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베타 끝물 무렵부터 하스스톤을 해 왔지만 전설을 찍은 적은 없었습니다. 아예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죠. 전 플레이시간이 딱히 많은 유저가 아니었고 등급전 대신 투기장을 훨씬 더 즐겨 했거든요.
저번 달에 전설을 찍기 전에 등급전에서 5급 이상으로 올라가본 적은 두 번이 있었습니다. 오리지날때 레이나드흑마라고도 불리는 위니흑마를 하다가 3급까지 가본적이 있었고 올해 1월쯔음에 기계법사를 플레이하다가 1급3별까지 가본적이 있었습니다. 레이나드로 3급까지 갔을때는 더 할 시간도 없었고 전설을 찍고픈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아쉽단 생각도 없었지만 기계법사를 플레이할때 1급3별에서 3급으로 떨어질때는 정말로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4월에 전설을 찍으러 갔던 것은 이를테면 재수였던 셈입니다.
5급까지 가본 적은 꽤 많은 편인데, 하스스톤 대회를 보다보면 대회에서 나온 플레이를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대회덱을 아무거나 카피한 덱으로 놀다보면 5급까지 가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5급까지는 정말 쉬웠어요.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5급부터가 하스스톤 등급전의 진정한 시작이죠.
4월에, 제가 시간이 좀 생겼고, 마침 핸드폰으로도 하스스톤을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투기장 엔딩은 많이 봤으니 이제 등급전 엔딩만 보는 일이 남았습니다. 하스스톤을 이제 그만 좀 덜하고 싶었는데, 하스스톤 등급전 엔딩을 보면 미련을 떨쳐낼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아 물론, 전설다는것뿐만이 아니라 아시아1위쯤은 찍어야 진엔딩봤다 말할 수 있는거 아니냐 하시겠지만 양민이 그럴 실력과 에너지가 어딨겠어요 ^^;
4급까지는 한 이틀가량에 걸쳐서 쉬엄쉬엄 갔습니다. 이 때 선택한 덱은 양심 판 돈으로 중동에빌딩을 살 수 있는 돌진사냥꾼이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5급까지는 쉽잖아? 그럼 빨리빨리 가자.
도중에 가끔 악마가 혼합된 위니흑마를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템포가 빠른 덱이라는 점에선 같죠. 그리고 하나 더 있는 이유가. 전 덱을 대응형 / 필드제압형 / 명치형의 세 부류로 나누는데 이 중에서 명치형 덱을 플레이를 잘 못합니다. 그런데 속사까지 나오고 대회에서도 무양심자랑하던 돌진사냥꾼은 제가 할 수도 있을 만큼 쉬워보였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돌진사냥꾼한테 초상화가 터지다보니 이제 저도 명치형 덱을 플레이하는 방식을 약간이나마 체화를 한 거죠. 얼마나 쉽나요. 1마나에 1딜씩만 넣어도 1~5마나까지 15딜 넣는데 무기나 킁킁이 폭덫땡겨쓰기 등등으로 더 많이 때릴수 있고 그러고 너덜너덜해진 상대방을 6마나, 혹은 7마나로 요리만 하면 되요. 저의 뛰어난 산수실력을 모니터 너머의 상대방에게 보여줄 때가 된 거죠.
효과는 굉장했습니다.
원래 이걸로는 5급까지만 할 생각이었는데 4급 3별을 갔어요. 이쯤에서 지다 이기다 몇번 반복되니까 덱을 바꾸기로 합니다. 그리고 사실 돌진사냥꾼은 별로 재미도 없었어요. 역시 명치만 치는 덱은 제 성향에 안맞는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구요. 저는 게임시간이 좀 더 긴 덱을 플레이하고 싶었고, 선택한 것은 중후한 음색으로 예의바른 대사를 가지고 있지만 대회에선 역발산기개의 기세를 내뿜는 진정으로 강한 그 남자였습니다. 말퓨리온 스톰레이지. 드루이드.
그 날은 목요일이었습니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놓고 꼼지락꼼지락 열심히 했어요. 제가 핸드폰게임 해본 건 몇 개 안 되지만 그 중에서 배터리를 가장 빨리 태워없애는 게임은 카카오바둑이었는데 그 자리를 하스스톤이 꿰찼습니다. 에너자이저도 하스스톤을 등에 업고서는 팔굽혀펴기 백개밖에 못할거예요.
