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게에 업햄에 대해 과도하게 까인다는 글을 올리고 다시 좀더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영화에서 업햄이 겪었던 증상을 비 의학용어로는 흔히 쉘쇼크라고 부릅니다.
바로 포탄에 의한 충격이라는 이야기죠. 여기에서 Shell이라는 말을 쓰는 걸로 봤을 때 알 수 있는 건
포탄에 Shell 형태로 제조된 근대에 발견된 증상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전에도 있었지만 무시되었을 거구요.
정확히 1차 세계대전 영국군에서 나온 환자들에게 이 병명이 붙었습니다.

솜므, 이프르 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었던 영국군은 후송된 병사들 중에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병사들을 발견합니다.
특별한 외상이 없는데도 강한 두통, 이명현상, 불면증, 소리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겪는 일련의 병사들이 후송 온 것이죠.
전쟁 초기에는 이런 증상을 몰랐던 군의관들과 높으신 분들은 이들이 꾀병을 부리거나 전투를 거부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엄벌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총살당한 병사들도 꽤 되었죠.
만약 비율이 낮았으면 이대로 처리하고 묻어도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 문제는 비율이었습니다. 무려 대륙에 파병된
장병의 10%나 이런 증상을 앓고 있었던 거죠.(드러난 건만 이정도니...) 이들을 모두 처형시키거나 영창 보내거나 아니면
자살특공(실제로 지뢰제거나 선봉을 몰아 처리해버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시킬 수는 없는 것이었죠.
그래서 원인을 조사하다 보니 그들이 처음 원인이라고 지목한 건 포격이었습니다. 포격 때문에 사람이 이리 된다고 생각했기에
포탄을 따 쉘쇼크라고 이름 지은 것이죠. 물론 후의 연구에 의하면 포격이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조사가 진행되면서 전쟁은 격화 되었고 비율은 계속 올랐습니다. 솜므 전투만 해도 40%의 장병들이 쉘쇼크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정도 되면 2.5 명 한명이 업햄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상황이 이리 되자 기초적인
치료법이라도 발견하기 위해 영국군은 버둥거렸고 사실 별 소득 없이 전쟁을 마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쉘 쇼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지금도 한국 같은 나라는 물론 많은 국가들이 마찬가지만-정신력부족) 겁쟁이나 걸리는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영국의 전후 해당 위원회 역시 비슷했는데 여기를 대표하는 고트 공만 해도 그런 사람이었죠.
하나 의사들의 경우는 달랐고 1922년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 되어 현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초창기 논문들이 발표됩니다.
그리고 이런 연구는 후에 계속되어 전장에서 돌아온 귀환병이나 사회에서 충격에 기인해 이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죠.
여기에서 다시 집어 볼게 과연 이 질병이 나약한 사람만 걸리는 것인가 입니다. 1차 대전 초기 뻔히 이런 증상으로 후송되었을 때 어떤
처벌을 받을 것인지 알았던 병사들- 1914~15년의 영국 병사 상당수는 보어전쟁을 경험한 베테랑입니다.- 의 10%나 이 것때문에 후송
되어 왔습니다. 즉 죽느냐? vs 고통을 감내하느냐? 에서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 사람이 무려 10%나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솜므를 채웠던 신병의 40%나 마찬가지로 죽느냐? vs 고통을 감내하느냐?에서 죽을 수도 있는 자신도 증상이 있다고 표출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실제 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이보다 높을 걸 추측할 수 잇을 것입니다.
결국 1차 대전이 끝나고 계속된 연구 끝에 나온 결과는 전투 경험자 98%는 업햄 처럼 행동하든 아니면 광기를 보이든, 그나마 엄청 침울해지든
이런 증상에 걸린다는 것이죠.
사실 이정도 되면 모두 다 전투 후에는 쉘쇼크를 겪게 되며 단지 증상의 차이만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전장에서
업햄을 마냥 비웃을 수 있을까요? 이 증상의 차는 사실상 복불복인데 말이죠.
이걸 마냥 나약하고 비겁한 증상이라고 보면 차후 우리나라에 대규모 정신적 외상을 발생할 상황(전쟁, 대규모 재해, 사고)가 발생하여
이런 증상을 앓는 사람을 그렇게 판단한다면 좀 큰 사회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