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07/12 04:16:58
Name addict.
Subject 월드컵에 관한..토론 글입니다.
마지막 학기(계절..-.-;)를 보내고 있는 늙은 학상입니다.
수업중에 월드컵 문화에 관한 토론 주제가 있어서
같은 조원들과 토론한 내용을 제가 정리하였는데..
그냥 한번 올려봅니다...스타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서 삭제 요청이 오면 지우겠습니다.

<월드컵의 응원 열풍에 대한 분석>

이번 월드컵은 세계는 물론 우리 자신들 조차 매우 놀라게 했다.


그 첫번째는 항상 축구 변방국에 머물렀던 한국 축구팀이,

그 논란이야 어쨋든, 월드컵 4강에 들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전례가 없는 대규모 인파가 거리에 나와 응원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특히 거리 응원의 경우 그 규모나 진행 방식, 질서 유지에 있어서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더 타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았다.


전에 없던 거리 응원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런 대규모의 거리 응원 문화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식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우리 *****조는 다음과 같이 토론해 보았다.



1. 왜 축구이고, 월드컵인가?



규모와 통일성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이런 응원문화는

축구 선진국으로 통하는 유럽이나 남미에는 매우 보편화되어 있는 형태다.

왜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게 될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에 불과하지 않을까?

축구 경기를 국가간의 대리전 형태로 받아 들이는 것은 과도한 의미 부여가 아닐까?



여기서 우리가 일단 주목한 것은 현재 세계적으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넓은 지역에서 프로 리그가 이루어지고 있는 축구가

(UN 가입국보다 많은 FIFA가입국) 활성화 되어 있는 지역은 예외없이

어떤 형태든 '갈등'을 전제로 한 대리전 성격의 라이벌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월드컵에 와서는 국가 대항전의 성격으로 확장되기 싶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 예고에서

끊임없이 포클랜드 전쟁을 상기시키는 영상들을 봐았다.



일단 이것에 대한 정당성을 차치하고 나면

일반 대중들이 국가 대항전의 이미지을 통해 월드컵을 받아 들인다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 무엇이 우리를 거리로 나오게 했는가?



우리나라엔 유럽과 같은 축구문화는 부재해 왔다.

유럽의 축구문화는 기본적으로 지역에 기반한 프로구단이 2부, 3부, 유소년 클럽을 소유-운영하면서

지역 서포터스와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일종의 생활 문화 형태로 축구 경기가 이루어 진다.



우리의 경우 프로야구가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해태 타이거스 VS 경상지역 팀들의 라이벌 관계를 생각해 보라!),

어쨋든 프로 축구 리그는 일반 국민들의 관심밖이었다.

(오죽하면 전세계로 나가는 붉은 악마의 카드섹션에

'SEE YOU AT THE k-LEAGUE'라는 호소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월드컵에 열광했던 이유에 가장 유력하게 '혐의'가 가는 것이

월드컵에 결부된 '내셔널리즘'이다.

이전부터도 우리는 국가대표전(특히 한일전에 있어서는)에는 굉장한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이전까지 최고의 흥행카드였던 축구 한일전에 있어서도

이런 폭발적인 응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붉은 악마는 이미 5년전부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히딩크 체제하의 한국축구가 우리나라 축구역사에 없던 강력한 모습을 보여 준 것도

이런 폭발적인 응원과 지지에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설문조사에서 드러나듯 거리 응원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축구에 대해 매우 무관심한 계층이었고,

(특히 여성. 여성들이 젤 싫어하는 대화거리가 군대, 축구,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라는 유머는

한국사회내에서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다)

이들의 참여가 이번 응원 문화의 핵심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달라진 한국축구' 또한 필요조건임엔 분명하지만 충분조건으로선 불충분한 면이 많다.



우리가 토의를 통해 찾아낸 이번 응원문화의 원동력은 바로,

한국 사회에 있어서의 '축제문화의 부재' 였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일상의 질서에서 일탈을 통해

기존 질서로 발생되는 긴장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축제의 존재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도 면면히 이어지던 축제의 전통이

산업사회로 숨가쁘게 넘어오는 와중에 유실되고 말았고,

일탈과 소통에 대한 욕구는 항상 억눌러져서

기형적인 음주문화나 노래방의 확산같은 형태로밖에는 분출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던 것이 월드컵을 통해 어두운 술집/나이트클럽에서 백주대로의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고,

그 곳에서 느꼈던 모든 계층을 초월한 하나됨(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에너지)의 실감은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었다.



사회적 위계를 초월한 소속감의 확인과 이를 통한 사회 통합은

축제가 가지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인바

월드컵은 국민적인 축제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행하였다.

(실제 한국전이 있는 날의 서울 압구정동과 강남역의 분위기는

티비에서만 보던 브라질의 삼바축제의 바로 그것이었다).



3. 월드컵 축제에 대한 3가지 해석틀



이런 국민적인 축제에 대해 우린 크게 다음의 3가지 입장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1) 축제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 :



주지하다시피 우리에겐 유실되었던 축제의 전통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매우 경쟁적인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볼 때,

축제를 통한 사회적 긴장/갈등의 해소와 국민통합은 한편으론 사회의 안정을,

다른 한편으론 축제를 통한 발산이 사회의 역동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광장'의 기능과 의미에 주목, 현재 문화계 일각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광화문-시청의 광장화는 바람직한 시도라고 보인다.



