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9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총 발전 속도 면에서 최고의 시기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조선 개화기에 썼던 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일단 병인 양요 때 프랑스 군이 썼던 무기는
미니에 탄을 쓰는 미니에 총이었습니다.
이 총은 어떻게 보면 산업 혁명기 규격 통일의 총아 같은 총이었습니다.
기존의 총은 구경이 비슷은 했지만 같지 않았고 총알 즉 볼모양의 탄 역시 총구보다 크게 작았죠.
그래서 화약의 가스가 세었기 때문에 화력면에서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규격이 통일 되자 모든 총의 구경은 모두 같은 크기로 만들 수 있었고 탄 역시 딱 총구에 맞게 통일해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탄이 미니에 탄이고 그 총이 미니에 총이죠.
조선군의 화승식 머스킷 총보다 장전 속도나 명중도, 연사 속도, 사거리 모두 우세였지만 단점은 여전히 탄을 총구를 통해서
집어 넣어야 했으며 장전 속도 역시 기존 라이플 총보다는 낫지만 현재 속도로는 여전히 거북이었습니다.
물론 뇌관을 썼기에 조선 같이 화승을 쓰지도 그리고 나폴레옹 때 처럼 부싯돌은 필요 없었습니다.(단 뇌관은 탄이 아니라
총에 달았지만요) 단지 종이로 된 탄피를 찟고 총안에 일부 화약을 부어야 하는 번거로운 행동은 여전히 해야 했지만요.
그러다 병인양요 다음 해 프랑스는 이 미니에 총을 샤스포 총으로 바꾸는 데 이는 나름의 혁신이었습니다.
일단 가장 큰 차이는 후장식- 총 뒤편으로 탄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즉 이 때부터 엎드려 쏘며 장전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탄 역시 여전히 탄피가 종이가 되었지만 탄 안에 뇌관이 들어 있어서 더 이상 종이 탄피를 찟고 화약을 붇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냥 총 뒤로 탄을 넣고 장전후 방아쇠만 당기면 '니들- 원시적인 현대 소총의 공이 같은)이 탄을 찔러 뇌관을
쳐서 발포 하는 형태였습니다.
물론 프로이센은 이 걸 1841년 정도에 적용하여 이미 드라이어제 소총을 만들었지만 프랑스는 겨우 1867년에 도입하게 된거죠.
만약 프랑스군이 이 총을 빨리 도입했다면 정족산성에서 버티는 것도 힘들었을 겁니다. 더 정확하며, 더 빠른 발포가 가능하며
사거리도 더 미니에 총보다 우세했기 때문이죠.
이총은 보불 전쟁, 그리고 일본 무진 전쟁, 이탈리아 통일 전쟁 등 많은 곳에 쓰이게 됩니다.
한편 미국은 남북 전쟁 때문에 좀더 다양한 총을 사용하게 됩니다.
단 기본적으로 원리는 프랑스 샤스포 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드라이어제 소총의 원리는 신대륙에 이미 널리 퍼졌기 때문
이었죠.
미국이 특이했던 건 다양한 격발 방법과 연발에 대한 욕구 였죠. 신미양요 때 미군이 정확히 무슨 소총이 썼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스프링필드 조병창 총만 남북 전쟁 당시 5종류를 넘게 썼고 이 덕에 그냥 저 같은 초보자 수준에서 다 합쳐서 스프링필드 소총이라고 하는 거죠.
Springfield Model 1870 Remington-Navy 같은 총은 확실히 썼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총도 후장식 소총입니다. 단 격발 장치만 샤스포와 달랐을 뿐이죠.
이 니들건의 시대도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강화도 조약 5년 전해 1871년에는 신미양요 그해에 현대식 볼트 액션(단 흑연 화약)의 총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890년대에는 무연 화약 총이 발달하기 시작했죠.
단 이런 발전은 고종 시대에만 이루어진 것이고 고종이 죽을 즈음에는 이미 기관총의 시대가 도래했을 지경이었죠.
만약 병인양요가 2년만 늦었어도 역사는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적어 봅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7-20 01:07)
* 관리사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