처음엔 조금 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렵진 않더군요. 자군야포자체가 별로 어려운 덱이 아니고 무엇보다 대회에서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많이 봐왔으니까요.
제 성향에도 잘 맞았습니다. 제가 덱을 대응형 / 필드제압형 / 명치형으로 나눈다는 말은 했었죠? 이 중에서 필드제압형은 하수인 위주로 덱이 짜여지며 플레이의 대부분을 하수인을 내려놓고 움직이는 덱을 뜻합니다. 그렇게 ‘필드를 먹은 다음’ 피니시를 넣죠. 그 피니시는 레이나드나 자군야포처럼 돌진과 공격력버프일수도 있고, 기계법사처럼 화염구일수도 있습니다. 잘 풀리면 그냥 하수인으로 때려 죽일수도 있구요. 제 생각에 자군야포는 주문은 10장이 넘지만 그 중에서 급속자극은 하수인을 내려놓기 위한 수단이고 나머지 천벌휘둘자군야포는 모조리 딜 넣는 카드인 필드제압형덱이었습니다. 그런 덱이 제 성향에 잘 맞더라구요.
처음에는 케잔 비술사와 화염의 드루이드를 넣어서 쓰다가 사냥꾼을 잘 안 만나길래 망령과 간식용좀비로 바꿨더니 승률이 올라가더군요. 간혹 만나는 전사, 흑마술사, 사제는 모조리 다 잡아먹었고 대놓고 거울상쓰는 마법사에게는 거의 졌으며 성기사한테도 승률이 좀 낮았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1급1별을 갔는데 문득 보니 3승 10골드를 안 주는 겁니다…… 30승을 넘게 한거죠.
30승을 했다는 가정하에 4급3별에서 1급1별을 갔으니 30승17패를 했다는 소린데 거의 50게임을 했다는 거죠. 말 그대로 하루종일 했어요.
어차피 이제 골드도 더 안주겠다. 밤도 됬겠다. 나중에 하자. 생각하고 잤습니다.
그 다음날, 금요일 등급전을 돌리는데 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주술사가 나와서 들어보기만 하고 본적은 없는 이상한 하수인을 내려놓습니다. 그 놈 4마나 주제에 스텟이 실한 것이 투기장에서 사기일 것처럼 생겼습디다.
검은날개둥지가 열린날이었습니다.
주술사뿐만이 아니라 어제 간간히 비전골렘과 폭발의덫을 들고 오던 사냥꾼이 뜬금없이 사바나사자와 빙결의덫을 들고 등장합니다. 으아아아 사악한 놈들 저리 꺼져라 꺼져! 미드레인지 사냥꾼이랑 주술사한테 영문도 모르고 속절없이 두들겨 맞으면서 별을 잃어갔어요. 이 별은 너의 별 저 별도 너의 별. 멘탈이 무너지고 2급이 무너지고 돌진사냥꾼 다시 한두판 하다가 또 지고 정신차려보니 3급1별이 되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별 10개를 잃었어요. 세일러문이 가르쳐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에 태양까지 합쳐야 별 10개인데 그걸 2시간도 안되서 잃었어요. 태양계의 멸망이 이렇게나 빠르다니. 수십억년은 걸려야 하는 것 아니었나?
미드레인지 사냥꾼은 원래 힘든게 맞는 걸로 아는데 주술사 상대하는것도 원래 힘든건가? 영문을 모르겠더라구요. 그 때까지 몰랐던 거죠. 등급전 유행이 빠르게 변한다는 걸. 그 전날 등급전을 지배하고 있던 드루이드를 때려잡기 위해 카운터덱이 등장할 시기가 왔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드루이드를 좀 더 해보긴 했는데 3급을 탈출할 수가 없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뭔가 다른 덱없나. 찾아보려고 인벤을 들어갔습니다. 인벤 아이디도 없는 몸이지만 가끔 대회덱 찾아볼때만 들어가곤 합니다.
거기서 하나 둘 찾아보다가 제 마음을 확 사로잡는 덱이 있었습니다.
출처 링크
http://hs.inven.co.kr/dataninfo/deck/view.php?idx=50693
개미신님의 레이나드흑마술사였습니다.
