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본에서 살고있는 1인입니다. 좋은 점 나쁜 점 두루두루 다 있는데 좋은 점 중 하나가 NHK라는 양질의 공영방송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신료를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저한테는 오히려 가성비라고 생각이 됩니다. NHK는 영국의 BBC에 이어 양질의 다큐를 만들기로 유명합니다만 예능프로도 당연히 제작하고 있고 수준이 꽤나 높습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예능다큐? 다큐예능? 프로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름하야 마개조의 밤(魔改造の夜). 타이틀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작업복에 용접마스크를 쓴 신비한 주최자가 항구의 어둡고 수상한 창고에 엔지니어들을 초청해 광란의 개조파티를 연다는 컨셉입니다. 비밀의 주최자가 마왕같은 음성변조된 목소리로, 제군, 마음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드러내, 몬스터를 세상에 푸시오! 라고 외치고 중계아나운서가 모노즈쿠리(물건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로 향한 사랑과 꿈과 로망, 그리고 약간의 무모함! 마개조의 밤에 오신걸 환영합니다!라고 멘트를 치면서 시작합니다.
2년전에 시작해서 비정기로 방송되고 지금은 제 13회차까지 방송됐습니다. 유튜브에 마개조의 밤으로 검색하면 1회차를 감상할수 있습니다. 포맷은 주최자가 발표한 마개조 과제에 세 팀이 도전하는 형식으로 대체적으로 누구나 아는 대기업,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업계에선 정평이 있는 중소기업, 대학 공고 등 교육기관 세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과제 발표후 한달반의 개발기간을 주고 마개조의 밤에 참가하여 결과를 겨루는데 기체 개조 코스트는 5만엔으로 제한됩니다. 마개조라는게 그렇듯이 장난감이나 일상적인 가전제품의 리미터를 해제하여 몬스터 머신으로 만드는건데 1회차의 과제는 토스터를 개조해서 식빵을 높이 튕기기와 아장아장 걸어가는 강아지장난감을 개조해서 25미터 레이스를 하는것입니다. 내노라하는 엔지니어들이 회사의 이름을 걸고 승부를 하지만 상대팀이 엄청난 몬스터를 만들어내면 순수하게 응원하고 상대방의 머신이 고장으로 실패하면 같이 아쉬워하는 동업자정신을 볼수 있습니다.
이 마개조의 밤에 유독 회자되는 신회차(神回)가 있으니 바로 전동마사지기를 개조해서 25미터 레이스를 하는 회차였습니다. 품번에 빠삭한 피지알러 여러분들이라면 아주 잘 아시고있는 그 전동마사지기입니다. 아이템이 아이템인지라 성적인 내용에 무척이나 엄격한 NHK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살짝 한계에 도전해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나운서: (모델출신 여자 게스트를 향해) xxx씨, 이 제품을 사용해보신적은 있는지요?
게스트: ...... 아 ..... 있죠.....어깨라든가....
아나운서: (레이스 중계중 질주하는 머신을 보며) 간다(이쿠), 간다(이쿠),피닛쉬이이이이이-----, 빨랐습니다!
개조의 룰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전동마사지기의 진동을 동력으로 할것
2. 바퀴 사용 금지
3. 25미터 드래그 레이스
참가팀은 자동차회사 스즈키, 미니카 모터로 유명한 마부치, 로봇콘테스트 명문 토요하시기술과학대.
인상적이였는 말들:
우승팀 리더: (첫 날 개발컨셉을 정하면서) 모두가 두근두근 설레는 마개조!
우승팀 리더: 일 하다보면 매뉴얼이나 룰이 점점 많아져요.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하면 안되는게 계속 늘어나죠.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새로운 상품이 안나옵니다. 그래서 두근두근이라는 컨셉을 정했습니다.
우승팀 리더: 왜 잘되는지 모르겠다는게 무서워. 이유도 모르는채로 그냥 만들고 있어.....
우승팀 엔지니어: (머리를 집어띁으며) 왜 잘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는게 엄청 기분나빠.....
우승팀 리더: 오늘은 그냥 어쩌다보니 이긴겁니다. 저희들이 싸우는 전장은 라이벌들이 득실대죠. 그 가운데서 근소한 차이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그렇게 매일 개발하고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긴건 내일 지는것의 시작일수도. 그렇게 하루하루 기술을 갈고닦아가는겁니다.
우승팀 리더: 전 40이 넘도록 관리직을 달지 못한 일본에 숱하게 있는 샐러리맨중 한명입니다. 그럼에도 이 프로에 나와서 가슴이 두근거릴수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설렐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두근두근 셀레시길 바랍니다.
저는 티비로 시청했지만 아마존 프라임에서 시청할수 있는거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전동마사지기가 이렇게 달릴수가 있다고? 라는 충격을 받을겁니다.
애들 장난같은 테마에 다 큰 어른들 프로들이 자존심을 걸고 철야를 해가면서 도전하는걸 보면 이래서 제조업강국이 된거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공돌이 여러분들도 언젠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몬스터를 소환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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