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11/03 18:21:12
Name 지대호
Subject [일반] 전화번호부와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정리한 이야기
아침에 출근해보니 오늘부터 내일까지 딱히 급하게 해야할일이 없고, 묵혀놨던 일도 딱히 없고, 일 시킬 사람들은 휴가나 출장 등으로 출근을 하지 않았고...딱 놀기 좋은 상황이더군요 크크
하루종일 커피마시고 뉴스나 보면서 멍때리다가, 예전부터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하고 막상 실행은 못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번호부와 카톡친구목록을 정리하는 것이요.

저는 업무 관련해서 연락하는 사람들은 번호를 저장할때 꼭 이름앞에 #을 붙여서 카톡친구로 등록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카톡에 뭔가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니 모조리 숨김처리 해놓고 딱 연락하는 사람만 친구목록에 남겨놨었지요. 그렇게 2011년 군 제대 이후로는 전화번호를 저장만 했지 지운적이 딱히 없다보니 쌓이고 쌓여서 방치되었었고, 언젠가 한번은 정리해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지요.

그래서, 우선 정리하기전에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보고 곧바로 누구인지 기억이 안나는 사람은 번호와 카톡을 지운다
- 최근 2년간 만난적이 없거나 연락한적 없는 사람은 가급적 지운다
- 활성화 된 단톡방에 함께 들어가있는 사람은 남겨둔다
- 지금 연락하지 않더라도, 번호를 지웠다가 언젠가 후회할 것 같은 사람은 남겨둔다


저 기준대로 하루종일 폰을 들여다보며 전화번호와 카톡을 지우다보니, 180명의 전화번호와 70명 정도의 카톡 친구가 남았습니다. 그 중 반 정도의 친구들은 다시 숨김처리를 했고, 제 카톡 친구목록에는 42명이 남아있네요.
몇년째 생각만 하던 일을 하게 되서 속시원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남겨진 번호가 많아서 놀라기도 했는데, 사실 하루종일 정리하면서 느낀점들이 몇가지 있었어요.


1) 이젠 정말 다들 결혼을 했구나
어릴때 썸을 탔던것 같기도 하고 들이댔다 잘 안됐던것 같기도 하고 어디 길거리에서 번호를 딴것 같기도 한 그런 여자분들이 기억보다 꽤 많아서 놀랐는데, 그 분들의 프로필 사진이 거의 대부분 애기사진 아니면 웨딩사진이더군요. 제가 올해 34살이니 제 또래는 진작 결혼을 했을 나이긴한데, 그래도 뭔가 씁쓸하기도 하고 잠 복잡미묘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남자분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도 꽤 있더라구요 크크


2) 나는 생각만큼 아싸가 아니었구나
제가 기억하고 있던 저의 20대는 분명히 아싸였거든요. 학교도 잘 안나가고 행사 같은것은 일절 참석 안하고, 대외활동이나 동아리는 생각도 안했구요. 집에 박혀서 게임이나 하고 비슷한 남자들끼리 몇명 어울려서 술이나 먹은게 전부인 제 20대였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정리하려고 처음 들어가본 카톡 숨김친구목록에는 861명이 떠있었어요. 심지어 한명한명 지우면서 떠올려보니 대부분 어렴풋하게라도 추억거리 한두개씩 정도는 생각이 났었구요.
나는 아싸였어, 20대 내내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방구석에만 있었어, 친구도 없고 외톨이였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왔었는데, 내가 그동안 뭔가 잘못생각했었구나 싶었습니다. 일부러 과거의 기억들을 왜곡시켜 왔던건지, 과거악화(?)를 하면서 거기에 매몰되있던건 아니었던건지 돌이켜보게 되네요.


3) 나는 생각보다 열심히 살았었구나
저는 사회초년생때 영업이 필요한 일을 했었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저는 그런걸 할 자신이 없었고, 1년 반만에 도망쳐서 회사로 들어왔었어요. 회사에서는 그냥저냥 조용하게 다녔구요. 네트워킹 한다고 술자리 다니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피해다녔었어요. 그래서 #이 붙어있는(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지만 카톡에는 없는), 업무용으로 저장된 번호가 몇개나 있겠어 했는데, 700개가 넘네요??
이직을 두번해서 회사 세곳의 직원분들 번호가 저장되어있기 때문도 있겠지만, 한명 한명 보다보니 그 분들과 함께 했던 업무나 사건들이 하나씩 생각이 나더라구요.
역시나 제 기억의 사회생활은 존재감 없이 조용하게 시키는 일만 했던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열심히 살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별 생각없이 월급루팡한다고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제 20대와 사회초년생 때의 기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던것 같아요. 스스로를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도 들구로요. 아직도 마음이 싱숭생숭 한게 이상하네요. 흐흐