2) 축제의 역기능에 대한 경계 :



축제는 인간 사회에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그 단위가 '대한민국'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단일한 이해집단이 아닌, 수많은 층차의 계급-계층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게 되는 국민적 축제는 이미 존재하는 모순과 문제를 가리면서

정서적인 사회 통합을 통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감퇴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모순적인 지배구조를 좀 더 공고히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월드컵 기간중에 생존권때문에 파업했던 수많은 노동자들과

'거리정화'라는 미명하에 내쫓긴 노점상들은 철저하게 무시당했으며,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던 한미전 기간에 있었던

각종 미군 관련 사고들에 대한 움직임 또한 그러했다.



3) 집단 에너지 숭배에 대한 경계 :



이번 거리응원에서 느낄 수 있었던 카타르시스의 밑둥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거리 응원이 힘을 받은 것은 그것이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이고,

그 재미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통일된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몰아의 경지속에서) 집단의 에너지로 승화되고

거기서 느껴지는 숭고미(위대함에 관련된 정서)는 파편화된 개인으로서 느껴졌던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넘어서는 무엇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적 제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현재의 모든 축제는 그 뿌리를 종교적 제의에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1)의 의견은 여기에 대한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러한 집단제의가 배타성을 띄게 되면 그것은 바로 파시즘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실제 밤까지 이어지는 축제중에 일일이 검문을 하며 5박자 클락션을 울리지 않으면

차를 보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번의 경우에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집단에너지를 통한 카타르시스 체험이 사회의 가장 주요한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면,

사회 전체에 집단에너지의 강력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이는 언제든지 참여하지 않는 소수에 대한 배제와 배타로 이어질 혐의가 짙다.





1)의 경우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주류적 의견이라고 볼 수 있고,

2)는 국가-민족 개념보단 계급관계를 더욱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3)의 경우는 집단 자체를 거부하고 개인주의적, 아나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내세우는 의견이다(물론 2)의 경우보다도 소수이다).



이러한 견해차는 본질적인 세계관의 차이에 기반함으로

토론을 통해서 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기에

개인간의 이런 견해차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해 보려 했다는 데 토론의 의의를 두었다.





4. 그외에..여담들.



이번 거리응원은 굉장히 질서있게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과연 자발적인 시민의식의 발로인지,

아니면 외국 언론의 주목속에서 일순간의 체면의식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전자로만 보기에는 평소 '지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우리나라 교통 무질서가 먼저 떠오르고,

후자로만 보기에는 분명 이번 거리응원을 주도한 '붉은악마'들의 경우

선도적으로 솔선수범하여 행동을 유발한 측면 또한 있기에,

어찌되었건 '좋은 게 좋은 거다. 앞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이 중요하다' 정도로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또한 미처 토론은 하지 못했지만, 젊은 계층(억지로 붙이자면 월드컵 세대?)의

생기발랄한 응원 모습속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내놓은 경우도 많이 보여지는데

이런 평가들의 정당성 또한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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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Lecter
02/07/12 09:52
수정 아이콘
축구에 전세계인이 열광하는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축구는 현대 사회의 합법화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운동경기중 전쟁과 가장 유사한 종목이 축구라고 할 수 있죠.
때문에 경기에서 이기면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듯한 성취감을 맛보는 거구요. 경기내용보단 결과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신의 손' 사건같은 경우도 생겨난 거겠죠.
그리고 addict.님의 글중에 역기능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네요.
단위가 대한민국이라는 게 뭐가 잘못된 건지 또 집단숭배라고 하셨는데 뭐를 숭배했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판단하기에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의 응원문화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최고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결력이나 조직력이나 질서의식이나 뭐든지요.
휴딩크
02/07/12 10:41
수정 아이콘
허억~~(!?) 이게 무슨 소리야 @.@------?????
addict님 너무 어려워요~~~~ ^_^;;
02/07/12 12:03
수정 아이콘
실질적으로 이번 응원이 보여준 역기능에 대한 말이 꽤 있습니다. 우선 가장 심각한 것이 파시즘적 광경까지 보여주는 집단 의식화죠. 즉, 대한민국의 경기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이상하다느니 정상이 아니라느니 심지어는 매국노라는 소리까지 들어본 적 있습니다. mlbkorea같은 인간들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축구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었던 축구열기 중에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부분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라는 이름하에 거행되는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배척하는 것. 사실 지금까지 봐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 가능성이 무시할 정도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흠, 좀 횡설수설했군요.
목마른땅
02/07/12 15:06
수정 아이콘
뭐, 저도 비슷한 내용으로 최근에 세미나를 했었는데, 아딕트님의 토론과 비슷한 결론이 나온 것 같아요,. 특히 한국 내에서의 집단적 축제 문화의 부재는 한국 근대 100년사 속에서 말살된 전통 문화의 붕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김동춘 교수님도 한국사회의 식민지 과정에서 촌락 공동체와 전통 문화가 어떻게 파괴 되었느지를 연구중이라고 하시더군요. 다함께 즐거워하고 참여할 수 있는 광장의 부재 속에서 이번 월드컵은 그러한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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