그것도 말가니스 같은 악마친구들이 혼합된 위니덱이 아니라 덱을 만든 게이머인 레이나드의 이름을 붙여줘야만 될것 같은 고전적인 구성의 위니흑마덱 말입니다. 세상에 저 종자에 늑대우두머리를 보세요. 공허소환사에 알같은건 옛날 옛적 낙스라마스때 들어간거고 기계패치때 들어간건 임프폭발뿐이고 이번에 바뀐거라고는 허수아비골렘대신 임프두목 들어간 것밖에 없는데 덱에서 막 반년은 발효된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으세요?
사실 레이나드가 나왔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습니다. 막강한 효율을 보여주는 덱이 한둘이 아닌데 레이나드처럼 코스트 빡빡하게 써가며 필드에 스텟을 던져넣는 ‘정직한’ 덱이 아직 생명력이 있단 말야? 그런데 대회에 쓴 덱이잖아. 이게 통한다는 확신이 있어서 나온 거 아니겠어?
한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개미신님은 HCC3이었나 양반팀 우승할 때 인상깊게 본 분이기에 호감도 있었구요. 지금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는 덱이 많은 것 같으니까. 나도 템포빠른덱으로 맞불을 놓자.
그런데 통하더군요? 마치 전자기타음으로 만들어진 배경음으로 충만한 매드맥스에 베르디의 dies irae가 던져진 것처럼 잘 어울렸습니다. 별이 꾸준하게 차오르는게 느껴져요. 플레이하면서 확신이 들더라구요. 지금 마구 이기지는 못해도 이대로 경기수를 늘리면 ‘승률’이 있는 이상 별을 꾸준하게 누적시켜서 전설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금요일 자정을 넘기고 토요일 오전 4시까지 핸드폰들고 게임을 하다가 잤습니다. 2급에서 3시간동안 헤메다가 결국 잘 때는 2급1별에서 잤습니다.
그 다음날, 토요일.
일어나보니 12시였습니다. 정신차리고 게임을 하는데 막 연승을 하더군요. 시립도서관을 가는 도중 버스에 타고서도. 하스스톤을 했습니다. 그 전날까지 고생한 걸 생각하면 너무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전설까지 뚫었습니다.
시립도서관 복도 의자에 앉아서 전설 찍는 순간 주먹을 꽉 쥐고 마음만은 히딩크가 되어 파워풀한 모션과 함께 예쓰를 외쳤는데 주위에 있던 고등학생들이 이상하게 보더라구요. 아무렴 어때, 내가 전설인데.
그 날 하루 전설까지 가면서 6번 정도 졌으니까 16승6패를 한 셈입니다.
경기수는 세어보진 않았지만 많이잡으면 3일간 대략 150경기 가까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제 경험을 통해 전설을 달려보려고 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등급전의 유행은 계속 바뀐다는 겁니다. 제가 플레이한 첫날은 자군야포드루이드에게 좋은 환경이었고, 마지막날은 레이나드흑마술사에게 좋은 환경이었던 거죠.
지금 생각하는건데 그 때 제가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손님전사가 완전히 유행을 타기 전이었고 랭겜하면서 악마를 혼합시킨게 아닌 고전 레이나드를 플레이하는 사람은 한번도 못 만났기에 미러전 할 일도 없었습니다. 레이나드하면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제도 거의 안 만났거든요. 그 다음으로 힘든 건 사냥꾼과 도적인데 그 때 만난 사냥꾼은 거의 다 돌진사냥꾼이었기 때문에 손패에 아르거스가 잘 붙어주면 이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유행하는 하이브리드 사냥꾼 상대로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만약 지금 가진 덱으로 등급전이 힘들다면 이럴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지금 유행하는 덱이 내가 플레이하는 덱에게 상성이 좋다. 이건 당장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죠. 티모가 OP챔이 되서 탑에 맨날 나오는데 거기에 나는 가렌만 픽해서 들이 대는거랑 똑 같은 거예요.
그러니 오랫동안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 날 자주 만나는 덱을 파악하고 무슨 덱이 좋을지를 고민해 보세요.
그래서 엔딩 본 후에 하스스톤에 미련은 뗏냐구요?
전설 단 후로 보름동안 투기장 130경기 평균 7승을 찍었습니다…..
마스터즈 코리아도 다 챙겨봤다고 합니다. 심지어 룩삼선수 22경기 하는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