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4/30 03:19:11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스포) 1절 2절 뇌절 4절, <존 윅 4> (수정됨)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 中

<존 윅>은 영화사에 남긴 업적이 결코 작지 않은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액션에 있어서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고 봐도 될 정도죠. 할리우드는 오랫동안 편집 장난으로 컷들을 오체분시하며 액션을 조각조각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쉬우니까요. 타격감 넘치는 액션을 찍으려면 배우의 액션 소화력이 매우 높아야 합니다. 그건 쉽게 이뤄내기 어려운 영역이죠.

그런데 <존 윅>은 쉬운 길을 포기합니다. 타격감 넘치는 액션을 위해 정면으로 부딪히죠. 때리는 순간과 맞는 순간을 분할하지도 않았고, 타격의 순간을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하도록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 액션이 무려 총기 액션이었죠. 지금은 저주받은 걸작 취급을 받는 <이퀄리브리엄>에서 총기 액션의 진보를 시도하긴 했으나,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면이 존재했던 게 분명한 사실입니다. 반면 <존 윅>은 굉장히 전문적인 느낌을 선사하죠. 근거리 사격이라는, 총이라는 무기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그 액션이 이전에 볼 수 없던 타격감을 선사합니다. 롱테이크, 근거리, 리액션 등을 통해 <존 윅>은 총기 액션을 권법 액션만큼 타격감 넘치는 모습으로 진보시켰습니다.

촬영 방식이 가장 주요한 이유겠지만, 저는 여기에 또 하나의 요소를 더하고 싶습니다. 바로 사망자 숫자입니다. <존 윅>은 제가 이 문장을 쓰는 순간에도 1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을 겁니다. 총은 냉병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입니다. 한 방 맞음 죽는 거죠. 그래서 <존 윅> 시리즈에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많은 사망자가 등장합니다. 쏘면 죽습니다. 저는 이 점이 <이퀄리브리엄>의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존 윅 4>에는 총을 맞고도 버티는 장면이 나옵니다. 최후의 1:1 결투였죠. 1:1 결투를 한 방 맞고 끝내버리면... 그런 짓은 광선검과 포스가 난무하는 <스타 워즈>에서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모순을 '오래된 총'이라는 소재로 극복하더군요. 강선이 없는 초창기 총은 지금처럼 살상력이 높지 않았습니다. 강선이 있더라도 최신 화기만큼 강력하진 않았죠. 이런 디테일에서 무기와 액션에 제작진이 얼마나 진심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액션에 진심인 <존 윅> 시리즈도 3편에 이르러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뇌절'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액션이라 하더라도 보고 또 보면 지루해지기 마련이죠. 그렇게 실패한 뒤 나온 4편에서, 제작진은 이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더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관은 매력적이고, 캐릭터는 더 매력적이며, 세계는 넓으니까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역시나 아름다웠습니다.

그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데서 그치지도 않았습니다. <존 윅 4>는 이전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새로움을 모색하려는 고민이 절절히 느껴지더군요. 장점의 계승은 사망자 숫자면 충분한 설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정확히 세보진 않았는데, 100명은 확실히 넘긴 것 같습니다;;

새로움을 모색하려는 독특한 액션 연출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개선문 시퀀스와 탑뷰로 찍은 롱테이크는 정말 좋았습니다. 222계단 장면도 좋더군요. 역시 계단에는 뭔가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활을 무기로 사용한 것도 서양에서는 신선하게 느낄 수 있겠으나, 동양인 입장에서는 안일한 오리엔탈리즘으로 보이더라고요. 물론 <존 윅>은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미국까지 편견어린 시선으로 묘사했기에 차별당했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크크)

저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액션이 좋습니다. 뭔가 새롭게 찍어보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해서 나온 시퀀스를 보면 열정이 스크린 밖까지 활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열정을 마무리에 불사질렀다는 게 저는 정말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항상 최고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액션을 좋아한다면 <존 윅> 시리즈는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존 윅>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존 윅 4>도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런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게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미스터 윅, 당신은 다정한 남편이었고 매력적인 캐릭터였으며 영화사에 남을 액션이었습니다. 그리고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아는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

별점: ★★★★☆
한줄평: <존 윅>을 보지 않았다면 아직 죽지 마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Lazymind
23/04/30 05:04
수정 아이콘
액션도 좋았지만 배경도 좋았어요. 장면마다 배경으로 걸치는 장소들이 이쁘더군요.
23/04/30 11:39
수정 아이콘
ott나 vod로 봤으면 그 배경을 제대로 못 즐겼을 것 같더라고요. 2부터 쭉 극장에서 봤는데 4는 진짜 만족스러웠습니다.
마스터충달
23/04/30 12:21
수정 아이콘
일출과 일몰, 흔히 말하는 황금 타임에 제대로 이쁘게 찍었더라고요. 약간 여행다니는 기분을 줬던 것 같아요.
눕이애오
23/04/30 08:22
수정 아이콘
평이 상당히 좋아서 시리즈 최고인 줄 알았는데 보고 나니 2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영화에 현실성을 크게 바라면 이상한 거지만 존윅4의 존윅은 비정상적으로 살상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금강불괴가 아닌가 싶어서 크크
그래도 볼 거리는 상당했네요
살려야한다
23/04/30 10:36
수정 아이콘
그림은 예뻤지만 2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어름사니
23/04/30 18:13
수정 아이콘
숨 쉴 새도 없이 쏘고, 찌르고, 때리는 것만 봐도 돈이 아깝지 않은 그런 영화였네요. 액션 영화에서 기대하던 내용을 100% 보여준 듯 합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존 윅4 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사용한 톰슨 센터 앙코르는 1980년대 출시된 제품이라 그렇게 오래된 총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구경 탄을 쓸수 있도록 개조한 버전이라 그걸 맞고 버티는 건 순수한 주인공 보정으로 봐야...
마스터충달
23/04/30 18:15
수정 아이콘
와... 저 헛발 제대로 짚었군요. 엄청 쪽팔리네요;;;;;