+) 이 글은 하루종일 월급루팡을 했음에도 퇴근시간이 안되어 쓴 글입니다 크크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Janzisuka
22/11/03 18:43
수정 아이콘
저는 안그래도 한번 정리했는데 모르는 번호 받으니..
5-6년전에 회사다니면서 주말이나 휴가때 같이 행사뛰던 대표님이...괌에 가자고..프로젝트 같이하자고...
자영업자 된지 5년차인데 ㅠㅠ
백년후 당신에게
22/11/03 18:54
수정 아이콘
번호 저장할때 #을 넣으면 카톡에 안뜬다는걸 처음알았네요
지대호
22/11/04 09:48
수정 아이콘
카톡 초창기때부터 많이 돌던 팁이었는데 생각보다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22/11/03 19:06
수정 아이콘
저도 방금 보고 한 비읍까지는 정리해봤습니다 크크
고향만두
22/11/03 20:49
수정 아이콘
한번 강제로 하드리셋 당하면 편리합니다. 카톡도 이참에 지워버리세요
여수낮바다
22/11/03 20:57
수정 아이콘
대통령도 하신 분이 스스로 아싸라 하시다뇨 흐흐
14년전 번호이동한 후로 정리를 안하고 살았네요; 저도 하루 날 잡아 해야지해야지 하는데 언제 할지 모르겠네요
윤니에스타
22/11/04 09:34
수정 아이콘
업무 관련 인맥에 #을 넣는 건 좋은 정보이긴 한데 PC 카톡을 쓰는 사람으로서 하진 않을 것 같네요. 근데 카톡을 지운다는게 차단한다는거죠? 숨김, 차단 말고 아예 카톡을 영구 삭제할 수도 있나요?
지대호
22/11/04 09:47
수정 아이콘
네 숨김 차단 외에 삭제도 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083 [일반] 전화번호부와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정리한 이야기 [8] 지대호14367 22/11/03 14367 13
97082 [정치]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 사람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92] 홍철22999 22/11/03 22999 0
97081 [일반] 엉덩이 종기(표피낭종) 수술후기 [51] 기사조련가19486 22/11/03 19486 18
97080 [정치] 천공 발언은 까면서 문재인 발언은 쉴드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61] 홍철20542 22/11/03 20542 0
97079 [일반]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트지회 투쟁승리 [39] lexicon16561 22/11/03 16561 15
97078 [정치] 윤석열부부 멘토 자처하는 천공, 이태원 참사에 “엄청난 기회” 막말 논란 [158] 삭제됨22478 22/11/03 22478 0
97077 [정치] 경북 봉화 아연광산 사고는 아직 진행중입니다.. [23] 유목민13912 22/11/03 13912 0
97076 [일반] [책소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 파월의 FOMC 발언 즈음에 생각난 책 [30] 헤세드8311780 22/11/03 11780 7
97075 [정치] 대통령실과 참사가 일어난 골목과의 거리 1.5km [70] kurt20955 22/11/03 20955 0
97074 [일반] 앞으로는 전세계가 버블경제 터진 직후 일본처럼 될듯합니다 [59] 보리야밥먹자18962 22/11/03 18962 1
97073 [일반] 11월 FOMC 요약: 설레발 치지마라 [60] 김유라16938 22/11/03 16938 22
97072 [정치] 12년 간 재직했던 성장현 전 용산구청장 인터뷰입니다 [39] 아드리아닠19270 22/11/03 19270 0
97071 [일반] CNN 번역)미 기밀해제 정보, 북한의 대러 무기밀매 정황 포착 [36] 아롱이다롱이14589 22/11/03 14589 2
97070 [일반] 이태원 참사를 조망하며: 우리 사회에서 공론장은 가능한가 [53] meson15029 22/11/02 15029 47
97068 [일반] 어쩌다 그들은 타인의 비극에 조소하게 되었나 [102] NSpire CX II17060 22/11/02 17060 15
97067 [일반] 등기부 등본상 깨끗한 집을 사고 전재산를 날린 사례 [189] 마음에평화를23061 22/11/02 23061 25
97065 [정치] 이태원 참사가 용산경찰서만의 잘못이 아닌 이유 [21] 잉명14656 22/11/02 14656 0
97064 [정치] 세계적으로 정통보수 정치세력이 몰락하고 포퓰리스트 우파가 약진하는 추세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24] 홍철12070 22/11/02 12070 0
97063 [정치] 새 마스크 뜯자마자 썼는데…그 냄새 몰랐던 위험성 찾았다. [21] The Unknown A15403 22/11/02 15403 0
97062 [일반] 따거와 실수 [36] 이러다가는다죽어11178 22/11/02 11178 68
97061 [일반] 의경들의 희생으로 치안을 지켜온 대가, 이태원 참사 [607] 머랭이30977 22/11/02 30977 127
97060 [일반] 핸드폰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40] 능숙한문제해결사13313 22/11/02 13313 0
97059 [정치] 애도기간에 시위하지 말라? [53] 로사17438 22/11/02 1743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