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3/12/05 17:47
pointless 한 우주 이기 때문에 value란 관념일 뿐이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쾌락은 생물학적이고, 의미는 문화적이다. 쾌락은 현재에 집중할 때,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 이 구절이 행복을 아주 잘 정리한것 같네요
23/12/06 21:36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에서도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에 가까워질 수록 행복에서 의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는 내용도 주된 내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23/12/05 17:53
행복 ⊃ 쾌락이죠
도파민(보상,쾌락), 세로토닌(만족), 옥시토신(사랑,유대), 엔돌핀(진통(鎭痛))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삶이 결국 행복한 삶인것 같습니다.
23/12/06 21:39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행복을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호르몬은 현상일텐데요. 그 요인은 무엇인지? 과연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어떻게 발생시키고 유지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3/12/05 18:01
행복은 모든 긍정적인 감정의 총집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거대한 개념이고 개인마다 가치관과 신체와 처한 상황이 다르니 아무리 분류하고 분석해도 본질을 꿰뚫지는 못하는것 같아요.
23/12/06 21:29
먼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언하자면 심리학에서 행복한 감정(쾌快) 상태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긍정적인 감정들의 상대적인 비율로 측정합니다. 제 생각에 행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결국 내가 정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타인의 의견과 선행 연구들을 참고하는 것이 효율적이겠죠. 그것이 곧 자아성찰이 아닐까 합니다.
23/12/05 18:17
고통스럽고 빡센 일이 행복감을 줄 때가 있다는 걸 보면 행복, 고통, 쾌락의 관계는 더 미묘하죠. 대개 책들도 이 관계를 다르고. 혹시 안 읽으셨다면 <행복의 과학>, 존 메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 추천드립니다.
23/12/06 21:16
읽어주셔서, 그리고 책 추천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빡센 일이 행복감을 준다면, 그 이유는 빡센 일의 과정이나 결과가 의미가 있을 때 행복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connecting the dots’ 의미 창출 작업 과정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데요. 행복, 고통, 쾌락의 관계에서 어떤 부분이 미묘한 걸까요?
23/12/05 19:51
사정 후 현타를 감안하면 행복은 단순 쾌락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최근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 원거리 교제(?) 중인 아내와 잠들기 전 통화하다가 문득 그녀가 "많이 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임을 감안하면 저는 온전한 내 편을 느낄 때 행복을 느끼는가 싶기도 합니다.
23/12/05 20:22
쾌락이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뿐, 쾌락 = 긍정적 호르몬(도파민,엔돌핀, 세르토닌 등등)으로 치환한다면 행복 = 쾌락= 긍정적 호르몬이 맞다고 봅니다.
성행위시의 쾌감과,일에서의 인정받을때의 성취감과 햇살과 자연을 볼때의 소소한 행복 등으로 우리는 다 다른 행복이라 느끼는 것들도 이러한 호르몬의 분비량의 차이에 기인할 뿐이라고 봅니다. 결국 스트레스 나 고통도 호르몬괴 연관된걸 감안하면 이어져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우리는 유전자의 노예이자 호르몬의 노예...
23/12/06 21:47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행복을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호르몬이 현상이라면, 그 요인은 무엇인지? 과연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어떻게 발생시키고 유지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3/12/05 21:18
사실 쾌락으로 치면 약을 꾸준히 투여하는 것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쾌락이 아닌 진정한 행복을 논의하게 되는데.. '진정한 행복'은 결국 검증불가능한 그 무엇이죠. 말씀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을 섞어버린 것 같은데 행복이 사람 삶의 목표라는 게 그리 지당한가? 아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되새겨보면 성인들은 직접 행복을 얘기한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괴로움을 없앤다고 했는데 사실 즐거움도 제꼈죠.
