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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6/20 05:18:14
Name Zz@mPpOnG
Subject [기타] [퍼옴]아줌마의 한vs이전 관전기...재밌습니다 ^^

NAME : 애엄마

아줌마 월드컵 관전기

아줌마가 축구 볼려면 준비할 일이 많다.

붉은 윗도리, 맥주, 안주꺼리, 목청 가다듬기, 괜한 일에 시비걸지 말고

마음을 다스리기, 그릇을 깬다든가 하는 부정탈 일 말기(에비!) ... 등등등

이 외에도 아주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애' 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세 살짜리 아들넘.

우리가 첫 승을 따낸 폴란드 전때 이 아들넘은 '알차구나 비기' 를 보겠다고

전반 내내 낑낑댔다. (낑낑댐의 강도로 봐서는 '패악을 부렸다' 가 맞는다. )

알차구나 비기는 장나라가 했던 핸폰 씨에푸인데 이넘은 그걸 장나라 이름으로 안다.

아들넘은 저랑 지 애비랑 알차구나 비기랑 셋이 살았으면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는데 이 꿈에는 지 애비도 동조하고 있는 바이다.

'알차구나 비기'는 황선홍, 안정환에게 뽀뽀하는 틈틈히 애들용 동요 비디오를

찍어서 그 즈음의 우리집 테레비를 하루종일 점령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월드컵 하기 전에 테레비를 하나 더 사던지 애를 내다버리던지' 하기로

남편과 나는 굳게 약속하였건만 막상 그 어느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이다.

어쨋든 그 아들넘 때문에 나는 폴란드 전에서 황선홍의 첫 골을 놓치고야 말았다.

계속 찡얼거리는 아들넘한테 신경쓰다가 아파트가 들썩해서 돌아보니

황선홍이 열라 뛰어가며 뽀뽀를 날리고 있었다.

골 장면은 바로 그 순간에 바로 그 느낌으로 봐야 한다.

아싸! 들어갔다! 발광하고 기절하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한 템포 놓친 것이었다.

쓰버럴~ 억울해 미치는줄 알았다.

전반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애를 얼렁 재울려고 포대기로 들쳐업고 나갔다.

아파트 상가 치킨집 앞에서 아저씨들이 테레비를 길에 내놓고 보고 있었다.

전반 하이라이트. 나도 모르게 애 업은채로 뒤에 서서 보고 있는데

아들넘, " 테레비 꺼! " ......마자 디질까바 얼른 자리를 떴다.

아들넘은 다행히 잠이 들었지만 후반전 내내 나랑 남편은 고함칠 일이 있으면

베란다로 달려나가서 밖에다 대고 해야 했다. 애 깰까봐.....

미국전은 낮에 하는 거여서 베이티시터에게 애 맡기고 밖에 나가서 봤다.

포르투갈전은 금요일 저녁이어서 시댁에 애 맡기고 친구집에서 봤다.

이탈리아전은 화요일 저녁인데..... 아무리 해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재우고 숨죽여보는 건 맛이 안 나서 못하겠고 길바닥에 델꼬 나가는 것도

애 밟혀죽을까바 신경쓰일거 같고.

남편과 나는 며칠 동안이나 의논을 했고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그냥 쌩까기로 한거다.

애가 뭔 포악을 떨든 냅두고 무시하기로 했다.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고 우리 식구는 바로 옆 동에 살고 있는 동생네로 갔다.

내 동생 마누라, 즉 내 올케는 암데서나 우리 선수가 넘어지기만 하면

무조건 패널티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수준이다.

또한 순전히 마스크로 선수의 서열을 매긴다.

따라서 안정환이 최고의 선수, 최악의 선수는 설기현 되겠다.

김태영, 이을용 같은 평범한 얼굴은 울나라 선수인지도 모른다.

암튼 그렇게 어른 넷이 이탈리아전을 깩깩거리고 보는데

어른 둘 보다는 어른 넷이 애 하나를 생까기에 아주 좋았다.

어른들 소리에 묻혀서 애의 요구사항이나 항의 등등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저도 포기했는지 가끔 돌아보면 혼자서 비치볼을 가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며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반 4분 패널티 킥을 얻었다. - 광분

(설기현이 얻은건데 안정환이 차니까 안정환이 얻은 거라고 올케는 북북 우겼다)

안정환이 실축했다. - 잠시 침묵.

곧이어 내 동생, 사적인 감정이 섞인 '저런 개쉐~'

올케도 '저런 나쁜 놈' (하지만 이탈리아 골키퍼를 욕한 거였다)

그 후 얼마 뒤 이탈리아 선취골 - 탄식, 침묵.

이후 경기관람과 응원태도가 돌변하여 한동안 산만해짐.

애한테 요구르트 꺼내주고 맥주 더 가질러 가고 쥐포 굽고.

안타까운 시간은 흘렀다.

황선홍이 들어갔다. 천군만마를 얻은 환호성.

인제 다 이겼다. 이탈리아 니들은 짐 싸!

