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집단은 변화 혹은 견제세력이 필요하다.

이는 꼭 정치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특정 세력이 고착화 되면 계층이 생기고 기득권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권위주의 세력의 반대편을 대변하는 PD계열의 정의당마저
지난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계층화, 기득권화, 기성 세력화가 진행되었죠.

굳이 페미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5석~10석 내외의 안정적인 원내 진입이 가능해진 현 시점에서
정의당은 장외의 역동력과 현장의 생동감은 사라지고 기존 정치세력이 안 좋은 면 만을 답습해온 결과
현재는 민주당내 개혁세력과 정의당 원내는 구분의 실익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2. 더불어민주당의 방식, 새누리당의 방식

거대 양당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를 이뤄왔습니다.

국민의 당은 안철수(혹은 박지원)의 대활약으로 제3세력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만들었고
그 기반은 민주당의 심장인 호남 현역의원들의 활약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호남 홀대론 프레임은 강력했고 대선주자 안철수는 부족했던 지역기반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영남패권주의로 공격받던 민주당은 실제로 영남패권(?)의 기반을 만들면서
부울경 10석 대구경북 2석이라는 괄목한 만한 진전을 만들어냅니다.

전략적 투표에 익숙한 민주당지지자들은 더 이상은 구닥다리 야권연대는 필요 없다는 듯
대부분의 수도권 경합지역에서 지역구 단일화를 만들어주었고 제1당 + 전국정당이라는 큰 성과를 달성합니다.    

새누리당의 방식은 이와는 달랐습니다. 이른바 증세 없는 복지 논쟁으로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승민은
탄핵정국을 활용해서 30여명의 비박의원들과  함께 대한민국 보수 역사상 유래 없는 바른 정당을 창당합니다.
물론 바른정당의 구성원들은 대선주자 유승민이 아닌 반기문을 원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나,
반기문은 너무나 빠르게 밑천을 드러내고 맙니다. 물론 이는 유승민의 실책이라고는 볼 수 없죠.

국민의 당과 가장 다른 점은 이들이 당의 진골인 친박 주류의 여집합이었다는 점이죠.
구심점이 없는 당의 기반은 반기문이라는 신기루가 사라지자마자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친박이라는 기존 코어지지층을 버리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매우 불리한 선거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정치 틀 안에서 이 둘의 표면적인 차이를 말하자면
확실한 대선주자를 만들었는가 혹은 아니었는가로 간단히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기존 세력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세력을 당내에서 포용할 수 있었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남이라는 확실한 지역 기반을 잃더라도 전국정당으로서의 변화를 추구한 민주당은 살아남았고,
친박이라는 핵심지지층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새누리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죠.  



3. 보수민주당을 통한 정계 개편은 허구다.

일각에서는 통합당이 사멸하고 민주당이 이른바 신보수(?)세력이 되어서
정의당 등과 보혁구도를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 현실성 없는 진보세력의 바람에 가깝습니다.

정말 광주는 진보적이고 대구는 보수적인가?
북한에 호의적이면 진보이고? 북한을 적대시하면 보수일까?
라는 몇 가지 의제들만 고심 해봐도 그 대답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궁극적인 문제는 민주당이 기존의 대구 경북 혹은 보수성향의 지지자들을 끌어안을 대표성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보수정당이 한반도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는 민주주의 정당체제의 당위성에 따라
이들을 대표할 세력이 반드시 존재해야한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릅니다.

우리가 걱정해야할 것은 극단으로 달려가는 보수우파의 경향성이지 보수우파 그 자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들을 대표할만한 집단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 통합당이 100석 이하를 얻는다고 해도 이들이 분열되고 사라질 거라고 주장하는 건 참 순진한 발상이죠.
그런 식이면 18대 총선에 민주당은 이미 사라졌겠죠.  


4. 그렇다면 보수는 어떻게 해야 살아날 수 있는가?


현실적인 전제로 이번 총선에서 현재의 당권파가 명분을 잃을 정도의 패배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적정선은 115석에서 130석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이라면 현재의 체재가 유지될 것이고,
그 이하라면 승리에 취한 여권의 계파분열이나 자중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 할 일은 새 지도부가 TK의 극렬 지지층 및 태극기부대(조원진, 홍문종, 전광훈 등) 와 확실한 선을 그어주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 과정은 각자가 세 개의 당으로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주고 있습니다.  

정책적 방향으로는 안보이슈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유지하면서도 이념 보수적인 색채를 최대한 버리고
시장보수의 가치를 당의 최우선 방향으로 잡는 것입니다.

이 당의 최전성기 시절인 한나라당은 비록 야당이었지만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선진화 프레임으로 정부여당을 경제에 실패한 세력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친박, 친이, 소장파를 모두 포용하면서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을 상대로 지선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을 때
민주당에게 허락된 미래는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사람으로 따진다면 원희룡, 오신환, 김용태, 김세연 등을 바른정당계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급은 안 되지만 조대원이나 이준석 같은 원외도 나쁘진 않겠죠.
물론 아직까지 대선 급의 인물은 없습니다만, 대선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진 않죠.

사실 반농담이긴하나 이쯤에서 글 제목의 그 분이 나오시겠네요.
안철수도 있습니다. 얼굴마담경력도 훌륭하고 당대표로 내세우면 가짜보수라고 공격받으면서
TK와 민주당지지자들의 쌍방향 욕받이를 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현된다면 기존의 극렬 보수 세력이 알아서 신당을 만들어 떠나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5. 민주당의 고여가는 물, 통합당의 불안요소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너무 과하게 이기는 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준비 안된 과반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사례에서 너무나 절실하게 체험했죠.
각자가 계파를 만들고 당론이 분열되고 개혁은 좌초됐습니다.

사실 여권 입장에서 가장 좋은 승리는 황교안이 자리를 보전하는 수준에서 견제를 받을 정도의 승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선거로 대부분은 재선이 될 친문들이 차기 권력을 만들기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안정적인 정국 후반을 논하기에는 대선이 너무 가깝고, 누구하나 확실한 후보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낙연은 지금처럼 본인의 정치적 입지와 무관하게 친문과 비문의 유력주자들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기회가 올 수도 있겠죠.

극문을 자처하는 열린민주당은 넓게 보고 혹은 멀리보고 버리고 가는게 맞습니다.
이념과 철학 없이 사람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친박연대라고..
정작 그런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사람에 충성하지도 않습니다.
유일한 변수라면 그 의석들을 활용해서 개헌이 가능할 경우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물론 개헌을 하고 싶더라도 캐스팅보트를 쥐어주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통합당은 결과와 상관없이 당의 체질개선과는 무관한 사람이 돌려막기로 대표자리에 올라가는 게 가장 시간낭비라고 봅니다.
홍준표, 김무성, 오세훈, 유승민 이런 사람들은 선거결과와 무관하게 전면에서 물러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긴 해도 2년이면 새로운 대선주자를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의외로 보석은 내부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외부에서 새로운 얼굴마담을 찾는 것도 방법이겠죠.
키워드는 경제입니다. 여당 지지자들 마저 의심하는 소주성을 논파할 만한 싱크탱크와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실제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뉴 페이스를 찾아내는 게 다음 대선의 승부수가 될 겁니다.

물론 친박이 계속 살아남는다면 다 소용 없습니다.


6. 물론 이 모든 건 내일 6시 이후에 개 뻘소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헛소리가 길어졌습니다.
가장 좋은 건 황금 밸런스라고 생각하지만 각자 지지하는 정당의 대승을 기원합니다.
아무튼 안크나이트님의 국민의 당과 미래통합당의 성공적인 합당을 기원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