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무한한 경쟁의 시대에 놓인 우리는 항상 결과물을 요구받으며 살고 있다. 성과주의는 이에 상응하는 방식 중 하나로, 이루어낸 실적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것은 분명히 동기를 유발하고 경쟁을 유발한다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결과 걱정 없는 세상에서 태평하게 사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무릉도원으로 도피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한 체제란 존재하지 않으며, 특히 극단화는 항상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가 그랬듯 중요한 것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꾸준하게 기울이는 노력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경계하는 자세이다. 만약 이러한 성찰없이 성과만을 추구한다면 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성과주의의 폐해를 살펴보는 영화 '나이트 크롤러'와 게임 '리갈던전'을 소개한다.
당신이 본 뉴스는 진실인가? -영화 나이트 크롤러(Nightcrawler)와 성과주의 언론
영화감독 댄 길로이의 데뷔작 '나이트 크롤러'는 성과주의가 집어삼킨 언론을 조명한다. 작품의 제목 나이트크롤러는 지렁이라는 뜻으로 밤에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영화의 주인공 루이스 블룸을 상징하는 용어로, 2005년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브로크백 마운틴'과 '스파이터맨: 파 프롬 홈' 등에서 열연한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그 역할을 맡았다.
나이트 크롤러, 댄 길로이 감독 (2014)
언론사의 최고 관심은 특종이다. 언론사를 유지하는 것은 돈이며, 그 돈은 뉴스를 보는 시청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좋은 언론사와 (상업적으로) 성공한 언론사는 동일하지 않으며, 언론의 목적이자 전달해야 하는 '시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와 '알고 싶은 정보' 역시 꼭 일치하진 않는다.
성공한 언론사의 지표는 수치화된 시청률과 조회수이다. 시청자라는 파이는 한정되어있기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는데, 이들의 보도 경쟁은 소식을 더 빨리 전하고자 하는 속보 경쟁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이슈를 전하고자 하는 자극 경쟁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들은 진중한 이슈보다는 빠르고 자극적이며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잔혹 범죄 사건은 이 둘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소재이자 나이트크롤러의 좋은 먹잇감이다. 그들은 경찰 무전을 도청해 사건이 발생할 장소를 미리 알아차린 후 언론사 취재팀보다 한발 빨리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방송국 장비와 맞먹는 고급 카메라를 통해 사건의 참상을 생생하게 녹화한 이들은 지역 방송국에 자신들의 영상을 판매한다. 특종을 원하는 언론사와 특종을 담아내는 나이트크롤러, 이들의 유착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피해자를 살피기 위해 내려다보는 구조대원과 그것을 찍기 위해 내려다보는 루이스 블룸
이는 잔혹 보도와 범죄 보도를 해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전쟁으로 희생된 아이의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평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외면 중인 일반 대중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불어넣는다. 또한 범죄 보도는 범죄유형을 소개함으로써 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 이면에 있는 사회적 문제를 성찰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언론의 목적을 잊은 채 성과에만 집착하는 보도는 이러한 의도가 아닌 사고의 잔혹성과 엽기성에만 주목한다. 불필요한 상황 묘사는 사고를 잊히고 싶은 피해자와 주변인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범죄수법의 자세한 설명은 모방 범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만화 '대털'의 작가 김성모 역시 적외선 굴절기의 재료를 알고 있었으나 모방 범죄를 우려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이트 크롤러' 속 루이스 블룸과 방송국엔 위와 같은 가치가 배제되어있다. 그동안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방송국의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 분)는 루이스의 자극적인 영상 덕분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시민들이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안 그녀는 더욱 적나라한 영상을 찍어오길 요구한다.
돈맛을 제대로 본 그의 만행은 더욱 과감해진다. 루이스는 구조대원보다 일찍 사고 현장에 도착하자 더욱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현장을 조작한다. 잔인하게 살해된 일가족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그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가 아니라 잔혹함에만 초점을 맞추어 현장을 찍기에만 급급하다.
일가족 살인사건을 촬영하는 루이스 블룸
물론 언론은 언론의 자유가, 시민은 시민의 알 권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언론의 사익추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공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알 권리는 피해자의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 위에 있지 않다.
루이스가 자신을 바라보는 카메라를 향해 남긴 "인생에서 최악의 날에 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은 타인의 고통마저 자본으로 환산되는 성과주의 사회 속 보도 현실의 실태를 조명한다.
'나이트 크롤러'의 매력이자 시사점은 감독이 루이스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본격적으로 CEO가 된 루이스 블룸이 부하직원들의 성공을 위한 덕담을 전해주고 현장을 향해 질주하는 업무 차량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이와 동시에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인상 깊은데, 흥겨운 비트의 엔딩 곡 'If It Bleeds It Leads'는 영상의 활기를 더해준다. 이 때문에 음악이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If It Bleeds It Leads - Nightcrawler Soundtrack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루이스 블룸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 죄를 숨기며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성과주의 경쟁의 승리자다. 소시오패스인 그의 얼굴에서 죄책감을 찾아볼 순 없으며 계속된 악행은 해피엔딩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는 작중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적법하지 않은 행위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적법하게' 타인의 고통을 들춰내 자신들의 먹이로 삼는 현실의 언론일 것이다.
