 [20] 영혼의공원8082 24/02/26 8082 10
101031 [정치]  해방후 적정 의사 수 논쟁 [10] 경계인9459 24/02/26 9459 0
101030 [일반] 메가박스.조용히 팝콘 가격 인상 [26] SAS Tony Parker 10931 24/02/26 10931 2
101029 [정치] 이재명 "의대 정원 증원 적정 규모는 400~500명 선" [84] 홍철18334 24/02/25 18334 0
101028 [일반] 진상의사 이야기 [1편] [63] 김승남10832 24/02/25 10832 34
101027 [정치] 필수의료'라서' 후려쳐지는것 [53] 삼성시스템에어컨12947 24/02/25 12947 0
101025 [정치] 그래서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151] 11cm12353 24/02/25 12353 0
101024 [정치] 소위 기득권 의사가 느끼는 소감 [102] Goodspeed16444 24/02/25 16444 0
101023 [일반] 의료소송 폭증하고 있을까? [116] 맥스훼인15681 24/02/25 15681 42
101022 [일반] [팝송] 어셔 새 앨범 "COMING HOME" 김치찌개5745 24/02/25 5745 1
101021 [정치] 아사히 “미-일 반도체 회사 합병시키려 윤 정부가 SK 압박” [53] 빼사스13209 24/02/25 13209 0
101020 [정치] 의료유인수요는 진짜 존재하는가 (10년간 총의료비를 기준으로) [14] VictoryFood8259 24/02/24 8259 0
101019 [일반] 의대 증원에 관한 생각입니다. [38] 푸끆이9834 24/02/24 9834 45
101018 [일반] 팝 유얼 옹동! 비비지의 '매니악' 커버 댄스를 촬영했습니다. [12] 메존일각6036 24/02/24 6036 11
101017 [일반] 우리는 왜 의사에게 공감하지 못하는가 [331] 멜로18554 24/02/24 18554 54
101016 [일반] <파묘> -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풀스포) [54] aDayInTheLife8381 24/02/24 8381 7
101015 [정치] 단식 전문가가 본 이재명의 단식과 정치력 상승 [134] 대추나무13616 24/02/24 13616 0
101014 [일반] “이런 사정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딨냐” [136] lexicon14444 24/02/19 14444 5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