23/12/06 22:3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이 목적이 될 수 있는지는 내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걸 정의하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 곧 자아성찰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삶의 목표'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죠. '굿라이프'에서는 일종의 제안이라고 하면서, 삶의 목표를 긍정하는 관점입니다. 다만, 삶의 목표는 지극히 주관적이어야 한다고 보고, 아이에게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 노모에게 자주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 같은 개인적이고 작은 의미에 주목합니다. 그 목표를 다루는 과정에서 적극적이고 건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최고의 선 summum bonum'으로 정의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참고해볼만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의 선택이겠지요. 부처는 쾌락이 고통을 불러온다고 하신 것 같은데, 행복의 기원을 참고해서 해석하자면, 사람은 쾌락에 금방 적응하기 때문에 그 쾌락은 유지될 수 없고, 쾌락의 상태를 기본상태로 인식해버리게 되면, 쾌락이 유지 되지 않는 대부분의 상태는 고통이 되는거겠죠. 쾌락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고통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의 삶은 쾌락과 고통을 순환하고, 그것이 윤회이고, 쾌락과 고통의 굴레를 끊기 위해 수행을 하고, 그것을 마침내 끊어내면, 해탈이라고 표현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 심리학처럼 실험이나 서베이 같은 과학적 방법을 활용한 것도 아닌데, 현상을 보면서 마음의 작용을 이해했을텐데,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불교가 인정받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23/12/05 22:12
맛이 좋은 음식과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오래 살아서 맛이 좋은 음식을 많이 먹기 위함이 아닙니까?? 음..
23/12/06 00:31
행복은 세로토닌이고 쾌락은 도파민. 세로토닌(정상파)은 현재에 만족하게 만들고 도파민(변화)은 방향성을 잘 설정할 경우 행복과 조화로울 수 있죠.
옥시토신은 사랑과 연민. 마찬가지로 세로토닌이 함께 해야 합니다. pointless universe라는 개념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죠. 사실 바꿔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해집니다. 우리는 한 점에서 시작했어요. 우리가 신 그 자체였으며 지금도 신이란 말입니다. 단지 신격을 온 우주 곳곳에 균등히 나누어 가졌을 뿐. 그러니 이 우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해석에 의해 완성됩니다.
23/12/06 22:39
범신론?? 인가요?
저는 생각해본적 없는 새롭고 재미있는 접근인데요, 그런데 신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효용이 있을까요? 실천적 접근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런게 궁금합니다... ^^;;;
23/12/06 23:44
범신론.. 이긴 하죠. 온 우주에 골고루 흩어진 신이라니. 그 중 일부가 모여서 발생한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니. 당연히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죠?
어디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영혼, 신성, 신 역시 사실 각자가 정하기 나름인 개념일 뿐입니다. 과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모든 영역에서 말이죠.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효용이 있을까요? 좀 더 진심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내 처지와 온 우주가 결국은 내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 내가 선택할 수 없던 모든 것들이 실은 역시나 과거의 내가 한 창조의 창발이라는 것. 그러한 생각과 함께한다면 과거에 대한 불평 불만 후회,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 끔찍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실을 좀 더 즐기며 충실히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신(다만 온 우주에 흩어져 초능력 같은건 없는)이기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두지 말고 무한한 꿈을 실현할 가능성을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굳이 이 세계를 만들고 내가 여기 아바타에 접속한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즐겁게" "행복하게" "탐구하며" "이해하며" "일부러 잊었던 모든 것들"을 알아내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뭐, 인생은 모든 것이 고통이라며 평생 고통받다가 끝내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 뒤라면, 조금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현실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나 내려놓고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신이잖아요. life does not happen to you, it happens for you.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가 나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걸 고통으로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신인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죠. 즉, 우리는 객관적으로 현실을 살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23/12/07 16:11
대략 제가 이해하기로는
1. 신의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신이라는 사실은 정하기 나름이다. 왜냐하면, 과학이 밝혀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신이라고 정하게 되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곧 신이라고 정하게 되면,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인 것 같은데요. 아마 일어난 일이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유리하다는 말씀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인간은 이해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해서 설명하기도 하죠. 과학이 설명을 대체하게 되면서, 신앙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기도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내가 신이라고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것으로 두고, 인정하면 되지 않을지요? 신이 있든 없든, 내가 신이든 아니든, 그냥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 뿐 아닐지요? 내가 신이라고 생각하든 아니든 그게 뭐가 달라질까요? 말씀하신대로 행복의 전제는 주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체성은 내가 원하는대로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 합리성이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쉽게 깨어질테니까요. 확률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쉽게 말하면 나만의 정의가 주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정의에 신이 들어가면 뭔가가 좋아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오히려 신을 상정한 부분에 논리적으로 구멍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일일 뿐, 그냥 지금 여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극복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지 않을지요?