아니 디자인도 그렇고, 오래된 전통 어쩌구 하니까 당연히 몇 백년은 된 총이라고 생각했.... 제발 그렇게 보이는 총 섭외하기 어려워서 그렇고, 원래 의도는 제가 생각한 거 맞다고 해줘요;;
어름사니
23/04/30 18:35
수정 아이콘
중절식 + 단발이라는 유니크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권총이라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떽띠껄하게 총 가운데를 접어서 재장전 하는 걸 어떻게 참겠습니까 크크
마스터충달
23/04/30 18:47
수정 아이콘
덕후들의 머글 희롱입니다!!!!
마스터충달
23/04/30 18:20
수정 아이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총도 하나 알아가고, 요즘도 저런 디자인의 총을 제작하는 것도 알아가네요.
aDayInTheLife
23/05/01 14:00
수정 아이콘
3편 정말 초반부 칼 싸움에서는 역대급 액션 영화 나오는 줄 알았어요. 진짜로… 근데 크흠 크크크크크
확실히 말씀하신대로 4편은 뭘 보여줘야 할까를 잘 고민한 영화 같아요. 개선문 총격전이나 (핫라인 마이애미가 떠오르던!) 탑뷰 액션이나…
만약에 이번에도 떽티컬하게만 갔으면 3편 막판 처럼 김이 빠졌을 거 같은데, 중간 중간 환기시켜주는 냉병기/맨손 격투의 흐름이 좋았습니다. 여전히 이 시리즈의 감성이나 혹은 설명에는 조금 더 강력하게 보여만 줘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적당히 설명충과 간지 사이에서 잘 타협한 거 같습니다. 그 협상도 그렇구요. 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8681 [일반] [노스포] 가오갤3 - 이제는 마블을 보내줘야 할때 [81] 만찐두빵12521 23/05/03 12521 8
98680 [일반] 나홀로 하프마라톤 완주 [9] 흰긴수염돌고래6818 23/05/03 6818 9
98679 [일반] AMD 1분기 실적 발표 [6] SAS Tony Parker 9721 23/05/03 9721 1
98678 [일반] 오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넷 [10] 닉언급금지9997 23/05/03 9997 4
98677 [일반]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꼰대질 하기 [21] 열혈둥이9204 23/05/03 9204 6
98674 [일반] 사무실에서 발견한 1997년 잡지 [마이컴 5월호], 칼세이건 바이러스 짤 추가했습니다 [14] 가위바위보9041 23/05/02 9041 2
98673 [일반] [NPB] 무라카미 쇼키, 개인적으로 뽑은 4월의 MVP [11] 민머리요정7048 23/05/02 7048 1
98672 [일반] 아내 이야기 5 [29] 소이밀크러버20887 23/05/02 20887 28
98667 [일반] 일상과 음악 듣는 이야기(약간 우울 주의) [10] aDayInTheLife7545 23/05/01 7545 3
98666 [일반] 담배갑 경고문구 및 사진에 대한 일화...... [26] Janzisuka10080 23/05/01 10080 26
98665 [일반] 우회전 일시정지 단속이 잠정 중단됩니다. [124] 김유라18393 23/05/01 18393 3
98662 [일반] 유튜브 구독자 1000명을 달성했습니다~ [26] 포졸작곡가9783 23/05/01 9783 20
98659 [일반] 박호두 매억남 관련 폭로자 구르미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34] 모두안녕19963 23/04/30 19963 2
98658 [일반] 왜 주식해서 돈 잃으면 피해자라 호소 할까요? [159] VvVvV16287 23/04/30 16287 8
98657 [일반] 해군이 복원한 2022년 거북선 (데이터주의) [26] 그10번13962 23/04/30 13962 14
98656 [일반] 방금 발견한 클릭 참기 난이도 최상 글제목 [7] 닉언급금지9880 23/04/30 9880 1
98655 [일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이게 어떻게 애들영화야, 덕후 영화지. [54] aDayInTheLife9120 23/04/30 9120 8
98654 [일반] 어떤 소리든 지지해주는 전문가가 있다 [26] 상록일기11177 23/04/30 11177 14
98653 [일반] 신규 운영위원 모집 결과 + 자유게시판 운영위원 상시 모집을 공지합니다. [21] jjohny=쿠마7431 23/04/28 7431 7
98652 [일반] (스포) 1절 2절 뇌절 4절, <존 윅 4> [11] 마스터충달7286 23/04/30 7286 9
98650 [일반] 두 공의 위치와 보즈-아인슈타인 분포 [13] 포스7592 23/04/29 7592 4
98649 [일반] 이번 CFD 사태 근황(feat 대주주) [22] 맥스훼인12224 23/04/29 12224 3
98648 [일반] 성인 정보 방송을 진행하면 가족 예능에서 하차하야 하나? [97] KOZE14688 23/04/29 14688 2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