'리갈던전'은 국내 인디게임 '레플리카'의 제작자 SOMI의 작품으로, 작품의 주인공은 경찰대학교를 갓 졸업한 후 경찰서에 새로 부임한 경위 전경이다. 경찰서의 형사2팀장을 맡은 그녀는 경찰서의 형사 정보 시스템 CIS(Criminal Informating System)을 통해 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서류를 작성하는 일을 맡는다.
리갈던전, 2019년 5월 7일 출시, 가격: 7500원
'레플리카'가 개인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감시를 주제로 삼았다면 '리갈던전'의 핵심 주제는 성과주의 사회에 대한 고찰이다. 국가기관에서 도입한 성과연봉제도가 경찰서에도 적용된 이후 직원들은 기소 의견 송치를 통한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 1조 1항에 적혀있듯, 경찰의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익의 보호 및 사회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피의자를 입건한 후, 기소/불기소 여부에 관한 의견을 작성해 검찰청에 송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성과연봉제도는 경찰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주목한다. 훌륭한 경찰을 판단하는 척도는 수치화된 점수이며, "미담은 0.5점, 절도는 5점, 살인은 12점"이라는 게임의 캐치프레이즈와도 연결된다. 이는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보다 피해자들이 범죄에 노출될 때까지 방치하다가 체포하는 것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성과점수는 치안의 바로미터가 되어버린다.
'리갈던전'은 게임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연출을 통해 성과주의가 잠식한 행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에 대한 서류작업을 마친 플레이어는 피의자와 심문을 개시하며, 그 과정에서 법령과 판례의 해석을 통해 최종 수사 의견을 작성해야 한다.
게임은 피의자와의 심문을 '던전 입장'으로 표현한다. 본디 던전(Dungeon)이란 지하감옥을 의미하여, 현대 게임에서는 몬스터를 무찌르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냥터라는 뜻으로 많이 통용된다. 피의자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해 실적을 쌓는 것이 던전에서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보상을 획득하는 행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성과등급이 상승하면 RPG 게임의 캐릭터처럼 플레이어의 능력치가 상승한다.
'무가지 절도사건'은 위의 내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사건의 피의자는 폐지 수거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과 그의 중학생 손녀이다. 이들은 무료로 배포하는 전단지를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범죄요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가지를 재물로 판단할 수 있는지와 절취의 고의 여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신문을 가져갈 당시 무가지를 배포하는 피해자를 보고 있었다는 노인의 진술을 고려해보면 절취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 반면 출근시간이 넘으면 항상 남은 신문을 주변에 버렸다는 피해자의 진술에 주목한다면 피의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플레이어는 종합한 상황을 고려하여 기소와 불기소 중 어떤 선택이 경찰윤리에 부합하는지 고민한다.
플레이어의 사건 해석에 따라 이들을 공격할 수도, 보호할 수도 있다.
성과주의는 플레이어의 고민을 덜어준다. 성과연봉제도에서 가장 훌륭한 경찰의 선택은 노인은 물론 현장에 같이 있던 손녀까지 특수절도법으로 엮어 5점(단순 절도는 2점이다)짜리 몬스터로 만드는 것이다.
특별히 피해당한 것이 없기에 처벌할 필요성 역시 느끼지 못한다는 피해자의 말은 귀담을 필요가 없다. 절도죄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 없는 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적을 무찔렀다는 표현과 함께 손에 쥐여주는 골드는 어딘가 남아있는 석연찮음을 희석하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나이트 크롤러'와 '리갈던전'의 공통점은 성과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권선징악적 내러티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권선징악을 담보해줄 수 없는 노릇인데, 성과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성과에도 금전적 보상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성과주의가 쓸고 간 흔적에 주목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과 행정이 이를 망각했을 때 피해받는 사람들, 성과만을 추구하기 위해 희생된 가치와 인간성을 보여줌으로써 주객이 전도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무한한 경쟁을 요구하는 현대 시대에 성찰이 결여된 극단적 성과주의는 결국 주변뿐 아니라 자신까지 갉아먹을 것이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성과지향"이라는 시스템의 목적이 나쁜 것은 아니죠. 사람들이 이 시스템에서 효율적으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목적이 수단을 전도하는 순간부터 고민할 거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모두가 겪은 예가 거의 모든 종류의 시험이죠. 학업성취도 (또는 수학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치루는데, 대부분은 시험을 잘 치기 위해 공부를 하죠. 그러다 보니 시험 점수만을 잘 얻기 위한 자질구래한 방법들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거겠죠. 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지 않도록 성과체계를 수립할 수 있는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