23/12/07 17:08
우리가 신이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나 필요성을 물으신게 아니라 효용을 물으셔서 답을 드렸을 뿐이죠.
저는 효용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신이라는 생각이 먼저 온 케이스라, 앞서 1번에서 말했듯 각자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pointless universe가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방황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해석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우주를 내 내면 세계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우리가 신이라는 것은 그 수많은 해석 중 제가 받아들인 것을 소개한 것이고요. 완벽한 객관적 진실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가 밝혀낸 우주의 과학법칙들도 좀 더 깊이 숨어있는 진리의 사영일 뿐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낸 모든 관념들은 객관이라 부를 수 조차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두는 것이 아무 생각도 안하는 것과 동치가 되진 않습니다. 스스로의 주관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과학이 한꺼풀씩 벗겨낼 때마다 내 생각을 조금씩 수정하며 살면 그만입니다. 생각이 깨어진다는 두려움이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합니다. 대쪽같은 믿음이 아니라 그러든가 말든가라는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차피 범신론은 무신론의 다른 버전일 뿐입니다. 물질, 에너지, 의식, 공간이 신으로 환원되었을 뿐인거죠. 빅뱅이고 로고스에서 시작했다는 패러다임은 수천년간 그대로입니다. 상대가 소개한 생각에서 무엇에 핵심이 있는가를 관점을 바꿔가며 생각하신다면 더 좋은 고찰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중요한건 우리가 신이라는게 아니라, 그 주장의 효용 따위가 아니라, 이 우주를 살아가는데 있어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내 마음대로 이 세계를 정의하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의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게 우리가 신이라는 것일 뿐이죠. 혹자는 님과 같은 생각조차도 아무런 효용이 없고 그냥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뭣하러 온갖 실존적 의문이 가득 담긴 책들을 읽고 이런 장문의 고민을 하고 의미부여를 하고 있느냐고 말이죠. 오히려 아무런 효용이 없기 때문에 이런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꼭 뭔가 실천을 할 수 있는 생각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각의 자유와 행복을 제한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어차피 우리 모두는 답을 다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행복하게 즐겁게 자유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 뼈대에 붙일 살은 자신의 주관밖에 없습니다. 음식을 내 몸에 갖다 붙인다고 신체기관이 되질 않고, 먹어서 소화를 해야 내 것이 됩니다. 객관이란 주관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음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며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며 적응 못하는 니가 이상한 거라며 가스라이팅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죠. 한낱 인간인 내가 어떻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냐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신이란 주장은 정말로 아무런 효용을 갖지 못할까요? 결국 관점을 뭘로 둘 것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처음 말씀드린 바꿔 생각하면 모든게 간단해진다는게 그 말이죠. 어... 그리고 범신론은 우리가 객관이라 부르는 것과 충돌할 요소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23/12/06 09:24
굿라이프도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과 책 추천 감사합니다. 사춘기는 원래 사십에 와서 사춘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해 번민하게 되네요. 따흑 ㅠㅠ
23/12/06 22:40
저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계속 고민하고 고민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외롭지 않아요~~ 같이 화이팅!!
23/12/06 22:40
읽어주셔서 추천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근 추천 있으면 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나보구나 해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