다친 김남일 대신 이천수가 들어갔다. 장하다 이천수.

이탈리아 애들은 정말 거친 경기를 했다.

우리 선수들의 얼굴을 시시때때로 팔로 치고 머리로 받았다.

스포츠맨쉽의 기본을 모르는 더티한 쓰벌놈들이다. 그렇게 이기고 싶냐?

이천수가 넘어진 이탈리아넘의 뒷통수를 걷어차는게 보인다.

몸을 던져 적극적인 수비를 하고 있는 아주 모범적인 모습이다.

모두들 이천수를 따라 배워야댄다.

홍명보를 빼더니 차두리가 들어갔다. 앗! 홍명보를 빼?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내 동생 " 쓰바, 졌다. 그대신 니네는 다 죽었다. 차두리 들어갔어! "

차두리는 들오자마자 운동장을 누비고 다니더니

공이 어디있건 상관없이 자기 달라고 두 손을 흔들어댄다.

아, 귀여운 차두리.

몇 분 남았는지 1분마다 시간을 보고 40분이 넘어가자

맘 깊은 곳에서 서서히 패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니, 이런!!!!!!

이거 꿈인가! 골이 들어갔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은 너무 순간이어서 내가 제대로 본건지 아닌지 분간이 안간다.

남들 골 넣는거는 똑똑히 보이는데 우리 골 넣는거는 왠지

제대로 못 본것같은 기분이 든다. 계속 반복해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서도

내가 저 장면을 경기중에 정말 봤나? 헷갈린다.

한 마디로 꿈이냐 생시냐 이다.

동생 - "누가 설기현 욕했어! 우씨! 다 죽었어! "

올케는 설기현이 최악의 선수라는 의견을 정정했다.

다시 보니 남자답고 믿음직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연장에 들어가자 아이고, 홍명보 빠진게 마음에 걸렸다.

아이고 데이고, 이럴줄 알았으면 안 뺐어야 하는거 아니야? 다시 들어올 수는 없나?

차두리 쟤는 뭐야 하는데 차두리가 오버헤드킥을 한다. 아 귀여운 차두리.

우리는 그걸 보고 막 웃었다. 잘했고 무척 멋졌는데 괜히 무지 우꼈다.

토티가 퇴장당했다. 나는 토티가 앞으로 자빠지고 심판이 휘슬을 삑 부는데

진짜로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이런 우라질! 근데 곧 토티가 엘로 카드를 받았다.

경기 전에 시건방진 인터뷰를 했던 바로 그넘이다.

유상철이 옆에서 심판에게 손가락을 두 개 흔들어대며 두 번째임을 알려주었다.

(심판도 그 정도는 알겠지. 그래도 울 선수들은 참 친절하다.)

시뮬레이션액션이라며 그 장면을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토티를 따라가던 선수는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송종국이다.

(나는 송종국이 골 넣는다에 2만원 걸었는데 남편은 걔는 공격수가 아니라며

2만원 버렸단다. 울나라는 토탈싸커인데 공격수가 따로 있냐?

결론은 2만원 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송종국 좋다.)

나는 느린 그림으로 보니깐 겨우 보이는건데

심판은 그 처진 눈으로 어떻게 그걸 봤을까?

송종국도 만세고 눈 처진 심판 아저씨도 만세다.

그러다가 연장도 후반 다 지나서 또 쪼금 낑낑대는 애한테

이따마한 에이비씨 초콜렛을 봉지째 뜯어주는 물량공세를 취하고 있는데!

다시 골네트가 출렁하는게 보였다.

초콜렛이 사방으로 날았다.

아파트가 들썩했다. 창문밖으로 폭죽이 여기저기 수도 없이 터졌다.

우리는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뛰고 소리질렀다.

애도 덩달아 뭔가 절박하게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안정환이 드디어 환상적인 옆대가리 헤딩으로 골든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미국전때와 거의 같은 위치에서 같은 기술의 골이었다.

솔직히 미국전때는 그게 절묘한 헤딩이라기보다는 운이라고 생각했다.

헤딩을 했다기보다 공이 와서 안정환 옆머리에 맞고

지가 알아서 들어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보니 그건 신통방통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신묘한 기술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좀 진정된 후에도 애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는 초콜렛 하나를 들고 절박하게 소리치는 중이었다. "까줘!"

경기는 끝났고 안정환은 울었다. 우는 모습도 가슴 아프게 이뿌다.

차두리가 지하도 껌파는 할머니처럼 태극기를 머리에 둘러쓰고 히- 웃었다.

귀여운 차두리.

너무.... 좋았다. 축구 이겨서 내 인생에 도움되는게 뭐냐?

근데 내 인생에 이처럼 기쁜 날이 있었을까?

12시가 다 되어서 애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고 나와 남편은 다시 재방송을 봤다.

이제는 느긋한 관객이 되어도 좋으련만 나는 또 맘 졸이고 탄식하고 환호한다.

이번에는 조마조마함과 탄식조차 짜릿하게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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